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사님이 앞에 자크가 달린 헌 가게에서 싸게 산 남편의 구두를 보고 돈을 주시고 주일마다 구두를 왜 안사느냐고 자기의 부츠를 사다가 목사님 생각이 또 났다고 돈이 부족하면 더 드리겠다고 독촉을 하셔서 세금이 없는 포틀랜드에 가서 사려고 하다가 같이 간 일행이 있고 시간이 없어 못 샀다.
차 속에서 그 이야기를 하니 중풍으로 한쪽이 불편하신 목사님께서 자기는 눈만 뜨면 사스 구두를 신고 잘 때에만 벗는다고 하시면서 그 구두가 자기 발을 받혀주어 비록 모양은 없지만 자기는 그 구두만 신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구두 본사가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있는데 그곳에 가면 굉장히 싸게 살 수가 있고 발을 재고 문수를 알아 두어 주문을 하면 배달도 해주고 신다가 불편하면 두말없이 바꾸어 준다고 한다.
우리가 텍사스 오스틴에 병문안 갈 예정이라고 하니 그곳에서 가깝다고 한번 가보라고 해서 솔깃하여 그곳에 어떻게 가야 하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스틴으로 떠나던 날 아침에 전화가 왔는데 바로 샌안토니오에서 목회를 하고 계신 목사님이셨다.
남편이 보낸 작은 카드가 돌고 돌아 늦게 이제야 들어 와서 전화를 한다고 하며 자기가 샌안토니오에서 목회를 시작한지 2년이 되었는데 이곳에 오면 금요일에 당신 교회에서 일일 집회를 해달라고 하시고 사스 공장이 바로 그곳에 있다고 하시고 사모님 구두를 사드리겠다고 하신다.
그분이 성탄 카드를 보내와서 남편도 답장으로 작은 카드를 보냈는데 너무 작아서(?) 사방으로 많이 돌다가 늦게 들어갔다고 하는데 늦게 들어가도 아주 알맞게 들어간 것이 신기하다.
비행기로 가고 오는 날을 빼면 그곳에 있는 시간은 금요일 하루밖에 없어서 그날 아침에 병문안도 하고 그날 오후에 제자 목사님이 시간을 내시고 오스틴에서 샌안토니오로 달려가며 텍사스에 대해 많은 이야기도 해주셨다.
텍사스에는 미국의 10대 도시에 들어가는 도시가 휴스톤, 달라스, 샌안토니오로 세 개나 되고 텍사스는 알라스카 다음으로 크고 텍사스사이즈라고 하면 크다는 뜻으로도 사용이 된다고 한다. 달려가다가 그곳의 유명한 아웃트렛 몰에 시간이 없어 차로 돌며 구경만 했는데 Prime과 Tanger 두 곳이 양쪽으로 경쟁을 하며 크게 세워졌는데 참으로 어마어마하게 컸다.
호텔에 머물면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미국의 모든 회사들이 다 들어와 있고 양쪽을 골고루 보려면 한 달도 더 걸려야 할 것 같다. 거의 3시가 다 되어 샌안토니오에 도착하여 그곳 교회 목사님을 만나 배가 고파도 참고 먼저 사스 공장으로 찾아갔다.
공장 옆에 우체국이 있어서 배달하라고 우체국이 옆에 붙어 있나보다고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여자 구두와 남자 구두가 따로 진열되어 있고 수많은 종류와 크기대로 구별되어 있었고 우람한 소가 떡 버티고 내 가죽으로 구두를 만든다 하고 서있었다. 나는 아주 편한 66불하는 구두 한 켤레를 골라서 남편 쪽으로 가니 남편은 무려 네 켤레나 사는 것이었다.
한국의 형님 두 분과 시누이 남편의 것을 하나씩 산다고 해서 사이즈를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이메일로 다 물어 보았다고 한다. 화가 나서 아주 편한 슬리퍼 한 켤레를 더 사니 6켤레가 되어 무려 577불이나 되었는데 그곳의 목사님이 목사님이라고 하니 Sales Tax를 안 받는다. 남편이 카드로 돈을 내었는데 너무나 많은 금액이라 속이 상했다.
그리고 아시안 뷔페에 가서 푸짐한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목사님이 늦은 나이에 이곳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한 지 2년이 되어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신학생인 두 자녀들이 무보수로 달려와서 돕고 병원 수석 간호사이신 사모님이 생활비를 다 대고 일심으로 목회를 하신다고 하시고 앞으로 이곳에 신학교를 세워 아시아와 중국 등에 선교사를 파송할 예정이라고 학교 교수로 강의도 해달라고 하신다.
교회에 가니 개척한 지 이 년밖에 안 되었는데 피아노와 키보드, 드럼 등 악단이 있고 찬양 인도자가 오늘 안 나왔다고 목사님이 율동까지 하시면서 인도하시는데 많은 성도들이 나왔고 모두 일어나서 율동을 하고 찬양을 하는데 너무나 뜨거웠다.
달라스에서 공부하는 큰 딸은 매주 비행기를 타고 와서 아버지의 설교를 즉시 통역한다고 하고 오스틴 신학교에 다니는 둘째아들도 달려오고 온 가족이 일심으로 헌신하고 목회를 하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이 들고 눈물이 난다.
그렇게 분위기가 뜨거우니 설교도 너무나 은혜가 넘쳤고 설교가 끝난 후에는 모두가 사모하여 바닥에 내려와 무릎을 꿇고 안수를 받았다. 모든 순서가 다 끝난 후에는 음료수와 콩이 든 말랑한 흰떡으로 잔치를 하고 우리 목사님께 꼭 다시 오라고 한다. 그리고 흰 봉투를 주시면서 약속한 사스 구두 값이라고 하신다.
우리와 동행한 집사님도 구두 사라고 돈을 주셨고 너무 풍성히 주셔서 사스를 너무 많이 샀다고 불평할 수가 없게 되었다. 헌 구두만 사서 신다가 모처럼 새 구두를 사면서 한국에 계신 형님들 생각을 하다니 그 분들은 모두 새 구두만 사서 신을 텐데 하고 화가 나지만 화가 나면 나만 나쁘고 손해이니 빨리 잊어야 한다.
항상 이렇게 살아와서 남편은 인심이 후하고 훌륭하고 나는 언제나 악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은 넉넉히 채워주셨고 나는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었는데 하나님은 언제나 남편 편이셨고 사랑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