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은 일과 중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제철 식재료를 세심하게 챙기는 건
건강을 챙기는 일이기도 하고
제철 식재료는 신선할 뿐 아니라 계절의 영양을 가득 품고 있다.
지금은 무화과가 제철이다.
과일의 귀족이라고 불리는 이 열매는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을 정도로 귀한 과일이었다.
단백질 분해효소를 많이 품은 무화과를 육식을 한 뒤 곁들이면
소화를 돕고 변비에 효과적이라 한다.
무화과는 생으로 먹기도 하고 말리거나 잼, 통조림 등으로 이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남과 경남에서 주로 재배하며 북쪽에서는 온실에서 기른다.
올가을
제철 무화과를 챙겨 먹으며
나의건강도 챙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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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재배한 최초의 과일중 하나.
유럽의 지중해 지역과 중동에서 많이 먹는 과일이고
한국에서도 경기도나 강원도에서는 추워서 자라기 어렵지만,
전라남도, 경상도 쪽으로 가면 생산철 (9월 전후) 에 흔히들 먹는 과일이다.
이때쯤 남해안 지방에 가면 길거리에 말 그대로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상도에서는 무화과를 이찌찌꼬라고 한다.
이름이 무화과인 이유는, 겉으로 봐서는 아무리 찾아도 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무화과를 따보면 열매처럼 생겼지만 사실 속의 먹는 부분이 꽃이다. 즉 우리의 눈에 보이는 열매 껍질은 사실 꽃받침이며, 내부의 붉은 것이 꽃이다. 무화과의 과즙 또한 엄밀히 말하자면 무화과꽃의 꿀이다.[7] 내부의 빽빽한 꽃들에 닿기 위해서는 유일한 입구인 열매 밑둥의 밀리미터 단위로 작은 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 나비나 벌들은 꿀 따먹을 엄두도 못 내고 무화과와 공생하는 무화과 말벌(좀벌) (Wasp) 들이 속으로 기어들어가 꽃들을 수정시켜 준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로 링크 2 링크 3
그래서 수정된 무화과는 수정되지 않은 무화과와 외관상으로는 별로 차이가 없다. 껍질이 꽃받침이니 변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매를 갈라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는데, 갈라서 보면 촘촘한 꽃들과 딸기 씨앗마냥 자글자글한 알맹이들이 있다. 이것이 무화과의 열매이자 씨앗. 수정된 열매가 충분히 익으면 꽃받침이 갈라지고 벌어져서 씨앗을 퍼트릴 준비를 한다. 이 열매를 이제 다른 동물이나 곤충들이 먹으면서 무화과를 퍼트린다.
수정된 무화과는 수정이 되지 않은 무화과에 비해 속이 알차기에 중량과 크기가 더 무겁고 크며, 맛이 더 좋아져 상품성도 올라간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무화과의 완전한 상업화를 위해 카프리 무화과와 무화과말벌을 도입하였다. 혹시나 '수정된 무화과에는 벌레가 죽어있지 않을까?'라고 걱정할 수도 있지만, 좀벌의 시체와 알 모두 강력한 단백질 소화 효소인 피신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8]
국내에는 수컷무화과인 카프리와 무화과좀벌이 없기에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쯤에서 열매가 어떻게 생기는지 의아할 텐데, 무화과는 단위결과[9]로도 열매를 형성하는 식물이라 그렇다. 단위결과 현상으로 열매를 맺는 대표적인 예가 단감이랑 온주밀감(우리가 흔히 아는 감귤)이며, 무화과 역시 수정이 되지 않아도 꽃받침이 자라 겹열매[10] 형태의 과실이 형성된다.
3. 역사[편집]
동의보감에도 등장하는 과일로, 이미 한반도에서는 오랜 역사 동안 약재/과일로 소비가 많이 있었던 과실이다.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품종은 봉래시[11]이다. 이외에도 도핀, 바나네, 브런즈윅 역시 1900년대 이후 일본을 통해 유입되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예전부터 부산, 경남의 동남해안 일대와 서남해안 일대(나주시 이남 지역)의 좁은 지역에서 많이들 자생하고 있었다. 아예 영암군에서는 무화과를 특산물로 지정해 재배했다.
대체로 겨울이 온난한 경주시 - 나주시를 잇는 선의 한반도 남쪽 해안지방에서만 주로 자라고 그 이북이나 내륙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적어도 1960년대의 부산의 일반 가정집이나 학교의 화단에는 무화과나무는 매우 흔하디 흔한 과수나무였고 9월이 되면 잘 익어서 꿀이 흐르는 생무화과가 많이 열렸다. 그 무렵에는 시장이나 노점 등에서 바구니에 담아 파는 생무화과를 흔하게 볼 수 있어서 9월의 최고별미로 쳤다. 꿀이 흐를 만큼 잘 익으면 열매에 개미들이 엄청 달려들어 개미집이 되기도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서울 지방과는 달리 부산, 경남 일대나 전남지역 출신 사람이라면 생무화과를 먹는 것에 익숙하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70년대까지도 부산, 경남 지역에서는 이지지꾸라고 부르며 많이 먹었다.[12]
사실, 꽤 전부터 대전 이남에서는 정원수로 심었고 1980년대 이후로는 서울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13] 열매의 수량과 크기와 맛이야 남부로 내려갈수록 좋지만, 아열대 분위기를 주는 잎과 차분한 나무 분위기가 좋고 열매도 맛을 보는 데는 충분하다.
클레오파트라가 좋아한 과일로도 알려져 있다.
겨울에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나일 강에 날아온 거위와 오리들이 겨울이 끝난 후 북쪽으로 돌아가기 위한 장거리 여행을 위하여 무화과를 많이 먹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무화과를 많이 먹은 거위들의 간에 지방이 많이 저장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이후에는 지방이 많은 거위의 간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거위에게 강제로 무화과를 먹이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무화과 잎은 아담과 하와가 몸을 가렸다는 전승이 있다. 그래서 무화과 잎을 뜻하는 'fig leaf'에는 보이지 않도록 하는 가리개를 뜻하기도 한다. 회화나 조각상에서 나체를 묘사하다가, 국부를 대놓고 묘사하기 곤란할 경우 대신 그 부위에 무화과 잎을 덮기도 한다.[14]
열매가 안 열렸다고 의문의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백악기 때부터 살아온 식물이다. 그래서인지 기후나 주변 식생에 민감한 모습을 보여서 같은 종류의 무화과나무라도 주변 환경이 다르면 잎모양이 서로 다를 수 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