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경묘와 영경묘는 차로 작은 고개를 넘는 골 하나 차이다.
영경묘의 금강솔숲길을 걷고 준경묘로 넘어간다. 멀고 험한 오지라 나처럼 걷기 위하여
찾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헤일정도다.
준경묘로 넘는 고갯길은 이곳 사람들은 등골고개라 부르는데 이 길이 수국꽃길이다.
10일만 일찍 갔더라면 탐스러운 수국봉우리를 원 없이 볼 수 있었을 덴데 조금은 아쉽다.
화려함을 뒤로하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꽃이, 그래도 그 나름대로 멋진 길이다.
* 준경묘濬慶墓. 영경묘永慶墓 재실齋室은 평소 묘역을 돌보는 관리가 상주하고 제기와 제복을
보관하는 곳으로 제향 때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제례에 관련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이다.
이 재실은 1899년에 고조의 칙령에 따라 세웠으며 당시 현지 총감독관이었던 준경묘. 영경묘 영건청 당상관
이중하李重夏(종 2품)가 <재실창건기>를 남겨서 알 수 있다.
재실 앞 뜰에는 수령 90년 가까이 된 회화나무그루가 우뚝 서있다.
둘레가 3m 높이가 13m이고 매 8월이면 황백색 꽃이 피며 10월에는 열매가 익는다.
회화나무는 상서로운 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선비의 기개를 나타낸다 하여 유자수(儒者樹)라고도 한다.
이곳 회화나무는 준경묘 영경묘 참봉參奉 이익주(李益周)가 (재직:1934.2.9~1943.5.22) 부임할 때
5그루를 가지고 와 양 묘역에 각 1그루씩 심고 본가에 1그루, 그리고 재실 대문 앞 좌우에 1그루씩 심었는데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재실을 수호守護하고 있다.
활기리 하촌 성황당의 유래
활기리에는 원래 상촌과 하촌에 성황당이 있었다.
상촌마을 입구인 석문교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자그마한 언덕이 있는데 그 숲 속에 서낭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폭풍우가 일어나며 마룡소에서 용이 등천할 때 용의 꼬리가
석문암에 부딪쳤는데 언덕이 무너지고 성황당이 소실되었다.
이때 성황당 일부가 물에 떠내려가 지금의 하촌 성황당에 자리 잡고 앉았다.
하촌 주민들은 이 자리에 성황당을 지었고 상촌성황신이 내려오다가 이곳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상성황과 본성황 2위를 모시게 되었다는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