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4편 입산기>
③ 갱두 보덕의 예언-15
그런데 야당의 선거운동자들이, 경찰의 탄압을 받았으면서 대통령후보 이승만을 지원하고 있는 반공청년단체의 폭력단원들이 선거하는 날 유권자들의 투표하는 실태를 감시하려고 투표장에 나타나기도 하였다는 거였다.
또 농촌지역에서는 3인조나 9인조 같은 조를 짜가지고, 자유당에 충성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활동하는 열성당원이나, 믿을만한 사람이 그 조의 조장이 되어 조직원들을 시키어 자유당후보자에게 지지투표를 책임지게 하였다는 거였다.
경찰은 아주 공개적으로 자유당후보자를 지원하였으나, 이러한 노력이 꼭 필요한 것도 사실은 아니었다고 하였다. 이미 선거의 결과는 경찰지휘부나 내무부에서 완전히 허위 날조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3월15일 실시한 정부통령선거의 결과는 이승만이 총투표수의 삼분의 일보다 무려 2배 이상이나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하였다. 또 부통령후보자인 이기붕은 팔백사십만 표를 얻어서 백팔십만 표를 얻은 장면을 제치고, 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거였다.
심지어는 그 지역의 인구수보다 많은 표가 나오기도 하였고, 선거장을 정전시키기도 하여 갖은 부정사례가 상상을 초월하였다는 거였다.
이것을 3.15부정선거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따라서 국회에서 민주당은 이번 정부통령선거를 불법적인 것이라 무효라고 주장하였고, 이 부정선거와 불법선거를 규탄하는 반정부시위가 선거를 전후하여 전국의 대도시에서 들고일어났다고 하였다.
때문에 민심은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으로부터 이반되어 있었으므로, 대규모의 봉기와 데모가 점차 심화되었던 건 정의의 구현과 도덕적인 분개라는 공통심리가 모든 사람들의 감정을 격화시키어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게 되었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러한 아수라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월로 들어섰는데, 전국적으로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여론이 비등하였을 때에 경남 마산시민들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가담하였다가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로 바다 속에 버리어진 마산상업고등학교 학생 김주열의 시체를 발견하였다고 하였다.
이 사건이 기화하여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지어 나오게 되었고, 시위는 급격히 확산되었다고 하였다.
천복은 산사에 들어와 있는 동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는데, 학생들로부터 이러한 끔찍한 소식을 듣고는 정의감이 울컥거리고, 정처에 들어앉아서 공부만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 하루속히 사회로 나아가 불의와 맞서 싸워야한다는 격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연일 공부는 하지 않고, 정치적인 이야기만 나누면서 울분을 터뜨리는 학생들과 별채에서 마주하는 게 일상처럼 되었다.
이번에 부정선거로 당선된 이승만은 이미 지난 임기에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계속할 수 있게 법을 바꾸어놓고 독재를 하였기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였다. 유일한 경쟁자인 조병옥이 갑자기 병이 나서 미국으로 치료하러갔으나, 그가 죽었기에, 대통령 당선이 확실한 여든다섯 살 고령의 이승만은 후계자를 생각하였다.
만일 대통령이 죽으면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기에 후계자 이기붕이 부통령에 당선되어야 하였는데, 야당후보 장면에게 뒤지었으므로, 이번 선거가 온갖 부정이 저질러지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국민적 분노로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학생이 눈에 수류탄이 박힌 채로 발견되자, 그 분노가 충천하여서 4월19일을 전후하여 학생들은 물론 교수, 어린이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시위에 참여하였고, 정부는 그를 탄압하면서 희생자가 생기었던 거였다.
이러한 일로 하여금 끝내 이승만이 하야성명을 발표하였고, 이기붕은 가족들과 자살로 이어지었던 거였다.
이것이 바로 3.15부정선거가 4.19의거로 폭발되었고, 끝내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이기붕 일가족이 자살하는 끔찍한 사건으로 확대된 충격적인 일이었다.
학생들의 이야기는 종잡을 수가 없이 복잡하였으나, 천복은 대충 이렇게 줄거리를 대면서 들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뒷방으로 돌아오는 천복은 여느 때처럼 책을 펴볼 정신이 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생각해보았다. 보덕의 말이 되살아났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제껏 공부한다는 게 다 헛수고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였다.
이렇게 학생들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덧 방학도 지나가고, 한상준과 시험을 준비하는 토론도 한마디 나누지를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세상이 시끄럽다고 하여 나라가 쉽사리 망하거나 뒤집어지는 건 아니지 않는가.
천복은 이렇게 자위하면서 가까스로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러는 동안 월하산봉우리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였다. 지난해에는 보지 못하였던 초가을 산봉우리의 모습은 매우 우아하여 인상적으로 보이었다. 희끄무레한 바위들이 듬성듬성 박히어있는 산봉은 하늘을 찌르듯 영험하여보이었다.
‘아들이 시조가 되니, 당신은 태상왕이에요.’
어지러운 세상에 군대만 마치고 돌아왔더라면, 보덕의 말마따나 태상왕이 되어 이 산속에 조용히 묻히어서 한 세월 살아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이러한 생각이 드는 까닭은 좌절감에서 오는 한탄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보덕이 흘린 말들이 맞아떨어질수록 가슴속이 섬뜩하게 미어지어왔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만삭이 되어서 뒷방으로 건너오는 일도 없으려니와, 작은 동이에 우물물을 떠나르는 일도 인수보살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수보살의 새벽 강설은 변함이 없었다.
첫댓글 머지안아 보덕이 아들만 나으면 천복은 태상왕이 됩니다 ^^*
사람이 자기가 바라는 일은 불성이고
엉뚱한 일이 성과를 내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살아보면 자기의 소원대로 되기보다
엉뚱한 일이 스스로 되는 경우가 더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