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90편//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여호와여 돌아오소서...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생명의 말씀이신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그 말씀으로 그분의 목적을 위해 티끌을 뭉쳐서 지으신 인간은 한시적이며 그 날수들을 사는 동안 죄악으로 인한 저주를 지고 고통과 수고를 당하다가 티끌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잃은 인간은 심지어 하나님에 진노의 손이 그 위에 머물러 있을 때에도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를 깨닫지 못하며 뱀의 지혜와 지식에 따라 밝아진 눈으로 땅의 일을 평생토록 도모하고 추구하다가 그 생명의 주인께서 그 숨을 거두실 때 비로소 인생의 덧없음을 희미하게 깨닫지만 돌이킬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라서 죄인들을 여전히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 선각자-선지자-선견자를 보내어 창조자 하나님과 창조세계와 죄인들의 관계성을 인식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그분의 말씀을 맡겨 보내시고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게 하십니다.
우준해진 인간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서 각자의 죄성과 그 존재의 덧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이키게 할 필요 때문에 신령한 가르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할 수 있는 한 젊은 날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와 그의 백성이 신령한 지혜와 참 지식에 관한 교훈을 얻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라고 간구하고 있는데 모세가 요청하는 여호와의 돌아오심은 곧 아들이 세상에 임하시는 것이며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신 진리의 영을 받은 증인들이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파할 때 내적인 참 빛이 임하여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그분의 신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공의로운 말씀대로 죄인들을 징계하셨던 하나님이 복음전파를 통해서 그의 인애(仁愛)로 죄인들을 방문하심으로써 슬픔의 밤이 물러가고 기쁨의 새벽이 오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저주를 짊어지고 바로의 학대와 압제를 당하며 곤고하고 수고로운 날들을 소망없이 지내던 자기 백성들을 이대로 버려두시지 말고 건져내어 그 선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시고 그 후손들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영광스럽고 소망 삼던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가 임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이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죄 사함을 받고 땅 위에서의 순례자의 삶을 종결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위한 광야노정에서 복음으로 약속하신 소망의 하나님께 드리는 겸손한 기도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라는 문구는 민10:35-36-의 재인용인데 바로의 손에서 건짐을 받은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행할 때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인도를 받았는데 이것은 신약의 구속받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나와 하늘 아버지의 영광 앞에 가는 노정 중에서 불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에 대한 모형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모세는 여호와의 궤가 다음 정착지로 떠날 때는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 즉 이스라엘이 유진할 때는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구속받은 신약의 성도들은 한면에서는 하늘 길의 노정을 나는 불뱀들의 시험을 당하며 행진하는 것이고 한면에서는 교회로 모여서 유진하며 쉬는 동안 새 힘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세상에 나아갈 때는 주 예수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악한 자들로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할 것이며 형제들이 교회로 모여서 집회를 시작할 때는 주 예수여 돌아오셔서 저희 중에 쉬소서, 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모임을 가져야 합니다.
아침에 主의 仁慈로 우리를 滿足케 하사 우리 平生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모세는 간조하고 메마른 광야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불뱀들에게 당하는 고통과 슬픔을 밤으로 표현했고 유진할 때 궤와 함께 쉼을 가질 때 즉 신약 성도들이 세상사를 잊어버리고 교회로 주의 임재 앞에 모여서 집회를 가질 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은총을 누리는 상태를 아침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困苦케 하신 날數대로와 우리의 禍를 當한 年數대로 기쁘게 하소서-
애굽에서 포로 된 생활을 할 때 당한 것에 대한 보상은 복음을 듣고 마음에 깨달아 복음을 믿음으로 구속받아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넌 것으로 받았지만 여전히 광야 교회생활 중에 당하는 여러가지의 시험들 중에서 간조하고 메마른 땅을 걸으며 당하는 고통과 수고에 대한 보상은 행진을 잠시 멈추고 유진하여 여호와의 궤를 중심으로 온 이스라엘이 모여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니 교회로 모여 주의 말씀으로 위로와 마음의 쉼을 얻는 것이 곧 광야 길의 지친 영혼에게 주시는 보상입니다.
세상에서는 많은 날동안 고통과 수고를 해야 했고 나는 불뱀들에게 시달림을 받으며 그 영혼에 갖가지의 상처들을 받으므로 아픔을 안고 행진하지만 교회로 모이는 날에는 그동안 당했던 모든 아픔과 슬픔을 한꺼번에 고침받고 위로를 받는 것이 신약교회의 모임생활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런 이상에 따라 광야 길에서 당하는 여러 시험들을 통해서 깊은 상처와 말 못할 서러움들을 안고 주님의 임재 앞에 모이는 성도들의 교회의 모임을 귀중히 여기고 교회의 모임에서는 모든 지체들이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성령의 위로와 세상에서 받은 상처들을 고침을 받을 수 있도록 모임을 중히 여겨야 합니다.
主의 行事를 主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主의 榮光을 저희 子孫에게 나타내소서-
주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약속을 실현시켜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는데 위에서 기도하는 내용과 연결되는 내용이니 이생에서는 모든 지체들이 함께 주의 이름으로 모임을 가질 때 주님의 행사 즉 곤고와 수고의 날수에 대한 보상으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누리도록 해주심으로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이 저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나는 것은 교회의 모임이 영혼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고 지치고 아픈 영혼들이 참 된 만족과 쉼을 누리도록 은혜가 충만한 모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임 중에서 말씀을 증거하는 형제들은 이 중요한 문제를 깊이 인식하여 성령의 은사와 자유를 빙자하여 육신에 따라 함부로 말하므로 방자하게 풀어진 영으로 교회의 모임을 엉망으로 만들지 말기를 삼가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면 당연히 질서 있는 모임이 되도록 경성하고 깨어 자기에게 맡기신 말씀의 한계와 자기 자신에 믿음과 생명의 분량을 초과하지 말고 자기의 한계 안에서 지혜롭게 증거하는 것을 배워서 조심성 있게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모임에서 깨달은 말씀이나 계시 받은 것을 증언할 때는 반드시 성령의 질서를 엄격히 따라야 하고 성령의 해방과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오용하지 말기를 매우 조심하여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님을 통해서 성령께서 엄히 명령하신 말씀들을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베다니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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