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58) 왕윤의 죽음
동탁의 참살 소식을 듣고, 군사 일만 명을 데리고 미오성을 떠나 양주로 도망을 한 동탁의 심복, 이각, 곽사, 장제, 변주 등은 자신들의 주공(主公)인 동탁이 죽어 없어지자 매우 불안 하였다.
이러는 와중에 그들은 동탁과 한무리를 이루었던 잔당 모두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는 장안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듣자,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왕윤에게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왕윤은 그들의 사자(使者)를 만나 보고 크게 나무라는 실수를 저질렀다.
"동탁을 등에 업고 세상을 어지럽힌 네놈들을 어떻게 용서한단 말이냐!"
그러면서 왕윤은 그들을 토벌한다고 많은 군사를 일으켰다.
양주에 있던 동탁의 잔당들은 이에 크게 놀랐다.
그러자 그들의 모사인 가후가 수심에 잠겨 있는 네 명의 장수를 둘러보며 말한다.
"우리들은 겁을 집어먹어서는 안 되오. 더구나 한 사람식 떨어져 버려도 안 될 것이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단결하여, 우리 스스로가 선수를 쳐서 장안을 공격하는 것이 좋겠소. 일이 용이하진 않겠지만 우리가 군사를 선택하여 집중한다면 주공의 원수도 갚고, 경우에 따라서는 천하를 우리 손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오."
"과연 명안이오."
네 장수는 무릎을 치며 감탄하였다.
때마침 왕윤의 토벌대는 미오성으로 이르는 고을마다, 젊은 청년들을 모조리 죽인다는 소문이 퍼져서, 일반 백성들은 <동탁이나 왕윤이나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는 원망을 해 대며, 양주로 동탁의 잔당을 찾아오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각의 수하에는 잠깐 사이에 십 만이 넘는 병사가 새로 생겼다.
게다가 서량을 지키고 있던 동탁의 둘째 사위인 중랑장 우보(中郞將 牛輔)까지 훈련이 잘 된 군사 오천여 명을 데리고 합류하였으니, 예전의 동탁의 군세(軍勢)에 견줄 만큼이나 규모가 커졌다.
이에 이각은 크게 용기를 얻어 대군을 거느리고 장안성 원정길에 올랐다.
그러나 도중에 왕윤의 토벌대와 부딪치자, 그들은 기가 질려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토벌대의 총대장이 천하무적의 여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모사 가후가 말했다.
"우리가 여포와 밝은 대낮에 부딪치는 것은 불리하니, 야간에 기습하는 것이 좋겠소."
과연 그날 밤 기습을 하여 보니, 토벌대는 의외로 형편없이 약했다.
그도 그럴 것이 토벌대 선봉장은 여포가 아니라, 동탁을 죽일 때 가짜 칙사로 왔던 이숙(李肅)이었기 때문이다.
이숙은 기습을 당하여 많은 군사를 잃어버리고 삼십 여리나 후퇴를 하였다.
후군을 지휘하던 여포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며 달려와,
"첫번 싸움에 참패를 하면 전체 사기에 영향이 크니, 그런 자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
하고 이숙을 현장에서 방천화극(方天畵戟)을 들어 한칼에 몸뚱이를 두 동강 내버렸다.
그리고 나서는 몸소 군사를 이끌고 토벌의 길에 올랐다.
여포가 맨 처음에 마주친 적장은 우보였다.
우보는 여포와 두세 합 싸워보더니, 도저히 여포를 당해 낼 수 없음을 깨닫고 허겁지겁 도망을 치면서, 심복 부하인 호적아(胡赤兒)에게 소리쳤다.
"여포가 나오면 전투는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속히 퇴각하자!"
이리하여 우보와 호적아는 부하들을 몰고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여포가 무섭게 쫓아오는데,
호적아는 금방이라도 여포의 방천화극의 제물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치던 호적아는 순간, 등 뒤에서 자신의 주인인 우보의 목을 잘랐다.
그리하여 그 머리를 가지고 적진인 여포의 진지로 달려가,
"내가 우보의 목을 잘라왔으니, 나를 크게 써 주시오!"
하고 관용을 베풀어 줄 것을 청하였다.
여포는 그 말을 듣자,
"우포의 목만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 주인을 배반한 네놈의 목도 베기로 하겠다."
하고 즉석에서 호적아의 목도 떨구었다.
우보가 죽고, 호적아의 목도 여포에 손에 떨어졌다는 소리가 순식간에 이각의 진지에 퍼졌다.
그러자 이각은 동료 장수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여포라는 자와 정면으로 싸워서는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그자는 용맹하기는 천하 제일이지만, 지략이 부족하므로 우리는 계교로서 그와 싸워야 할 것이다."
"어떤 계교 말인가?"
곽사가 물었다. 그러자 이각은,
"계교란, 우리가 여포와 싸우다가 쫓기고, 또 싸우다가 쫓기고 하면서, 여포군을 산 속으로 깊숙이 몰아 넣고 지구전과 신경전을 써야 한다. 그러면 성질이 급한 여포란 놈은 제풀에 지쳐버릴 것이다."
이각의 계획은 즉각 실행되어 여포를 산중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제와 번주 두 장수가 많은 군사를 이끌고 장안성으로 쳐들어 갔다.
장안에서는 불의의 습격을 받고 크게 당황하면서,
"장안이 위태롭게 되었으니 여포는 급히 돌아와 장안을 지켜라!"
하는 명령을 여포에게 내렸다.
여포가 명령을 받고 장안으로 회군하려 하자, 이번에는 쫓겨 갔던 이각과 곽사의 군사들이 반격을 해왔다.
공격을 당하고 보니 여포도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싸우려면 쫓겨가고, 돌아가려 하면 뒤에서 습격하고... 그야말로 약이 오를 지경이었다.
여포는 이런 모양으로 산중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혼란에 빠진 채 여러 날을 보냈다.
그 사이에 장제와 번주는 장안성에 육박하였다.
장안성은 철옹성 같은 외성(外城)에 둘러싸여 있었다.
장안성은 제아무리 용맹한 군대가 공격을 하더라도 성문만 걸어 잠그면 타고 넘기가 어려운 견고한 성벽으로 쌓여 있어서 , 장안의 백성들은 그런 성벽만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장안성을 에워싼 장제와 번주가 야음을 틈타 공격을 개시하려하자, 시종 하나가 급히 달려와 어린 헌제에게 아뢴다.
"제아무리 반역의 무리라도 설마 천자를 몰라 볼 리가 만무하오니, 천자께서는 친히 선평문(宣平門) 누상에 오르시어 이 난리를 멈추도록 황명을 내리심이 좋을 듯 아뢰옵니다."
하고 품하였다.
헌제는 태사 왕윤을 비롯한 측근 백관들과 함께 선평문으로 무거운 옥보(玉步)를 옮겼다.
그리하여 누각에 높이 오르자, 난군은 천자의 황개(黃蓋)를 보고 크게 놀란다.
"천자님이시다!"
"헌제께서 누상에 납시셨다!"
난군들 조차 누상을 올려다 보며 제각기 외쳐대었다.
헌제는 누상에서 굽어보며 이렇게 분부하였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나의 허락도 없이 장안으로 밀려들었느냐?"
그러자 장제가 소리높여 대답한다.
"황제 폐하! 돌아가신 동탁 태사는 폐하의 충신이옵고, 국가의 공신이었사옵니다. 그렇건만 아무런 까닭도 없이 왕윤 일파가 간계로써 태사를 참살 하고, 그 시체는 무참히도 거리에 딩굴게 하였사옵니다. 이것은 어찌 사람이 할 짓이란 말이옵니까? 그래서 저희들은 동탁 태사의 은총을 생각해,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사옵니다. 저희들은 결코 반란이 아니옵니다. 폐하께옵서 그 간악한 왕윤만 저희들에게 내어 주신다면 저희들은 곧 이자리에서 물러나겠사옵니다."
그 소리가 끝나자 성 밖의 진군해온 군사들이 일제히 찬동의 함성을 울린다.
헌제는 옆을 돌아다 보았다.
바로 옆에서는 왕윤이 우뚝서서, 성밖의 아우성을 창백한 얼굴로 노려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헌제의 시선이 이미 심상치 않음을 깨닫자, 왕윤은 모든 것을 각오한 듯 말한다.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이 몸을 너희들에게 주리라!"
하는 소리를 지르고 누상에서 적의 무리 속으로 나는 듯이 뛰어내렸다.
왕윤의 몸은 적병들의 무수한 창검 위에 떨어졌다.
"왕윤이 틀림없다! 우리들의 원수다!"
"죽여라! 죽여라!"
이런 외침 속에 이미 목숨이 끊어진 왕윤의 몸뚱이에 난적들의 수많은 창검이 난무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