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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내역: 의학 전공 가는 것은 2학년에서 1학년 2학기로 당김>
-18.
시험까지 3주 남은 그 주, 4월 8일 토요일.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면서, 운동장의 흙이 모두 마른 11시경. 안개가 모두 걷힌 뒤, 그 때부터 1학년 B클래스의 남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축구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 안에는 있으면 안 되는 인물도 한 명 보인다.
“공 이리로 돌려! 패스해, 패스!”
“부회장 잘한다~!”
뻥- 슈우우욱. 워더, 회심의 일격! 슛이라고 짧게 외치며 찬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저 멀리 날아갔고, 이윽고 골대에 안착했다.
타악. 쉬이이익-
골대의 그물망에 가로막힌 축구공은 맹렬히 회전하며 자신의 존재를 골키퍼에게 알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회전 중인 축구공을 본 골키퍼의 이마 옆으로 한 줄기 땀이 흘러내린다.
“저, 전혀 안 보였어. 어이, 회장! 너무하는 거 아냐?”
“맞아! 운동까지 이렇게 잘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래, 그래!”
“헤헤헤헤헤~”
남학생들의 질투 섞인 아유를 들으며 워더는 속으로 브이를 그렸다.
‘내가 원래 운동신경 하나는 끝내주거든~’
바로 그 때.
“너 뭐 해!”
스피커에서 누군가의 고성이 터졌다. 운동장에 나와 있던 남학생 20명 정도와, 응원하기 위해 나와 앉아 있던 다수의 여학생들의 시선이 스피커를 향해 움직인다.
“학년 부회장이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나?”
그제야 자신이 지목당한 것을 안 워더는 자신을 가리킨 손을 내리며 스피커를 바라봤다.
“학생회와 디펜더는 특별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거 알아, 몰라!”
학생총회장 류의 화를 들은 워더는 입술을 삐죽 내민 뒤 거세게 받아쳤다.
“몰라욧!”
방송실의 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워더의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반격에 깜짝 놀랐다.
“뭐시라?"
“정말 몰랐어요, 왜 화를 내요!”
“흠-! 2학년 회장과 부회장은 이 방송을 듣는 즉각 3학년 총회장실로 달려오도록. 제한시간 30초를 세겠다.”
마침 교재 사서 들어오는 중이던 현과 부회장은 서로를 바라본 뒤 냅다 달렸다.
앞 뒤 다 떼고 <3학년 총회장실> 부터 들었으나, 둘은 총회장의 목소리가 화기가 실려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선배가 총회장의 일방적인 화를 감내하는 사이, 워더는 다시 운동장에서 같은 클래스의 남학생들과 축구를 이어갔다. 상대 팀이 한 골 넣고 워더의 도움 아래 다시 역전골이 들어간 후, 운동장 위는 다시금 환호에 젖는다.
“와~!”
“이겼어, 이겼다고!”
“워더 최고! 정말 잘 했어! 우하하하하, 기분 좋~다!!”
“후후후후! 아.”
시합 종료의 휘슬이 울리는 그 아래에서, 워더는 일행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던 중에 누군가와의 시선이 부딪침을 느꼈다. 상대는 1학년 회장 시우다.
워더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으나 답은 받지 못 했다. 시우가 고개를 숙이면서 그의 인사를 무시한 것이다.
‘우씨~ 감히 날 무시해? 현상수배범을 만들어줬건만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고 말이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시우를 현상수배범을 만들어버린 상대는 워더였던 것이다.
입을 불쑥 내미는 워더지만 시우는 그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닌 듯했다. 느닷없이 시계가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야. 너 뭐해?”
자신이 누군지 정작 확인도 못 했는데, 다짜고짜 질문부터 던져 오는 상대. 워더는 기가 막혀오는 것을 느끼며 헛웃음을 터트리고서 답했다.
“뭐하기는 축구했지. 너도 봤잖아?”
“그래서. 출전하려고? 다음 달 초에 있는 축구 시합에 나가려고?”
“어.”
워더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미소 섞인 말이 결코 아니었다.
“미쳤구나.”
욕설이다.
워더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무척이나 헷갈렸다. 축구 때문에 올라 있던 최상의 기분을 그녀는 화끈하게 꺾어놓았다.
‘진짜 뭐 이런 게 다 있어?’
학생회 선출되어서 갔을 때 박력 있게 행동했으나, 그 현장의 분위기를 모두 냉동실의 얼음으로 만든 사람이 누군가. 현재 시계 통신기의 상대이자 1학년 회장인 시우가 아닌가.
욕까지 들은 마당에 참을 이유가 없다. 워더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클래스의 남학생들을 잊고 고함을 버럭 지른다.
“야! 시우 파이랑 너!”
“2학년 회장이신 현 선배한테 듣지 못 한 것 같으니 짧게 말할게. 우리 학생회는 특별활동을 할 수 없어. 특별활동까지 하게 되면 학생회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는 게 이유야. 이만 끊는다. 생각 잘 해, 부회장 군.”
뚝.
끊어진 시계에선 뚜- 뚜- 하는 전화 끊어진 음만 들리고 있다.
얼굴의 땀을 닦으며 룸메이트인 리차드가 다가왔다.
“누구야, 뭐래?”
“우리 학교 학생회 있잖아.”
리차드는 대답을 못 듣고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 어어.”
“특별활동 못 해?”
“어!”
리차드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서 워더의 얼굴을 굳어지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
“그래서 나 같은 디펜더 임원도, 이번에 디펜더로 선출되면서 특별활동을 못 하게 됐어. 학생회와 디펜더가 같은 것이면서도 다르다는 것은 알지? 학생회는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고, 디펜더는 그 학생회의 보조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잖아. 반대로, 특별활동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주로 하는 체육 계열의 운동이 거의 대부분인데, 머리를 써야 하는 학생회 또는 디펜더와는 그 상성이 맞지 않는다는 게 학교 측의 판단이야. 이미 충분히 심신이 지친 학생회를, 특별활동까지 하게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야. 그래서 학생회와 디펜더는 학교 측에서 일정을 짜놓은 일련의 운동(체력단련이 전부) 이외의 특별활동은 할 수가 없어.”
워더는 리차드의 설명을 들은 뒤 눈을 껌벅였다. 지금까지 그가 한 행동과 그의 설명은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탓이다.
“너도 나랑 같이 뛰었잖아, 축구.”
“응. 난 디펜더 선출되기 이전에 축구부에 있었어. 담임께 말씀 올려서 다음 달의 시합에도 나가게 되어 있어. 그 시합을 마지막으로, 파올레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이 이상 그라운드에 설 수는 없지만, 난 다시 축구로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어. 축구선수로 프리미엄 리그에도 나가보는 게, 현재로서의 가장 큰 꿈이거든. 담임선생님도 이해를 해주셨기 때문에 선처를 해주신 것 같아.”
워더는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멋지다~”
“난 이계를 하고는 있지만 과학은 단순히 취미야. 아카데미에 온 건 축구선수로서의 제대로 된 훈련을 받기 위해서인데, 축구와 배구를 포함한 체육은 특별활동에 포함되어 있다는 걸 특별활동 고르면서 알았어. 하지만 후회는 안 해. 과학도 나름 재미있게 하고 있거든.”
워더는 속으로 느꼈다. 인간이란 진정,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존재다- 라는 것을. 선택의 기로가 무척 다양하게 펼쳐져 있지 않은가. 이렇게나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도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다니. 신계에만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을, 인간계에 내려와서 더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신계의 나이로 따지면 이미 3천이 넘어 있는 엠페루트. 리차드와 함께 기숙사로 돌아가면서 뜬금없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 3천년을 넘게 헛살았나?’
* * *
4월 14일 금요일 오후.
사무실에서 같이 활동하는 가수들과, 3일 간의 콘서트를 갖기로 되어 있던 가나. 그렇다고는 해도 가나는 3시간을 채워야 한다. 한 곡당 4분을 잡아도 무려 45곡. 이번에 나온 2집 전곡까지 다 해도 24곡에 광고곡 6개를 합해도 30곡, 시간을 완전히 채우지는 못 한다.
일전의 단독 콘서트도 초청 가수 몇 몇을 부르고 인터뷰도 하는 등 해서, 그럭저럭 때울 수는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팬들의 콘서트 성화를 못 이겨서 하는 것이니 빠진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래저래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가 없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요 진퇴양난이다.
“어떻게 하지, 다나야?”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해.”
똑같이 오른손으로 턱을 괸 자매는 서로를 부며 웅얼거리는 게 전부다.
“게다가~”
“게다가?”
“콘서트 잡혔다고 엄마한테도 말씀을 드렸거든. 그랬더니 올라오시겠다네?”
가나의 입이 쩍 벌어진다.
“수도로 오신다고? 모두 다?”
“응.”
그 순간 가나의 머릿속을 묘안이 지나가고, 가나는 합작을 하면서 외친다.
“그럼 되겠다!”
“?”
매니저 챠미는 턱에서 손을 떼며 고개를 갸웃댔다.
그로부터 10분 뒤.
“그거 묘안이다, 다나야!”
“그렇지?”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1주일 뒤. 가나는 챠미로부터 엄청난 소식을 전해 듣는다.
“뭐라고요? 콘서트장이 취소가 되요?”
“그래서 다시 잡고 있어. 사장님까지 나서고는 있는데, 안 그래도 지금이 콘서트 일정이 잡히는 시기라서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가나는 볼에 바람을 잔뜩 넣었다.
‘치~ 오랜만에 공연으로 팬들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들떠 있었는데. 이게 뭐야~’
실망한 가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띠띠띠띠. 시계로 문자가 왔다. 발신인을 확인한 가나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어! 마스터 챔피언!”
“뭐라고?”
“내일, 4월 20일 토요일 오전 9시. 페이퍼플레인드라이버게임 마스터 챔피언 워 대회장으로 오세요. 배경이 새로 나온 듯 하니 기대해도 좋을 터. 오케이, 콜!”
마스터 챔피언 콜 대회장은 단체 대회장 옆에 작게 마련되어 있는, 5인실을 말하는 것이다.
“언니. 콘서트 현장은 나도 생각해 볼 테니까 일단 오늘은 학교로 갈게요! 일찍 자야 하는 이유가 생겼어!”
바이바이! 손을 흔들며 사무실을 나온 가나는 분홍색의 짧은 머리를 흔들며 학교로 향했다.
“어! 그러고 보니.”
어느 생각이 갑자기 머릿속에 들어온 가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 마스터 챔피언. 어디서 만난 것 같은데?’
1월 초 아카데미의 방향을 ‘시험 삼아’ 물어본 전적이 있는 사람이, 몇 번 마주하지 못 한 마스터 챔피언이라는 남자와 같은 스타일의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일이 그 사이에 있었다보니 기억이 묻혀버려 쉬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학교로 돌아온 다나는 신이 나 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혼자 실실 쪼개며 웃었기 때문에 룸메이트 시우도 그녀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언니 왜 그래요? 요새 날이 좀 덥다 했더니.”
시우의 눈이 일자로 펴진 것을 본 다나는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사실은, 마스터 챔피언한테서 연락이 왔어! 둘이서 한 판 붙자고 하네? 내일로 약속이 잡혔어,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아! 호호호호! 근데 배경이 하나 추가되었다며? 페이퍼플레인드라이버게임에.”
“예. 해변에서 출발해서 해저로 들어가는 배경이 새로 추가가 되었어요.”
“해변?”
왼손으로 턱을 괴고 다시 고민에 빠지는 다나.
‘해변, 해변. 가만, 이 나라에 해변이라는 게 존재하나?’
혼자 풀지 못 한 문제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게 때로는 가장 좋은 방법.
“파이랑 양, 혹시 대륙 지도라거나 수도 지도라거나, 지도 갖고 있어?”
“음~ 예, 있어요.”
고개를 끄덕인 시우는 책상 서랍에서 지도를 꺼내 다나에게 건넸다.
지도를 보고 바다가 수도와 무척 가깝다는 것을 안 가나의 얼굴이 다시 밝아진다.
‘바로 이거야!’
“훗.”
아카데미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는 어느 건물의 옥상.
노을을 등 뒤에 둔, 진한 자주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어느 여자가 차갑게 웃는다.
“콘서트장이 취소가 된 당사자가 되어보니 기분이 어때? 가나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