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 하우현성당
나무 마루 성전, 고향에 온듯 '푸근'
2005년 새해. 영혼 충전 여행. 먼 거리는 힘에 부친다. 누군가 수원교구 하우현성당(주임 한연흠 신부,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210)을 이야기했다. "도시인들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영적 휴식처로는 하우현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래! 떠나자"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날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서울에서 24㎞. 인덕원역에서 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 하우현성당은 그렇게 손에 잡힐 듯 지척에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성당 신안자 수녀(스테파노, 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가 반갑게 맞았다. 온화하고 편안한 표정. 오랜 기도의 연륜이 엿보였다. 차가 나왔다. "지금 서 계신 곳은 은혜로운 땅입니다" 신 수녀는 하우현 성당을 '얼룩진 영혼을 깨끗이 씻고 가는 곳', '사랑과 기쁨, 평화를 선물받아 가는 곳', '크고 작은 상처들을 치유받고 돌아가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호기심이 한층 발동하려고 하는데, 신 수녀가 성당 역사가 빼곡히 적힌 인쇄물을 내보였다.
▲1800년대 초반부터 박해를 피해온 신앙인들로 교우촌 형성 ▲1893년 공소 설립 ▲1894년 초가지붕 목조성당 10칸 건립 ▲1900년 본당 설립 ▲1954년 안양읍에 본당이 설립되자, 안양본당 공소로 전환 ▲1965년 성전 재건축.
안양지역 복음화의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105년 신앙 성당. 발부리에 채이는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박해시기 신앙선조들이 그랬을 것처럼 성호를 그으며 성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삐~익". 바닥이 마루였다. 1년 365일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묻혀 생활하는 몸이 나무 냄새를 맡고는 기뻐했다. 정좌하고 있으니, 세상이 고요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서울 인근에 이렇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옛 성당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믿음의 고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 가득했다. 그 속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일어섰다. 몸이 가벼웠다. 마음은 이제 세상에서 한참이나 멀어져 있었다. 성당문을 나서자마자 아담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독특했다. 전통 한국 양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양식 건물도 아니다. 1906년에 세워진 하우현성당 사제관. 몸체는 서양식 석조 양식으로 돼 있고, 지붕은 골기와를 이은 전통 한국식이다. 20세기 초반에, 그것도 성당 사제관에 한국식과 서양식 건축기법이 혼용된 것은 드문 경우다. 평면 및 구조ㆍ의장 등이 갖는 건축사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그래서 2001년 1월 경기도 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됐다.
문화재라고 하니 눈길이 한번 더 갔다. 사제관 내ㆍ외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나서, 성당 정원으로 내려섰다. 그곳에 서 루도비코 볼리외 성인 동상이 서 있다. 조선 입국 선교사 중 가장 어린 나이인 25살에 조선에 와, 이듬해인 1866년 혹독한 병인박해의 칼날에 목을 떨군 성인.
"서 루도비코 볼리외 성인께선 이 인근 지역에서 주로 사목하셨습니다. 박해가 시작되자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둔토리 동굴에 은신해 계시다가 체포돼 순교하셨습니다" 신 수녀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박해시기 선교사와 신앙인들 열정이 의외로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그 열정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매주일, 매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본당에 교적을 둔 신자수는 200여명, 하지만 하우현성당에는 늘 타 지역 신앙인들로 북적댄다. 매월 첫토요일 성모신심 미사, 매주 화요일 기도모임, 목요일 밤 성시간, 금요일 철야기도에는 인근에서뿐 아니라 서울과 경기도 각지에서 신자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기도하고, 기뻐하고, 평화와 위안을 얻는다.
"삶에 지친 많은 이들이 이곳에 와서 평화와 안식을 얻고 갑니다. 모두가 신앙선조들 은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신앙인들이 지치고 힘들 때에 이곳을 찾아, 새로운 희망을 얻고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신 수녀가 상념에 잠겼다. 덩달아 함께 말이 없어졌다. 도시에선 상상도 못할 느린 발걸음으로 함께 성당 뒷편으로 돌아섰다. 소나무숲 사이로 십자가의 길 14처 조형물이 적절히 배치돼 있었다. 예수 고난의 길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로마군인들의 근육, 절규하는 예수의 표정,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려 품에 안은 성모….
그 가운데에서 한 신자 부부가 기도를 하고 있다. 손을 꼭 잡고 있다. '저 부부는 2005년 새해 어떤 소망을 빌고 있을까….' 2005년 하우현. 시원한 겨울 공기가 가슴을 청소하듯 쓸고 갔다.
순례 문의 : 031-426-8920~1
** 여기도 들러 보세요/둔토리 서 루도비코 신부 은신 동굴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둔토리 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한 서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가 박해를 피해 숨었던 동굴이 있는 곳. 성남 국사봉 등성이에 있는 이 동굴은 어른 5~8명 정도가 쭈그리고 앉아 있을 만한 공간이다. 지금도 이 동굴에는 오르지 복음선포를 위해 낮선 이국땅에 왔다가 박해의 퍼런 서슬에 숨죽이고 지내야 했던 성인 신부의 숨결이 서려 있다.
서 루도비코 신부는 1864년 7월 15일 프랑스를 출발해 1865년 5월27일 조선에 도착했으며, 하우현성당 등 인근 지역에서 사목하다 조선땅에 발을 들인 지 1년도 채 안돼 1866년 병인박해 때에 체포돼 순교했다. 당시 나이 26살이었다.
** 이렇게 찾아가세요
의왕시에서 57번 지방도로를 타고 판교 쪽으로 진행하다, 하우현고개 넘기 전 옛 도로로 들어서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문이 나온다. 여기서 계속 가다가 왼쪽 순두부 음식점에서 산길로 5분 걸으면 안내 표지판 나온다. 마지막 인가를 지나 계속 개울을 따라 7분 정도 오르면 서울 외곽순환도로 지하통로로 나오는데, 여기서 다시 가파른 산길을 30분 오르면 성지가 나온다.
(사진설명)
1. 성당 내부. 나무 마루 바닥 등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2. 하우현 성당 전경. 1894년 지은 초가 지붕 목조성당을 1965년 재건축한 것이다.
3. 경기도 기념물 제176호인 사제관 건물. 구조ㆍ의장 등이 갖는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출처;평화신문-발행일 : 200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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