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무렵이 되면 하루가 다르게 달이 둥글어져 갑니다. 이상하죠, 늘 주기에 맞춰 이지러지고 다시 여물어지는 달이지만 추석 달은 유난히도 휘영청 그 빛이 영롱합니다. 그 어느 계절보다 맑은 가을 하늘에 떠 있어서 그런 걸까요?
함께 달은 본 아들이 '소원을 빌어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그래요, 아이들이 어릴 적에 추석 보름달이 뜨면 함께 '소원'을 빌곤 했습니다.
추석이라고 큰 아이가 왔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아들 아이가 자신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섭니다. 독립해서 산 지 꽤 된 아이, 날마다 집에서 '살림'을 할텐데, (비록 아들이지만) '친정 온 딸내미 손 끝에 물 한 방울 묻히고 싶지 않는 친정 엄마 맘이 이런 걸 거야'라며 만류하게 되네요. 대신 함께 장을 보러 나섰습니다.
둘이 함께 걷는 길 모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다 저도 아는 아들의 친구들 소식도 전해 듣게 됩니다. 우리 집에 찾아와 인사를 하던 꼬맹이들이 벌써 서른 줄, 저마다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 한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이러저러한 분야를 전전하던 그 친구는 이번에 또 다른 분야의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평소 그 아이를 알던 저는 무심하게, '좀 나른한 편이었지?' 말했고, 그 말에 아들은 '어른들은 꼭 그렇게 말하더라. 세상에 사는 방식이 정답이 어디 있나요?'라고 화답했습니다. '서른이 되어보니 세상을 좀 다르게 보게 되더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그래, 그렇구나' 하고 얼버무렸지만, 속으론 뜨끔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추석 명절 온가족이 모이는 연례 행사가 줄고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모이지 않아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없어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솔직한 반응도 숨길 수 없습니다. 함께 해서 좋지만, 그래서 불편한 이유. 아들 친구에 대해 무심하게 반응한 저같은 어른 때문이 아닐까요.
달을 좋아하지만 가지 않는 무무씨
추석 명절을 앞두고 날마다 '풍성'해지는 달을 보며 고정순 작가의 <무무 씨의 달그네>가 떠올랐습니다. 무무씨는 이른바 '달 이륙 기지' 앞에서 구둣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의 배경은 달 여행이 자유로운 그 어느 시절입니다.
요즘 나의 작은 구둣방을 찾아오는 친구들이 늘고 있어.
답답하고 숨 막히는 지구를 벗어나 달에 간다고 하더라 .
친구들은 짐을 꾸리고 달로 떠나기 전, 구두를 닦고 싶어 해.
그렇죠. 우리도 여행을 가려면 옷도 새로 사고, 가방도 사고 그러죠. 이 그림책의 친구들은 달에 가기 전 구두를 닦습니다. 말수가 적은 무무씨는 구두를 닦으며 달을 찾는 친구들의 사연을 들어줍니다. 이곳이 짜증나서 떠나는 친구 등 저마다 이유가 다릅니다. 하지만 모두 '달'에 가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만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달을 좋아한다는 점에서만은 무무씨도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궁금하기도 합니다.
달을 향한 숱한 소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달이 어떤 곳일까 상상해.
바다가 있을까?/ 바람은 불어올까?/ 산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 속 달나라에서는 걸음이 느린 나도 걱정없이 여행할 수 있어
"무무,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달을 그리 좋아하면서 왜 달에 가지 않는 거야?" 친한 친구조차 궁금해 합니다. 정말 왜 무무씨는 달이 좋다면서 달에 가지 않는 걸까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모두가 달 여행을 떠나는 시절에 구두닦이 수입이 쏠쏠해서 그런 걸까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도 있듯이 우리 사회는 유난히도 '다른 사람들만큼' 살아가는 것에 민감합니다. 여행도 그래요. 제주도 둘레길에서 부터 시작해서 해외로 눈을 돌리더니, 산티아고 순례길, 유럽 일주 등등 한동안은 스페인이 붐이라 계모임까지 등장했었습니다.
코로나로 더는 국제 공항을 이용할 일이 없어지자 대신 캠핑족이 등장했습니다. 캠핑을 하기 편한 SUV가 각 자동차 업체마다 나오고 '차박'이란 말이 더는 생소하지 않은 용어가 됐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달'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두가 '달'을 향합니다. 그곳에 가면 지금 이곳보다 더 나은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달에 가면 달을 볼 수 없잖아."
무무씨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모두가 '달'에 가는 시절에 친구들이 모두 달로 가버려서 외롭지만 그래도 남습니다. 그 이유는 무무씨는 '달을 보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달'에 가는 대신에 달이 잘 보이는 곳에 '그네'를 달았습니다. 그네가 흔들릴 때마다 달은 다르게 보입니다. '변함없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달이 있어서' 지겹지 않다고 말합니다.
무무씨는 묻습니다. 행복을 찾아 달로 떠난 이들,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을 찾았을까? 행복을 찾아 달로 떠난 이들, 그게 아니라 달을 보고 싶어 홀로 남은 무무씨, 정답은 없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무씨의 말처럼 '나만의 달'을 찾는 거겠죠.
6.25세대,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이처럼 우리의 근대사는 저렇게 서로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세대로 명확하게 나뉘어 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듯이 이제 젊은이들을 이른바 '2030세대'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난 6월 나온 'KBS 세대 인식 집중 조사'를 보면 한 세대라고 정의내리기 힘들 정도로 동일한 세대 내에서도 인식의 편차가 다양하게 나뉘어짐이 드러났습니다. 청년층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서로가 세상을 보는 관점과 세계관이 나뉘어지는 것이죠. 그만큼 세상을 살아가며 꾸는 꿈도 다를 겁니다. 더는 어른들이 살아오며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중요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갑니다. 가족도, 일도, 미래의 꿈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네를 타며 달을 보는 무무씨를 보다보니 생각나는 시인이 있습니다. 시선(詩仙)으로 칭해지는 당나라 시인 이백입니다. 벼슬길에 올랐지만 부패한 권력에 환멸을 느껴 술과 달을 벗삼아 천 편의 시를 남긴 시인, 그 시절를 살았던 어떤 위인보다 길이 기억됩니다.
꽃속의 한 병 술을 권하는이 없어 홀로 기울이네.
명월을 친구 삼아 잔을 드니 내 그림자와 마주 앉아 세 벗이 되었네.
명월은 술을 할 줄 모르고 내 그림자만이 술하는 흉내를 내네.
명월과 그림자와 같이 마시니 흥겹기 천하가 내 봄인가 하노라.
첫댓글 달 여행을 하고 와서 또 달을 보면~^^
달이 잘 보이는 곳에 그네를 달고~
그네가 흔들릴때마다 달이 다르게 보이듯,
우리네 인생에도 나만의 달이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