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회] 대학에서 쫓겨나 전업 글쓰기
리영희 평전/[10장] 저술과 인권투쟁, 그리고 필화 2010/06/20 08:00 김삼웅리영희는 베트남의 통일과정을 지켜보면서 1976년, <종전 후 베트남의 통합과정>을 쓰는 등 여전히 베트남문제에 남다른 집착과 관심을 보였다.
1976년 1월, 중국 수상 주은래가 사망했다.
리영희는 중국혁명을 연구하면서 주은래를 각별히 존경하게 되었다. 그의 인품과 외교능력을 높이 평가한 때문이다. 그는 존경 이유 중의 하나를 외교가로서 ‘세련’을 들었다.
“그를 대한 사람이면 거의 예외 없이 혹해버리게 만드는 세련됨이다. 우리가 여기서 잘못 생각해서는 안될 사실은 흔히 우리 나라를 비롯한(서양화=문명화)로 착각하는 나라들의 지도자나 외교관이 외교적 세련이라면 골프를 잘 치고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서양식 사고방식과 서양식이 몸에 베어 있다는 따위의 세련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중국적인 지.덕 즉 동양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세련이라는 것이다.” (주석 16)
주은래가 사망한 지 석달 뒤에 이번에는 모택동이 사망했다.
리영희는 중국혁명을 완성한 두 거물의 사망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중국에 거대한 폭풍이 일 것을 우려했다.
“이제 중국은 최소한 10년 동안 대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새로운 불안감이 들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그때 모택동 시대의 청산을 요구하고 사회의 통제 분위기의 해소를 갈망하는 청년 대학생들의 운동인 천안문 사건이 일어나고, 정권 수뇌부의 추잡한 권력 투쟁이 계속되더군.” (주석 17)
박정희 정권은 1976년 ‘교수임용제도’란 것을 만들었다.
정부에서 ‘찍힌’교수들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대학에서 쫓아내려는 수법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찍혀서 리영희는 백낙청, 김병걸 교수와 함께 해직되었다. 민주화운동과 저술활동에 대한 정치보복이었다. 그는 4년 만에 다시 실업자가 되었다.
역설이지만, 글쟁이에게 실업은 저술에 전념하는 기회가 된다. 리영희는 두번째 저술 <우상과 이성>을 1977년 11월 한길사에서 펴냈다. 그동안에 쓴 글을 묶은 평론집이다. 초판서문 '읽는 이에게'에서 저간의 사정을 밝힌다. 이 서문에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라는 대목이 있다.(앞에서 소개한 바 있어 생략한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3년 전에 펴낸 <전환시대의 논리>에 담았던 것들과 비슷한 성격 및 내용의 것이었다. 현대 중국에 관한 몇 편의 논문, 종합잡지의 요청에 따라서 그때 그때 발표했던 논설, 평론, 에세이 및 수필에다가 새로이 몇 편을 보태어 한 권으로 엮었다. 시간적으로는 약 10여 년에 걸친 것으로서, <전환시대의 논리>의 속편을 이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문으로 외국의 신문, 잡지에 실렸던 글을 제외하면 이것으로 나의 기왕에 발표된 것은 대강 두 권의 평론집에 담겨진 셈이다. (주석 18)
< 우상과 이성>은 <전환시대의 논리>와 함께 리영희의 대표적인 저술로써 이후 그가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지식인으로 평가받는 계기가 되었다. 리영희는 독재와 광기 시대에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를 일관하며 살았다. 따라서 ‘우상’과 ‘이성’은 그의 상징어가 되다시피했다.
< 우상과 이성>은 저자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이성’으로 살고자 하는 수많은 노동자, 학도들에게는 “오랫동안 주입되고, 키워지고, 굳어진 신념체계와 가치관이 자신의 내부에서 무너져가는” (주석 19)‘의식화 교과서’가 되고, 이후 ‘우상’타파의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었다. 뒷날 리영희는 '풍운아 <우상과 이성> 일대기'라는 글에서 ‘풍운아’가 된 이 책의 비화를 털어놨다. 다음은 ‘작명(作名)’의 배경 부문이다.
<우상과 이성>은 정사생(丁巳生)이다. 1977년의 해가 저물어 가는 11월 1일을 생일로 하여 세상에 태어나, 11월 23일 사형선고를 받은 단명하고도 단명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 짧은 인생에는 백년의 인생에 해당하는 많은 사연이 얽혀 있다. 적지 않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사랑도 받았고, 한편으로 심한 미움도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힘없고 짓눌린 백성, 민초(民草)들이었다. 이 아이를 사갈시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를 암흑으로 몰고 가는 권력에 눈이 뒤집힌 자들이었다.
뭣이건 바른 것, 옳은 것, 아름다운 것, 화평스러운 것, 착한 것, 진실된 것을 보기만 하면 눈알이 뒤집히고 온 몸에 경련이 일어나는 정신병 환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의 위대한 우상을 믿고 있었다. 반(反) 무슨무슨주의, 냉전논리, 흑백이분법, 총검숭배‥‥가 그것이다. 평화는 약자의 도덕이라는 믿음에는 니체숭배자였고, 권력의 의지만이 최고의 철학이라는 데서는 히틀러의 아류들이었다.
이들에 의해서 짓눌려진 백성들은 이성을 믿고, 그 회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고, 뒤집혀 있고, 일그러져 있는 세상에 이성의 빛이 활짝 비치기를 손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태어난 아이라서 그런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주석 20)
< 우상과 이성>이 태어날 무렵 한국사회는 ‘유신’의 완장을 찬 크고 작은 우상들이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1975년 4월 8일 긴급조치 7호가 선포되고 다음날 이른바 인혁당 관련자 8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5월 13일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행위를 일체 금하는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고, 이에 항의하여 서울대생 김상진군이 할복자결했다. 8월 17일 재야의 ‘정신적 대통령’ 장준하가 등산길에 의문의 실족사로 사망하고, 1976년 3월 1일 윤보선, 김대중, 함석헌, 함세웅 등 재야 민주인사들이 <3.1민주구국선언>을 발표했다가 정부전복 선동혐의로 구속되는 등 박정희 독재가 광기의 칼춤을 휘두르고 있었다.
<우상과 이성>은 어쩌면 태어날 시대를 잘못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괴퍅한 성품을 지닌 생명이 태어날 때가 아니었다. 어린 생명이 구설 없이 수걱수걱 자라기에는 환경이 너무나 각박하고 또 술렁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 해 한국과 미국은 연말까지 주한미군의 철수에 합의하여 제1차분 6천 명을 철수시키기로 되어, 방금이라도 무슨 큰 난리라도 날듯이 웅성거리든 때이다. (주석 21)
주석
16) 리영희, '주은래 외교의 철학과 실천', <우상과 이성>, 125쪽, 증보1판, 한길사, 1980.
17) 리영희, <대화>, 453쪽.
18) 리영희, <우상과 이성>, 한길사, 1977년.
19) 앞과 같음.
20) 리영희, '풍운아 <우상과 이성>의 일대기', <우리 시대의 출판 운동과 오늘의 사상신서>, 79쪽, 한길사, 1986.
21) 앞의 책, 80쪽.
1976년 1월, 중국 수상 주은래가 사망했다.
리영희는 중국혁명을 연구하면서 주은래를 각별히 존경하게 되었다. 그의 인품과 외교능력을 높이 평가한 때문이다. 그는 존경 이유 중의 하나를 외교가로서 ‘세련’을 들었다.
“그를 대한 사람이면 거의 예외 없이 혹해버리게 만드는 세련됨이다. 우리가 여기서 잘못 생각해서는 안될 사실은 흔히 우리 나라를 비롯한(서양화=문명화)로 착각하는 나라들의 지도자나 외교관이 외교적 세련이라면 골프를 잘 치고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서양식 사고방식과 서양식이 몸에 베어 있다는 따위의 세련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중국적인 지.덕 즉 동양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세련이라는 것이다.” (주석 16)
주은래가 사망한 지 석달 뒤에 이번에는 모택동이 사망했다.
리영희는 중국혁명을 완성한 두 거물의 사망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중국에 거대한 폭풍이 일 것을 우려했다.
“이제 중국은 최소한 10년 동안 대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새로운 불안감이 들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그때 모택동 시대의 청산을 요구하고 사회의 통제 분위기의 해소를 갈망하는 청년 대학생들의 운동인 천안문 사건이 일어나고, 정권 수뇌부의 추잡한 권력 투쟁이 계속되더군.” (주석 17)
박정희 정권은 1976년 ‘교수임용제도’란 것을 만들었다.
정부에서 ‘찍힌’교수들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대학에서 쫓아내려는 수법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찍혀서 리영희는 백낙청, 김병걸 교수와 함께 해직되었다. 민주화운동과 저술활동에 대한 정치보복이었다. 그는 4년 만에 다시 실업자가 되었다.
역설이지만, 글쟁이에게 실업은 저술에 전념하는 기회가 된다. 리영희는 두번째 저술 <우상과 이성>을 1977년 11월 한길사에서 펴냈다. 그동안에 쓴 글을 묶은 평론집이다. 초판서문 '읽는 이에게'에서 저간의 사정을 밝힌다. 이 서문에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라는 대목이 있다.(앞에서 소개한 바 있어 생략한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3년 전에 펴낸 <전환시대의 논리>에 담았던 것들과 비슷한 성격 및 내용의 것이었다. 현대 중국에 관한 몇 편의 논문, 종합잡지의 요청에 따라서 그때 그때 발표했던 논설, 평론, 에세이 및 수필에다가 새로이 몇 편을 보태어 한 권으로 엮었다. 시간적으로는 약 10여 년에 걸친 것으로서, <전환시대의 논리>의 속편을 이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문으로 외국의 신문, 잡지에 실렸던 글을 제외하면 이것으로 나의 기왕에 발표된 것은 대강 두 권의 평론집에 담겨진 셈이다. (주석 18)
< 우상과 이성>은 <전환시대의 논리>와 함께 리영희의 대표적인 저술로써 이후 그가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지식인으로 평가받는 계기가 되었다. 리영희는 독재와 광기 시대에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를 일관하며 살았다. 따라서 ‘우상’과 ‘이성’은 그의 상징어가 되다시피했다.
< 우상과 이성>은 저자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이성’으로 살고자 하는 수많은 노동자, 학도들에게는 “오랫동안 주입되고, 키워지고, 굳어진 신념체계와 가치관이 자신의 내부에서 무너져가는” (주석 19)‘의식화 교과서’가 되고, 이후 ‘우상’타파의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었다. 뒷날 리영희는 '풍운아 <우상과 이성> 일대기'라는 글에서 ‘풍운아’가 된 이 책의 비화를 털어놨다. 다음은 ‘작명(作名)’의 배경 부문이다.
<우상과 이성>은 정사생(丁巳生)이다. 1977년의 해가 저물어 가는 11월 1일을 생일로 하여 세상에 태어나, 11월 23일 사형선고를 받은 단명하고도 단명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 짧은 인생에는 백년의 인생에 해당하는 많은 사연이 얽혀 있다. 적지 않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사랑도 받았고, 한편으로 심한 미움도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힘없고 짓눌린 백성, 민초(民草)들이었다. 이 아이를 사갈시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를 암흑으로 몰고 가는 권력에 눈이 뒤집힌 자들이었다.
뭣이건 바른 것, 옳은 것, 아름다운 것, 화평스러운 것, 착한 것, 진실된 것을 보기만 하면 눈알이 뒤집히고 온 몸에 경련이 일어나는 정신병 환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의 위대한 우상을 믿고 있었다. 반(反) 무슨무슨주의, 냉전논리, 흑백이분법, 총검숭배‥‥가 그것이다. 평화는 약자의 도덕이라는 믿음에는 니체숭배자였고, 권력의 의지만이 최고의 철학이라는 데서는 히틀러의 아류들이었다.
이들에 의해서 짓눌려진 백성들은 이성을 믿고, 그 회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고, 뒤집혀 있고, 일그러져 있는 세상에 이성의 빛이 활짝 비치기를 손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태어난 아이라서 그런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주석 20)
< 우상과 이성>이 태어날 무렵 한국사회는 ‘유신’의 완장을 찬 크고 작은 우상들이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1975년 4월 8일 긴급조치 7호가 선포되고 다음날 이른바 인혁당 관련자 8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5월 13일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행위를 일체 금하는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고, 이에 항의하여 서울대생 김상진군이 할복자결했다. 8월 17일 재야의 ‘정신적 대통령’ 장준하가 등산길에 의문의 실족사로 사망하고, 1976년 3월 1일 윤보선, 김대중, 함석헌, 함세웅 등 재야 민주인사들이 <3.1민주구국선언>을 발표했다가 정부전복 선동혐의로 구속되는 등 박정희 독재가 광기의 칼춤을 휘두르고 있었다.
<우상과 이성>은 어쩌면 태어날 시대를 잘못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괴퍅한 성품을 지닌 생명이 태어날 때가 아니었다. 어린 생명이 구설 없이 수걱수걱 자라기에는 환경이 너무나 각박하고 또 술렁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 해 한국과 미국은 연말까지 주한미군의 철수에 합의하여 제1차분 6천 명을 철수시키기로 되어, 방금이라도 무슨 큰 난리라도 날듯이 웅성거리든 때이다. (주석 21)
주석
16) 리영희, '주은래 외교의 철학과 실천', <우상과 이성>, 125쪽, 증보1판, 한길사, 1980.
17) 리영희, <대화>, 453쪽.
18) 리영희, <우상과 이성>, 한길사, 1977년.
19) 앞과 같음.
20) 리영희, '풍운아 <우상과 이성>의 일대기', <우리 시대의 출판 운동과 오늘의 사상신서>, 79쪽, 한길사, 1986.
21) 앞의 책, 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