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이슬이 내리고 귀뚜라미가 울어대는 백로다. 백로에는 곡식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고 했다. 곡식들이 가장 알차게 여물어갈 가을의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폭우와 폭염이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책을 읽기에도 참 좋은 계절이다. 서재에 앉아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을 살펴보고 미완으로 남아 있는 항목들을 점검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겠다. 아직 남아 있는 110여 일을 정성껏 갈무리해서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추수할 준비를 해야겠다.
필자가 머무는 이 조용한 공간, 2026년 열일곱 꼭지째 칼럼으로 서재(書齋: 서적을 갖추어 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방)를 지탱하는 두 글자를 가만히 반추해 본다.
글 서(書)는 붓 율(聿)에 가로 왈(曰)을 짝지어 놓은 한자이다. 한자의 근원을 밝힌 한대의 서적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글 서(書)자는 "서, 저야(書, 著也). 종율, 자성(从聿, 者聲)”이라 하였다. 즉 붓(聿)을 손에 쥐고 마음속 깊은 뜻과 세상의 진리를 명확히 드러내어 기록하는 행위를 뜻한다. 흩어지는 생각을 가다듬어 바위에 새기듯 글자로 풀어내는 것이 곧 서(書)이다. 서가(書架: 책을 얹는 선반), 서류(書類: 글자로 기록한 문서)가 좋은 용례이다.
한편 재계할 재(齋)자는 가지런할 제(齊)에 신(神)을 모시는 일을 뜻하는 글자, 보일 시(示)로 구성된 상형자이다. 『설문해자』에서 "재, 계결야(齋, 戒潔也). 종제, 제성성(从齊, 齊省聲)”이라 풀이한다. 마음과 행동을 가지런히 하여(齊) 영혼과 몸을 깨끗이 정돈하고 경건하게 자제하는 상태(戒潔)를 의미한다. 그러니 서재(書齋)라는 단어는 단순히 책을 쌓아두는 물리적 방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붓을 들어 진리를 밝히고, 글을 읽으며 스스로 마음을 맑게 씻어내는 경건한 성소(聖所)이자 정신의 제단(祭壇)인 셈이다. 백로의 이슬이 온 세상을 정화하듯, 서재는 세속의 번잡함으로 얼룩진 사람의 영혼을 가다듬어 주는 고요한 재계의 공간이다. 이러한 서재의 본질을 조선 후기의 실학자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선생보다 깊이 체득한 이가 또 있을까.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 책만 읽는 바보)라 부르며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와 가난 속에서도 책을 벗 삼았던 그는, 그의 저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곳곳에서 독서와 서재에 관한 기품 있는 교훈을 남겼다.
이덕무 선생은 『사소절(士小節):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예절과 수신에 관하여 저술한 수양서』과 여러 유고(遺稿)에서 책을 대할 때는 먼저 손을 깨끗이 씻고 의복을 정돈하여 바르게 앉을 것을 강조했다. 책장에 침을 묻혀 넘기거나 서책을 번잡하게 어지럽히는 행동조차 마음의 경건함이 모자란 탓이라 보았다. 또한 그는 독서에 대해 말하기를, "책을 읽을 때 단지 눈으로만 훑고 지나간다면 이는 문자를 능멸하는 것이요, 마음을 오롯이 모아 글 속에 담긴 뜻을 내 삶의 경계로 삼아야 비로소 진정한 글 읽기"라 하였다. 이덕무에게 독서란 지식을 축적하는 수단이 아니라, 서재라는 재계의 공간에서 마음의 불순물을 걸러내고 성품을 올바르게 기르는 거룩한 수행이었다.
새벽에 내린 이슬이 만물을 비추듯, 책상에 앉아 읽은 책 한 권, 글 한 줄이 서재에 가만히 번져나가 필자의 영혼을 맑게 비춘다. 서재를 가득 채운 오래된 책 냄새와 창밖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가을바람이 어우러져, 마치 필자 역시 먼 옛날의 선비가 되어 마음을 씻어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방과 같다고 했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고 급격하게 변해가지만, 필자에게는 나만의 서재가 있다. 붓을 들고 마음을 기록하는 서(書)와, 세속의 욕망을 삼가고 영혼을 정결하게 비워내는 재(齋)의 의미를 되새기며 오늘 밤에도 서재의 불을 밝힌다. 어제의 나를 돌아보며 책장을 넘기며 내일의 나를 설계한다.
| 書 | = | 聿 | + | 曰 |
| 글 서 |
| 붓 율 |
| 가로 왈 |
| 齋 | = | 齊 | + | 示 |
| 재계할 재 |
| 가지런할 제 |
| 보일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