열이 나면 반드시 해열제를 먹여야 하나요?
올바른 해열제 사용법
아이의 체온을 측정한 체온계에서 섭씨 38도(화씨 100.4도)가 넘는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일단 해열제부터 찾게 된다. 열이 날 땐 보채고 쳐져 있던 아이가 해열제 약발이 듣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쌩쌩해지는 모습을 목격한 경험이 있는 부모라면, 해열제를 왜 먹여야 하는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 효용성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수족구병이나 독감 또는 아데노바이러스 감염증 등에 걸렸을 땐 해열제가 잘 듣지 않아서 애태워 본 경험 또한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도 여러 번 해열제를 써야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자주 써도 되는지 걱정스러운 맘이 들기도 했을 테고 말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장 자주 찾게 되는 약인 해열제에 대한 이모저모를 살펴보도록 하자.
Q. 열은 왜 나는 거죠?
체온은 혈액 온도 변화에 민감한 신경 세포(전방 시상하부 또는 시각 교차 앞 구역에 위치)와 냉온 수용체(피부 및 근육에 위치)에 의해 조절된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전에 의해 발열이 일어난다.
- 발열원 : 시상 하부의 체온 조절 기준점(set-point)을 상승시키는 물질에 의해 발열이 일어나는 경우다. 내인 발연원에는 IL-1, IL-6, TNF-α, INF-β, INF-γ등의 사이토카인, 프로스타글란딘 E 등이 있고, 이 내연 발연원 생산을 자극하는 외인 발연원에는 미생물, 미생물 분비물, 약물, 종양, 염증 등이 해당된다.
- 열 손실보다 큰 열 생산 : 살리실레이트(Salicylate) 중독, 악성 고열 등.
- 열 손실 장애 : 고온 환경에 노출된 경우나 외배엽 형성 이상 등.
건강한 소아에서 일어나는 급성 발열은 대부분 감염이 원인이다. 따라서 열은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해 우리 몸이 나타내는 면역 반응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Q. 고열이 심하면 뇌손상이 올 수 있나요?
열성 경련에 의해 간질 지속 상태(status epilepticus)가 발생하거나 열사병을 제외하면, 고열이 뇌손상을 초래한다는 우려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없다. 따라서 열성 경련에 대한 대처만 잘 한다면, 뇌손상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Q. 열이 나면 반드시 해열제를 먹여야 하나요?
발열은 감염에 대한 적응 현상이므로 특수한 경우에만 치료하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열이 나면 대개 환자가 힘들어하기 때문에, 해열제 투여를 통해 불편감을 덜어줄 수 있다. 즉 해열제는 열을 단순히 떨어뜨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발열로 인해 힘든 증상을 경감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것이다.
건강한 소아가 딱히 힘들어하지 않는다면, 39도 미만에서는 굳이 해열제를 쓰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39도가 넘는 고열이 있거나 그 이하라도 아이가 힘들어 할 때는 38도 이상부터 해열제 투여를 고려할 수 있다. 특히, 열성 경련의 과거력이 있거나 특별한 질환(만성 심폐 질환, 대사 질환, 신경계 질환 등)을 가진 경우에는 해열제를 꼭 써야 한다.
Q. 해열제 먹여도 열이 안 떨어지면 어떡하죠?
해열제를 먹여도 체온이 38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보호자는 으레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해열제 투여의 1차적 목적은 열을 떨어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힘든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것이다. 따라서 해열제 투여 후 체온이 38도 이상에 머물러 있더라도, 아이가 힘들어하지만 않는다면 너무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아이가 힘들어하거나 39도 아래로 잘 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다른 계열의 해열제를 교차 투여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만약 고열이 지속되면서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가정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Q. 항생제를 썼는데도 열이 지속되면 어떡하죠?
만약 세균성 감염에 의한 발열이 의심된다면, 항생제 투여를 고려하게 된다. 그런데 항생제를 쓰기 시작한 후 1~2일이 지나도 열이 계속 나는 경우에는 경험적으로 선택한 1차 항생제가 듣지 않거나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는 바이러스 감염일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럴 땐, 항생제 교체를 고려하거나 대증적인 치료를 하면서 경과 관찰을 할 필요가 있다.
세균성 질환에 의한 발열은 적절한 항생제를 찾아 쓰기만 하면 열이 잘 잡히는 반면에, 바이러스에 의한 열은 일정한 경과가 지나야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 항생제 선택 및 교체를 비롯한 치료 플랜을 결정하는 고민은 보호자가 아닌 의사의 몫이므로, 보호자께서는 그저 주치의 선생님의 치료 계획에 잘 따르면서 아이의 컨디션만 잘 챙기시면 된다.
요컨대 열이 얼마나 지속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의 컨디션이다. 아이가 잘 먹고 잘 논다면 열이 5일 이상 지속되더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취하면서 기다려볼 수 있고, 잘 못 먹고 쳐져 있는 아이라면 발열이 시작된 당일에라도 정밀 검사 및 입원 치료를 고려할 수 있겠다.
Q. 밤에 갑자기 열 날 때 응급실에 꼭 가야 할까요?
한밤중이나 새벽에 열 나는 아이를 들쳐 안고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가본 경험이 있는 부모라면 다 아시겠지만, 밤에 힘들게 응급실 가봐도 사실은 별 뾰족한 수 없이 귀가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때 역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아이의 컨디션이다. 고열이 나도 아이의 컨디션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면 굳이 야밤에 응급실까지 갈 필요는 없다. 해열제를 먹이고 재운 후에 다음날 아침에 다니던 소아과를 찾아 가도 괜찮다.
다만 고열이 나면서 아이가 심하게 쳐지고 아파 보이면 한밤중이라도 응급실에 가볼 필요가 있겠다. 발열의 원인을 밝히는 검사 및 신속한 치료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쌤이 알려주는 의료 상식] 올바른 해열제 사용법
소아에서 사용하는 해열제의 양대 산맥은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이부프로펜의 거울상 이성질체인 덱시부프로펜도 자주 사용되는데, 덱시부프로펜은 이부프로펜과 같은 계열의 약으로 봐야 한다.
- 아세트아미노펜 : 타이레놀®, 세토펜®, 챔프® 등
1회당 10~15mg/Kg의 용량을 최소 간격 4시간을 두고 쓸 수 있다. 아이의 몸무게를 3으로 나누면 최소 용량에 가까운 1회 용량이 나온다. 약전에는 몸무게에 따라 최대 20cc까지 복용하도록 되어있지만, 30Kg 이상은 그냥 10cc로 통일해도 무방하다.
간독성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간 수치가 높거나 간담도계 이상을 가진 경우에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 이부프로펜 : 부루펜®, 이부서스펜®, 챔프이부펜®, 비알이부펜® 등
생후 6개월부터 쓸 수 있고 5~10mg/Kg의 용량을 최소 간격 8시간을 두고 쓸 수 있다. 아이의 몸무게를 3으로 나누면 최소 용량에 가까운 1회 용량이 나오며, 30Kg 이상은 10cc로 통일해도 된다. 최소 용량으로 복용할 경우 최소 간격 4시간까지도 괜찮지만, 아세트아미노펜에 비해선 작용 시간이 긴 편이기 때문에 가급적 8시간 간격을 지키도록 한다.
위장 장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공복에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 덱시부프로펜 : 맥시부펜®, 비알덱시펜®, 코키즈펜®, 애니펜® 등
생후 6개월부터 쓸 수 있고 5~7mg/Kg의 용량을 4~6시간 간격을 두고 필요시에 복용하며, 1일 최대 4회를 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약전에는 몸무게에 따라 1회 용량을 최대 25cc까지 복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30Kg 이상은 12cc로 통일해도 무방하다.
이부프로펜과 마찬가지로 위장 장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공복에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 꿀팁. 해열제 교차 복용에 대하여
어떤 전문가들은 다른 계열 해열제 간의 교차 복용을 하지 않도록 권하고 있지만, 고열이 잘 잡히지 않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교차 복용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해열제 교차 복용 방법 한 가지를 제안해 드리자면, 고열이 계속될 때 이부프로펜 또는 덱시부프로펜을 다른 약과 함께 하루 3회 먹인 후에, 그래도 38도 이상 열이 오르면 아세트아미노펜(최소 간격 4시간)을 추가로 투여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열을 꼭 38도 이하로 떨어뜨리는데 목표를 둘 필요는 없다. 체온이 38도 위에 머무르더라도,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는다면 굳이 교차 복용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처음 부모 육아 멘붕 탈출법] 책 소개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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