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많이 갔었던 인사동 소리판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난주 일요일에 5시에 인사동 소리판이 열린다는 소리에 인사동까지 갔었지만... 인사동 소리판은 열리지 않았다. ㅜ.ㅜ
결국 만난 선배에게 밥만 얻어먹고 돌아오면서 "아! 앞으로는 더욱 바빠져서 여기까지 나오지도 못할텐데.. 나와 또랑광대는 인연이 없단 말인가!" 하며 탄식했다. 그리고 다시 바쁜 학교 생활로 돌아가 한 주를 보냈다. 금요일 저녁 집에 돌아와 식탁에 앉았는데 팜플랫 하나가 눈데 들어왔다.
"2004 의정부 국제 음악극 축제"
아무 생각없이 펴본 팜플랫에는 "또랑광대의 <새(NEW)판소리>"라는 글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참고로 행사장은 의정부 예술의 전당으로 위치는 바로 우리집 앞이다. 걸어서 2분도 걸리지 않는 곳으로 또랑광대가 찾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난주 일요일에는 멀리 인사동까지 찾아가서도 보지 못한 또랑광대의 공연을 집앞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내 머리속에는 슈퍼댁 김명자씨가 "범진아! 니가 우리를 찾지 않으니 우리가 너를 찾아 가겠다!"하고 말하는 것 같은 환청이 들리는 듯 했다.
공연은 2일에 나누어서 토요일에 두마당, 일요일에 두마당을 했다. 날씨는 얼마나 좋은지 등판이 따가울 정도로 햇살이 강했지만 사람들은 많이 모여 판은 무리없이 열릴 수 있었다. 시작은 스타크래프트가였다. 멋지게 썬글래스를 쓰고 나와 판소리에 대한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분위기 산다며 썬글래스를 벗어버린 박태오씨(맞나?)는 단숨에 나를 웃기며 소리를 시작했다. 왜 웃겼냐면 선글래스를 썼을 때는 카리스마가 흐르는 스타크의 장군과도 같던 컨셉이 썬글래스를 벗음과 동시에 단추구멍처럼 작은 눈의 약간은 어설프게 생긴(죄송) 옆집 아저씨가 된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판을 달군 후 소리에 들어가 저글링 초반러쉬에 빠른 무탈에 아드레날린 까지 순식간에 테크가 올라간 저그가 승리하는 내용의 소리를 들었다.(듣다가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 했다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벌써? 하고 경악해버렸다.) 처음이라 그런지 추임새가 얼마 없었는데 한 아저씨께서 완전 엇박자로 추임새를 넣어 소리가 잠시 끊기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분위기가 살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판소리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인지 하나의 판이라고 보기에는 조금의 무리가 있었다.
스타크래프트가로 판을 띄운 후 다음으로는 과자가를 부를 박지영(역시 맞나?)씨가 등장하여 과자봉지로 만든 옷을 입고 소리를 했다. 시작하기 전에 사랑가로 분위기를 한번 더 띄운 후에 과자가로 들어갔는데 스타크래프트가가 게임을 아는 제한된 사람들에게 재미있었다면 과자가는 남녀노소 누구나 한번은 먹어보았던 소재인지라 좀더 열기가 더했다. 과자 이름 하나하나에 사람들은 웃었고 판은 그 열기를 더해갔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쿠엔크가 최고였다.(암!) 과자가를 끝으로 첫날의 공연은 끝나고 나는 즐겁게 한번 웃은 후 얼른 집에 들어왔다.(너무 더웠다.)
일요일. 두번째 공연이 5시에 시작하는데 나는 어제의 더운 날씨를 생각하고 시간에 딱 맞춰서 나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집앞에서 하는 공연이라 방심했는지 10분 정도 늦고 말았다. 행사장에 가니 어느새 토끼와 거북이가가 끝나가고 있는 시점이었다.(아니 어제는 시간보다 늦게 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서둘렀데) 급하게 자리를 잡은 나는 어제와는 상당히 판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가를 부르는 김선미씨의 물음 하나 하나에 소리높여 대답하는 아이들을 보니 어쩐지 판소리는 이런 순수한 아이들에게 더욱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김명자씨의 슈퍼댁 씨름대회 출전기의 차례가 되었다. 내용은 벌써 수업시간에 대략적으로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김명자씨의 쇼맨쉽은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 없이 나를 웃게 하고 즐겁게 하였다. 의정부댁에게(원래는 인사동댁이었다던데...) 밀려 김치냉장고를 타지 못하게 된 슈퍼댁의 한탄이 슬퍼야 하는데 왜 이렇게 웃긴지. 결국 "자식새끼 좋아하는" 컴퓨터를 타들고 개선하는 슈퍼댁의 모습에 어쩐지 어머님의 모습을 보았다.
마지막은 김명자씨에 의한 즉석 노래판이 벌어졌다. 어디서 오셨는지 굉장히 연로하신 할머니 한분이 나와 덩실 덩실 춤을 추는데 얼굴 표정만은 꼭 18세 청춘소녀였다.
공연을 다 감상하고 나서 생각한 것은 아이들이 판소리를 즐기는데 전혀 어색함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야 판소리를 보면서 재미있게 보기는 했으나 그 판 속에 내가 있었냐고 물으면 솔직히 대답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은 그 판속에서 즐겁게 그 판을 향유했으며 진정으로 판소리를 즐겼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런 자리가 계속 되면 앞으로의 판소리는 정말 중심문화로써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첫댓글 조범진씨 성의 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슈퍼댁은 공연하는 동네 아줌마한테 꼭 김치냉장고를 뺏깁니다. 광주에 가면 광주댁, 전주 가면 전주댁, ...... 사설의 컨셉입니다. 너무 일찍 알려줬나... 한번만 더 보시면 눈치 챘을텐데...
판소리와 어린이들의 호응... 대단한 시사점일 듯 합니다. 결국 '판'이라는 것의 성격을 가장 잘 이해한 소리가 진정 '판'소리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