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가격인하 캠페인·대안생리대 사용운동 확산
‘생리대는 생필품이다. 부가가치세를 면제하라’‘안전성을 믿을 수 없는 일회용 생리대 대신 대안 생리대에 주목하자’.
그동안 여성들끼리만 은밀히 말해오던 생리대 문제가 공개적으로 도마위에 올랐다. 생리대 가격은 내리고 안전성은 높일 방법이 없을까. 이를 위해 여성들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생리대 문제가 이제 여성 복지의 중요한 주제가
된 셈이다.
연간 23억개, 판매액 2천7백억원 규모의 생리대 시장. ‘보다 얇게, 보다 빠르고 감쪽같이, 보다 깨끗하게’를 기준으로 생리대 제조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경쟁하는 동안 정작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안전성과 여성의 몸에 대한 배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게다가 생리대 가격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간다. 그동안 쌓인 여성들의 불만도 하늘을 찌른다. 이젠 여성들이 직접 나설 때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생리대 다운&업 캠페인을 주목하자.
생리대는 생필품, 부가가치세 면제돼야
많은 여성들이 생리대에 갖는 주된 불만은 가격문제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환경센터가 올해 초 생리대 가격과 관련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90.3%가 생리대 가격이 비싸다는 불만을 표시했다.
여성은 일생 동안 약 500회의 월경주기를 갖는다(우리나라 여성들의 초경 나이는 13세이며 폐경은 보통 45∼50세 전후로 일어난다). 월경 주기 한회당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가 대략 22개 정도이므로 여성들이 평생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 수는 자그마치 1만1천개. 따라서 여성들이 생리대를 구입하는 데 보통 330만원의 돈을 써야한다는 말이다.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다.
그런데 미국 미네소타주의 경우 생리대를 생필품으로 분류해 세금을 면제해주고 있어 생리대 가격이 우리보다 저렴하다.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의 편집장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1978년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라는 도발적인 글을 통해 “그렇게 된다면 정부는 생리대를 무료로 배포할 것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많은 여성들은 그의 가설이 진실을 담고 있다고 믿는다.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웹진 언니네의 이현옥씨는 “정부에게 생리대를 무상지급하라고까지 요구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부가가치세는 면제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한달에 적어도 4일 이상 생리대를 착용하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생리대가 생필품에 포함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민우회는 이런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생리대 가격에 관한 토론회를 열고 이후 생리대 가격 인하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8월 31일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릴 제4회 월경페스티벌에서도 이 문제를 공론화할 계획이다.
생리대 안전성 검사 및 정보 공개 요구해야
생리대의 안전성 문제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생리대 제조업체들은 제품의 활동성과 편리함을 강조하며 가격을 계속 올리고 있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생리통·발열·피부 짓무름·가려움 등을 호소한다. 이것은 생리대의 제조과정에서 안전성에 대한 배려, 곧 여성의 몸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자궁내막증·자궁근종·자궁암·질염 등 여성의 자궁관련 질환 발병률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그 원인은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부 여성들은 이런 질환들이 생리대와 연관성이 있을 거라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서구에서는 1980년대 탐폰 쇼크증이 사회문제화되면서 생리용품의 안전성에 관한 논란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이후 다양한 연구결과들이 발표되면서 탐폰 쇼크증의 원인이 바로 탐폰에 함유된 다이옥신 때문이라는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탐폰은 염소 표백한 솜이나 레이온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표백과정에서 발생한 염소가 다이옥신을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생리대 제조업체들은 명확한 근거가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또한 아직은 기업편에 서있다. 미국 하원의 캐롤린 맬로니 의원은 1996년과 97년 두 번에 걸쳐 탐폰과 패드형 생리대에 잔류하는 다이옥신을 측정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거절당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탐폰 사용률이 1.5%로 매우 낮고 외국의 탐폰 쇼크증과 같이 생리용품 사용이 원인으로 밝혀진 질병 보고사례가 아직 없다. 이 때문에 생리대의 안전성에 대한 인식 자체도 아직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이렇다보니 생리용품과 여성 건강과의 연관성을 조사한 연구자료는 물론이고 생리대의 원료나 제조 과정에 대해서도 밝혀진 게 없다. 지난 2월 한국여성민우회 여성환경센터에서 생리대 제조회사 측에 생리대의 원료와 생리대에 사용된 화학물질의 성분, 염소 표백 여부에 대해 질문했으나 회사측에선 생리대 겉포장에 적혀 있는 재질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제조 비밀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생리대 제조회사들은 생리대의 흡수력을 높이고 두께를 얇게 하고 샘 방지 기능을 추가하는 등 활동성과 기능성을 강화하기 위해 수많은 화학적 조치들을 취한다. 탐폰에서 염소 표백을 하는 것처럼 패드형 생리대도 염소 표백을 할 것이라고 생각되나 기업측은 정보 공개를 꺼린다.
이에 대해 에코페미니스트 공동체 ‘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이하 꿈지모)의 이윤숙씨는 “무엇보다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생리대의 안전성을 둘러싼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생리대에 어떤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는지 끊임없이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생리대 제조회사들에게 생리대의 안전성에 관한 정보공개와 안전성 검사를 실시하도록 요구해야 하며 미국의 캐롤린 의원처럼 생리용품의 안전성에 관한 공식적이며 전문적인 조사와 연구를 보장하는 법률 제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젠 우리도 대안 생리대 사용 운동 벌일 때
우리나라에서도 대안 생리대를 사용하는 운동이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지만 아직은 조직적이기보다 의식있는 개인들에 의해 시험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탐폰 쇼크증을 둘러싸고 생리대 안전성 논란을 겪었던 서구에서는 일회용 패드와 탐폰을 대신하는 새로운 대안적 생리대 운동이 페미니스트 그룹과 환경운동 그룹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돼 왔다. 이들은 또한 대안 생리대를 개발·판매하는 일을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사업체’로 발전시켰다. 우리처럼 탐폰 사용을 기피하는 일본에서도 생활협동조합과 지역의 풀뿌리 여성환경 조직들을 통해 면 생리대 사용을 권장하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대안 생리대를 쓰고 난 이들의 경험담이다. 대안 생리대 관련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가려움과 짓무름이 없어졌다거나 생리통이 가벼워졌다는 의견들이 공통적이다. 2년 전부터 대안 생리대를 쓰고 있다는 이현정씨(또하나의문화 출판기획) 또한 생리통이 가벼워졌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한살림 생협에서 면 생리대를 사다 썼지만 지금은 제가 직접 만들어 쓰고 있어요. 생각보다 활동하기도 편해요. 세탁도 쉽게 되구요. 제 경우에는 돌돌 잘 말아서 집에 들고 와서 빨거나 사무실 화장실에서 빨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청결 강박증이 있어 흔적이 남는 걸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 같아요.”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할 땐 오물처럼 여겼던 월경혈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도 소중한 변화라고 덧붙이는 이현정씨는 이젠 여성들이 위생의 탈을 쓴 청결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꿈지모의 이윤숙씨는 이젠 우리도 대안 생리대 사용 운동을 벌일 때가 왔다고 얘기한다. 생리대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데이터가 없어 그 문제를 해명할 수 없다면 거꾸로 대안 생리대를 사용한 경험을 통해 생리대의 위험성을 반증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부담스럽다면 일단 집에 있을 때라도 대안 생리대 사용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귀찮고 번거롭긴 하지만 대안 생리대 사용은 내 몸과 환경을 지키는 가장 혁신적인 운동이기도 하다.
탐폰 쇼크란?
화학 섬유로 만든 탐폰을 오랫동안 사용한 여성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급작스런 발열·두통·설사·구토·어지러움 등의 쇼크 상태에 빠지거나 심한 경우 사망한다. 미국에서는 1980년 813건의 탐폰 쇼크증이 보고되었는데 그중 38명이 사망함으로써 탐폰 쇼크증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설에 따르면 미국의 영화 배우 마릴린 먼로 또한 탐폰 쇼크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탐폰 쇼크증에 대해 보고된 바 없다.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jena21@womennews.co.kr
대안 생리대 어떤 것들이 있나
198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대안 생리대는 인체에 해로운 화학물질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또 여러번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에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생산·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지만 외국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캐나다의 매니문(www.pacificcoast.net/∼manymoons), 루나패드( www.lupads.com), 미국의 글래드래그스( www.gladrags.com), 영국의 멘스(www.menses.co.uk)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루나패드가 우리나라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순면 패드
100% 면으로 만든 패드. 표백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천 속에 흡수지를 삽입해 사용하고 흡수지만 갈아주면 된다. 흡수지는 물에 녹고 천은 세탁해서 여러번 사용할 수 있다. 날개에 똑딱단추가 달려있어 사용하기에도 편하다. 직접 만들어
쓸 수도 있다. ‘또문 소녀’ 웹사이트(www.tomoon.com/girls)에 가면 만드는 법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천연 솜 탐폰염소 표백하지 않은 100% 탈지면으로 만든 탐폰. 인체에 해로운
제초제나 살충제를 전혀 쓰지 않고 재배한 솜만을 사용한다. 사용법은 기존의
일회용 탐폰과 비슷하다.
천연 고무컵(menstrual cup)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들어진 자연고무 생리대. 키퍼(Keeper)라고도 불린다. 탐폰처럼 질 속에 집어넣는 것이지만 솜처럼 월경혈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종 모양으로 생긴 고무컵에 받아낸다. 6-12시간마다 컵에 담긴 월경혈을 쏟아버리고 씻어서 다시 사용하면 된다. 재질이 부드러워 착용감이 편하고 질 내에 필수적인 수분을 빼앗지도 않는다. 가격은 6만원대이지만 고무컵 한 개의 수명이 10년임을 감안하면 비싼 편은 아니다.
스펀지(sea sponge)
깊은 바다에서 자라는 해면으로 만들어져 화학물질이나 독성이 없다. 흡수가 다 되면 물에 씻은 뒤 꼭 짜서 다시 사용하면 된다. 냄새가 나면 식초로 살짝 헹궈 주고 물에 삶아 소독하면 된다. 수명은 6개월 정도.
이정주 기자 jena21@womennews.co.kr">jena21@womennews.co.kr
도움말 주신 분=이현정 <초경파티>(또하나의문화)의 저자
689호 02-08-19 오후 3:4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