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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님을 떠나 보내며
산을 사랑했던 대장님은
백두대간길에서 영영 하산하지 않았습니다
사계절 변화무쌍한 산들을 너무나 사랑하더니
진짜 산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산 어는곳을 가더라도 감탄사를 연발했던
순수청년 대장님
정녕 다시 볼수는 없는건가요?
봄이면 연두빛 능선 너머 진달래 철쭉피는 산으로
여름이면 녹음 짙은 능선아래 시원한 계곡산으로
가을이면 오색창연 단풍드는 산으로
겨울이면 눈꽃 피는 산을 찾아 떠났던 대장님
명산보다 백두대간이 훨씬 재미지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이리 생생한데
왜 가던길을 멈추시고 말았대요?
17기 23기 32기 세번의 백두대간을 이어나가며
그리 공들이고 기도했던
천지신명님,산신령님,부처님,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우리에게서 대장을 왜 뺏어갔답니까?
지리산을 시작으로 덕유 속리 희양 대미 소백 태백을 넘는동안
대간길에 그리 많은 무시무시한 절벽구간을 뚫는것도 아니고
수십개의 밧줄구간을 타는것도 아닌
부드러운 삼수령에서 건의령너머 구부시령으로 오다가
일어나지 못했으니 지금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두타 청옥을 지나고 대관령 고개만 넘으면 설악의 진부고지가 기다리건만
정녕,걷기 싫어 그만두신건 아니겠지요?
낙동정맥과 백두대간길이 갈라지는 삼수령은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분수령이고
건의령은 삼척의 육백산 기슭에 유배온 고려의 마지막왕인 공양왕을 배알하던 충신들이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걸어놓아 이름지어졌다는 설명까지 역사와 지리에 박식했던 대장님이
없는 자리가 커서 우리가슴에 이리 구멍이 뻥 뚫렸습니다
얼마나 황망하고 다급했으면 사진 찍고 사진 찍히기를 좋아했던 대장님영정으로
입술을 꼭 다문 증명사진이라니,
멀쩡하게 백두대간 다녀오마고 집 나선 가장이 싸늘한 죽엄으로 돌아왔으니
가족들의 슬픔을 어찌 헤아릴수 있을까요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셨던 대장님
오르막엔 다리를 후둘거리리다가도 내리막은 바람처럼 하산하곤 했지요
백두대간 원정때마다 죽을똥살똥 걸어도 꼴찌를 못 면하는 나는 내 한몸 건사하기도 버거워
요즘들어 대장님 기력이 점점 쇠약해진걸 알면서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들머리에서부터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수십번 날머리에 다달을때까지
후미를 챙기더니 왜 정작 당신은 챙기지 않았답니까?
눈치없는 까마귀도 대장님이 죽겠다고 까악까악 소리를 질러댔을텐데
우리만 몰랐으니 그 후회와 자책을 감당하기 버겁습니다
금방이라도 "이정님,동행님, 같이 가자,쉬었다 가자,조금만 힘내자."라는 말이
들리는것만 갔습니다.
이제 곧 봄을 품었던 겨울이 가고나면
눈을 뚫고 복수초가 피어나고 각종 바람꽃들과 풀꽃들이
대간길 가는길마다 반겨줄텐데 조금만 조금만 늦게 가시지,
저승길이 좋다한들 그리 쉽게 이승 인연 끊어내다니
남은이들의 큰 슬픔은 어이하라고 얄미운 대장
봄 여름 가을 겨울 대장님과 산길에서 쌓았던 추억만
바람처럼 구름처럼 서늘하게 밀려옵니다
대장님이 멈춰 날아가버린 눈 쌓였던 대간길에 이렇게
우리 다시 섰는데
대장님~
지금 듣고 보고 계시지요?
그곳에도 산이 있습디까?
남설악과 왕초는 만났대요?
죽어 몸은 없어져도 넋은 남는다지만 눈으로 뵐수없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장님과 함께 했던 한번의 남진과 두번의 북진 지난세월들을 기쁨과 슬픔으로 간직하고
이제 우리의 백두대간 32기 여정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할수 있을까요?
대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자신이 없습니다
부디,대원동지 모두를 지켜주시고 무탈하게 완주할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평안하게 영면하세요
Rest in peace
2020년 2월 18일 이정 드림
대장이 죽은후 보름이 지났다
대장이 도달하지 못한 구부시령에서 댓재로 잇는 백두대간은 32기는
호야야가 메가폰을 잡았다.
일시-2020년 2월18일 화요일 맑고 춥고 바람거셈
장소-백두대간 덕항산 구간 북진
코스-하사미동-예수원-구부시령-덕항산(1071m)-환선봉(1080m)-자암재-큰재-황장산-댓재(810m)
백두대간12.4km+접속거리 2.5km=14.9km를 6시간 20분 걸림
마지막 겨울을 보내기가 아쉬웠는지 며칠전 영상 십도까지 오르던 날씨는
하필 대간 여정을 앞두고 느닷없는 눈발과 몸서리치는 추위가 발악을 떤다
얼어 죽기라도 할까봐 발열내의와 토시로 단단히 여미고 등짝에 핫팩과 털모자
목도리 마스크로 무장한채 눈만 내놓고 집을 나섰다
양재역에 모인 대간일행들은 보름간의 힘겨운 날들은 보내고
모두 침통한듯 별말이 없다
허기사 대장이 가던길을 나둔채 홀로 하늘로 올라 가버렸으니
더 이상 무슨할말이 필요하겠는가
눈으로 서로 격려하는수밖에,
버스 오분여쯤 기다리는일은 예사롭다 여겼는데 오늘따라 버스가
칼 같이 약속시간을 맞추고 떠나기도 미끌어지듯 잘도 간다
서울을 벗어나기나 했는가,금세 버스를 놓친 산우에게 걸려온 다급한 전화
그러나 버스는 떠나고 말았으니 앞으로 산악버스의 코리아 타임은 잊어버려야 한다
강원도 태백으로 달려온 버스는 광동호가 있는 35번국도를 지나
골지천이 흐르는 냇가에 일행들을 풀어 놓았다
예수원으로 오르는 외나무길로 들어서고자 다리를 건너 밭고랑을 가로질러 통과하는데
밭 주인장인지 남의 밭을 밟는다고 고래고래 소릴 질러댄다
농사철도 아니고 꽁꽁 얼어붙은 밭을 좀 밟아기로서니
이 나이 먹도록 누구에게 욕먹을 짓을 안하고 산줄 알았더니
오늘 제대로 임자 만났다
그러길래 조금 돌아가도 도로따라 갈것이지,
나처럼 후미에서 쫄랑쫄랑 따라가는 사람은 선두 뒷꼭지만 보고 가는터라
앞사람 발자국이 곧 내가 가는길이다
계곡을 우측에 두고 예수원 앞길로 올라서는데 음침한 분위기가 서려진다
예수원은 1965년 고 대덕천 신부가 노동과 기도의 삶을 영위하고자 세운 기독교 공동체이다
그들의 일터인 목장과 농장이 삼수령에서 매봉가는길에 있다
기도의 실제적인 능력의 여부를 시험해보려 수련인들에게 실험실을 제공하는 기숙단체도
코로나 바이러스 탓인가,겨울 수련원은 어둡고 공동 생활한다는 사람들은
칩거 기도중인지 사람사는 냄새도 없다
외나무골 계곡길로 들어서자 쌓인 눈이 제법이다
안전산행이 최고라 초반부터 아이젠을 찼다
접속거리인 구부시령까지 2.5km는 완만하게 오른다
작은 돌무더기가 있는 고개치고 높은 해발 천미터 고지의 구부시령에 다달았다
보름전에 끊겼던 대간길 잇기는 이제 시작이다
철쭉나무가 빼곡하여 봄이면 꽃길이 되는 구부시령 고갯길로 올라오는 마지막 봉우리에서
대장의 숨은 끊어졌다
비록 오르막일지언정 이리 부드러운길에서 가시다니,겨울 눈 산행이 새삼 무서워진다
구부시령은
덕항산 아래 대기리 마을에서 주막을 하던 여인의 지아비들이 계속 요절하는 바람에
지아비 아홉을 모시고 살았다는 기구한 여인네의 전설이 깃든 고개다
국립지리원발행에는 구부대령이라 적혀있다는데 누가 구미사봉이라는 푯말을 써서
옆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구부시령의 쌓인 돌무더기에 돌멩이를 올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얼어붙은 눈 만큼이나 한 많은 고갯길을 벗어나는데
대장의 발걸음이 뒤쫒아 오는것만 같아 자꾸 뒤돌아 보게 된다
그동안 앞서거니 뒷서거니 후미 동지들은 애구,당분간은 같이 다녀야겠다
1007봉을 지나며 좌틀하는 대간길은 새목이 안부를 지난다
이어 구부시령에서 1.1km 떨어진 덕항산이다
해발고도 1071m의 덕항산은 동쪽과 서쪽의 산세가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룬 산으로
서쪽은 부드럽고 평탄한 반면 동쪽은 깍아지른 계곡으로 숨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구름과 안개가 자주 뒤덮인다는 덕항산의 하늘은 파랗고
어느새 한 낮 되어 기온도 많이 올랐다
정상석도 없이 정상목과 표지판만 있는 정상을 뒤로 하고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오르고 내리는 대간길이 부드럽다 한들 아직 발아래는 간간이 얼어붙은 눈과 소복이 쌓인 눈
낙엽아래 얼어붙은 흙길이라 쉽지 않다
허기사 세번이나 밟는 대간길에서도 한번도 쉽다고 여겨진곳이 없었으니
구비구비 우리들 인생길과 진배하다
대이리로 하산길인 사거리쉼터를 지나고 이어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우측을 조심하며 길을 걷는다
이어 지각산이라고도 불리는 해발고도 1080m의 환선봉이다
환선봉 동쪽아래에는 촛대봉과 나한봉 수리봉등 각종 봉우리와 사다리 바위로 둘러싸여 있고
굴피집 너와집등 화전민이 살던 흔적이 있다
신기면에 있는 환선굴은 유명한 석회동굴로 천연기념물이다
양지바른 환선봉에서 자암재로 내려가는길은 음지로 눈이 덮여 미끌거렸으나 다행히 밧줄이 있다
명산이야 쌩 올라갔다 내려오면 그만인걸 대간길은 올랐다가 내렸다 싶으면 다시 오르고 내리고를
수십번 해야 하는통에 체력 소모가 많고
특히 겨울 산행은 양지와 음지 기온차가 커서 체온조절도 쉽지 않다
아무리 추워도 오르막에서 땀이 나는걸 보면 쉴때는 입고 먹고
아님 계속 걸어야 산다
벌써 점심때가 지나고 오후 한시나 되어 빵한개와 미지근한 물로 점심을 때웠다
대여섯시간 걷는동안 백두대간에서 쉬는 시간이라고는 점심먹기 위한 단 십분의 휴식뿐이다
나머지 여유는 발걸음을 멈추고 혁대에 차고 다니는 꿀물 한모금씩 마시것 외에
딱히 쉴수가 없다
하산주를 위해 빨리 가는 선두조들은 산에서 얼굴 한번 못볼때가 많지만
남들보다 발이 느린 나는 먹고 쉬는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남편말에 길들여졌나보다
오줌 누는 시간도 쪼개야 하므로 될수 있으면 참든지 아님 급한용무만 해결해야
간시히 주어진 시간안에 무사하게 하산할수 있다
왜 이러고 다니는지 나도 의문날때가 많다
이어 자암재다
이곳에서 1.7km를 가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는 환선굴로 하산할수도 있으나
대간길은 그대로 직진이다
자암재 고개에서 너른 구릉지대인1036봉을 지난다
너른 언덕배기가 보이고 바람개비가 하나둘 나타나고 바람소리가 점점 커진다
바람소리와 봄을 품은 마지막 겨울 풍경을 영상에 담았다
이곳은 광동댐 이주단지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이 소의 귀를 닮았다 하여 귀네미라고도 불린다
이주 농민들이 경작하는 고랭지 배추밭은 해발 1100여미터에 달하는 산자락에 펼쳐져 있다
한창 푸르게 싹이 돋는 배추들이 장관일때 웃고 떠들며 그 밭의 농로를 지났었는데
히끗히끗 얼어붙은 흙바닥은 황량하기만 하고 시멘트 도로는 팍팍했다
바람개비와 푸릇푸릇 돋아난 배추와 잡풀과 풀꽃속에서 찍은 사진들만 그날을 기억하고 있으니
모두가 추억이 되었다
(2015년 7월14일 고랭지 채소밭 시멘트 도로를 지나며 대장과 함께)
농로를 따라 걷다 대간길은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밭과 숲의 경계를 지나
다시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말라버린 억새와 헐벗은 나무들 사이 푸르고 싱싱한 작은 주목들 아래
눈이 녹아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을 보낼 차비를 하고 있다
시야가 트인 산길로 걷다보면 드디어 큰재에 다달은다
날머리인 댓재까지 남은거리는 5.0km 비교적 쉬운길이다
굳이 상중하로 따지자면 하에 속하는 구간임에도
덕항산 인증차 오늘 처음 나왔다는 산우는 오르락 내리락 산길에 놀라
백두대간은 다시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누구는 백두대간길이 좋기만 해서 다니는가,말은 안하지만 힘든것을 참고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서서히 빠져들기 때문이다
눈 구경 좀 하겠다고 무작정 처음 따라갔던 날,산에서 버스에서 휴계실에서
그리고 집에 돌아와 밤새 토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죽었다 깨어나 보름 지나고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다시 따라가서 죽었다가 살아 돌아오기를 몇번을 반복했다
살면서 호되게 경험했던 지난 17기를 엮어 책 출간까지 했으니 대장이 뒤에서 늦게 따라온다고
야단쳤더라면 포기했을 일이다
나에게는 일어난 사건중에 사건인셈이다
그러면서 차멀리가 사라지고 육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백두대간 팀중에는 매번 꼴찌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감사하게 여긴다
큰재 고개에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계속 올라 1062봉을 지나고 부드럽게 산죽길을 내리고 올라
1159봉 1105봉을 지난다
이어 해발고도 1059m의 황장산이다
해가 산으로 넘어갈 오후가 되었음에도 하늘이 유난히 파래 눈이 시리다
백두대간 표지판과 표지목이 서 있는 황장산에서 인증한장 남기고
댓재로 내려서는데 가파른 급사면이다
거의 날머리가 다가 오는데 내리막에서 꾸물거리다 보니 처음 왔단 산우들이
어느새 바짝 뒤쫒아온다
424번 지방도가 지나는 댓재로 무사하게 하산하여 오늘의 대간여정이 끝났다
이제 북으로 대간길은 지긋지긋 지루하다는 두타 청옥 백복령으로 이어질것이다
선두대장이 앞에서 이끌고 후미대장이 뒤에서 밀면서
하루를 걸었어도 대장의 빈자리가 컸다
함께 사진 찍었던 장소와 앉아서 점심 먹었던 장소
그 자리에 함께 있는거만 같아 힘들었다.
원효스님의
"나지 마라,죽는것이 고통이다
죽지 마라,사는것이 고통이다."알듯말듯 의미심장한 말은 잘 모른다해도
저승보단 이승이 조금 나을거 같은데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구경 좀 더 하다가지,
하루종일 달려 해가 질무렵 목적지에 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더니
남은 우리만 허전하지 어쩜 좋아하는 산에서 고통없이 한방에 갔으니
잘 가셨는지도 모른다
지난 23기 2018년 4월3일 댓재에서 구부시령으로 남진할때
대장이 건넨 안내지에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인생,내것도 아닌 이 몸 살았을때 이곳 저곳,
그중에서 오늘 우리는 댓재에서 백두대간 길도 걸어보고 봄날 진달래와
갖가지 봄꽃 구경하며 풍차와 광동댐 이주단지를 바라보며
산길을 내려오는 자암재,그리고 또 걸어 환선봉 전망터에서 조망을!
덕항산을 지나 전설이 깃든 구부시령의넋을 기려보는 즐거운 산행길을 걷고자 합니다.
산돌이 드림"
에언이라도 하듯 쓰여진 글이 또 한번 눈시울을 적신다
시간이 약이길 바라며 이글을 마친다
2020년 2월 20일 씀
글 ,사진 -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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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가슴이.먹먹하군요
다시한번.고개숙여집니다
대정지기님~~
글을 읽어내려가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힘내세요
작년 8윌20일 25차 이화령-조령3관문길로 처음 대간길 입문한 후 27차 동행하고 금번으로 3번째 대간 종주맛을 알아가는 초보자로서는 간신히 고인의 면모를 알아가는중에 웬 날벼락같은 소식을 접하니
너무 놀랍고 숙연해집니다
부디 좋은데로 가셨기를 기원드리며 시간되는대로 열심히 인연맺은 32기 대간길에 동참하겠으니 먼저 입문하신 산우님들의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이정님, 남은 백두대간 무사히 완주하기를 느림보 별콩이 응원 합니다~~
우리는 인명은 재천 이라고 합니다.
대장님으로서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기신
고인 산돌이대장님께서는 산우들과 늘 함께 하실것입니다.
이정님, 저도 가까운 이를 보내는데 3년은 아파했어요.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끔 우린 열심히 살아야지요.
생각날 때 마다 고인을 위해 기도하며 늘 안전산행 하시고요.
그리고 우리 나이에는 혈압이 높고를 떠나 뛰면서 혈압체크하는 것도 있더라고요.
모두가 건강관리 잘하며 산행도 하시기를요.
파이팅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정님 후기글을 보느라니 저희팀도 그곳지난지 얼마 안되엇는데~~
눈물이 핑돌아 끝까지 못 읽어나가겟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영명하싯 산돌이 대장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아하는 산에서 고통없이 한방에 가셨으니
잘 가셨는지도 모른다'는 표현에 공감합니다.
멋지게 살다가 많은 이들에게 그리움 남기고 떠나셨으니
저 세상에서도 길 위에서 처럼 환한 미소로 지켜보고 계실 것 같습니다!
산을 사랑하는 님을 눈앞에서 떠나보내야하신 우리들 동행한 백두대간 팀들 완주날까지 파이팅하십시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군요~~
아려지는 마음
극락왕생 하옵기를
기원합니다
산을 좋아하셨던 산돌이 대장님께서 이정님과 회원분들의 마음을 읽고 있을 듯 합니다.
고인의 멍복을 빌어드리고 그리워해 주시는 마음에 감사드리며 감동했습니다.
저도 고인의 명복을 함께 빌어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예명 독수리입니다 이정 님의 수기를 이아침 읽으며 짧은기간 함께
산행하고 있지만 대장님
하늘나라 가시던날 함께
슬프 했었습니다 지금
글을 읽는 중에도 눈물
이 앞을가립니다 좋은 글
잘앍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인자하시고 자상하셨던 대장님!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한분씩 눈 마주치며 악수하던 모습이 떠오롭니다. 부디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믿기지 않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으분들이 아쉬워 하시니 고인은 행복한 삶을 사신듯합니다. 오래전 사당에서 막 미국 따님댁에 계시다 첫산행지라 설렌다던 말씀이 아련해 ...추억에 잠기며 ...이제 고인이신 산돌님의 명복을빕니다.
저는 대간을 걸을때마다 이정 님의 <나의 백두대간>을 읽곤합니다.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위 이정 님의 글에 동감하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산돌 대장님과 함께 했던 대간길이 눈에 선하네요 ㅠ
대장님 명복을 빕니다ㅠ
삼가 도인의 명복을 빕니다.
며칠전에 친구랑 산돌이 대장님은 산에대한 동화 전설 참 맛깔지게 한다고 자랑했었습니다.
읽는동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절절한 추도사를 다 읽어내기가 어렵네요.
산돌이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