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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판
서 정 인
기차가 들어왔다. 반 평도 안 되는 매표소에서 짐승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던 승차권 위탁판매원이 기어나왔다. 그의 코 언저리에는 식의 돋보기 안경이 얹혀 있었다. 허리가 굽고 키가 작은, 쉰 안팎의, 곱사 같은 그 사내는 몇 사람이나 내릴려누―—하듯이, 시큰둥하게 다가오는 기차를 쳐다보았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셋이었다. 그들은 쇠기둥에 떠받쳐진 슬레이트 지봉 아래, 두 개의 긴 나무의자에 앉아서 반 시간 이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둘은 표를 끊었고, 하나는 마중을 나왔다. 마중 나온 사람은 상치 마을 김참봉네 큰아들이었는데, 참봉의 막둥이 손자가 삼 년 동안의 군대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지금에야 겨우 밥이나 안 굶는 형편이지만, 그들이 소싯적이었을 때만 해도 상치 마을 김참봉 하면 일년 추수 오백 석을 하는 부자였었다. 그 자신을 포함하여, 그 일대에서 김참봉의 땅뙈기를 부쳐먹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표를 끊은 둘은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는 하치 사는 정가의 둘쨋놈이 틀림없었지만, 또 하나는 누군지 얼른 알 수 없었다. 자라나는 사람들이란 볼 때마다 달라서, 저희들이 먼저 알은체를 하지 않으면 몰라보는 법인데, 요즈음 젊은 놈들은 어떻게 된 셈판인지 나이 든 사람들을 개좆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참,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기차가 멎었다. 거대한 붉은 쇳덩이가 푸―푸― 하고 가쁜 숨을 내뱉었다. 검은 안경을 쓴 기관사의 윗몸은 기관에 붙은 한 부속품처럼 보였다. 홍익회의 날계란이나 삶은 계란 판매원이 맨 뒤칸에서 툭 튀어내렸다. 그리고 가운데쯤에서 제대군인 하나가 또 내렸다. 계란 판매원은 잠시 후 반대 방향에 올라올 차를 바꿔 탈 놈이었다. 기차가 털커덩거리면서 뱀처럼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차장놈은 생선 장수들로부터 동전 두 닢씩을 걷고 있는지 미처 코빼기도 내보이지 않았다. 기차는 곧 산모퉁이로 사라졌다. 금방 눈발이라도 희끗거릴 것처럼 날씨는 잔뜩 흐렸다.
“고생했다. 어서 집으로 가자. 날씨가 차구나.”
김씨는 삼십 분 동안이나 기다리느라고 화가 났었지만, 복승아처럼 보송보송 어린애 티를 채 못 벗었던, 아들이 눈밑이 거무스름하게 겉 늙어서 돌아온 것을 보니 대견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저고리 자락이 허리띠 밖으로 나온 파르스름한 제대복에 검정 농구화를 신고, 커다란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아버지, 여기는 아직 택시도 없어요?”
“택시? 택시가 다 뭐냐? 저기 저 농로도 지난 여름에사 동네 사람들이 울력을 해서 낸 거란다.”
매표소 옆, 단 한 그루의 잎 다 진 앙상한 개살구나무 아래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돋보기 쓴 사내가 굽은 허리를 더 굽히면서 주춤주춤 다가왔다.
“고생 했지? 얼굴은 더 좋아졌는데?”
“모르겠느냐? 참바웃골 장샌이다.”
“어려서 봐서 알랴구요? 추운데, 저기 가서 어한이나 하십시다. 한데서 한 식경이나 좋이 기다리셨으니, 발이 곱아 올걸입쇼?”
“뭘. 오릿길이니 두어 걸음해서, 아예 아랫목 차지하는 게 낫지. 가자, 어서.”
김씨는 뒷짐을 지고 헛기침을 하면서, 들길로 접어들었다. 아들이 말없이 뒤를 따랐다. 그는 키가 작았지만, 몸매가 꽉 째어 보였다.
도시에서 이 킬로미터라고 하면, 버스 정류소가 있어도 서넛은 있을 거리이지만, 들판길 오 리는 대개 무인지경이거나, 동네 옆을 지난다 해도, 대나무 울타리가 아니면 꼬꼬댁거리는 달기새끼들이 고작이어서 그렇게 먼 거리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김씨는 도중에 들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말대로, 한 걸음에는 안 되고, 두 걸음을 해야 할 모양이었다. 그는 원근을 살펴보았다. 뒤에 섰는 아들은 몰랐지만, 그는 일찍이 한때는 그의 땅이었던 데를 눈어림으로 짚어 부는 중이었다. 아들 경철도 그가 서 있는 곳이 옛날의 자기들 땅이었다는 것을 짐작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땅의 소출로 자식새끼들 멕여서 키우고, 여의어서 제금내고, 부모 시신 염습하여 선산 발치에 묻은 사람의 감회와 같을 수는 없었다.
“요즈음 기운이 부쩍 쇠하여, 몇 걸음 행보가 수월치 않구나.”
김씨는 혼자말처럼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왜 아버지가 나오셨어요? 아무도 안 나와도 되지만, 꼭 나와야 된다면, 아버지 아니라도 나올 사람이 있지 않아요?”
“누가 나오냐? 네 에미가 나오냐? 네 형들은 하난 출타중이고, 하난 아퍼서 사홀째 자리 보전중이다.”
“현우하고 봉우는 어딜 갔어요?”
“식구가 많은 것 같아도, 일이 나면 손이 달리는 법이다. 한 놈은 제 애비 병 심부름 간 모양이고, 또 한 놈은 즈이 외간가 어디에 무슨 일이 있나 보더라.”
그럼 아버진 뭣 하러 나오셨어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가려 했지만, 경철은 참았다. 잠시 부자는 말없이 걸었다. 논에는 그루터기들이 하얗게 세어 있었는데, 나지막한 고개를 오르자, 비탈진 밭에 보리가 파랗게 자라 있고, 탱자나무 울타리 옆에 짚더미가 퇴색되어 쌓여 있었다.
“오늘은 폭 쉬고, 내일 아침 일찍 성묘 다녀오너라. 그리고 오는 길에 네 숙부 댁, 당숙 댁, 고모부 댁에 들려 오너라.”
“오는 길엔 아무 데도 들릴 수 없어요. 산소에 갔다가 바로 전주에 나가야 됩니다. 전 아직 완전히 제대가 된 게 아니거든요. 예비사단에 가서 제대증을 찾아야 일이 끝납니다.”
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아들이 돌아오면 할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자신의 고무신 바닥과 아들의 농구화 바닥이 촉촉한 황토 위에 가서 닳는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려올 뿐, 머릿속이 휑―하니 비어 버렸다. 더러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잔가지들이 다 잘려 버리고, 잎사귀들이 다 져버려서, 줄기만 앙상하게 뻗어 있는 것이, 조금도 이야기할 만한 것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그는 아마 “아들이라는 것”만을 너무 생각했었던 모양이었다. 막상 나타난 것은 “아들”이라거나, “막둥이”라거나 하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대단히 구체적인 하나의 물질, 하나의 독립된 고깃덩어리, 거대한 단백 질덩어리였다.
“어떤 형이 아퍼요? 작은형이에요?”
“아니다. 큰형이다. 수삼 일 전에 양평 사돈영감이 참척을 당했다. 찬바람 쐬고 거기 다녀와서 아마 몸살 감기가 겹친 모양이다.”
양평 사돈이 누군가, 제기. 경철은 탱자 껍질 말라 비틀어진 것을 발로 걷어찼다. 남루한 옷을 입은 농부 하나가 김씨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지나갔다. 한참을 더 말없이 걸어가자, 황톳길 위에 모래와 자갈이 많아지고, 개똥이 드문드문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차츰 사람의 배설물도 나타났다. 온전한 것, 토막난 것, 이겨진 것, 또, 짙은 것, 옅은 것, 바랜 것, 여러 가지였다. 그리고 다섯 걸음마다, 돌담과 썩은 새로 엉성하게 가려진 똥통이 나타났고, 열 걸음마다, 파르스름하게 빗물이 괸 인분 저장탱크가 라면 봉지, 구겨진 담뱃갑, 시멘트 푸대종이 찢어진 것 등과 함께 나타났다. 그들은 이웃 동네를 지나고 있었다. 어른들은 아마 집 안에서 새끼를 꼬거나, 손금을 보고 있는지, 골목에는 애들뿐이었다. 국민학교 이삼학년쯤 되어 보이는 놈들 둘이 서로 차지하려고 투닥거리고 있던 간짓대가 경철의 발길에 채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가 걸어왔던 방향으로 그 간짓대를 힘껏 걷어찼다. 간짓대는 소리를 내면서 저만치 굴러갔다. 두 놈 중의 누구도 그것을 주우러 가려 하지 않고, 한 놈은 경철을 향하여 분명한 발음으로 “씨브랄놈,”이라고 딸하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그놈이 달아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주먹을 쥐어 가지고 그놈 코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놈은 “왜 그려?”
하면서 턱을 뒤로 끌어들일 뿐, 움쩍도 하지 않았다. 경철은 뛰어가서 간짓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서너 달쯤 되었을 장병아리 한 마리가 수탉에게 쫓겼든지, 강아지에게 쫓겼든지, 꼬꼬꼬ㅡ 하면서 타조처럼 영기적엉기적 옆골목에서 뛰어나왔으므로, 그는 간짓대를 땅 위로 나지막하게 눕혀서 옆으로부터 닭다리를 후려쳤다. 닭은,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모르지만, 질겁을 해서, 꼬끼댁꼭꼭 하면서 돌담 저쪽으로 날면서 뛰면서 달아나버렸다. 경철은 간짓대를 마주서 있는 어린 놈들 둘 앞에다 던져 주고, 벌써 동구 밖을 빠져나가고 있는 아버지를 향하여 뛰어갔다.
그 동네 다음부터는 버스가 다니는 큰길이었다. 김씨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별로 말이 없었다. 경철은 무엇인가를 하나씩 확인해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대개 기대란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는 것이 보통인데, 서너 번 휴가를 다녀가긴 했지만, 삼 년여 동안을 떠나 있다가 돌아오는 판에, 길 모퉁이의 돌멩이 하나, 돌담 위의 비뚤어진 기왓장 하나, 그의 기대, 또는 그의 기억을 거슬리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가장 작은 놀라움도 줌이 없이, 야무지게도 그의 기대와 맞아들어 갔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으면, 그것은 약간의 변화를 예상했던 그의 기대 속에 즉시 횹수되어 버렸다. 차라리 그런 변화가 없었더라면, 그런 변화를 예상했던 기대나마 저버려져서 약간의 경이감을 받았을지 모를 일이었다. 변화조차도 정확히 예상한 대로였다.
집에는 둘째아들 형철이 와 있었다. 김씨에게는 아들 넷이 있었는데, 큰아들 선철은 집에서 농사를 지었고, 둘째아들 형철은 주로 면소재지를 돌아다니면서 중학교 선생을 했고, 셋째아들 환철은 군 농업협동조합에서 돈다발을 세었다. 큰며느리가 부엌에서 나오면서 어머니는 막걸리를 받으러 갔다고 말했다. 김씨는 뜨뜻한 아랫목에 허리를 지지려고 큰방으로 들어갔다. 신옥이가 제 에미 치맛자락 뒤에 숨어서 삼촌에게 인사를 했다. 삼촌이 “너 몇 학년이야?”라고 묻자, 신옥이는 삼촌이 그 동안 떨어져 있었으므로 이제 조금 귀여워해 주려나 부다 라고 생각했는지, 약간 앞으로 나서면서 “오학년,”이라고 대답했다.
“오학년이나 된 게, 심부름 하나 못 해서, 할머니가 술을 받으러 가?”
경철이 소리를 질렀다. 그때 마침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던 김씨 부인이 경철의 등뒤에서 “저것들이 가면 물을 타서 준단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막걸리가 든 큰 주전자를 며느리에게 건넸다. 신옥이 어머니의 치맛자락으로부터 할머니의 치맛자락으로 옮겼다. 김씨 부인은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기차가 너무 오래 연착이나 하지 않았었는지 걱정을 했고, 그리고 날씨가 춥다고 말을 한 다음, 마당에 서 있는 둘째아들과 넷째아들을 방 안으로 몰아넣었다.
건넌방에는 큰형 선철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었다. 이십 년 동안 땅을 파먹고 살아 온 사람답게, 깊은 주름살이 잡힌 중년의 그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술이 들어왔지만, 감기 기운이 아직 남아 있다고 그는 술잔을 받지 않았다. 농부들이 대개 그렇듯이, 그는 바보스럽고, 선량하고, 미련하고, 고지식했다. 그리고 말이 많았다. 그는 저 양반이 그 동안 심심해서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이야기를 했는데, 동생들 앞에 잔이 비면 “저기 잔 났다. 술이란 권하는 맛에 마시는 거여,”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그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점점 더 못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점점 더 못 살게 되었는가도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또, 어떻게 하면 농사를 지어서 더 잘살 수 있게 될 것인가 하는 것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형철이 “그럼 왜 그렇게 안 헤요?”라고 붇자, 그는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때까지 술만 퍽퍽 퍼마시고 있던 경철이 “돈이 있으면 누가 못해요. 없으니까 못 허지요,”라고 말하자, “그럼 나보코 남이 못 하는 짓을 하라는 말이냐?”라고 그가 화를 내었다.
형철은 형과는 달리 전혀 농사에 흥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십 년 동안 교편생활을 해왔고, 지난 봄 이래 임동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일급 정교사 자격을 따기 위해서 약간 고생을 했다. 그는 고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그의 형편으로 “인생에 있어서 어떤 목적이랄까, 목표 같은 것을 설정해 본다면, 비근한 것으로, 가령 장학사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겠는데, 이건 이윤이 많고 화려하고 계획년도를 단축시킬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그 대신 비용이 많이 들고 달성하기가 힘들어서, 포기한 건 아니지만, 중점을 좀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가령 교장 같은 것에다 둘 수도 있는 일”이었다. 교장이 되려면 교장자격증이 있어야 했고, 교장자격증을 따려면 우선, 조금 요원한 이야기지만, 그의 이급 정교사자격증을 일급으로 갱신해 놓아야 했다. 일급 정교사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그는 겨울과 여름, 두 차례에 걸쳐서 강습을 받았고, 강습을 받기 위해서 강습 지명을 받아야 했었는데, 원래 지명이란 서열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되는 것인데도, 장학사들이 장난을 쳐서, 새치기하는 데만 돈이 드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를 지키는 데에도 돈이 들었다. 겨울방학 때엔 “무사히”지명을 받아서 강습을 마쳤지만, 여름방학 땐, 탄탄하게 믿고 있었는데, 수강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빠져 었었다. 강습을 반 토막만 받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것은 전혀 받지 않는 것보다 헛수고를 한 것만큼 더 손해였다. 세상에 그런 죽일 놈들이 또 없었다. 염탐을 해본 결과, 그는 아무 데 사는 아무개가 만 원을 썼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이만 원을 던졌다. 그리고 가까스로 마지막 단계에서 그의 이름이 명단 위에 되살아나는 것을 보았다.
“형님이 새치기한 거 아니요?”
이제는 제법 술기가 오른 경철이 잔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원래는 했지. 그러나 일단 서열이 조종됐으면, 그게 새 순서가 아니냐? 그 순서로부터 밀려났었단 말이다.”
일급 정교사는 저녁을 먹고 곧 임동으로 떠났다. 그리고 경철은 뜨뜻하게 군불을 지핀 아랫방으로 건너가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군복 벗은 첫날이 조용히 저물어 갔다. 대단한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이웃 동네에 닭서리를 갔다 온 기분일까. 그는 인도지나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 그러나 그것은 까마득한 옛날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그것은 직선거리 이천 마일 저쪽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그는 눈꺼풀을 몇 번 깜박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경철은 그 이튿날 아침에 성묘를 가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에도 가지 않았다. 그는 죽치고 방구석에 들어박혀서 잠을 잤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그것도 열시경에, 그는 아버지에게 산소에를 다녀와야겠다고 차비를 달라고 했다. 김씨는 그에게 왕복 차비에다 백 원을 더 붙여서 이백 원을 주었다. 그리고 김씨 부인은 며칠 전에 이미 사다둔 소주 큰 병 한 병과 동명태 한 마리를, 유기 술잔 하나와 함께, 보자기에 싸서 그에게 주었다.
“잔 올리고 남은 것은 정샌 주고 오너라.”
아버지가 말했다. 정샌은 산지기였다. 그는 돈과 꾸러미를 받아 들고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그는 먼저 집에서 제일 가까운 구멍가게로 갔다. 주인 마누라쟁이가 안 체하며 수다를 떨려고 했지만, 그는 그것을 묵살하고, 보따리에서 술병을 불쑥 꺼내면서 “이거 얼마에 파오?”라고 물었다.
“그거 금강 이십도요? 이백 원짜리네요.”
경철은 술병을 진열대 위에 얹었다. 뒤틀어진 소나무 판자로 된 그 선반에는 먼지가 부옇게 앉아 있었다.
“나 이백 원 줘요.” 경철이 말했다. “나중에 돈 주고 찾아갈 테니까.”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가 손바닥을 쫙 펴가지고 그녀 코앞으로 쑥 내밀자, 그녀는 주춤 뒤로 물러서서, 손때가 까맣게 묻은 작은 나무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백 원짜리 두 장을 꺼내서 그에게 주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서, 곱게, 아버지가 준 차비와 함께, 저고리 안호주머니에 간직했다. 그리고는 술잔을 꺼내서 한 손에 들고, 명태에 보자기를 뚤뚤 말아서 바지 뒷호주머니에 꽂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가게를 나왔다. 공기는 빙점 근처로 쌀쌀했지만,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큰길을 향하여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도중에 동네 사람들을 몇 번 만났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걸음들을 딱 멈추고, 수선을 떨고 싶어했다. 그러나 경철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말하면서 번번이 그냥 지나가 버렸으므로, 그들은 조금 무안하여, 그를 힐긋힐긋 돌아보면서 제 갈길들을 갔다. 사정은 버스 정류소를 겸하고 있는 큰길가 약방에서도 비슷했다. 그가 들어가자, 약방 주인이, 굉장히 반가워해야 할 의무라도 있다는 듯이, 두 팔을 벌리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약방 주인을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두고, “오래간만이요,”라고 말한 다음, 책상 위에 있는 전화통으로 가서 수화기를 집어 들고, 등뒤에 있는 주인에게 어깨 너머로 “전화 좀 빌립시다,”라고 말했다,
“뭐 하시게요?”
“전화하게요.”
“아니, 어디로 하시게요?”
“차 좀 부를려고요.”
“택시요? 조금 전에 웃동으로 한 대 들어갔소. 곧 나올 거요.”
“곧”이 십 분이 되긴 했지만, 차 한 대가 나오긴 나왔다. 경철은 약방 옆의 가게에서 삼십도짜리 소주 두 홉들이 한 병을 외상으로 받아서 들고 차를 탔다. 그가 “삼봉으로 갑시다,”라고 말하자, 운전수는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눈치였지만, 군소리 없이 차를 돌렸다. 삼봉은 읍내와는 반대 방향으로 십 리쯤 되는 곳이었다. 읍은 삼십 리였다. 운전수는 조금 가다가 계기를 아래로 돌려서 “빈차”로 만들었다. 경철은 모른 척했다. 엉덩이를 붙이고 조금 앉아 있었는가 싶자, 곧 삼봉이 되었다. 그가 얼마냐고 묻자 운전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삼백 원만” 달라고 했다. 경철은 이백 원을 주었다.
“백오십 원이면 오는 데야. 고맙다 하고 받아 둬.”
운전수는 고맙단 말은 안 했지만, 별로 투덜대지도 않고 차를 돌렸다. 경철은 술병을 꺼내서 한 손으로 그 목을 쥐고, 또 한 손으로 명태를 꺼내서 그 꼬리를 쥐었다. 그리고는 황토를 빨갛게 깎으면서 흐르는 도랑물을 거슬러서, 산 속으로 오 리를 어정어정 걸어 들어갔다. 산소에는 소나무숲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는데, 그 안에 잘 가꾸어진 잔디가 양지바른 빈 터를 만들고 있었고, 그 경사진 빈 터에 위에서 아래로 무덤 셋이 나란히 열을 지어 있었다. 각 봉분마다 화강암으로 축대가 쌓여 있었고, 대리석 상석(床石)이 있었고, 이끼 낀 비석이 서 있어서, 경철은 여기에나 와야 그의 할아버지가 참봉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맨 아래에서 위에까지는 열 발자국 밖에 안 되었지만, 원체 정사가 져 있고, 또 산길을 꽤 걸어온 뒤라, 오르기에 두 다리가 팍팍했다.
“제기럴! 비엘남보다는 낫다만.”
그는 맨 윗봉상으로 올라갔다. 땀이 나고 숨이 찼다. 그는 구두를 벗고, 양말 바람으로 상석 앞에 가서, 술병과 명태와 잔을 그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남쪽으로 멀리 보이는 파르스름한 산들을 바라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햇볕은 대단히 따사로웠지만, 바람이 상쾌하게 불어 와서 금방 그의 땀을 식혔다. 그는 다시 돌아서서 잔에다 술을 부었다. 그리고 그 앞에 두 번 엎드려서 절을 했다. 두 번째는 첫번째보다 조금 오래 옆드려서 “할아버지, 경철이 왔습니다. 집안 형편을 보니,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좀 보살펴 주셔야겠습니다. 허긴 할아버지 덕분에 저도 이렇게 사지가 멀쩡해서 돌아왔습니다만, 이왕 보아 주신 김에 더 많이 보아 주셔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할아버지?”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 잔을 들고 “할아버지, 평소에 할아버지가 술을 몇 잔이나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불소 석 잔은 하셔야지요. 퇴주는 불승영모, 불초현손이 맡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술을 쭉 들이켰다. 그는 둘째 잔을 따라서 올렸다. 그리고 잠시 있다가 그 잔을 홀짝 비웠다. 셋째 잔을 올렸다. 잠시 있다가 그 잔을 또 홀짝 비웠다. 갑자기 배 창자가 뜨뜻해졌다. 그리고 열기가 온몸으로 펴지면서, 이 세상도 조금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해주었다. 구는 재배를 올렸다. 그리고 술병과 잔과 명태를 챙기고, 구두를 신고, 다음 묘로 내려갔다.
그가 그의 증조할아버지 상석 위에 술병과 잔을 막 내려놓았을 때, 저만치 잔솔밭 속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절을 했을 때에도 무슨 인기척을 들었었던 것 같았다. 그는 명태 꼬리를 움켜쥔 채, 허리를 구부리고, 짐승처럼 날쌔게 잔디밭을 가로질러 소나무밭으로 갔다. 분명히 무슨 소리가 났다. 그는 조심스럽게 잔솔가지를 헤치면서 네 발로 기듯이 소리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어떤 사람이 등을 이쪽에다 대고, 낫으로 솔가지를 치고 있었다. 경철은 살금살금 기어가서, 느닷없이 “이놈!” 하고 고함을 지르며, 명태 대가리로 그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그러자 그놈이 “누가 이려?”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고개를 홱 돌렸는데, 보니, 산지기 아들이었다.
산지기 아들이라면, 경철이에게는 또 역사가 있었다. 그는 경철이 보다 두어 살 아래였는데, 정샌이 산지기 노릇 하는 것이 한스러웠던지, 그놈을 가르치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사십 리 떨어진 읍내에서 중학교를 다닙네하고 공납금으로 극장 가기와 책 팔아서 풀떡과 단팥죽 사먹기에 맛을 들여, 사흘이 멀다하고 무단결석을 하더니, 급기야는 구두닦이통을 하나 장만해 가지고 가까운 대도시로 달아나서, 한 달 만에 상거지가 되어 돌아왔었다. 정샌은 “젝제금 타고 난 복이 따로 있지,”라고 말하고, 포기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경철이에게는 좋은 친구였었다. 경철은 지금까지 아버지를 기쁘게 해준 적이 별로 없었는데, 굳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가 산에 가서 놀기를 좋아했었던 것으로였다. 중학교 다닐 때, 그는 거의 일요일마다 산엘 갔었고, 집에를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산에 갔다 왔다고 하면, 그의 아버지는 입이 헤― 하고 벌어졌었다. 방학 때로는, 여름이건 겨울이건, 그는 산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그와 산지기의 아들은 왼산을 갈고 다녔었는데, 경철이 도토리 총을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 그놈은 도토리를 한 주먹 주워 가지고 “모지댐한 게 홉사 총알 같구려,”라고 제법 소견머리 든 어른 같은 소리를 나긋이 하면서, 뒤를 졸래졸래 따라오곤 했었다. 단 한 마리의 토끼, 단 한 마리의 꿩도 잡아 본 적이 없었지만, 얼마나 많은 토끼들과 꿩들을 그들은 뒤쫓았던가. 한번은 커다란 소나무 등걸을 톱으로 베다가, 해 빠지는 것을 잊어버려서, 정샌이 어른들 특유의 겁먹은 목소리로 그들을 소리쳐˙ 불러들였었다. 사실 산에서는 해가 지면, 곧 어두워져 버렸다. 산등성이에 샘이 있었는데, 그 샘물은 추운 겨울일수록 더 따뜻해서, 해돋기 전에 거기 가서 냉수마찰을 하면, 그건 냉수마찰이 아니라, 온수마찰이었다.
“이놈, 마당쇠로구나.”
“아따, 이거 깅철이 아닌가비여. 언제 왔소? 그나저나 너무 시게 때렸구만.”
“왜 쌩 솔가지를 쳐?”
“아따, 빽빽허면 솎으는 벱여.”
“솎아도 허가받고 솎아야지 맘대로 솎아?”
“헤, 헤. 딱딱거리지 말어.”
마당쇠는 이미 찰라 놓은 소나믓가지들을 주섬주섬 긁어모으고, 저만치 가서 허리춤을 까고 오줌을 누었다. 경철은 그의 증조할아버지 묘 앞으로 갔다. 그리고 손에 쥔 명태를 잠시 들여다보다가, 상석 위에 얹어 놓고, 술을 따랐다. “할 수 없습니다. 할아버지. 원래 명태란 두들겨서 먹는 거 아닙니까. 사실은, 세 마리를 가져왔어야 할 일입니다만, 저 윗봉상 할아버지가 아마 다 잡수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할아버지도 다 잡수시지 마시고, 조금 남기셔요. 아랫봉상 할아버지에게도 차려 드려야 되거든요.”
경철은 아까처럼 또 두 번 엎드려지 절을 했다.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님께도 부탁을 드렸습니다만, 조금 도와 주십시요. 큰형 말을 들으니, 오 부 이자의 개인 빚 때문에 은행돈을 얻어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숨통을 돌리지 못할 모양입니다.”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서 상석 위의 술잔을 집어 들고 “할아버지, 퇴주는 불초 증손이 음복합니다,”라고 말하고 술을 쭉 들이켰다. 그는 두 잔을 더 올렸다. 그가 재배하고, 제물을 챙겨서 땐 아랫봉상으로 내려갈 때, 다리가 조금 흔들렸다. 마당쇠가 나뭇짐을 꾸려 가지고 잔디밭 발치에다가 기대 놓고,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경철은 제물을 진설하고 술을 따랐다. 그리고 두 번 엎디어 절을 하면서, 농업협동조합의 돈을 융자받게 해달라고 빌었다. “작년에 양돈 조성자금으로 몇 푼 벌려 온 모양입니다만, 그놈의 돈이 돼지 주등아리로 들어가기 전에, 사람 입속으로 들어가 버린 모양입니다. 그래서 농사자금조로 다시 얻어 쓰기는 다 틀렸고, 일반 대출을 받아야 되는 모양인데, 그게 보통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그는 일어섰다.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석 잔은 채우셔야지요.” 그는 남은 술을 두 잔에 나눠서 철철 넘치게 부어 올렸다. 그는 기분 좋게 취했다. 그는 재배를 하고, 잔을 챙겨서 호주머니에 넣고, 신을 찾아서 신고, 명태 한 마리를 들고 마당쇠가 있는 데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집에 계시냐?”
“동네 들어가셨어. 뉘 집 혼사 있나비여. 내가 쌩솔가쟁이 쳤다고 일를라고 그려?”
“그 말도 하고, 왔다고 인사도 하고, 그럴랴고 그랬는데, 마침 잘 됐구나. 너 가서 내가 왔다 갔다고 말해. 그리고 이 명태 갖다 드려, 잡수시라고.”
“헤, 그 명태 여러 가지로 쓰이네. 그래, 집에 안 들르고 그냥 갈텨?”
“그냥 갈뎌.”
“아버지를 안 만나면, 나헌테사 이롭지만, 그래도 서운혀.”
“쌩솔가지 치는 놈 있으면, 다리 몽댕이를 분질러 노라고 그래.”
“아이가, 어떤 놈이 감히 쌩솔 허러 들어오지도 못 혀. 그럼 조심해 서 잘 가요.”
경철은 비틀거리면서 산을 내려갔다. 몇 번 도랑을 건너면서 물에 빠졌지만, 대단히 기분 좋게 큰길가에까지 나왔다. 버스가 있으려면 금방 있지만, 없으려면 삼십 분이나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지프차가 한 대 지나가고, 택시 하나가 반대 방향으로 갔다. 조금 더 기다리고 있자, 트럭 한 대가 오고, 그 뒤에 택시가 따라왔다. 얼핏 보니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차는 경철을 지나 몇 미터 더 가서, 직― 하고 멈추더니, 성급하게 북― 하고 후진해 왔다. 차창이 내려지고, 거기에서 “야, 경철이 아니냐! 타라, 어서,”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덕수였다. 그는 모르는 사내 하나와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경철은 운전수 옆에 탔다.
“이 쌔끼야, 왔으면 형님부터 찾아봐야지, 좆 같은 놈아.”
그도 술기를 조금 한 모양이었다.
“떡쇠란 놈 잘 있었냐? 느그 집 풍속대로 해라. 제수도 잘 있고, 조카들도 다 잘 있겄지?”
“댕기풀이도 여태 못 한 놈이 어른헌테 주둥아릴 함부로 놀려? 느그놈들 둘이 인사나 해라. 저놈이 상치 김참봉형님 아들이고, 그러면 네 놈은 우리 조카가 되는구나, 이쪽 요놈은, 아마 동생뻘이 될 모양인데, 읍내 행출이다. 자세한 건 지내 보면 알겄제.”
“우리 악수는 냉겨 뒀다 내년에 합시다. 이렇게 서로 쳐다보는 게 인사 아니요?” 행출이가 의자에 깊숙이 묻은 몸을 조금도 일으키려 하지 않고 앞자리에 앉은 경철이를 넌지시 넘겨다보면서 말했다.
“고놈 말 한번 똘똘하다.” 경철이가 왼쪽 어깨 너머로 그를 힐긋 쳐다보면서 말했다.
“초면 인사에 고놈이라니. 주둥아리 청소를 좀 해야겠어, 찢어 놓기 전에.”
“싸워라, 싸워. 어린것들은 싸워야 큰다.”
잠시 후 그들은 상치 마을 앞을 지나갔다. 그러나 경철은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덕순지 떡쇤지 하는 놈도 차를 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읍내로 차를 몰았다.
“기사, 얼마 주까?” 차가 읍내 중심가에서 멎자, 덕수가 말했다.
“생각대로 주쇼. 안 줘도 좋고.”
“나중 말이 기특했다. 행출아, 담뱃값이나 줘라.”
그들은 백 원을 주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길 건너편에 있는 다방으로 들어갔다. 다방 사람들은 거꿀말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다방 이름이 “궁성 ” 이었다.
“우선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어디 가서 가볍게 뭘 좀 먹고, 영화나 하나 보자.”
“떡쇠, 영화 지금도 좋아하는구나. 저녁때 술이나 한잔 할까?”
“거 좋지. 그럴 때는 주둥아리를 썩 잘 놀리는데.”
“너는 주둥아리 아니면 말을 못 하냐? 떡쇠야, 저것 데리고 다닐랴면, 말버릇 좀 가르쳐라. 나, 조합에 좀 얼른 다녀오께.”
“돈이나 많이 빼내 와라.”
경철은 두 놈들을 다방에 놔두고 밖으로 나갔다. 읍청(그들은 읍사무소를 그렇게 불렀다)과 중앙극장과 몇 개의 금융기관 지점들과 상점들과 이발소 같은 것들이 도시의 흉내를 내려고 발광을 하고 있었지만, 다사롭게 내리쪼이고 있는 햇볕 속에서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이 철저하게도 드러나 있었다. 경철은 농협으로 갔다.
그의 형은 수납계 유리 저쪽에서 돈을 세고 있었다. 그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파르스름하게 면도를 하고, 옷을 잘 맞춰 입고 있어서, 제법 허여멀쑥하게 보였다. 그는 동생을 데리고 구내 다방으로 갔다. 식당까지 겸하고 있는지 다방은 목조교실처럼 음산했다.
“너, 내 옷 입었구나. 넥타이, 와이샤쓰까지도.”
“구두도 형 꺼요.”
“잘 헌다, 잘 해. 너 혹시 돈 얻으러 왔으면, 아예 말도 꺼내지 말어라. 지금 한푼도 없다.”
“언제 오면 있겄소? 그리고 고생했다는 말이라도 한 마디 하시요.”
“고생했다, 고생했어. 나도 죽을 지경이다. 너 집안 형편을 아는지 모르겄다만, 작년에 집에서 조합돈 꾸어 간 거, 내가 매달 원리금 상환하고 있다.”
“당연하지요 뭐.”
“당연해? 사람 껍데기 벗겨지는 줄 모르고, 자식이!”
“그럼 융자를 좀 해주시구려.”
“내 돈 융자허냐? 작년에도 내가 중간에 들어서 축산자금 탄 거여.”
“농가에서 농삿돈 농협에서 얻어 쓴 거 이상할 거 하나도 없소. 이번에도 좀 해주시구려.”
“이번엔 안 돼.”
“형 돈 융자허우?”
“날 안 통하고 헐려면, 얼마든지 해보라고 그려.”
“어떤 놈이 융자를 해주는 거요?”
“일반대출 같으면 대부계에서 헌다. 상무나 조합장은 사람이 점잖은데, 자식, 이, 대리가 튼단 말야.”
“대리라니, 대부계 대리 말이요? 그놈만 삶으면 되겠구료.”
“아버지가 오 프로 정도는 쓰실 생각이 있으신지 모르겠어. 그것도 그렇고, 그놈 데리고 술을 먹는다면, 대폿집으로 가겄냐? 나도 여러 가지로 생각중이다. 골치가 아퍼야. 넌 어서 취직헐 생각이나 해라.”
“그놈 좋아하는 술집이 어디요?”
“어떤 놈? 대부계 대리 말이야? 좁은·바닥에서 별거 있겄냐. 옥포집에 잘 간다. 그 집에 연병이라는 각시가 있는데 좋아하지.”
“차비라도 좀 안 줄라우?”
“점심 여기서 먹고 가거라. 내가 시켜 주께.”
그는 경철이에게 오백 원짜리 한 장을 주었다.
“점심도 돈으로 줬으면 좋겠그만. 나 그냥 갈려우.”
그는 농협을 빠져나왔다. 다방에서 두 놈들이 차 한 잔씩을 시켜놓고, 반쯤 마신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밖으로 나와서 점심을 먹고, 그리고 세 시간인가 한다는 긴 서양영화 하나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니, 그 좋던 날이 어느새 잔뜩 흐려져 있었다.
“떡쇠, 니 오늘 나 술 한잔 받아 줄래?”
“니가 내면 마셔 주고, 니가 안 내면 내가 내지.”
“어떤 쪽으로 넘어져도, 어차피 술은 오늘 먹겠구나.”
행출이가 천기라도 살피듯이 하늘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들은 또 어정어정 다방으로 기어들어갔다.
“가만있자, 모처럼 동생놈이 제대를 해서 왔는데, 어디로 가지?”
“어디로 가긴 어디로 가, 제일 큰 데로 가야지.”
“돈 모자라면 행출이 니가 댈래?”
“치사하네. 그런 건 먹고 나서 이야기고, 우선 갈랴면 큰 데로 가야 헐 게 아녀?”
“옥포집으로 가자.”
“강철이 저것이 옥포집은 어떻게 알어?”
“그 집에 가면 염병이라고 예쁜 각시도 있다.”
“어, 어. 저것이 염병이를 벌써 다 아네? 암만해도 저것허고 내가 한 구먹 동서지.”
“걱정 마라, 임마. 아까 조합에 가서 형헌테 들었다.”
“느그 성님이 염병이를 좋아허는 모양이구나?”
“아니여. 대리란 놈이 좋아하는 모양이더라.”
“대리라니, 뭐 말라 비틀어 빠진 놈인디?”
“고놈헌테 우리 식구 숨통이 매달려 있다.”
“고놈이 남에 숨통도 잘 눌르나 비여.”
“고놈이 마음만 먹으면 돈이 나갈 수 있나 보더라.”
“아, 융자 말이구나. 우리, 그놈 데리고 가자.”
“밥맛 떨어지네. 아니, 술맛 말이여.”
“행출이 너는 집이 부자여서, 은행놈들 속을 모르지만, 그런 놈 하나 알아 둬서 손해될 거 하나 없다. 우리집에서도 무슨 자금이 어떻고, 뭐 그래 쌓더라. 지가 마시면 얼마를 마시겄냐.”
“데리고 가는 건 좋은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게다가 또 꼬리패까지 붙여!”
“술이 취해도 우리 기분을 내지 말고, 고놈 기분을 맞춰 줘야 된다. 안 그러면 헛술이다, 헛술. 헛술이 아니라, 공연히 앙심만 사게 된다.”
“그게 또 그렇구나. 그건 자신이 없는디.”
“그 새낀 띠내 쁠잔 말여.”
“좋다. 한번 해보자. 깅철이 니가 불러 내라. 안 되면, 콱 밟아 버리지. 깐 놈.”
그날사 말고 그 대리에게 무슨 급한 볼일이 있는 모양이어서, 경철이 제발 오셔서 우리 술 좀 잡숴 주십사하고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그를 옥포집으로 끌고 갔다.
“대리님, 요리 앉으십시요. 여그가 아랫목인 모양입니다.”
“어, 이럴 필요까지 없었는데, 험.”
“제 친구들입니다. 저쪽이 갈금 국민학교 교장 아들이고요. 이쪽은 조덕수라고…….”
“제가 조덕숩니다. 바쁘신 시간에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리는 좌중을 훑어보니, 개개이 목자(目子)가 불량한지라, 적이 불안을 느끼는 눈치였다. 그는 애매하게 험, 험, 하고 두어 번 헛기침을 하고는, 그래도 제일 그 중에서 선량해 보이는 경철을 향하여 “제대를 하셨다고요, 근자에?”라고 운을 떼었다.
잠시 후 술상이 들어오고 각시가 둘이 따라 들어왔는데, 하나는 연병이었다. 아랫목에 앉아 있던 대리와 경철이 사이에 연병이를 끼여 앉게 하고, 나머지 또 하나는 문쪽으로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앉혔다. 술이 몇 순배 돌았다. 대리는 차츰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별로 얌전하게 생기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공손히 잔을 올리고, 연병이가 옆에서 술을 따라 주니, 그럴 법도 했다.
“거 내, 얘기를 몇 번 듣지 않은 배는 아니지만, 지금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단 말야.”
사람이란 건망증이 심한 동물이었다. 술이 순배를 거듭함에 따라서, 대리는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받게 되는 단절감, 위축감, 공포감 같은 것들을 잊어버렸다. 그는 차츰 대리답게 교만해져 갔다.
“제대를 했다고? 거, 참, 고생을 했겠군. 이제 좋은 자리에 취직을 혀야지. 젊은 사람들이 놀아서 쓰나.”
그러나 불행히도, 술이 취해 오는 것은 대리만이 아니었다. 우선 행출이가 “잘 헌다, 잘 혀,”라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면서 말했다. 그리고 떡쇠는 자꾸만 옆에 앉은 연병의 깊숙한 곳으로 뻗치는 대리의 손이 점점 더 대담해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잘 노는데. 노는 게 귀여워,”라고 혼자말처럼 장단을 맞췄다. 경철은 한쪽으로 비켜 앉아서 술만 마시고 있었다. 연병이는 대리 하나에 완전히 매이고, 나머지 하나가 세 사람에게 술을 따랐다.
“연병아, 이쪽 손님 잔에도 네가 술 따라야지.”
또 하나의 각시가 조금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연병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리의 탐색하는 손길로부터 몸을 조금 빼내어 경철이 쪽으로 다가앉았다.
“요게 어디로 가냐? 이리 와, 이리.”
대리가 말했다. 그때 떡쇠가 빈 잔을 대리의 코앞으로 들이빌면서 “이봐, 대리, 잔 받어,”라고 말했다.
“어떤 놈이 이렇게 무례허냐?” 대리가 말했다. 그 다음부터는 서로 주고받는 말이 상승작용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에는 일정한 높이의 한도가 있었다. 대리가 세 사람과 맞서서, 그것을 한없이 끌고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 한계는 대리의 타고난 담력과 술기운의 부조를 합한 것에 비례하고, 상대방 세 사람의 그것에 반비례할 것이었는데, 금방 나타날 것 같지 않던 것이, 행출이가 “지거 콧구멍에서 더운 짐이 조금 나와야겠어,”라고 말하고, 떡쇠가 “아이가 콱 막혔어. 좀 틔여 줄까,”라고 말하자, 대리가 “융자 받을라고 날 이 자리에 데리고 왔소?”라고 말하면서 경철이를 쳐다보았지만, 경철이가 들은 척도 않고 옆에 있는 각시의 궁둥이를 투닥거리면서 “염병아, 대리놈 잔에 술 좀 쳐라, 술 좀 쳐. 그래야 내가 융자를 탄다,”라고 말했을 때, 뚜렷이 나타나 버렸다. 그들은, 대리가 결국 그날 저녁에 마신 술값까지 뒤집어쓰고 달아나듯 총총이 사라져 버린 다음, 각시 둘에게 돈 몇 푼씩을 쥐어 주고 옥포집을 나왔다.
“미안허다, 깅철아.”
“괜찮다, 떡쇠야. 느그들이 안 시작했으면, 내가 시작해도 시작했다.”
그날 밤 경칠은 그들과 함께 읍내에서 잤다.
그러나 이튿날이 되자, 경철은 몹시 울적해졌다.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예비사단으로 갔다. 그리고 제대증과 제대비를 탔다. 그는 멀리멀리 달아나 버리고 싶은 생각을 일주일 동안 도청소재지에서 뒹구는 것으로 달랬다. 그 이상 더 버틸 수가 없었다. 집을 나온 지 여드레째 되는 날, 그는 다시 어정어정 집으로 기어들어왔다.
“경철이 온다.” 어머니가 그를 맨 처음 보고 초리쳤다. 큰방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어디를 이렇게 돌아다녔느냐? 예비사단에 갔더냐? 라고 물었다. 경철은 마루 한쪽 끝에 걸터앉으면서 힘없이 “예,” 하고 대답했다.
“그래, 간 일은 다 잘 되었느냐?”
“잘 되고, 잘 안 되고가 없어요. 제대증 으레 주기로 돼 있는데요, 뭐.”
“아, 요즘 세상에는 으레 되게 되어 있는 일이라고 어디 다 되냐? 춥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거라. 네 모(母)가 너 오면 준다고 닭을 한 마리 잡아 놓고, 행여 이젠가저젠가 대문깐만 쳐다보고 있었다.”
“닭이요?”
“어제 환철이가 돈 가지고 왔다 갔다. 너가 다녀간 다음 날, 대리가 일을 서둘러 줘서 며칠 전에 돈이 나왔다더라.”
“무슨 돈이 나와요?”
“조합에 신청한 돈이지 무슨 돈이냐?”
“농협에 융자 신청한 돈이 나왔단 말이지요?”
“네가 대리를 술대접 했다면서야?”
경철은 아랫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 벗을 생각도 하지 않고, 팔베개를 베고 드러누워서 천장을 쳐다보았다. 이제는 마음놓고 멀리멀리 떠나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자, 가슴속이 후련해졌다. 그는 그날 밤, 어머니가 고아 준 닭죽을 맛있게 먹고 나서, 몸에 돈 한 푼 지니지 않고 집을 나가 버렸다.
(『강』, 문학과지성사, 1987)
2016년 5월 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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