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 잊는다는 것의 효용을 발견하라
일본 에도시대(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즉 지금의 도쿄에 막부를 연 1603년부터 메이지 유신까지의 시기) 말기의 지혜로운 학자 가쓰 가이슈(勝海舟 1823~1899, 에도 말기의 정치가. 난학 병학에 능통, 태평양을 횡단했다)는 『히카와세이와(氷川淸和)』라는 책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은 어떤 일이든 마음에서 다 잊을 수가 없고, 계속 그것이 마음에 걸리면 어쩔 수 없다. 소위 좌망(坐忘)이라 해서 만사를 잊고 마음 속에 활연(闊然)하게 하나에 머무르지 않는 경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만사만경(萬事萬境)에서 종횡무비, 자유자재한 판단이 가능하다."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어떤 사태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판단력이 몸에 배인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이슈가 인용한 '좌망'이라는 말도 실은 『장자』에 나오는 것으로서 알기 쉽게 말하면 무심의 경지라 해도 좋을 것이다.
『장자』에는 공자(孔子)와 안회(顔回)의 다음과 같은 좌망에 대한 문답이 소개되어 있다.
어느 날 안회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말했다.
"제 수양도 어느 정도 진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허허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저는 인의(仁義)를 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렇구나. 그건 괜찮지만 아직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 후 안회가 다시 공자에게 말했다.
"저는 그때 이후로 더욱 진보했습니다."
"허허 그렇다 함은?"
"저는 예락(禮樂)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좋지 좋아. 그렇지만 아직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네."
그리고 나서 또 얼마가 지나 안회는 세 번째로 공자에게 고했다.
"저는 더욱 더 진보했습니다."
"그렇다 함은?"
"저는 좌망(坐忘)할 수 있습니다.
"좌망이라?"
공자는 얼른 태도를 바꾸며 반문하였다.
"그건 어떤 것이냐?"
"오체에서 힘을 빼고 모든 감각을 없애며 심신 모두 공허한 상태로 만들어 '도(道)'의 작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를 듣고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의 작용을 받아들이면 시비선악(是非善惡)의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고 '도'와 함께 변화하여 무한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거기까지 이미 나아갔는가? 나도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군."
이것이 유명한 공자와 안회의 좌망문답인데, 요컨대 좌망이란 무심의 경지, 잡념을 제거한 상태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이를 더 자세히 설명한 것이 역시 공자와 안회의 다음 문답이다.
어느 때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언젠가 깊은 강을 건넌 적이 있었는데 뱃사공의 배를 다루는 기술이 마치 신의 기량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그 정도의 기술은 누구라도 익힐 수 있는 것입니까?' 라고요.
그러자 그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영에 능한 자라면 곧 할 수 있습니다. 잠수의 명인이라면 배를 본 적이 없더라도 금세 다룰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유를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는 어떤 연유입니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수영에 능한 자라면 곧 할 수 있다는 것은 물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잠수의 명인이라면 금세 다룰 수 있다는 것은 강물도 뭍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눈앞에 어떤 사태가 일어나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다. 항상 태연자약하게 대처할 수 있지.
노름의 예를 들어보자. 기왓장처럼 별로 가치가 없는 걸 걸었을 때는 잘 되지만, 장신구 같은 소소한 금붙이를 걸었을 때는 평정함을 잃게 되고, 황금처럼 비싼 것을 걸면 마음이 완전히 동요하게 된다. 솜씨는 변함이 없지만 아깝다는 마음이 커짐에 따라 마음도 더욱 격하게 흔들리는 법이거늘."
의식을 텅 비어놓은 채 무엇에도 얽매여 있지 않은 상태.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어떠한 고정관념에도 좌우되지 않고 흘러가는 정세에 허심탄회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리더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자신을 무심의 경지에 둘 필요가 있다. 그때 참고해야 할 것이 '좌망'의 경지로서 이를 우리것으로 해야만 처음부터 실수 없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