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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의 클래식 여행 11-어머니의 감성 전원교향곡/베토벤 2
춤추는 것보다 춤곡을 작곡하는 것이 쉽다
베토벤생가의 흉상
천둥과 함께 비가내리는 어느 날, 소년 베토벤은 마당에서 비를 맞고 있었다. 나뭇잎에 스치는 비와 바람의 교향곡에 흠뻑 빠져 있었다. 어머니는 얼른 집으로 들어오라고 소리 지르지 않았다. 비를 맞는 아들 곁으로 다가가 꼭 안고 함께 비를 맞으며 “그래 아름다운 비와 바람이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를 함께 들어보자”고 말했다.
신이 난 베토벤은 “엄마 새소리가 들려요! 저 새는 어떤 새지요 왜 울고 있죠? 하고 물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질문에 다정하게 답해주었다. 베토벤의 위대한 교향곡 특히 <6번 전원>은 여기에서 밀알이 뿌려져 자라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근거는 없지만 어머니와 함께 만든 교향곡이라고 나름 단정해 본다.
아버지 때문에 음악이라면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로 신물을 냈을 법도한데 어쩔 수 없이 솟아나는 음악에의 열정, 그러한 아들을 격려해준 어머니를 비롯한 주위의 도움으로 그는 음악의 길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어려움은 계속되어, 귀족여성과의 사랑에 실패하고 절망의 생활을 이어나가던 베토벤은 더욱 더 무뚝뚝하고 고집 센 사람이 되어갔으며 질병은 끝까지 그를 괴롭혔다. 자식이 없는 베토벤은 한 명뿐인 조카를 사랑하여 온갖 정성을 쏟아보았지만 조카는 오히려 베토벤의 보살핌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말썽까지 피워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베토벤의 성격이 좀 괴팍하였다는 이야기와 말년에 사람들과의 접촉을 거의 거절했다는 사실은 아마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리기 싫었기 때문 일거라 생각할 수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부를 두어야했지만 하루도 못되어 해고된 가정부도 있었지만, 하루도 못되어 그만둔 가정부도 많았다.
1795년 황궁의 무도회장에서 열리는 유명한 연례 자선무도회에서 연주할 곡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빈에서의 춤은 어느 도시보다도 인기 있는 놀이였는데, 베토벤은 춤을 추는 것 보다 춤곡을 쓰는 것이 더 쉽다고 할 정도였으니 춤에는 재주는 없었나 보다.
당대의 최고 문학가로「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1832가 베토벤을 만나고 친구에게 남긴 말이 전해온다.
"그보다 더 자족적이고 활기에 넘치고 진실한 예술가를 난 본적이 없어. 그의 재능은 경탄스러웠네. 불행하게도 그는 철저하게 길들여지지 않은 성품이며, 세계를 그토록 혐오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을 그 자신에게나 타인을 위해서나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네. 반면 그에게는 용서해줄 요인이 아주 많고, 연민의 구실도 많은 것은 무엇보다도 귀가 점점 들리지 않는다는거네"라고 전해져 온다.
베토벤은 걸핏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었지만 이후에는 크게 후회하는 사람이었다. 이 반복의 사이클은 사람들을 가장 화나게 하면서도 사랑스럽기도 한 것이 그의 특징이다.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베토벤이지만 외양으로 보면 결코 그런 위대성을 느낄 수 없다. 163센티 정도의 작은 키에 당치도 않게 큰 머리에 부성하게 자란 잡초 같은 머리카락에다 결코 세련되었다거나 카리스마를 찾아 볼 수도 없지만 날카로운 눈매에서 풍기는 인상은 많은 이들을 제압하였다.
한편으로 베토벤은 귀족들이 겉치레를 중시하는 데 대해서는 공격적이랄 정도로 경멸하며, 에티켓étiquette 따위를 익히지도 않았고 익히려 하지도 않았다. 베토벤을 지원했던 루돌프Rudolf대공大公을 처음 만날 때도 준수해야할 형식적인 의전을 강요하였지만 이런 절차를 참을 수 없었다. 빈 귀족들과 처음 교류를 시작할 때에는 서로가 대등한 입장에서 대우받아야 된다는 것을 말로써만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주장했던 그가 바로 공화주의자이기도 하다. 베토벤에 대해 이야기하면 참 재미있어지니 조금 더 해보자.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봉사하면서 하인제복을 입었지만, 빈의 귀족들이 베토벤을 오히려 받들었다는데, 사실인지 알아봐야하므로 내용을 지인을 통해 정리해보자.
"툰 백작부인이 소파에 늘어져 앉아 있는 베토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연주해 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하지만 베토벤은 고집스럽게 그 부탁을 거절하고 있더라."라는 증언이 있다.
모차르트, 하이든, 글루크를 후원했다던 백작부인이 어린 피아노 연주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지만 증언이 있으며, 백작부인의 사위인 공작은 하인들에게 자기와 베토벤이 동시에 현관에 당도하면 베토벤의 시중을 먼저 들라고 엄중하게 지시할 정도였으니, 이 모든 게 사실이었던 같다.
KBS 클래식FM이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1458명의 청취자로부터 인터넷 및 우편 투표를 통해 총 4804곡의 클래식 곡을 뽑은 결과, 베토벤은 <피아노협주곡Konzert für Klavier und Orchester 5번, 황제>, <교향곡 9번 합창>과 <교향곡 5번 운명>, <교향곡 7번>등이 상위권에 골고루 랭크되었고, 교향곡에서는 10위중에 베토벤 교향곡이 4곡(1위, 2위, 4위, 6위)이나 된다. 독주곡 10위까지에도 베토벤은 피아노소나타가 3곡(14번 월광 2위, 8번 비창 4위, 17번이 9위)이나 포함되었고, 또한 실내악에서도 10위안에 베토벤은 바이올린소나타 5번이 4위, 첼로소나타 3번이 10위, 피아노 3중주 대공이 10위로 3곡을 올렸다. 이처럼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작곡가는 당연 베토벤이라고 할 수 있다. 참으로 대단한 작곡가임에 틀림없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은 누구인가
베토벤에게는 불멸의 연인이란 이야기가 항상 따라다녀서 그의 사랑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지 않을 수 없기에 이에 대한 주제로 다루어보기로 하자. 결코 잘생기지 않은 베토벤이지만 여성들을 매료시켜 사랑에 빠지게 했다고 하니 일단 믿어보면서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유명한 편지 <불멸의 연인에게>를 남겼다. 이 연애편지를 생각하며 환상풍의 소나타Sonata quasi una Fantasia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피아노소나타Klaviersonaten 14번, <월광소나타Mondscheinsonate>를 감상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
베토벤이 사랑을 고백한 수많은 편지들 중에 특히 충격적인 것은 그의 유품속에서 발견된, 42살이던 1812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불멸의 연인에게>라는 세통의 편지이다. 이 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영화「불멸의 여인」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시대에 와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불멸의 여인이 누구인가를 추정해 볼 수 있는 헌정한 작곡들을 나열한다.
<소나티나 F장조Sonatina in F major, WoO. 50>를 헌정한「엘레오노레 폰 브로이닝Eleonore von Breuning」, <월광 소나타>를 헌정한「줄리에타 귀차르티Giulietta Guicciardi, 1782∼11856」, 네손을 위한 6개의 변주곡 <나는 당신을 생각해요1803>를 헌정한「요제피네 다임Josephine von Brunsvik-Deym, 1779∼11821」, <희망에 부쳐서An die Hoffnung, Op.32>를 헌정한「테레제 브룬스비크Therese Brunsvik, 1775∼11861」, <엘리제를 위하여Für Elise>를 헌정한「테레제 말파티Therese Malfatti von Drossdik, 1792∼11851」, <멀리 있는 연인에게An die Geliebte, Op.98>을 헌정한「안토니에 브렌타노Antonie Brentano, 1780∼11869」등을 거론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안토니에 브렌타노가 유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테레제 말파티」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이런 여성들과 결혼을 꿈꾸었던 베토벤, 항상 그의 상식에 맞지 않는 기묘한 행동은 쓴 웃음을 짓게도 만들었지만 이런 행동이 귀족 여성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그의 편지를 훔쳐본다.
7. 7일 아침의 첫 번째 편지에서, 서로 격려하며 견뎌내고 있지만 뭔가 외부의 힘이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내용이다.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 자신이여. 왜 이렇게 슬픈 거요? 우리의 사랑은 희생을 감내하고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만 성립되는 건가요?"
같은 날 밤의 둘째 편지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깊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이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괴로워하고 있소. 아아! 내 마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고 있다오. 당신과 같이 살 수 있도록 노력 하겠소"라고 썼다.
이튿날 7. 7일 아침의 셋째 편지는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고 있소. 내 불멸의 연인이여. 운명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줄 것을 바라면서 나는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다오. 당신의 품에 안겨 내 영혼의 정령의 나라로 보낼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방황하기로 결심했소····"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려주는 듯한 내용임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편지는 보헤미아의 테플리츠에서 썼다고 하는데, 그의 일기를 참고로 누구에게 보내는 글인지를 알아본 결과 수신인이 안토니에 브렌타노로 추정하고 있다. 그녀는 당시 프랑크푸르트의 상인 프란츠 안토니오의 아내였다. 안토니에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정치가였는데, 그녀는 18세 때인 1978년에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아버지의 결정으로 15세 연상의 프란츠와 결혼했다. 프란츠는 성실한 사람으로 베토벤에게 거액을 빌려주고도 갚으라고 독촉도 하지 않고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슈테판 대성당 기둥 뒤에서 남몰래 눈물짓던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베토벤이라는 이야기가 맞는지는 찾을 길이 없으니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맞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가곡 <희망에 부침>은 베토벤이 요제피네와 사랑을 붙태우던 시기에 작곡하였고 반주는 <월광소나타> 제1악장과 비슷하다. 티트게의 시에서 따온 가사는 "그대, 성스러운 밤에 축하하고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희망이여, 참고 견디는 자에게 알려주라. 너 때문에 높이 올라간 천사가 천상에서 그의 눈물을 세고 있다는 것을."이라는 내용으로 베토벤 마음을 노래하는 듯 한 이 가곡에서 요제피네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희망을 말하는 듯 하다.
평생 총각으로 살아온 베토벤은 사랑의 편지를 많이 남겼다. 그의 사랑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여본 결과, 그의 연애대상은 언제나 귀족여성이었다. 그런데 베토벤은 네덜란드계이며 평민신분이라 오스트리아 귀족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쉽게 말하면, 오르지 못할 나무를 오르려다 베토벤은 결혼도 못하고 수많은 연애편지만 남겼으리라 본다.
1809년 루돌프 대공이 킨스키공작, 로프코비츠 공작과 함께 베토벤을 빈에 붙잡아 두고 안정시키려고 넉넉한 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베토벤의 경제적인 걱정은 사라졌다. 연금지급에 대한 합의서를 보면, 베토벤이 생활비 문제로 음악에 몰두 할 수 없게 되는 난처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의 지위를 부여하자는데 동의했다. 이를 위해 세 사람은 베토벤에게 매년 4,000 Florin의 정액을 지급하기로 약속하여 베토벤에겐 음악을 위해 정진할 수 있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연급지급에 따른 베토벤에게 요구조건은, 살고 있는 빈 또는 오스트리아 황제의 세습영토인 도시나 지역에서 거주하며 직업상의 필요나 예술적인 관심 때문이 아니라면 정해진 구역을 떠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대공>, <고별>과 <함머클라이버>,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장엄미사>를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하게 되었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양형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