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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kt. Sarvasti-vāda)>
1.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성립
불교는 불멸 후 처음엔 주로 인도 서쪽지방과 서남방으로 전도가 진행되고
불교교단도 이 두 방면으로 서서히 발전해 갔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자 점차 불교교단은 인도 각지로 진출, 정착해 갔다.
이와 같이 교세가 널리 퍼져가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 환경이 점차 변해가므로 해서
교단 내에 율법의 적용에 대한 이견이 발생했다.
그리하여 불멸 후 100년경(BC 4세경) 중인도 베살리(Vēsalῑ)라는 도시에서
계율상의 문제가 쟁점이 돼서[십사(十事) 혹은 오사(五事)] 분쟁이 일어나서
교단이 보수파와 진보파로 양분됐다.
그 중 주로 장로들로 구성된 보수파를 상좌부(上座部)라 부르고,
대중적인 진보파를 대중부(大衆部)라 불렀는데, 이때의 분열을 근본분열이라 한다.
그리고 불멸 후 200년 무렵에는 상좌부와 대중부 내에서도
교의 해석에 문제가 제기돼 각기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지말분열(支末分裂)이라 한다.
지말분열은 BC 3세기경 아소카왕 시대가 절정기였다.
그리하여 교단이 결국 20여개 부파로 분열됐다.
즉,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100여년(BC 4세기) 경부터 BC 1세기까지
약 300~400년에 걸쳐 교단에 20여개 파의 분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시대의 불교를 부파불교, 혹은 아비달마불교라고 한다.
상좌부(上座部, Theravada)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테라바다(Theravada)라는 말은 “장로(長老)들의 길”이란
뜻으로 보수적인 장로파를 일컬었다. 이 상좌부불교에서는
붓다 생존 시 사용하던 언어인 빠알리어(巴里語, Pāli)로 된 경전을
근간으로 했는데, 이는 훗날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대승경전과 대비된다.
그런 상좌부에 BC 3세기경 지말분열이 일어나게 되는데,
맨 처음으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가 분별설부(分別說部)라
자처하던 본상좌부(本上座部)로부터 분리 독립해나갔다.
설일체유부의 부파이름은 음역해서 살바다부(薩婆多部)라고도 하고,
줄여서 유부(有部)라 했다. ‘설일체유부’라는 문자 그대로의 뜻은,
“일체법(一切法)이 존재한다(有)라고 설명하는 부(部)”라는 말로서,
모든 것의 실재성을 주장한 것이 유부의 특징이다.
본상좌부(本上座部, 설산부)에서는 경(經)과 율(律)을 중시한 데 비해
설일체유부에서는 논(論)을 중시했다.
이러한 입장 차이로 본상좌부와 설일체유부가 갈라진 후 본상좌부는
히말라야 지방으로 옮겨가서 설산부(雪山部)라고 불리었다.
한편 설일체유부는 미투라 지역에서 일어나서 북서 인도의 간다라,
카슈미르(迦濕彌羅, Kashmir)에로 나아간 뒤, 이곳을 중심으로 해서
2세기 이후에는 북인도의 전체에로 확장됐다.
그리고 BC 1세기 초까지 설일체유부에서 음광부(飮光部), 경량부(經量部)가 분리해 나가고,
독자부에서 다시 법상부(法上部), 현주부(賢冑部), 정량부(正量部),
밀림산부(密林山部)가 분리해 나갔으며, 화지부에서
또 다시 법장부(法藏部)가 분리해 나갔다.
설일체유부는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 카티야야니푸트라)를 파조로 하며,
교리연구 면에서 크게 진전해 학문불교적인 색채가 농후해 논장(論藏)을 존중했으며,
불교의 가장 정통적인 사상을 이어받는 부파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그리하여 부파의 여러 학파 가운데 가장 많은 아비달마 논서를 생산해,
학문적으로나 교세 면에서 가장 강력한 부파로 성장하면서
서북인도 간다라, 캐슈미르 지방에 세력을 떨쳤다.
따라서 상좌부계 여러 부파 중 최대의 것이었고, 후에 일어난
대승불교에서 소승불교라 칭한 대상이 곧 설일체유부였다.
따라서 소승불교에 대한 비판과 논란은 거의 모두 이 설일체유부에게 돌려졌다.
그래서 상좌부불교라고 하면 당연히 설일체유부를 지칭했다.
유부가 특히 강조한 논(論)은 교법에 대한 연구로서의 아비달마이며,
유부가 전거(典據)로 삼은 것은 BC 2세기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가
저술한 <발지론(發智論)>이었다.
설일체유부에서는 AD 2세기 쿠샨왕조 카니시카(재위 AD 127~151)왕의
보호 아래 연구 성과에 대한 집대성이 이루어져서,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 )> 200권의 대저(大著)로 유부의 교의가 완성됐다.
카니시카왕의 정책에 따라 이때부터 설일체유부에서도 빠알리어 대신
산스크리트어(Sanskrit, 범어)를 썼다. 따라서 훗날 설일체유부의 경전이
중국으로 전파될 때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이 전해졌다.
한편 당시 <대비바사론>이 너무 방대했기 때문에 발췌 요약한
여러 강요서(綱要書)가 만들어졌는데, 특히 4세기에 세친(世親, Vasubandhu, 316?~396?)이
대승불교로 전향하기 전 설일체유부의 설을 근간으로 하고,
경량부(經量部)의 설을 참조해서 <대비바사론>을 주석한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Abhidharmakośa-śāsastra)>을 저술했다.
이를 줄여서〈구사론(俱舍論)이라 하며, 가장 뛰어난 논서로 중시됐다.
그에 따라 설일체유부 교리가 대승불교의 유식(唯識)사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관학파에서는 아공(我空)⋅법공(法空)과 「무자성⋅공」을 주장한 데에 비해
유식에서는 아공(我空)⋅법유法有)와 「자성⋅공」을 주장했다.
2.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주요 교학체계
1)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
모든 존재의 본체(本體), 즉 모든 존재의 본성은 항유(恒有),
즉 과거⋅현재⋅미래에 관계없이 존재한다고 하는, 설일체유부의
대표적 명제 같은 주장을 했으며, ‘설일체유부’라는 명칭도 이에 유래한다.
이것이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라는 교의인데,
붓다 교설인 제행무상(諸行無常)이나 제법무아(諸法無我)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론이다.
불멸 후, 교단은 차츰 확대발전하고, 특히 BC 3세기 전반에 인도에 처음으로 출현한
통일국가인 마우리아(Maurya)왕조, 그리고 그 황금시대를 연 아소카왕(Ashoka, 阿育王)에 의한
불교존숭정책은 불교세력을 전인도에 비약적으로 발전케 했고, 교단분열도 이 무렵 활발했다.
그리하여 대중부 상좌부가 분열해서 약 20여개의 부파가 성립됐다. 뒤에 일어난
대승불교는 이들을 소승 20부라 했다.
Abhidhamma-piṭaka
이렇게 분열된 각 부파는 저마다 구전의 가르침[아가마(Agama)-아함(阿含)]을
불경으로 고정시킨 뒤에, 이를 각 부파에서 이론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교의를 조직화 내지 체계화했다.
이 정밀한 교의체계를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라고 하며,
교조 붓다의 법(가르침, dhamma)에 대한(abhi) 설명과 주석을 아비달마라 하는데,
바로 논장(論藏)을 일컫는다.
설일체유부의 논서는 아공법유(我空法有)의 입장을 취했다.
법체(法體)란 모든 법의 체성(體性)이란 뜻으로, 만유제법의 실체,
즉 우주 삼라만상의 근본이 되는 실체를 말했다.
즉, 법체(法體)는 개체들의 변하지 않는 실체를 말하며, 항유(恒有)는 항상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브라만의 아트만(Atman)과 비슷한 개념이 돼버렸다.
시간이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실재하는 것은 법체(法體)가 불멸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간이란 거대한 컨베이어벨트가 무한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그 위에 법체라는 것이 걸쳐 있기 때문에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법체가
항유하기 때문에 삼세[시간]가 실유하다는 이론이다.
그리하여 유부 교학에서는 실재론적 경향을 중시하게 돼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를 주장했고,
이것은 곧 설일체유부의 대표적 명제였다.
2) 5위(位) 75법(法)
원래 유부 소속 논사였던 세친(世親, 바수반두, 320~400?)이
대승불교 유식학파로 전향하기 직전, <대비바사론>을 주석해,
설일체유부의 교의체계를 간결하게 요약한 논서 <구사론(俱舍論)>을 저술했다.
이는 명실상부 부파불교 교학을 대표하는 명저로서 인도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에서도 부파교학의 입문서로 연구됐다.
이 책은, 설일체유부 교의를 체계화함에 있어서 유부의 비바사사(毘婆沙師, 주석가)들
설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부파 특히
경량부(經量部)의 설까지도 참조해 비판적 태도로 저술한 점에 특색이 있다.
<구사론>이 부파불교학의 기초이론으로서 오랫동안 평가돼온 것은
그 교의가 정연한 체계로 논술돼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학설은 제법(諸法), 즉 모든 존재를
5위(位) 75법(法)으로 포괄하려는 논리였다.
즉, 설일체유부는 세상 모든 일체법을 오위(五位) 75법(法)으로 나누어
이들 각각을 영원불변의 실체성(實體性) 내지는 실재성(實在性)을
지닌 것들로 파악한 다음, 이들이 여러 형태로 상응(相應)
상반(相反)하는 관계에 의해 모든 형상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 다르마의 이론 - 5위(位) 75법(法) —
여기서 75법이란 존재를 분석해 얻은 요소들의 전체를 가리키며,
이 존재는 색(色)⋅심(心)⋅심소(心所)⋅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
무위(無爲)의 다섯 가지 범주[5위]에 포괄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구사론>은 일체 존재를 법에 의해서 분류했는데,
그 법을 존재요소로서 실체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푸른 병은 깨어지면 없어진다.
그러나 그 청색이라고 하는 것은 병이 깨어져도 존재한다.
이와 같이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을
자성(自性)을 갖는 것이라고 하며, 법(法-다르마)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개수를 다음과 같이 총 75법이 있다고 했다.
① 색법(色法); 물질의 요소 - 11종
② 심법(心法): 마음의 주체(心王) - 1종
③ 심소법(心所法); 마음의 작용 - 46종
④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물질도 마음도 아닌 관계, 능력, 상태 등을 나타내는 요소,
즉 물질에도 정신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법 - 14종
⑤ 이상의 72법(유위법)에 무위법 3종을 더해 75법이라 했다.
유부에서는 앞의 72법은 연기되는 존재라고 해서 유위법(有爲法)이라고 했다.
일체법(모든 법 ‧ 법 전체)은 유위법 4위와 무위법 1위의 5위로 조직하고,
다시 그 5위는 75종의 법으로 분류된다고 해서, 일체법(모든 법 ‧ 법 전체)을 5위 75법이라 했다.
3) 업론(業論) -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
유부에서 업론(業論)으로서는 극단적인 선ㆍ악 행위를 했을 때,
인간의 신체에 일생동안 그 영향을 주는 무표색(無表色-잠재력)이
생긴다는 주장을 했다.
이는 현대적 해석으로는 심리적 영향이라 하겠는데, 유부는 이를 물질[색(色)]로 본 점에 특징이 있다.
그리하여 설일체유부에서는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을 중시했는데,
업감(業感)이라고 하는 말은 업(業)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모든 것들이 펼쳐지고, 서로 간의 관계성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불교는 우주만유의 생성을 연기론으로 설명한다.
기독교나 그 밖의 다른 종교들은 우주의 근원으로서 조물주를 내세우지만 불교는 무신론이다.
만물이 생겨나고 발전하는 원인은 만물 밖에 있는 다른 존재가 아니라
그 만물 자체 안에서 행해지는 인과법칙의 원리에 의해 생성되고
발전한다는 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그 인과의 이치를 인연이라 하고, 인연에 의해 생기 발전한다는 것이 연기설이다.
업감연기론이란 만유(萬有)가 인연의 원리에 의해
서로 인(因:근본원인)과 연(緣:보조원인)이 돼 생겨나고 이루어지고 발전한다는 것으로,
그 연기 주체가 바로 업(業)이라는 것이다.
만유는 모두 자기가 짓는 업이라는 세력이 주체가 돼,
그것을 인으로 하고 다른 연을 만나 이루어진다고 한다는 것이 업감연기론이다.
“이 세상엔 어찌해 일찍 죽는 자가 있고, 오래 사는 자가 있는가.
병이 많은 자가 있고, 병이 없는 자가 있는가. 용모가 추하게 생긴 자가 있고,
잘 생긴 자가 있는가. 가난하게 사는 자가 있고, 부유하게 사는 자가 있는가.
어리석은 자가 있고, 지혜로운 자가 있는가.”
모든 유정(有情)은 각자의 업이 있어 그 업의 상속자이며,
업에 묶여 살고, 업이 모든 유정들을 분별해 우열이 있게 한다.
즉, 이 우주 유정은 모두 그 유정들이 지은 업력에 의해
자기 자신과 각자의 환경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이 업엔 사사로움이 없어 부모가 지은 업의 결과를
자식이 대신할 수 없고, 남편이 지은 업의 결과를 아내가 대신 받을 수 없다.
이것이 업인업과(業因業果)의 철칙이다.
그리하여 설일체유부에서는 인간의 고통의 직접적인 원인을
자기가 저지른 잘못된 행위[업]로 보고, 그 궁극의 원인을 번뇌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인간 존재를 「번뇌[혹(惑)] → 업 → 고통」의 연쇄로 윤회하는 존재로 봤다.
이것을 업감연기라고 한다.
4) 설일체유부 교학체계의 특징
부파불교 상좌부 계통은 원칙적으로 모든 것은 실체가 있다는
유부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유부는 이처럼 변치 않는
자성(自性)의 개념을 가진 법의 이론을 바탕으로, ―
붓다의 기본교의에 더러 어긋나는 것이 없지 않았으나,
그 나름의 광대한 교리체계를 세웠다.
그리하여 오늘날 불교의 기초가 되는 기본적인 교리체계는
전통 있는 상좌부, 특히 설일체유부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기본교리를 바탕으로 유부는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
5위(位) 75법(法),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 그리고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끊임없이 상속된다는 오온상속설(五蘊相續說),
삼세양중인과설(三世兩重因果說) 등 다양한 교리체계를 전개하며
모든 불교이론을 완비하려고 노력했다.
삼세양중인과설은 설일체유부에서의 연기법 해설방식의 하나이다.
삼세(三世)란 과거ㆍ현재ㆍ미래를 의미하고,
양중(兩重)이란 두 번 반복된다는 뜻이며,
인과(因果)란 원인과 결과의 연결을 말한다.
즉, 삼세에 걸쳐 두 번의 인과를 가지고 윤회하는 과정을 말한다. -
사실은 영원히 반복된다는 말이다. 이는 사람이 죽어서 돌고 도는
윤회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힌두철학(삼세윤회)과
불교철학(인과)의 혼합물로, 억지로 갖다 붙였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유부는 법계(法界)가 모두 실체가 있으며 서로 인과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삼세(三世)에 걸쳐 존재하는 법들이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며 존재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왜냐하면, 붓다는 일체지자(一切智者)로서 삼세의 모든 실상을 밝혔기 때문에
그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삼세에 있는 일체현상[법(法)]들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관계로 놓여있는가를 밝히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자 사명이었다.
그래서 유부는 현재를 중심으로 현재와 미래, 현재와 과거와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 항유(恒有)하는 법과의 관계성을 규명해 삼세에 존재하는
법의 관계를 크게 인과 연으로 보고, 그것을 세분해 인과관계를 분석했다.
그런데 부파불교에 들어서서 불법의 실체가 흐려지고,
불교교리가 철학적으로 발전하면서 부파의 논사들이 교학적으로 만들어 놓은
「무아⋅무상⋅연기⋅중도」라는 개념들을 기본으로 하는 실상법과 연기법 자체를 의문시하고
철학적 논란거리로 만드는 관념적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는 눈 뜨고도 있는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인 중생들의 사유가
붓다의 본질적인 가르침을 농단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부파불교가 전개된 붓다 사후 100여년부터 구사론이 만들어진
AD 5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천여 년에 걸친 부파불교의 발전과정 속에서,
처음에는 오직 붓다의 열반만이 무루였으나 대중부에 의해 많은 부분이 무위로 바뀌고,
최종적으로 중관론(中觀論)에 의해 일체현상이 모두 공이며,
환상이라는 관념적인 결말로 변화하게 됐다.
이러 함이 바로 대승불교가 출현하게 된 근본배경이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