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Japan) 이야기
체코(Czech Republic)에서 날아온 편지
올해(2014) 75세인 일본 영감님 ‘야마시타 미노루(山下 楤)’는 내가 2011년 4월 초, 대만, 스리랑카, 인도, 네팔, 티베트를 묶어 3개월 정도 계획으로 떠났던 배낭여행의 첫 목적지로 대만의 타이페이(臺北)에서 12일간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싸구려 호스텔(Happy Family Hostel)에서 처음 만났던 영감으로 당시는 72세였다.
당시만 해도 영감은 영어가 서툴러서 나한테 영어를 쉽게 배우는 방법이 없느냐고 묻곤 했는데 그때는 나의 짧은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의사소통(意思疏通)을 했었다.
영감은 이미 나보다 먼저 대만에 와서 20여 일간이나 머물고 있었는데 어떻게 혼자 여행을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큰 회사에 근무했었는데 두 자녀는 모두 출가를 시키고 정년퇴직을 한 후 부인과 함께 세계여행을 하자고 약속했는데 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나님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혼자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3월 중순, 1년여 여행을 하고 일본 나리타(羽田) 공항에 내렸는데 그때가 바로 동일본(東日本) 대지진(大地震)으로 쓰나미(海溢/해일)가 동북해안을 강타한 시각이었다고 한다. 영감의 고향이 후쿠시마현(福島縣) 이와키(いわき)인데 그곳이 바로 가장 피해를 크게 입은 곳으로 영감은 고향 부근에는 가 보지도 못하고 공항 로비에서 새우잠을 자다가 곧바로 대만으로 와서 머물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회사원으로 도쿄(東京)에 살고 있다는데 왜 아들네로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일본 풍습에는 나이 많은 부모가 자녀들 집에 얹혀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대만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곧바로 말레이시아와 스리랑카, 인도로 배낭여행을 계속하였고, 야마시다 영감은 먼저의 여행에서 체코(Czech)가 너무 좋았다고 체코로 갈까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내가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체코의 제2 도시 부르노(Brno)에서 메일이 날아왔다.
그 이후 이따금 메일을 주고받았으니 벌써 4년이나 체코에 머물고 있는 셈인데 오늘 받은 메일에일본 도쿄(東京)에 살고 있는 아들이 첫 손녀딸을 보아서 손녀 보러 일본으로 간다는 메일이었다.
75세에 첫 손녀라고 무척 좋아하면서....
이제는 영어를 제법 잘 구사해서 영어로 쓰는 메일의 문장이 아주 매끄럽고 벼라별 이야기를 다 써서 보낸다.
얼마 전에는 열흘간 아프리카 북단의 모로코(Morocco)를 다녀왔다고 사진도 여러 장 보내오기도 했다.
일본 야마시타(山下) 영감의 마다가스카르(Madagascar) 관광
아프리카 동부 마다카스가르 섬(島) / 마다가스카르 풍광 / 알락꼬리 원숭이(Ring tailed lemur)
일본 영감 야마시타 미노루(山下 楤)는 2005년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아프리카 동쪽 바다의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는데 순전히 사진으로 보았던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 나무 군락지’를 보러가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바오밥 나무는 신(神)으로부터 벌(罸)을 받아 뿌리째 뽑혀져 거꾸로 박혔다는, 또 생 떽쥐페리(Saint-Exupéry)의 ‘어린 왕자’에 그림으로 나오는 나무이다.
올해 76세인 야마시타 영감은 정년퇴직 후 부인을 사별하였고, 1년여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날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쓰나미(海溢)가 동북해안을 강타한 시각으로 고향 집이 있는 후쿠시마(福島)현 이와키(いわき)가 가장 큰 피해를 입어 고향 근처에는 가 보지도 못하고 공항에서 새우잠을 자고는 곧바로 대만으로 날아왔는데 그곳에서 혼자 배낭여행을 하던 나와 만나서 사귀게 된 일본 영감이다. (현재 미야기현(宮城縣) 센다이(仙台)에 살고 있다)
영감은 여행을 좋아해서 체코에서 3~4년을 머무는가 하면 신기한 꽃과 나무에 관심이 많고 특히 달을 좋아해서 성능 좋은 카메라로 일식, 월식 사진을 찍어 보내오는가 하면 달 표면에 대한 상당히 전문적인 해설을 곁들인 장문의 글을 보내오기도 한다. 다음 글은 내가 야마시타 영감과 주고받은 편지 중 내가 보낸 편지로, 영어와 일본어로 뒤섞어 쓴 글인데 한글로 번역하여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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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유군(64세)의 어머니는 올해(2015) 91세로, 일본인인데 이름은 시라카미 시즈꼬(白神靜子)이다. 그녀는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고 조선총독부 관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그녀는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3남 2녀를 두었는데 내 친구인 유군이 2남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자 일본인들은 서둘러 귀국했지만, 남편과 아들 하나가 있었던 그녀는 당연히 귀국을 포기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고, 그녀는 고향을 가고 싶었지만 연이어 아이들이 태어났고, 고등학교 교사이던 남편이 그녀가 50세 즈음에 암에 걸려 재산을 몽땅 날리고 죽는 바람에 아이들 다섯 데리고 가난에 허덕이느라 고향 오사카를 한 번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과일 행상, 가정부 등 그녀는 자녀 다섯을 키우느라 온갖 궂은 일을 다 했는데 특히 일본인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숱한 고난을 겪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언젠가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에서였는지 일본 국적(國籍)을 버리지 않고 있었는데 고향 오사카에도 친척들도 거의 없고 조카들은 얼굴도 모르고......
가벼운 노년성 치매(老年性 痴呆) 증상을 보이던 그녀는 2008년 자녀들의 권유로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었는데 당시 교장이던 내가 그 신원 보증인이 되어서 가능했다.
그녀는 지금도 일본 소설(小說)들, 시(하이쿠/俳句), 일본 노래(렌카/演歌)를 즐겨 읽고 듣는데 미혼인 막내딸이 모시고 있다. 그 유군의 어머니 또한 우리 시대의 역사의 피해자(歷史の被害者) 중 한 명이 아닐까?
이렇게 써 보냈더니..... 야마시타 영감은 그런 지나간 슬픈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한다.
*유군의 어머니는 2017년 사망하심
①야마시타 영감과 아들 부부 / ②바오밥 나무(마다가스카르)
③2021년 1월 1일 0시에 보내온 야마시타 영감의 새해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