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배모기 교우촌 (순례지/성지)
간략설명: 뱀의 목처럼 생긴 배모기에 세워진 교우촌
지번주소: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양범리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양범리(利安面 良凡里)는 본래 함창군 상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주군 이안면에 편입되었다.
산과 산으로 둘러싸인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그 지형이 뱀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양배미기’라 불리다가 변하여 ‘양범리’가 되었다. 이 마을이 바로 배모기 교우촌 터이다.
이곳 배모기에는 1785년 명례방 신앙집회 중 발생한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에 연루되어 문중으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당해 낙향한 서광수(徐光修, 1715-1786년)의 가정에 의해서 처음으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 배모기 부근에는 사실(상주 대현리) · 은재(문경 저음리) · 한실 잣골(문경 상내리) · 감바우(상주 아천리) 등의 옛 교우촌이 있었다.
상주 지방은 1592년 임진왜란 전까지 경상도 감영이 있었던 유서 깊은 고을이다. 또한 소백산맥 동편에 위치하고 낙동강이 이 지방의 동남쪽으로 흐르며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곳으로 예로부터 많은 인재가 배출된 인물의 고장이기도 하다.
1791년 신해박해 후인 1798년 황사영 알렉시오(黃嗣永, 1775-1801)가 상주의 이복운에게 복음을 전파하려고 왔다가 실패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무렵부터 복음전파의 노력이 이 지방에서 활발했던 것 같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서광수의 4남인 서유도 가정은 문경 한실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서유도 가정을 통해 천주교를 알게 된 것으로 생각되는 경주 이씨 이응동의 선대 가정이 이 지방에 살면서 신앙을 전파하였고, 순교 복자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金允德, 1765?-1815년) 가정은 은재(현 경북 문경시 가은읍 저음리)에서 살다가 청송 노래산 교우촌으로 피난을 갔다.
신유박해 때 충청도 사람인 김만업이 상주로 귀양을 왔다. 그 후 이안면의 배모기 뿐 아니라 인근의 사실 · 은재 · 멍에목 · 앵무당 · 삼막터 · 오두재 · 보문 · 서산 화형 터와 그 부근의 마을인 율리(밤밭) 등 여러 곳에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1815년 을해박해, 1827년 정해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0년 경신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역대 박해 때마다 이 지방에 살던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다. 특히 상주 시내에는 목사(牧使)의 아문(衙門)이 있었기 때문에 문경, 상주 등지에서 체포되어 온 신자들이 관아에서 영장에게 문초를 받다가 사망하거나 감옥에서 옥사하거나 형장에서 참수를 당하였다.
[출처 : 안동교구 홈페이지,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6년 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