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사이로 햇살이 삐져나올 때마다 눈녹아 퍼지는 물줄기가 더 커집니다. 제주도는 한 때 엄청 쌓였던 눈덩이들 흔적을 거의 지워가고 있습니다. 지붕 처마에서도 연실 눈녹인 물들이 봄날처럼 흘러 내리고 있습니다.
간만에 홀가분한 차림으로 나섰는데 역시 바닷가는 기온이 5도 정도는 더 낫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늘 그렇듯 막상 나와봐야 실감되니, 트렁크에 방한용품들을 잔뜩 싣고 다닙니다. 여차하면 휘두루고 쓰고 걸치고 하도록 만보행군을 계속 하다보니 요령이 생깁니다.
28일 목요일, 간만에 각자 육지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라 또 마음이 바쁩니다. 특강도 있고 태균이 병원 검진도 있고, 두세가지 예정된 모임도 있고, 태균아빠 배추 잘 보관해 놓았다고 김장도 하자고 하고, 아이구 눈코뜰새없이 꽉 찬 일정을 보내야 합니다. 그래도 잠시 아이들을 집에 보낼 수 있으니 간만의 자유입니다.
경기약 한병을 다 비운 싯점에 준이는 요즘 순한 양입니다. 먹는 양이 예전에 비해 줄기는 했지만 좀 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반항기도, 두통도 없어진 듯하고, 편마비도 크게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수면문제도 없어야해서 멜라토닌은 10mg이나 하고있고, 문제행동을 부추기는 대변배설 문제도 잘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느 자식들이 그렇듯 가끔 갈등국면으로 가기도 하지만, 준이가 제 손을 떠나면 누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을지 가능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녀석 순한 양으로 돌아가니 만보행도, 인라인타기도 시키는대로 잘 따라줍니다. 이것만 해도 제 마음의 짐을 크게 덜어냅니다. 준이와 갈등국면으로 가면 태균이가 너무 슬퍼하고 민감해지므로 태균이를 위해서라도 준이가 지금 상태로 쭉 갔으면 좋겠습니다.
성산일출봉에서 멀지않은 시흥리 바다 위에 있던 다리를 알게 되었으니 오늘은 여기를 중심으로 주변 해안도로와 시흥리 동네를 걸어보았습니다.
바다위 다리 끝에 왔을 즈음 우리를 계속 불러대는 해녀 한 분. 아무리 물질을 해도 잡히는 게 없다고 아마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일을 접어야하는데 데리러오라고 연락을 할 수 없으니 저한테 그 일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가르쳐준대로 전화를 해도 모두 결번.
시흥리어촌계를 검색해서 연락처를 찾아낸 후 겨우 통화 가능. 전문가 해녀분이 외우고있는 번호 한 자리가 다르니 이를 수정해 드리고... 자주 바닷가에서 놀다보니 이런 일이 벌써 세번째 입니다. 고마운데 잡힌 게 없어 줄 게 없어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번 해녀분은 그래도 마음이 훌륭한 편입니다.
계절이 계절인만큼 신흥리 앞바다에 철새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지만 어저께 하늘의 비행기지켜보기처럼 날아다니는 새들 관찰하는 것도 큰 재미입니다. 준이뿐 아니라 완이까지도 날아다는 새들을 한참 눈으로 좇았습니다. 이런 경험 너무 좋습니다.
태균이가 하도 느적대서 해안도로보다는 마을구경이 낫겠다싶어 아담하고 깨끗하게 정리된 신흥리 집들 구경도 하고...
8천보 정도에서 마치고 머구리야영장으로 이동 인라인도 타고 태균이와 함께 인라인장 몇 바퀴돌아 11,000보까지 달성! 쌓였던 눈이 녹기는 했으나 햇살 내려앉는 양이 각기 다른지라 일부구간은 물이 질퍽질퍽. 이 구간만 되면 준이 딱 움직임을 멈추고 '나 좀 어떻게 해주세요 ㅠ' 이런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매번 손잡고 같이 넘어주니 상습범이 됩니다.
머구리야영장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텅텅 빈 야영장에 단 한 개의 텐드만 덩그러니 있을 뿐입니다. 빈 야영장에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고 있고 아직 녹지않은 그늘진 곳에 완이가 장난을 칩니다. 참 좋은 곳입니다.
첫댓글 내일 육지 가시는군요. 처리하실 일의 양을 볼 때 일주일은 머무셔야 될듯 합니다.
준이씨 쭉 좋은 상태로 가면 넘 좋겠다 싶습니다. 옆에 있음 각자 무심한듯 따로따로인듯 보여도 준이씨에게 태균 형님이 치료약이 됨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준이씨의 인생행로가 어떻게 진행될지, 행운의 여신이 개입하길 바라게 됩니다.
무탈하게 육지 여행 잘 하시고 태균씨 진료 결과가 상쾌하길 빌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