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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영암 삼호 나불도에 들어선다...연구, 전시 등 컨트롤타워 역할
월출산과 삼학도가 보인 나불도에 400억 원 들어 건립
2025년 착공 예정
영암 시종 마한역사문화 더 한층 보여줄 것으로 기대
마한의 영암 길 따라~
역사가 쏙쏙, 지혜가 쏙쏙
문화가 쑥쑥, 생활이 쑥쑥
꿈이 팡팡, 미래가 팡팡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규모를 갖추고,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국제마한공원’ 으로 거듭. 세계적인 축제의 ‘국제페스티벌’ 로 붐을 일으켜야한다.”
한반도 중부이남 지역에 분포한 삼한(三韓) 중의 하나인 한반도 서남지역에 위치한 마한(馬韓), BC 1세기~AD 3세기에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소국 마한, 각 소국에는 지배자인 우두머리가 있었으며, 이런 지배자들이 차지한 지역을 신지(臣智), 읍차(邑借)로 불렀다. 이들 소국은 다수의 읍락(邑落)으로 구성되었고, 중심 읍락인 국읍(國邑)은 각 읍락간의 물자교역의 중심지이고 국읍의 주수(主帥)는 대내외 교역활동을 장악함으로써 경제적인 측면에서 각 읍락을 통솔하고 유사시에는 군사 활동의 지휘권까지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마한 형성에 대해 별개의 종족이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이주 정착하여 성립시켰다는 삼한이동설도 있으나 대부분은 선주(先住) 토착집단의 점진적인 발전의 결과에 의해 삼한이 대두됐다고 본편이다.
초기 국가의 정치와 풍습에 있어서 마한은 재정분리로 정치, 신지, 읍차와 제사, 천군을 통치를 했다. 경제는 벼농사 중심으로 하여 철 생산으로 경제를 일으켰다. 사회, 문화는 천군이 다스린 소도를 두어 꽃피웠다. 제천 행사로는 계절제(5.10월)라는 제를 지냈다.
마한은 진한, 변한과 더불어 고조선 이후에 생긴 삼한 중에 하나이며, 54개의 부족 국가로 이루어진 나라로 삼한 중에 가장 세력이 컸다, 마한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지방에 걸쳐있다. 3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당시 마한의 주도세력은 목지국이었다. 이런 마한은 백제에 패망하기 전 6세기 초 무렵까지 독자적인 국가로 존재했다.
그런 마한의 세력집단은 지역 지배층으로 영암 시종에서도 활개를 쳤다. 삼한시대 마한의 일부였던 영암, 마한문화권에 속한 영암 시종에는 마한에 대한 유적지가 입증해주고 있다. 영암이 마한의 본거지였음을 자랑으로 여길 정도로 시종 옥야리, 신연리, 내동리. 태간리, 만수리 등에는 마한에 대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고분군이 산재해져있다. 아직 나주처럼 금관 같은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고 있지만 분명 어디엔가는 훌륭한 지배층의 무덤이 존재할 것이라는 여러 정황을 보아선 느낌에는 지울 수가 없다.
시종이 마한 유적지가 많이 발굴된 것을 보면 이곳이 외부와의 교역이나 군사적으로도 필요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시종은 삼면이 바다였을 정도로 반도지역을 한 곳이었다. 또 마을 앞에 있는 논의 들녘은 예전에는 바다였다. 이런 넓은 바다를 그들은 교통과 생활의 터전으로 삼았었다. 고대인들은 삶의 본거지는 물론 군사 요충지로서 삼았던 곳이다. 시종과 나주를 본거지로 삼아 마한의 문화가 번창했던 곳이었음을 역사적인 기록이나 발굴현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영암 시종은 내륙의 바다 역할을 한 영산강 물길을 통해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고대문명 교류의 거점이자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마한의 핵심지역으로 손꼽힌다. 실제로 여러 고분군에서 순장 자들의 부장품에서 신분을 읽어볼 수 있었다. 그 지역의 막강한 세력을 행세한 지위와 권세를 나타내는 지배층의 무덤으로 조사되고 있다. 마한문화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의 대형 옹관고분이 출토되었다.
시종 등은 마한이 지배하던 지역이다. 마한의 소국연명체 가운데 마지막까지 백제에 병합되지 않고 6세기 초 무렵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한 곳이 영산강 유역의 마한세력이다. 그래서 영산강 유역에는 마한의 최고 수장 무덤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전라남도는 2020년 11월 13일부터 3일간 열린 2020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포럼은 ‘잠들었던 고대 해상왕국 마한을 깨우다’ 주제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고대해상왕국 마한을 품은 전남, 새로운 기상과 도약’ 이라는 비전 선포식과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 마스터플랜 수립’ 에 대한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영암 시종은 인근 나주의 고분군은 1세기부터 6세기까지 한반도 서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철 생산과 국제교역을 통해 전기 마한시대를 주도했던 미한 지배층의 무덤이다. 이 지역 마한의 여러 고분군은 중앙집권화 된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이전의 한반도 고대의 문명을 보여주는 가장 독보적인 증거이다. 또한 중국 등 대륙과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증명한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다.
이런 고대 정치집단 마한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고 연구하는 마한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기록할, 그 유물들을 전시하고 체험할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를 신청한 지자체를 대상으로 현지 실사와 선정위원회 심사를 거쳐 영암군을 최종 후보지로 결정했다고 4월 20일 영암군을 밝혔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건립은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기반 해 ‘마한역사문화권 주요 유적의 발굴기록물, 보존유적, 비지정 문화재’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 ‘연구 또는 전시’ 활용하는 등의 통제하고 조절하는 모든 일의 전체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담한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하게 된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는 전남 영암 삼호읍 ‘나불도’ 에 들어선다. 총사업비 400억 원이 투입되며, 2024년 기본 및 실시설계 실시 후 2025년 착공할 예정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만㎡의 규모로 아카이브(기록보관소), 문화재 전문도서, 자료관, 연구교육시설, 전시, 체험관 등을 갖춘 종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된다.
전라남도는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유치함으로써 2012년부터 10년간 마한 유적 시발굴 조사 등 그동안 추진해왔던 모든 기초를 바탕으로 하여 마한역사문화권을 선도해 갈 향후 세계유산 등재 추진 기반을 마련할 방침이며, 이번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건립을 추진하게 된 것도 세계유산 등재를 염두 한 것이다.
전라남도는 그동안 마한역사문화권 정책적 제도 마련을 위해 지속해서 건의해왔다. 또 마한역사문화센터 타당성 용역비 2억 원, 마한역사문화권 중요 유적 발굴조사 20억 원 등 마한 관련 사업비를 전국 최초로 정부 예산에 반영시키는 등의 마한역사문화에 대한 심혈을 기했다.
마한이 6세기 중엽까지 독자적인 정치체제로 남아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지역으로 아파트형 고분형식과 옹관묘, 금동관, 금동신발 등 전국 마한 유적의 77%를 보유하고 있다.
마한은 약 500년 동안의 한강 유역과 충청도, 전라도 일부를 점유한 세력이다. 당시 한반도 남쪽에 등장한 진한, 변한과 함께 삼한을 이뤘다. 마한은 삼국지 동이전 등에 따르면 마한에는 54개 소국이 있었으며, 규모가 큰 집단은 1만여 가(家)였다고 기록해 둘 정도로 삼한 중에 가장 큰 세력집단으로 그 위력은 대단했다. 학계에서는 마한이 영산강 유역에서 6세기 초 무렵까지 세력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영암군에는 40개 군 150기에 달하는 독무덤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바다였던 영산강과 인접한 영암군 시종면 일대에는 50여 기의 마한시대 대형 고분이 밀집된 우리나라 최대 마한 유산의 보고이다. 옥야리 선산에 5기, 내동리 쌍무덤과 함께 7기, 신연리 뒷모실마을 뒤쪽에 15기. 만수리 4기, 태간리 1기 등 영암 시종면을 중심으로 25개 군 100여 기가 모여 있다.
영암군은 지난 1992년 창립한 마한역사연구회를 지원하며, 각종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2004년 국내 최초로 마한역사문화공원 건립을 2015년부터는 마한문화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지난 2021년부터는 마한문화 답사 등 마한을 테마로 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영암군은 이번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를 계기로 마한문화공원, 남해산사 등의 조성을 더 한층 업그레이드하여 영암을 대표하는 축제로 나아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축제문화로 삼겠다고 했다.
영암군은 대표축제인 마한문화재를 개최해 2000년 전 영산강 유역에 융성했던 고대 마한역사문화 중심지임을 알리고 있다.
이번 마한역사문화권 연구를 위한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가 치열했다. 광주시와 나주, 영암, 해남 등 전남 3개 시.군 등이 경쟁했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가 시종이 아닌 삼호에 건립하게 된 것은 여러 사항을 고려한 걸로 보인다. 유치에 있어서 심사기준을 보면 ‘접근성’ 에 가장 중점을 뒀다.
교통통행 발생 지역으로부터 특정 지역이나 시설로 점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따져 고려했다. 일반적으로 거리, 통행시간, 매력도 따위에 의하여 결정된 것으로 삼호 나불도가 입지조건으로 가장 타당성이 있다고 봐 영암군은 시종이 아닌 삼호 나불도를 후보지로 내세워 치열한 경쟁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결정됐다.
센터 방문에 관람객들에게 있어서 삼호 나불도가 시종보다 접근이 휠씬 수월하다고 해서 높은 점수를 줬다. 접근성이 높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데 고려하여 선택했다. 접근성이 낮으면 이용자가 해당 센터를 이용하기에 불편하거나 이용하기가 이에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입지선정부터 설계 단계에서 이용자의 나이, 지식, 성별, 신체적 특성과 도시형성, 인구, 그리고 인접지역과 발전가능성 등을 고려했다. 만약 시종에 센터를 건립하게 되면 교통이나 거리, 부대시설 등 인프라가 열약해 이용자가 불편하게 생각하고 찾을 생각이 없어진다는 판단을 했다.
나불도는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에 있는 섬이다. 나불도(羅佛島)는 영암군에 딸린 6개의 섬(나불도.외도.문도.구와도.고마도.서도)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1981년 영산강 하구 둑이 준공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섬이었을 때 면적은 0.34km2, 해안선 길이 3km로 전국적으로는 408번째 순위의 섬이었다.
위치상으로는 전라남도 목포시 석현동 국도 2호선의 출발점에서 영암 방면으로 5km 쯤 거리에 영산강 하구 둑이 있고, 이 하구 둑을 건너면 바로 나불도가 위치한다. 나불도 중심으로 북쪽은 영산강과 전라남도 무안군 삼양읍 남악리와 마주하고, 남쪽은 삼호읍 대촌리, 서북쪽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목포시와 가깝게 있다.
나불도는 육지가 된 뒤로는 목포시와 부산광역시를 연결하는 국도 2호선이 뚫려 차량의 왕래가 많아지고 있고, 또한 1983년 영산호 국민관광지 지정과 1993년 전라남도 영산호관광 농업박물관, 대불국가산업단지(영암테크노폴리스) 등이 조성됨에 따라 전국적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나불도가 문헌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호구총수에 나주목의 부속 도서로 표기되면서부터이다. 섬의 북쪽 외도의 해변에서 철기시대 조개더미(패총)와 토기 조각들이 다스 수습된 유물 포함층이 발견된 것으로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거주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나불도의 명칭은 지형이 ‘나발’ 처럼 생겼다고 하여 나발섬이 ‘나불섬 또는 나불도’ 라고 했다. 현재 나불도는 영산호관광 농업박물관과 그 주변에 체육공원, 승마장과 숙박시설, 음식점 등이 갖추어져있다.
나불도는 고려 충렬왕 때 후궁에게 이 섬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 궁중에서는 왕이 후궁에게 선물로 섬을 하사하면 왕실이 번창한다는 말이 있어, 당시 충렬왕께서는 그가 매우 사랑하는 후궁이 한명 있었는데, 그녀는 미모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마음씨 또한 고왔다고 한다. 충렬왕은 그런 그녀에게 어느 섬을 선물로 주여야 할지 고민하다가 어느 날 충렬왕은 새들이 지저귀는 궁궐 뜨락을 거닐다가 한 곳을 떠올리며 “옳지 됐어” 라고 하면서 영암 월출산과 유달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당시 수도인 개경과 멀리 떨어져있어서 관리가 잘 되지 않던 나불도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래서 충렬왕은 그가 아끼는 후궁에게 나불도를 비롯해서 인근에 있는 계도, 문도 등 세 개의 섬을 하사하였다.
그런데 당시 나불도, 계도, 문도 등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무인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을 이주해 살게 할 목적으로 충렬왕은 “섬에 와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조세와 부역을 면해주어라” 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나불도와 계도, 문도 등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
우승희 영암군수는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가 시종에 유치하지 못했지만 마한의 유적이 산재한 시종의 영암마한공원, 남해신사.남해포.고분군 등 지역을 하나의 테마공원으로 묶어서 ‘마한의 영암 길 따라 역사가 쏙쏙 지혜가 쏙쏙, 문화가 쑥쑥 생활이 쑥쑥, 꿈이 팡팡 미래가 팡팡’ 이라는 영암의 대표축제로 조성하겠다” 고 했다. 영암에 왕인문화 축제도 못지않은 대축제의 장으로 삼겠다고 꿈을 함께 꾸었다.
그래서 현재의 조성된 환경을 더 한층 리모델링하거나 새로 꾸며 전국에서 찾아오는, 나아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희망을 모두와 함께 키웠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가 삼호 나불도에 건립될 예정이고 나주 반남에 마한역사문화박물관이 들어선 상태다. 영암은 나주보다 관광적인 환경 조건이 뛰어나다. 특히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국립공원 월출산이 있어 볼거리가 탁월하다. 실지 고분군이 있는 곳에서 월출산이 보이기도 한다. 고분군이 형성된, 남해포와 남해신사.몽전이 있는 옥야리의 지형을 보면, 고분군과 남해포.남해신사가 있는 곳이 바다로 에워싸여진 곳이었다는 것을 한눈에 읽어볼 수 있었다. 해양강국으로 꿈꾸게 하는, 외부와의 왕래를 활발히 할 수 있는 곳으로 현재의 환경만 봐도 느낌은 강하다. 지금은 이 앞이 모두 논으로 바뀌었지만, 그때 당시는 이곳이 어느 지역보다 교류하고 왕래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또는 해양왕국으로서의 지세가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엿볼 수가 있었다.
영암군은 이런 곳에 집중 투자해 세계적인 관광지로서 축제의 장으로 삼겠다고 해 대환영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이 좋은 곳에 관광공원으로 조성해 페스티벌을 벌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그때처럼 바닷물이 드나들지 않은 점이다. 이 문제도 우리는 생각해봐야하고, 일부라도 재현하여 유적지와 함께 마한을 지배하고 한 시대를 누렸던 그들의 생활상과 환경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영암 시종도 순천국제정원만큼 못한 그런 환경조건은 아니다. 어쩌면 영암 시종이 더 훌륭한 관광지로서의 산업을 일으킬 최적의 장소임에는 충분하고 확실하다.
마한의 문화를 꽃피웠던 영암 시종은 여러 고분군을 발굴하였지만 이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고분들이 있을 것으로 보여 지고, 또 왜 영암 시종 지역을 지배했으며, 그 지배층들의 활약상이나 생활풍습, 그리고 정치.사회.문화 등에 관한 연구를 더 깊이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충렬왕이 꿈에 보여 해신제를 올렸던 남해신사, 바다였던 그 주변의 들녘에는 분명 어디엔 가에는 그들이 바다를 지배하며 교통 길로 삼았던 곳에 배가 묻혀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때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은 무덤에서 거의 발견되고 있다. 무덤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분명 유물이 드러나지 않고 잠들어있을 것이다. 잠들었던 마한 유물을 깨어야한다. 문화재청과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가 풀어야할 숙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 영암 시종에 그 찬란했던 문화를 다시 보여줄 만한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야한다. 단순한 마한공원이 아닌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규모를 갖추고,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국제마한공원’ 으로 거듭나야한다. 세계적인 축제, ‘국제페스티벌’ 로 붐을 일으켜야한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삼호 나불도에 건립은 고려 충렬왕이 후궁에서 이 섬을 하사하였듯이 문화재청이 영암에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라는 것을 하사한 일이다. 삼호 나불도에 들어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는 영암에 두면 인근 나주, 목포, 해남. 강진, 무안, 신안, 함평, 진도 등과의 거리나 관계를 형성하고 이용하는데 가장 적합하고 편리한데다가 센터의 기능과 활용도가 높아질 것임을 고려한 일이다. 앞으로 하구언이 있는 영산강을 위주로 한, 띠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도시 집중지대의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 가 형성될 것으로 보여 지며, 그 중심에는 ‘영암’ 이 될 것이라는 데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한이 그랬던 것처럼 영암을 중심으로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가 형성될 것으로 보이며, 대도시는 그 내부에 중앙업무지구의 여러 부심지를 형성함과 동시에 시가지를 확대하고 근교 도시를 위성도시화 하여 기능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 결과 대도시와 그 주변 사이에는 밀접한 도시적 기능의 결합과 교류가 생기고 대도시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이 형성되는 거대도시가 출현할 것임에는 분명하다.
거대도시, 메갈로폴리스는 통근권, 통학권, 구매권, 대도시에 의존하여 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지는 경제적 기능의 통합권 등이 거대도시권과의 구체적인 범위가 될 것이다. 뉴욕, 파리, 베이징, 도쿄, 서울 등이 이에 해당된다.
영산호가 있는 영산강은 지금의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강을 본 느낌이다. 해안을 따라 규모가 크고 독립적인 대도시들이 점점 더 크게 합쳐지면서 형성된 지역의 미국 북동부처럼 비다와 영산강을 끼고 있는 영암도 대도시 지역의 외곽이 결국에는 서로 합쳐지기 시작해서 확장된 도시지역을 형성하기에 이를 것이다.
서해안 지역으로 형성된 마한은 영암 시종을 본거지로 하여 중국 등 대륙과 일본 등 여러 지역으로 진출하고자했다. 그렇듯 언젠가는 영암이 마한이 이루지 못한 거대도시와 국가형성을 이루거나 지속하지 못하고 말았던 것을 그들의 꿈과 희망을 지금 영암이 해내야한다.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는 하나의 연구소나 전시장에 불과하지만, 센터가 영암의 마한문화를 다시 꽃피우는 일로 진전되어야한다. 영암 곳곳에 마한의 숨결을 다시 이어지게 하고, 숨을 쉬게 해야 한다.
김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