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개들과의 산책(서울시 강서구 궁산)
이즈음 이따금 우리 집 개들을 데리고 서울 강서구에 있는 황금내공원과 구암공원을 거쳐 집으로부터 4km 정도 떨어진 궁산(宮山)에 다녀오곤 한다. 궁산은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한강변에 있으며 높이는 76m이다. 그리고 한강 하류 서쪽에 드문드문 서있는 쥐산, 염창산, 개화산과 긴 띠를 이룬다. 산의 정상부에는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성지(古城址)가 있고, 조선조 영조 때의 동복현감 이유가 세웠으나 불타버린 것을 최근 복원한 누각 소악루(小岳樓)가 있으며, 마을 수호신의 신주를 모신 성황사(城隍祠)가 있다. 그리고 인근에 양천향교, 겸제정선미술관, 허준박물관 등 문화시설이 있어 둘레길 산책을 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궁산’은 산자락에 공자의 위패를 모신 양천향교가 있어 이를 궁궐로 여겼기에 붙은 이름이다. 삼국시대 때는 부근의 지명에서 따와 파산(巴山)이라고 불렀고, 산의 정상부에 삼국시대에 쌓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옛성터가 있어 성산(城山)이라고도 했다. 궁산의 동쪽은 강남에서 행주대교로 이어지는 올림픽도로와 접해 있고, 산의 서쪽 산기슭에는 양천향교가 자리하고 있다. 건설교통부 기준에 따르면 표고 100m 이상이 돼야 산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궁산은 높이가 그에 미치지 못하니 언덕이나 다름없다. 예전에는 강물이 산자락을 휘감고 유유히 흘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궁산과 한강 사이에 널찍한 올림픽도로가 지나가고 있어 옛 모습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양천고성지(陽川古城址/사적 372호)는 산의 정상을 둘러싼 테뫼식 성곽으로 한강에 닿는 부분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726척이라 했으니 약 220m이다. 이 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 등 문헌에 기록이 보이며,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기 전, 강 건너 고구려를 견제하며 국경을 지키던 산성으로 추정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성터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조각이 다량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문헌에서 ‘고성(옛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조선조 초기에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양천고성은 돌로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흙을 다져 쌓은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 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모두 훼손되어 성을 쌓았던 흔적만 겨우 남아 있다. 고성지는 비록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훼손되었지만 강 건너 편에 있는 고양의 행주산성, 파주의 오두산성 등과 함께 한강 어귀를 지키는 군 방어시설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김천일 장군이 의병들을 이끌고 궁산에 주둔했다가 권율장군을 도와 행주대첩에 참가하기도 했고, 6.25전쟁 때는 김포비행장을 지키기 위해 군부대가 주둔했다가 인민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산기슭에는 6.25전쟁 이후 만든 군 방어용 콘크리트 벙커 몇 개가 그대로 남아 있다.
궁산의 정상부에서 조금 떨어진 동쪽 산마루에는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누각 하나가 우뚝 서 있으니 소악루(小岳樓)다. 궁산 아래의 한강변은 인근에 있는 탑산과 더불어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었기에 예로부터 선비들이 뱃놀이를 즐기던 곳이었다. 그리고 궁산 인근에는 중국 동정호의 누각을 본떠 만든 악양루라는 누각이 있었지만 오래 전에 불타버렸다. 그 후 동복 현감을 지낸 이유가 영조 13년(1737년)에 옛 악양루터에 소악루를 지었다. 그리고 양천 현감이었던 겸제 정선이 소악루에 자주 올라 한강의 풍광을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화 몇 점을 남겼다. 하지만 그후 소악루도 불타 없어져 버렸으며 지금의 누각은 1994년에 한강변 조망을 고려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한 것이다.
궁산의 정상부 아래 남동쪽에는 성황의 신주를 모신 조그만 사당이 하나 있으니 관산성황사(關山城隍祠)다. 성황은 ‘서낭’, 또는 ‘선왕’으로도 불리는데 민간에서 일반적으로 마을의 수호신으로 떠받드는 신이다. 조선시대 중기에 편찬한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城隍祠在城山(성황사재성산)’이라 기록되어 있으니 곧 성산에 성황사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황사 역시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을 최근 산 아래 마을(강서구 가양동 일대) 주민들이 기록에 따라 다시 세웠다. 그리고 해마다 음력 시월 초하룻날이면 동민들이 성황사에 제물을 차려놓고 산신제를 지낸 뒤 동민들의 한 해 무사태평을 비는 서낭굿을 한다.
궁산은 한강변에 있어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소악루에 오르면 멀리 남산과 관악산, 인왕산이 아스라하고, 강 건너로는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과 절두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리고 한강을 내려다보면 마포에서 김포쪽으로 흐르는 한강 하류의 물줄기가 발아래 펼쳐진다. 겸제 정선이 양천 현감으로 있을 때 자주 올라 한강의 풍광을 화폭에 담았던 궁산! 봄이 되면 궁산에 팥배나무 꽃이 하얗게 피고, 바람이 불 때마다 소나무 숲에서 송홧가루가 노랗게 날린다. 궁산은 산이 낮은 까닭에 산책 삼아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개들을 데리고 집에서 출발하여 궁산에 올랐다가 집으로 되돌아오는데 약 세 시간이 걸렸다.
첫댓글 다정하게
두녀석이 나들이 나오셨네
아직은 날씨가 썰렁할텐데 두툼한 옷도 챙겨 입었네
뭐라한마디할만도한데 ᆢ
저는 우리 집에서 서열이 제일 낮습니다. 개들이 저보다 서열이 훨씬 높습니다. 그래서 개들이 산책 나가자고 떼를 쓰면 어쩔 수 없이 끌려 나갑니다. 팔자치고는 아주 고약한 팔자지요.
마음에도 없는 산책은 노동중에 상노동이지요. 그런걸 개들 한테는 싫은소리 않고 늘 해내는 父性이라니...우리집 같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상황입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