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달교수의 역사칼럼(67)
권중달(중앙대 명예교수, 삼화고전연구소 소장)
鮮克有終
끝을 잘 마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4월 총선이 끝나고 22대 국회가 제대로 열려야 했다. 그런데 개원일부터 국회는 두 쪽이 났다. 야당은 단독으로 국회를 열고 의장을 뽑고 국회를 단독으로 운영하겠다고 나섰고 여당은 야당이 국회 운영의 관례를 뒤엎었으니 원상으로 돌려놓으라고 등원을 거부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현상일 뿐이고 구체적으로는 야당 대표인 이재명(李在明) 의원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 야당에서는 그 표현대로 하자면 ‘검찰이 없는 죄를 만들어 이재명을 제거하려 한다.’라는 것이고, 여당은 이재명 하나를 ‘방탄’하기 위하여 온갖 무리수를 다 쓴다고 비난한다.
진짜 검찰이 없는 죄를 만들고 있는지, 아니면 이재명이 죄를 짓고도 감옥에 안 가려고 온갖 무리수를 쓰는 것인지 나는 분명하게 알 수 없고 짐작할 뿐이다. 다만 이 싸움 판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반드시 빨리 처리하여야 할 여러 안건들은 손도 못 대어 엄청나게 빨리 변하는 사회변동에 발맞추는 입법 활동은 중지된 상태이다. 온 나라가 꽉 막혔다.
이 경우에 문제의 중심에 선 이재명의원은 어떠한 태도여야 할까? 그는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이고, 국회에서 다수당의 대표다.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이 나라의 지도자이니, 그는 지도자로서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것은 자기 개인보다 이 나라와 국민을 더 행복하게 하려는데 힘쓰겠다는 태도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처음부터 지도자는 아니다.
지도자는 어떠해야 할까? 여기서 속자치통감에 실려 있는 남송 말(末)에 황제인 이종(理宗)과 경연(經筵) 담당관 정청지(鄭清之)의 대화를 소개하고 싶다. 정청지가 역대 황제에 관한 강론을 하자 이종(理宗)이 말하였다. “짐(朕)이 보건대, 한·당(漢·唐) 이후의 인주(人主) 가운데 끝을 잘 마칠 수 있었던 사람은 적었다.” 한·당 이후 역사를 살펴보니 황제가 되어서 끝을 잘 맺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건국 이후 역사에서 대통령이 되었던 사람 가운데 끝을 잘 맺을 수 있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해 보았다. 불행하게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로 하와이 망명길을 떠났고,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에게 시해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옥고를 치러야 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중의 부패와 관련되어 수사받던 중에 자살하기에 이르렀다. 이종(理宗)이 역대 황제가 끝을 잘 맺지 못하였다고 본 것과 유사하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이종은 ‘도(道)를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도(道)가 무엇일까? ‘길’이다. 사람들이 누구나 다니는 길로 가면 문제 없는데, 권력을 잡았다는 이유로, 길 아닌 곳으로 갔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길은 모든 사람이 가는 안정한 통로이다. 그러나 이 길은 때에 따라서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돌아가지 않고 빨리 가려면 작물을 경작하고 있는 다른 사람의 논밭으로 남의 작물을 밟아버리며 가야 한다.
보통 사람은 남의 경작지로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권력이 있거나 재주부리는 사람은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여 길이 아닌 남의 경작지를 밟고 간다. 그것이 부패이고 무도(無道)이지만, 이를 모르고 길이 아닌 남의 경작지를 밟고 지나갈 때 자기가 지혜가 있는 것 같아서 의기양양할 수도 있었을 터이지만, 역사의 긴 눈으로 본다면 완전한 실패다. 이를 무도(無道)함으로 역사의 벌을 받는다. 그러니 이러한 황제가 끝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역사를 공부하는데 왜 계속 반복하여 끝이 좋지 않을까? 황제는 그것이 궁금했는지 경연에 참여하였던 왕기(王暨)에게 묻는다. “하(夏)의 걸(桀)이 부도(不道)하자 성탕(成湯)이 그를 방축(放逐)하였으니 이를 거울로 삼을 수 있을 터인데 주(紂)는 어떻게 다시 앞에서 실패하였던 발자국을 다시 밟고 따라갔는가?”
왕기는 바로 대답한다. ‘은(殷)나라 마지막 임금 주(紂)가 살던 시절에는 망한 전 왕조인 하(夏)의 마지막 임금인 걸(桀)이 실패한 역사가 그리 먼 옛날 일이 아니었는데도 이를 거울삼아 볼 수 없어서입니다.’ 이른바 은감불원(殷鑑不遠)으로 대답하였다. 나아가서 ‘이 역사를 보면 스스로 고쳐야 하지만 고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라고 끝을 맺었다.
그 후 이종과 정청지, 왕기는 계속하여 실패한 사람을 끄집어내어 토론한다. 진시황(秦始皇)이 무력으로 독재하다가 실패한 역사를 배우고서도 한무제(漢武帝)도 무력으로 흉노를 정벌하려고 무리수를 쓰다가 망했으며, 수양제(隋煬帝)가 고구려를 침범하였다가 망한 역사를 가까이서 보았던 당태종(唐太宗)은 다시 고구려를 공격하다가 실패하였다고 말하였다.
우리 현대사를 보아도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는 업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에 기대어 권력을 유지하려던 자유당의 아첨을 이기지 못하여 3.15부정선거라는 큰 실수로 그 앞의 공로가 거의 날아가 버렸다. 419 이후 헤아릴 수 없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나아가 안정과 번영의 토대를 마련하였던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위대하지만 역시 유신헌법이라는 무리수 때문에 그 마지막을 비극으로 끝냈다. 마지막에 길이 아닌 길을 간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이재명 대표에게 초점을 맞추어 보자. 그가 주장하는 대로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검찰이 독재한다.’고 치자. 그러니 ‘자기를 감옥으로 보내려는 것은 잘못이다.’‘이를 막는 것이 정의라.’고 하면서 야당을 총동원하여 그 일에 올인하여 민생(民生)을 뒷전에 팽개친다. 이것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의 인성(人性)일까? 오히려 지도자라면 나는 희생하여도 좋으니 이 나라, 이 국민을 잘살게 하도록 협조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지도자의 태도가 아닌가? 그래도 정부가 안 들어 줄 수 있지만 그것은 그의 책임이니 역사에서 그에게 물을 것이다.
그런데 ‘쏘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독배를 마셨다. 인류사에 이만큼 큰 저항은 없었다. 그래서 쏘크라테스는 역사에서 끝을 잘 맺은 성공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현대사에는 인도 간디의 저항, 남아공화국 만델라의 저항이 있는데, 그의 저항은 세계 모든 사람이 그편에 서는 저항이고 그래서 모두 그를 추앙한다. 끝이 좋은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은 옥고를 겪고서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역사가 있다. 이재명 대표의 저항이 이들과 비교해 보면 어떤가? 그러니 이 대표는 태도를 바꾸어 스스로는 희생하더라도 나라는 돌아가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선종(善終)하는 저항이 될 수 있다.
첫댓글 국민의 역사를 제대로 끌고 갈 지도자가 왜 없을까? 나라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판단을 정곡을 짚어 사론을 쓰셨네요. 감사합니다.
'선극유종'의 정치 평론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협치하고 포용력으로 이끌어가야 되는 주체를 두고 다른 평을 하신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한다면, 이에 승복하는 것은 용기 있는 지도자는 아니지 않는가, 라고 생각됩니다. 주객이 전도되는 격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