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9월 14일(토) 이사야 30:18-26 찬송 493장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22.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23.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24.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25.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위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개역 개정)
-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 약속 -
어제 말씀에서 하나님을 저버리고 애굽을 의뢰한 유다에 대한
책망과 심판 경고를 주었던 이사야는 다시 분위기를 전환하여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 약속을 주고 있다.
이는 결국 어제 말씀과 관련해서 볼 때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본심은
심판을 통한 유다의 멸망이 아니라 징계하신 후에
그들의 불신앙을 돌이켜 회개케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축복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먼저 18절은 택한 백성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
자기 백성이 속히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19-22절은 고통중에 부르짖는 유다 백성의 기도에 대한 응답과 인도의 약속을,
23-26절은 풍성한 양식과 영적 평안 및 치유의 약속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범죄한 백성에 대해 공의로 징계하시면서도
항상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긍휼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절묘한 조화를 발견한다.
또한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위해 예비해 놓고 계신 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크고 풍성한 축복인 바
이에 대한 소망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한다는 것(롬8:17)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방하는 모든 악한 우상들을 적극적으로 제하는 것만이
축복에 이르는 첩경이 된다는 것(22절)을 깨닫게 된다.
20 )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여기서 ‘너희’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들을 말한다.
곧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회복될 선민을 말한다.
이들에 대해 19절에서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있다.
그런데 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히 멸망하는 일은 없지만
그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를 신약적 개념으로 말하면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성도들도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별히 20절은 그러한 고난은 ‘주께서 주신다’고 함으로써
고난이 성도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고난은 피하여 가지 못한다.
성도라도 고난은 다 받는다.
많은 성도들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세상에서 닥치는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의 풍파로부터
완전한 보호를 받게 되어 고난 없는 삶, 평강과 기쁨,
형통만이 계속되는 삶이 펼쳐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고난이 오게 되면 시험에 들어
신앙 생활하는 것이 헛것이라고 여기고 믿음의 길을 버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바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한 영원한 멸망으로부터는 자유롭게 되지만
이 땅에서 닥치는 고난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고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당한다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빛된 삶을 살아야 할 성도들은
악하고 어두운 세상, 그 가운데 동화되어 사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할 때 성도들 역시도 환난의 떡, 고생의 물을
먹고 마셔야 한다는 본문의 가르침은 전적으로 옳으며
성도들의 삶에 있어 요긴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처럼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들을 거룩한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함이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우리들이 세상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완전히 구별되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들도 그 본성은 세상 사람들과 같다.
그래서 우리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를 짓기도 하며
악한 자들의 자리에 같이 앉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들이 될 수 없다.
이에 하나님은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우리에게 주시어 연단하심으로
우리들 안에 내재되어 있는 죄의 악한 본성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시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특별한 죄를 짓지 아니한 때에도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시도 불완전한 우리를 연단하여
거룩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목적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환난의 떡을 먹고
고생의 물을 마시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베드로 사도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에게 오는 불시험은 연단을 위한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전혀 이상한 것으로 여기거나 비굴하게 피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도리어 이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당해야 한다.(벧전4:12-1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실 때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으로 알고
낙심이나 원망이 아닌 감사로 받으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 세우며
영광스런 천국 백성다운 모습으로 세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