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1) 주막거리에 있는 「살구나무」의 수피
「살구나무」는 개를 죽이는 나무일까. 이름을 보면 언뜻 그럴 듯도 해 보인다. 어찌 보면 상극 같기도 하다. ‘돼지고기와 새우젓,’ ‘소고기와 배,’ ‘밤나무와 지네’가 그런 범주에 들기는 한다. 그러나 개 또는 개고기와 연관지어 殺狗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가 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살구나무에 살구殺狗란 한자가 없다. 하지만 개와 연관이 있는지 이런 말씀은 많이들 하신다.
“개한테 물렸을 때 그 독을 중화시키는 약으로 살구 씨를 달여 먹거나,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도 그렇게 하면 효험이 있다.” 는 말씀이다. 독을 중화하는 건 그렇다 치고, 고기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육류 가운데 개고기만큼 우리 몸에 잘 흡수되는 것은 없다고 하였는데, 개고기 먹고 체한다는 말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과식을 해서일까. 먹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살구나무 하면 발그레하게 익은 살구가 그저 그만이지만, 그 꽃 또한 반해버릴 정도로 너무나 화사하다. 노란색을 신호로 시작한 꽃들은 분홍색으로 확실한 봄을 시작한다. 노란 개나리가 그렇고 산수유나 생강나무가 그렇다. 겨울이 깨지면 노랑이 오고, 노란 봄바람에 분홍이 밀려온다. 그래서 활짝 핀 살구나무가 자태를 뽐낼 수 있는 모양이다. 취한 듯 반한 듯 설레는 가슴을 부여잡고 분홍색 살구꽃을 가리키며, “저 살구꽃 좀 봐! 살구꽃을!” 떠날 줄 모르고 노래를 부르고 탄성을 지른다.
봄날 살구나무 꽃이 피면 동네가 환하게 살아난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동심에 젖어 평온해지는 모양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고향의 봄」이 오늘 따라 왠지 그립다.
또한 낙화하는 살구꽃은 어떤가. 미풍에 몸을 맡기고 마당에 내려앉는 모습은 애처롭기만 하다. 화려한 정상에서 급전직하 밑바닥이다. 질서일까 덧없음일까. 감동을 느끼며 봐 보자. 마치 연분홍 치마를 펄럭이며 내려오는 선녀같이 보이기도 한다. 꽃은 마음을 따뜻이 다독여 주기도 하고, 울렁이게도 하는 마술 같은 존재다.
난 살구나무 밑에서 어릴 적을 보냈다. 그래서 꽤 친한 편이다. 그 땐 꽃보다 살구를 더 탐했었다. 살구를 주워 먹을 때마다 이게 웬 떡이냐 했다. 무양동 우리 집 마당위로 앞집의 살구나무 가지가 월장을 해 있었다. 이 잘 생긴 살구나무는 정담 선생님 댁에 살고 있었고, 바로 담장 옆 우물가에 서있었다. 마당으로 뻗은 가지의 화사한 꽃들을 보며 대문을 드나들었고, 떨어지는 살구들을 주워 먹었다. 살구나무 행杏자를 보면 나무 목木 아래 입 구口자가 있다. 그래서 살구는 살구나무 밑에서 주워 먹어야 하는 갑다.
모교 선생님이셨던 정담 선생님 댁에는 딸만 둘이 있었는데 첫 따님의 이름이 ‘정원희’였다. 둘째는 그때 있었는가, 기억이 안 난다. 지금은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 정도는 되었을 것 같다. 살구 보답으로 살결이 뽀얗던 아기 원희를 업어준 적이 한 번 있었다.
이제 꽃을 한번 봐 보자, 관심을 가지고 봐야 꽃 뒤에 꽃받침조각을 볼 수 있다. 처음 본다면, 특이한 현상에 “아~” 할 것이다. 꽃을 보호해야할 꽃받침조각이 꽃은 나 몰라라 하고는 뒤로 발라당 젖혀 있다. 드물다. 장미과 친인척인 벚나무를 위시해서 앵두나무 우물가에 하고, 복사나무, 매화나무들은 하나 같이 정상이다. 유독 살구나무만 꽃받침조각이 뒤로 넘어져 있다. 새싹이 돋고 꽃이 필 무렵 살구나무와 매실나무는 구분이 어렵다. 하지만 뒤로 젖힌 꽃받침 조각을 보면 이게 바로 살구나무구나 하고 식별을 할 수 있다.
또한 살구나무 잎에서는 찐득찐득한 액체가 떨어진다. 왜 그런지 알아보지 못했다. 3~4월에는 가지마다 한 두 개의 연한 홍색의 꽃이 잎이 나기 전에 핀다. 열매 핵과는 6~7월에 황적색으로 익는다. 과육과 씨앗의 분리가 분명해서 먹기에 참 편리하다.
주막거리를 보면서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났다. 옛날부터 술집 앞에는 살구나무를 심었고, 살림 집 담장 안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화려한 살구꽃 관상에 사람이 모이니까 술이 잘 팔릴 거고, 복숭아꽃은 여인네 치마폭에 봄바람을 불러일으켜 도색이나 도화를 연상시킨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금기사항이 많았던 시절이지만 의미로는 그럴 듯하다.
끝으로 목탁을 보고 가자. 스님과 목탁은 실과 바늘이다. 그 소리가 맑고 청아할수록 좋은 목탁일 거다. 스님이 치는 목탁소리는 저승으로 간 물고기의 영혼을 위안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목숨 붙어 있는 이승의 모든 생물들은 죄를 많이 지어 대개는 지옥에 간다고 한다.
이때, 살구나무로 만든 목탁을 치면 어떻게 될까. 그 소리가 지극히 명징해서 머나 먼 지옥까지 영롱하게 울려 퍼질 거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널리 널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누나 손등을 간질여 주어라.” 퍼지는 목탁 소리가 전생에 지은 죄를 씻어 주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이야기다. 살구나무 목탁 소리가 지옥행 중생을 구제해줄 줄이야. 오동나무만 그런 줄 알았는데, 살구나무 또한 그렇게 공명이 잘 되는 줄은 몰랐다. 끝. 2021.1.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