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無에서 대칭을 보았다. 우리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습관처럼 편들었는데 세상은 有와 無가 함께하고 분리될 성질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존재와 비존재가 한 쌍으로 이루진 세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증거들을 발견한다.
유와 무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면 변화가 없지만 대칭이 깨지면 有의 세상을 발견하는데 丁火의 重力, 수렴작용으로 戊土 물질계가 생겨났기 때문이며 성경에서 말하는 선악의 분별에 빠진 세상이다. 有無의 균형이 깨지고 물질이라 느끼는 쪽이 조금 더 강해진 상태다. 인간은 有無 대칭이 깨지고 丁火가 강한 戊土 色界에 살기에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종교와도 연결되는데 인간의 고통이 비대칭 때문에 발현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비대칭에서 벗어날 때에서야 자유로워진다고 주장한다. 즉, 본성은 丁火와 癸水 중력과 척력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無의 상태이기에 경계가 없지만 불균형이 만들어낸 세상은 좋던 싫던 간택할 수밖에 없기에 有無 대칭을 완벽하게 맞추어야만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주장한다. 도에 이르려면 간택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즉, 종교의 우주본성은 有無 대칭이 완벽하여 균형을 이루고 변화가 없는 상태다.
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과거와 미래가 끊어지고, 밝게 비추는 본체가 홀로 오뚝하면 사물과 내가 모두 여여(如如)하다. 곧장 마음의 근원으로 나아가면 알았다고 할 것도 없고 얻었다고 할 것도 없으며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면 물리칠 것도 없고 닦을 것도 없다. 景德傳燈錄 30 : 51-459중
한 생각은 丁-壬-癸 대칭이 완벽한 無의 상태에 머물라는 뜻이다. 만약 균형을 잃으면 즉시 色界의 탐욕이 동하고 잡념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如如는 움직임이 전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공간이 열리기 전에도 완벽한 대칭이 有物混成 상태로 冲氣를 통하여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즉, 우주가 생기기 전에도, 우주가 생긴 후에도 움직임이 없는 시공간은 없다.
丁(입자)과 癸(파동) 沖의 대칭과 양자물리학, 시공간 순환원리를 응용하면 전생과 이생의 시공간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임신한 날을 추론하는 과정을 상상해보자. 양자물리학에서는 입자와 파동이라는 용어를 설명하는데, 내가 엄마의 몸속에서 임신되기 전의 상태는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임신하여 일정의 시간이 지나고 지구에 태어난 날은 입자로 이루어진 색계로 나온 것이다. 인간은 육체의 유무에 따라 파동의 세상에서 입자로, 입자의 세상에서 파동으로 순환한다. 여기에 전생업보를 가미하면 전생과 현생이 연결된다.
丁----------------------壬-----------------------癸
色界------(色空의 완벽한 대칭, 神)------空界
입자---------------------------------------------파동
甲子---------------------------------------------己丑
현생---------------------------------------------전생
甲子 일에 태어났다면, 임신 날은 己丑일이며 파동에서 입자로 변하는 과정을 거쳐 甲子 일에 탄생한다. 壬水는 己丑과 甲子의 시공간 모두에 개입되어 色空 양쪽을 연결하고 있다. 왜 業報라는 용어의 느낌은 좋지 않을까? 色界를 살던 과정에 잘못된 행위가 있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업보는 色界를 경험하였다. 그렇다면 色界를 경험하지 않으면 업보가 없다는 말인가?
己丑과 甲子 사이에 어떤 업보가 있는지 살펴보자. 甲子는 60甲子의 출발점이다. 인간이 정한 시간표가 처음으로 출발하였다. 우주에서 빅뱅의 순간이고 지구에서 생명체가 탄생할 여건을 갖춘 상황이다. 甲子는 맨손으로 새로운 시작을 강요당한다.
전생에서 현생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뚝 떨어진 상황이다. 甲子 에너지의 대칭은 己丑이기에 갑자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전생에서부터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업보를 가지고 甲子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이 시공간, 업보, 양자물리학, 대칭의 개념을 명리에 활용한 예이다.
현실에서 대칭 사계도 壬寅/丙申/癸卯/丁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