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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토)~18일(일) 1박 2일로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경주가 보고 싶어 미치겠다.... 고 해서 갔다 온 건 아니고, 사실은 집사람이 6학년부장인데, 다음 달에 가야하는 애들 수학여행 답사 파트너로 저를 스카웃 한 거죠... 운전사 겸.. 종놈 겸, 여행 가이드 겸... 어쨌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이왕이면 여행답게 한 번 가보자고 긍정적으로 맘 먹고 다녀 왔습니다. 사실은 KTX를 타고 다녀올까 싶기도 했지만, 그거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1인당 편도만해도 47000원이 넘으니, 왕복 KTX 기차비만 해도 10만원 돈(KTX이외에는 신경주역에 정차하지 않습니다. 그냥 부산쪽으로 빠지지요..)이더라구요. 그럴 바에야 톨게이트비 따로, 또 기름값도 대준다는데, 뭐할라고 생돈 들여 기차를 타겠어요... 그래서 그냥 내 차로 가기로 한 거지요. 물론, 당신 피곤하니까 기차로 가자고 하긴 했었지만, 집사람이야 좋지요, 뭐. 옆에서 늘어지게(?) 잠을 잔들, 아무 곳이나 세우고 싶은 곳에서 '세워!'라고 하든 누가 뭐라겠습니까..그쵸? 각설하고... 그렇게 다녀온 여행인데, 그래도 꽤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된 것 같아서, 회원 여러분들께도 소개해 드리고, 기회가 되시면 한 번 다녀옵시라고 여기에 정리해 두기로 했습니다.
[여행일정]
3월 17일(토): 출발(서울송파/오전 9시 경)-서울외곽순환도로-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점심)-경부고속도로-경주-[집사람 아이들 머물 숙소 점검(불국사 근처)]-골굴사-기림사-감은사탑-문무대왕수중릉-경주쌈밥-안압지 야경-숙소(경주교육문화회관)
3월 18일(일): 숙소에서 아침-남산[삼릉-상선암-상사바위-금오봉 정상(468m)-순환도로-용장사지 3층탑-용장마을]-순두부로 늦은 점심-황남빵구매-경주출발-집
[첫째날; 3월 17일]
경주를 향해 집을 나선 것은 오전 9시 무렵. 작년만 하더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올 해부터 전면 시행되는 주5일제의 덕을 제대로 본 셈이다. 다른 분야보다도 가장 늦게 교육계에서도 올 해부터는 주5일제가 전면 도입되었는데, 그나마 그것도 애들을 어쩔거냐며 사방에서 왁왁거려, 토요일에 쉬는 것이 마치 무슨 죄라도 짓는 기분이다. 가정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며 오히려 주4일제까지도 시행하는 프랑스의 예는 언감생신이고... 교육이 학교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생각. 부모들은 애들을 학교에 '처박아 두기만'하면 할일을 다했다는 듯한 생각. 이건 아닐게다.
어쨌든, 평소 여행 때와는 달리 일찌감치 길을 나선 덕에 길은 그야말로 막힘없이 뻥 뚤려있다. '이 놈의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쓸데 없는 곳에도 그저 길만 뚫고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길의 고마움을 항상 느끼게 됨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분들의 노고에 늘 감사하는 맘을 지울 수 없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휴게소 한쪽에 있는 추억의 '야구' 연습장에 가서 오랜만에 무려 3천원어치나 '빠따'를 휘둘러 스트레스도 날렸다. '어머, 어머, 자기 정~말 잘친다'는 집사람 말에 으쓱거리며 폼도 좀 잡은 다음 다시 차를 내리 몰아서 경주에 도착한 것은 2시 30분 경. 우선 불국사 근처 집사람 학교 애들이 머물게 될 숙소에 들러 시설을 점검했다. 숙소 주인은 때가 때이니만큼 집사람 학교뿐 아니라 오늘 하루에만 전국에서 8개 학교가 답사를 왔다고 한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시설을 꼼꼼히 살피고, 자료를 얻는 것으로 숙소 점검이 끝났다. 3시. 이제부터는 우리 부부의 여행이다. 이번에 잡은 테마는 '그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주 체험하기'다.
그래서 가보기로 정한 첫 목적지는 '골굴사(骨窟寺)'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기림사(祗林寺)'다. 둘 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품고 있는 토함산 동북쪽에 자리한 함월산에 있는 사찰들이다. 경주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4번국도를 따라가다가 인동삼거리에서 14번도로(기림로)로 접어들어 북쪽으로 올라가면 두 절이 차례대로 나타난다.
골굴사는 일반 사찰과는 달리 인도 불교문화를 담고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석굴사원이다. 6세기 인도에서 건너온 광유(光有)성인일행이 이 함월산 부근에 정착하면서 불국사보다 200여년이나 먼저 이 절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인도 풍의'석굴사원'형식을 따르고 있다. 역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을 따라 나 있는 12개의 석굴들마다 석불을 모셔두고 '지장굴', '약사굴' '칠성단' 하는 식으로 이름을 붙여 놓았다. 절의 전체 구도는 단양의 구인사를 축소해 놓은 듯 계곡을 따라 쭈~욱 늘어놓은 듯한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구인사로 치면 맨 위 조사당이 있는 그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대적광전 오른쪽 기암절벽 바위덩어리가 바로 '골굴암'이 있는 곳이다. 철제 난간과 돌계단을 해 놓아 사람들이 12개의 암굴들을 차례로 순례할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그 경사가 워낙 급하고 좁아 맘 약한 분들은 잔뜩 쫄기도 한다. 이 기암절벽의 정상에는 유리로 차양 아치를 설치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 '골굴암 마애여래좌상(보물제581호)'이다.
골굴사에 대한 몇 가지 tips.
(1) 입장료가 없다. 관광지에 갔을 때 얼마나 반가운 소리인지... 무료, 무료!! 그냥 통과하면 된다.
(2) 매일(월요일 제외) 11시와 3시 30분에 선무도와 불료예술상설공연이 대적광전 앞 나무로 만들어진 데크식 무대위에서 펼쳐진다. 집사람과 내가 대적광전 바로 아래 도착한 시간이 우연히도 3시 30분이어서 이 진귀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경주 City Tour 버스가 이 시간에 맞춰 관광객들을 절 입구에 내려주는 것 같다. 우리를 제외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City Tour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었다. 선무도 무예를 하는 스님들을 보고 있자니, 여기가 바로 한국의 소림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골굴사는 SBS TV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왔던, 그 불공드리는 진도개 '동아'가 있던 절이다. 물론 이제 동아는 죽었고, 그 새끼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한다. 절 바로 아래 첫 번째 주차장에 동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 위로 석굴사원. 정상의 아치형 차양아래 모셔져 있는 것이 마애여래좌상이다.]
[선무도 시범을 보이는 스님들. 골굴사 스님들은 중국 소림사 스님들처럼 수련의 일환으로 선무도를 익힌다.]
[마애불을 보기 위해 이런 험로를 거쳐야 한다. 12석굴을 다 보고 나서 정상에 올라야 마애불을 알현할 수 있다.]
[보물 581호 골굴사 마애여래좌상. 불상의 위치에서 전경을 바라보라는 유홍준 교수의 말을 따라 꼭 한 번 돌아보기 바란다.]
골굴사를 나와서 다시 14번 기림로를 따라 1.5Km쯤 북으로 더 올라가면 함월산 자락에 자리한 기림사(祗林寺)가 나온다.
골굴사와 마찬가지로 이 기림사도 선덕여왕 때 인도승려 광유(光有)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 때의 이름은 임정사(林井寺)였지만, 원효가 643년 절을 중창하고 석가모니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기'자를 빌어와 원래 절 이름과 합해 '기림사'로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지만 19세기 중엽 화재로 사찰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중건했다고 한다. 다행히 625때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아 김시습을 모신 사당 매월당사 등이 보존될 수 있었고, 덕분에 문적과 어필이 다수 남아 있기도 하다. 보물 제833호인 기림사 대적광전(祇林寺 大寂光殿)을 비롯한 4점의 보물, 2점의 경북 유형문화재, 3점의 경북 문화재자료가 남아 있는 유서깊은 사찰이 기림사이다.
일단 절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기운이 골굴사와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입구에서 1인당 입장료 3000원, 주차비 1500원을 징수하니까, 그 차이를 안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__^); 농담이고... 정말 절 입구 일주문을 통해 걸어들어가다보면 선(禪)의 세계로 걸어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천왕문을 통과하면 눈 앞에 고색창연한 절집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우선 왼쪽에는 약수가 보이고, 그 더 왼쪽 축대 위로는 단청이 화려한 종루가 보인다. 그러나 그 축대 아래 자리한 '오리지날' 절터는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처럼 단청이 다 벗겨져 세월을 견디어낸 나무들의 속 색이 그대로 드러나,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세월의 무게를 온 몸으로 느끼며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약수 바로 앞에 있는 종무소에서는 양수리에 있는 수종사에서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차를 무료로 즐길 수 있게 해 놓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간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랬는지, 이 날은 문이 잡겨 있어 아쉬웠다.
옛 절집으로 구성되어 있는 '축대 아래' 절집은 보물인 대적광전과 약사전(경북문화재자료 252호)이 한 축을 이루고 있고, 응진전(경북 유형문화제 214호)이 또 한 축, 그리고 절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의 진남루(鎭南樓)가 한 축을 이루는 'ㄷ'자형 가람배치를 보인다. 공주 공산성에도 진남루가 있고, 여수에는 거대한 진남관이 있지만, 그들은 어쨌든 군인들이 만들고 사용한 '군용' 유적들이지만, 이렇게 절집 안에 진남루가 있다는 것이 너무도 특이하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결의가 느껴지는 것 같아 새삼 옷깃이 여며진다. 비록 왜구일망정 살생을 해야하는 승병들읭 입장에서는 나름 얼마나 많은 고뇌와 번민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좀 안스럽기도 하고... 마당 중앙에는 3층 석탑(경북 유형문화재205호)과 커다란 보리수 나무가 있다.
축대 위에는 삼천불전과 관음전, 명부전, 그리고 종루가 커다란 절마당을 가운제 두고 에둘러 배치되어 있다. 삼천개의 옥으로 된 불상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 삼천불전은 단청이 '날카롭게' 살아 있지만, 왠지 생경하고, 쾡한 느낌마저 든다. 축대 위 본전인 이 삼천불전과 마주한 곳에 성보 박물관이 있고, 그 근처에는 생육신 중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을 모신 사당이 있다. 매월당도 한 때 머리를 깎고 설잠(雪岑)이라는 법명을 썼었다니까, 절집에 그의 사당이 있다는 것이 그리 어색한 것은 아닌 듯 싶다.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으로 가는 입구 풍경]
[오른쪽에 조금 보이는 것이 종무소. 전면으로 진남관과 응진전의 옆모습이 보인다.]
[진남관과 응진전 모퉁이에서 들여다 본 대적광전과 약사전. 절 마당에는 삼층석탑과 보리수 나무가 보인다.]
[대적광전 문에서 보이는 다양한 창살무늬들. 변산의 내소사나 다른 절집의 창살들보다도 더 고와 보인다.]
[매월당 김시습을 모신 사당. 행서라기 보다는 거의 '비백'에 가까운 특이한 주련 글씨들이 눈에 띈다.]
기림사를 나와 다시 4번 국도를 타고 대종천을 따라 동해쪽으로 달린다. 집사람과 나에게 '경주'라는 이름과 공명을 일으키며 언제나 자연스레 로망처럼 다가오는 곳, 바로 감은사(感恩寺)터 3층석탑(국보 112호)을 보기 위해서다.
감은사는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보살피겠다던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를 대왕암에 해장하고, 그 은혜에 감읍한다는 의미로 신문왕이 감은사로 개칭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절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만 남아 있고, 동탑과 서탑이 나란히 마주 서서 대종천을 굽어보고 있다. 동서탑 모두 13.4m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큰 탑이다.
집사람도 나도 옛 절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서산마애불이 있는 계곡 안쪽에 자리한 보원사지도 역시 그 중 하나지만, 이 감은사지는 보원사지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보원사지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엄마 품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좀 더 웅엄한 남성적 기운이랄까? 어쨌든 그 기운이 좋다. 하늘을 이고 당당히 버티고 서 있는 저 두 녀석의 충직함도 너무 좋다.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땅을 딛고 서서 주인을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충직한 Body Guards들처럼 보여 너무 예쁘다. 믿음이 간다. 너무 배가 고파 주차장에 있는 '보리빵' 집에서 보리빵을 한 박스 사서 허기를 달래며 탑을 보듬어 보았다.
[찾아 올 때마다 조금도 흩어짐 없이 그렇게 당당하게 맞아주는 이 녀석들이 너무 좋다.]
[이 각도에서 보면, 얘들이 누구를 지키고 서 있는지 알 수 있다. 정말 충성스런 Body Guards 들이다.]
감은사을 나와 다시 4번국도로 동쪽으로 잠시 더 가면 감포 바다가 나오고, 그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문무왕 수중릉을 볼 수 있다. 저녁이 다 되어서 괜찮겠지 했는데... 어디선가 직원이 쑥 나와서 '주차비 1000원, 선불입니다.' 한다. 직업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에 문무왕릉에 와서 알게 된 것들이 두 가지 있다.
첫 째는 이 문무왕릉이 무속의 섬김 대상이라는 것. 바닷가 모래밭에는 군데군데 '무녀'인 듯한 사람들이 소박하지만 상을 차려 놓고 촛불을 밝힌 가운데 대왕암을 향해 앉아 기원을 하는 듯 싸늘한 날씨에도 미동도 않고 앉아들 있다. 그러고 보니 주차장 옆 상가에는 겉은 횟집 등으로 간판이 되어 있지만, 굿당인 듯 보이는 집들도 있다. 한 집에서는 49제를 지낸다며 화려한 종이꽃으로 장식한 영물로 만들고, 가게 안에서는 온갖 상차림을 마치고 굿을 막 시작할 태세다. 물론 상은 일반적인 북쪽이나 벽쪽이 아니라 수중릉이 잘 보이도록 앞쪽 수중릉이 보이는 방향으로 진설해 놓았다.
둘 째는 이 해안가는 특이하게도 반은 모래사장, 반은 몽돌해안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몽돌쪽으로 가 보면 완도의 그 몽돌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파도가 밀려갈 때 그 귀여운 '똑 또르르르르르...' 하는 몽돌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다. 너무도 이쁜 그 소리... 지금도 귓가에 들이는 듯하다.
[호국의 상징 문무대왕 수중릉. 지금은 무속의 섬김 대상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을 여기에 와서 받았다.]
[사진을 어디서 어느 각도에서 찍느냐에 따라 이렇게 해안이 몽돌해안처럼도 나올 수 있다.]
그럭저럭 날도 기울어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삼포쌈밥집(054-749-5776, 경주시 황남동 90-2). 황남동 대릉원 바로 옆 계림로에 있다. 연주가 3~4살때도 이 집에 들러서 쌈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어 다시 찾았다. 그런데 세월이 변해서 일까... 그때만은 못하다는 느낌이다. 특히 쌈의 양이 많이 줄었다. 당시에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온갖 종류의 쌈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2인분 상차림. 우리 뒷쪽에는 배낭여행 온 일본 아가씨 4명이 막걸리를 곁들여 '오이시이~'를 연발하며 먹고 있었다.]
식사 후 우리가 찾은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오늘 여정의 하이라이트!!! 바로 안압지 야경이다. 사실 정자 3개만 덩그라니 남아 있는 안압지로 기억하고 있어, 처음 왔을 때도 그냥 그저 그렇구나 하고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경주에 들렀을 때도 안압지는 별로 구미가 당기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반월성의 별당같은 곳이었다지만 남아 있는 유적이 너무 없어 좀 썰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야경을 보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조명이 켜놓은 정자들마다 거울같이 맑고 고요한 인공연못에 비친 그 완벽한 대칭을 이룬 그 모습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황홀한 광경을 연출해 주었다. 봤으니까 망정이지, 그냥 지나쳤더라면 나중에 알고 나서는 정말 후회했을 것 같다. 회원여러분들도 경주에 갈 일이 있다면, 이 안압지 야경, 반드시 보시라고 강력 추천한다. 입장료 내고 그냥 앞 마당쪽에서만 눈으로 힐끗 훑어보지 말고 반드시 호수를 일주해야 한다는 점도 꼭 기억하시고... 주차장이 마비될 정도로 사람이 몰린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 야밤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드는지 절로 이해가 되었다. 더 긴 말 필요 없고, 안압지 야경, 같이 즐감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