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화미 (hwamie@naver.com) l 등록일:2013-01-20 21:12:49 l 수정일:2013-01-20 21:21:24
본지는 2013년 ‘한국교회, 다시 희망을’이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한국교회가 풀어가야 할 주요 현안들을 매월 기획특집기사를 통해 다루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사안은 바로 교회 세습. 한국교회의 오랜 병폐로 지적돼 온 교회 세습 문제의 현상과 대안을 짚어봄으로써, 한국교회가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방향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교회 규모를 불문하고 보편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목회 세습.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큰 교회’의 권력 세습도 이제는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지난 해 다시 시작된 교회 세습 반대운동은 교회 세습에 대한 인식 개선의 확산으로, 담임목사 중심의 권력 체제, 개교회주의, 사유화의 폐단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그간의 세습 반대 운동의 과정과 성과 및 앞으로의 방향을 짚어봤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가 처음 세습반대운동을 시작한 이후 10여년 간 대형교회의 목회 세습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지난 해 세습반대운동이 재점화되고, 감리교가 교회세습방지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교회 세습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뉴스미션
충현교회 시작으로 10여년 간 대형교회 세습 줄이어
지금은 매우 자연스럽고 편만하게 이뤄지고 있는 개 교회의 담임목사 세습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된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세습 1호’란 별칭이 붙었던 충현교회 김창인 원로목사가 아들 김성관 목사에게 목사직을 물려준 1997년, 교회 내 일부 성도들의 반대와 불법 시비로 내홍은 끊이지 않았고 이후 여러 차례 부자 간 갈등으로 일반 언론에 오르내렸다.
충현교회를 시작으로 1998년 금란교회, 인천 숭의교회와 부평교회, 주안감리교회, 베다니교회, 임마누엘교회 등 대형교회들이 세습을 이어갔다.
그리고 2000년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가 아들 김정석 목사를 후임자로 선정하면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세습에 대한 공적인 문제의식이 생겨났다.
그 전까지 개 교회의 후임 선정은 교회 내적인 일로 치부하며 외부의 간섭을 일체 배제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교회 일인데 밖에서 왜 참견이냐’는 식이다. 이는 교회가 개교회주의로 공교회성을 상실하고, 담임목사의 권한 집중으로 사유화됐기 때문이었다.
아들 목사의 세습을 반대하는 교회 내 일부 성도들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뿌리깊이 자리잡은 부조리한 교회 구조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기회조차 박탈시켰고, 소수의 반대 교인들의 의견은 ‘불순종’으로 낙인찍혀 묵살되기 일쑤였다.
기윤실, 광림교회 세습 시 반대 운동 물꼬 터
하지만 만연하고 있는 교회 세습에 제동을 건 것은 이같은 교인들의 반대 여론이었다.
광림교회 역시 교회 내 일부 성도들의 반대와 침묵시위가 대외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계기가 됐다. 당시 반대하는 성도들과 함께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처음으로 세습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된 세습 반대 운동에는 건강교회운동본부를 맡았던 박득훈 목사를 중심으로 고세훈 교수, 이승종 교수, 오세택 목사, 강영안 교수 등이 참여했고, 현재 세습 반대운동을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김동호 목사도 이 때 처음 기윤실 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기윤실은 대형교회 목사직 세습에 대한 공교회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교회 세습 관련 공청회를 마련하는가 하면 광림교회 김정석 목사가 담임목사로 취임할 때 교회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때 처음 시작된 반대운동은 광림교회의 세습을 막지는 못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던 대형교회의 아들 목사 세습에 문제를 제기하고 일반 평신도들에게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의욕을 갖고 추진했던 기윤실의 세습반대운동이 광림교회 세습 통과와 함께 자취를 감춘 점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당시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김동호 목사는 “몸싸움도 하면서 세습을 막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좀 어설프게 하다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제는 어설프게 건들다 말 것이 아니라, 뿌리 뽑힐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전했다.
세습 반대 공론화…세습방지법안 등 인식 변화에 성과
사그라 들었던 세습 반대 여론은 지난 해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
특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각각 교회 세습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며 논쟁을 과열시켰다.
김홍도 목사의 교회 세습 지지 성명에 김동호 목사가 자신의 SNS를 통해 조목조목 비판하며 교회 세습과의 ‘전면전’을 선포했고, 세습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한기총 대표회장직을 역임했던 길자연 목사의 아들 길요나 목사의 세습을 앞두고 교회개혁실천연대를 중심으로 세습 반대 운동이 다시 시작됐다.
대형교회의 담임목회직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공론화되면서, 지난 해 9월 교단으로서는 최초로 감리교가 세습금지법안을 통과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법안 통과는 일반 언론매체에서 앞다투어 보도하는 등 큰 관심을 끌었고 교계는 물론, 사회적인 주목과 지지를 받았던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왕성교회는 9월 길요나 목사의 세습을 결정했다. 세습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공동의회 투표 결과 단 15표의 차이로 청빙이 결정됐다. 왕성교회는 당시 대다수의 찬성으로 공동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생각지 못했던 청년층의 무수한 반대표를 확인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왕성교회의 공동의회 투표 결과는 교인들의 교회 세습에 대한 인식 변화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교회 개혁 단체들이 하나로 연합해 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김동호 목사, 백종국 교수, 오세택 목사가 공동대표로 나선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는 인식 개선부터 구조 개혁에 이르는 광범위한 운동을 추진할 예정이다.ⓒ뉴스미션
교회 세습 반대운동, 하나로 뭉쳤다
교회 세습 반대운동은 지난 해 말 더욱 탄력을 받아 기독교계 개혁단체들이 연합해 11월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를 출범하게 했다.
개혁연대와 기윤실, 바른교회아카데미가 연대한 세반연에는 김동호 목사, 백종국 교수, 오세택 목사가 공동대표로 나섰고, 강영안 교수, 박은조 목사, 전재중 변호사, 정주채 목사가 지도위원으로 참여했다.
교회 세습을 막기 위해 긴급구조의 성격을 띠고 창립됐다는 세반연은 한국교회의 세습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인식 개선부터 구조개혁까지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목회자와 성도, 일반 시민의 인식 변화를 위해 팜플렛을 제작, 배포하고 세습 반대운동의 확산을 위해 정기적인 월례포럼 등을 통해 지역단체들과의 연대를 도모키로 했다.
김동호 목사는 “세습반대 운동의 가장 먼저는 교인들의 인식 변화, 즉 민도를 높이는 것”이라며 “청빙은 어떻든 공동의회를 거쳐야 하는 것이기에 성도들의 의식을 높이는 게 급선무”임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세습 금지 내용이 담기도록 하는 교회 정관 개정과 세습방지법 등의 입법운동을 전개하고, 목회자들을 상대로 ‘나는 교회 세습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서명 운동 등을 전개키로 했다.
이번에 세반연을 구심점으로 세습 반대운동이 하나로 연합한 만큼, 올 한해 대형교회 권력 세습의 부끄러운 모습이 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