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였다. 9세기엔 동쪽으로 지금의 러시아 땅인 연해주까지, 북쪽으로 송화강 유역까지, 서쪽으로 요동반도까지, 남쪽으로 대동강과 원산만까지 세력이 미쳤다. 이 시기에 한반도 남쪽에는 통일신라가 있었는데 통일신라는 발해를 북쪽나라라는 뜻에서 '북국'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 통일신라와 발해가 함께했던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고 부른다.
- ▲ 사진-다섯수레 제공
발해는 황제의 나라이기도 했다. 발해의 제3대 왕 문왕은 당나라의 문물제도를 받아들여 통치제도를 마련하고 유학과 불교를 일으켰다. 문왕의 넷째 딸 정효공주 무덤에서 발견된 묘지명에는 공주의 아버지를 '황상(皇上)'이라고 했다. 이밖에 발해가 황제만이 쓸 수 있는 연호를 계속 사용했다는 사실도 발해가 스스로를 황제국으로 내세웠다는 것을 증명한다.
발해는 거란족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이후 나온 역사책들이 신라 중심으로 쓰이면서 발해의 역사는 소홀히 여겨졌다. 발해의 역사를 처음 쓴 학자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이다. 유득공은 고려가 수많은 발해의 유민을 받아들이고 고구려에서 발해로 이어진 전통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지를 보였는데도 발해의 역사를 정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의《발해고(渤海考)》가 없었다면 발해사가 우리 역사에 자리 잡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발해의 역사·문물·풍습 등을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문답식으로 풀이한 책이다. 발해사 전문가인 송기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썼다. 각종 유물 사진과 지도, 일러스트 등 풍부한 시각자료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언론에서 동북공정(東北工程) 관련 이슈가 언급될 때, 고구려사를 다룬 책과 함께 읽혀도 좋겠다.
초등학교 고학년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