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성녀 프란체스카는
결혼생활을 한 부인이면서 또한 과부였다.
그리고 훗날 수도회를 설립하여 수도자로서 생활하고,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며 일생을 보낸 모범적인 성녀이다.
로마의 성녀 프란체스카는
1384년 이탈리아의 부유한 귀족인
부쏘 가문의 파올로와 쟈코벨라의 딸로서,
이탈리아 로마의 중심부인 트라스테베레에서 출생하였다.
그녀는 13세 때에 인근의 부유한 영주인
폰치아노의 라우렌티우스와 결혼하여
40여 년 동안 이상적인 결혼생활의 모범처럼 살았다.
그들은 자녀 일곱을 두었으나 둘은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금욕적인 기질이 강하였다.
다락방에서 잠을 잤고, 남은 시간을 모두 기도에 바쳤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표현하곤 하였다.
그래서 흑사병과 내란으로 인하여 사회가 혼란할 때,
그녀는 자선활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녀는 시누이인 반노차와 함께 로마의 걸인들을 위하여
조직적인 봉사활동을 전개하여 높은 성덕을 쌓아 나갔다.
그녀는 성 알렉시우스의 환시를 본 뒤로
앓고 있던 중병에서 회복되었고,
1400년 그녀의 아들인 요한 바티스타가 태어날 때까지
산토 스피리투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다.
또 다시 흑사병과 기근이 로마에 들이닥쳤을 때,
그녀는 이 재앙의 희생자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돕기 위하여
자신의 보석까지 팔아 보태었다.
14세기는 교회에게 있어 어두운 시기였다.
교황청은 프랑스 왕들에게 심하게 예속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교황들이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 아비뇽으로 가서
그곳에서 70년 동안이나 머물러야 했다.
교황이 자리를 비운 로마시는
힘 있는 귀족들의 노리개가 되어버렸다.
통제가 불가능한 탐욕과 채워지지 않는
육신의 쾌락이 어디서나 난무하였다.
이와 같은 어두운 시대에 하느님께서는
고귀한 로마출신의 프란체스카를 부르시어
그녀의 완덕의 삶이 이 시대의 등대불이 되게 섭리하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의 집안에 재앙이 닥쳐왔다.
1408년에 대립교황의 편이었던
나폴리의 왕 라디슬라오가 로마를 점령했을 때,
여자들은 남아 있었으나
정통교황의 편에 서 있던 남편 라우렌티우스는
상처를 입은 몸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더구나 폰치아노 성이 약탈당하고
캄파니아의 집도 불에 타버렸다.
그리고 1413년의 또 다른 흑사병 때문에
아들 에반젤리스타가 희생되자,
그녀는 자기 집을 아예 병원으로 개조하였다.
불행은 계속 이어져
2년 후에는 그녀의 딸 아녜스마저 사망하였다.
1414년경에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의 추방령도 해제되어 돌아오고 재산도 되찾았지만
남편의 건강은 아주 나빴다.
성녀 프란체스카는 남편을 간호하는 한편
그녀의 모범을 따라 세상을 따르기 보다는
오직 주님의 가르침을 원하던 귀족 부인 여러 명과 함께
자선활동을 계속하면서, 봉쇄생활을 하지 않고
세상 안에서 자선을 실천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도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로 결정하였다.
이 공동체는 1433년 3월 25일,
처음에는 ‘마리아의 오블라티회’로 알려졌지만
후에 캄피돌리오 근처에 있는 ‘스페키의 탑’ 근처에 있다고 하여
‘토르 데 스페키의 오블라티회’로 알려졌고,
다시 현재의 ‘성 프란체스카 로마나의
오블라티회’로 명칭이 바뀌었다.
1436년에 남편이 죽자 그녀는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성녀 프란체스카는 수녀원에 입회한 후
원장이 되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남은 4년 동안 엄격한 생활과 더불어 자선 사업에 전념하였다.
또한 그녀는 수차례나 환시를 보았다.
특별히 지옥과 연옥의 모습을 보았고,
그가 본 환시 중에 가장 아름다운 환시는
3가지 하늘에 관한 것이었다.
첫 번째 하늘은 별들의 하늘이고,
두 번째는 수정의 하늘이며,
세 번째 하늘은 불의 하늘이었다.
프란체스카 성녀는 깊은 탈혼 상태에 자주 들어갈 수 있었으며,
치유의 기적을 행하였고,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그녀는 대이교의 종말을 예언하였다.
그녀의 지상에서의 생애는 오직 하나의 투명하고
얇은 모습의 조개껍질 같은 것으로서
자신이 이미 지상에서 가슴에 안고 시작하여 살아가던
장래의 천상생활의 모습을 비추어주며 안내하는 것이었다.
프란체스카는 1608년 5월 9일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교황 비오 11세는 성녀가
자신의 수호천사를 여러 해 동안 보았다는 이유에서
그녀를 자동차 운전자의 수호성인이자
이탈리아 가정주부와 미망인들의 모범으로 선포하였다.
교회는 프란체스카 성녀의 축일을 3월 9일에 지낸다.
글...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