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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3-15
앞장서서 가시는 하나님 / 황광민 목사
들어가는 이야기
한 이스라엘 가정의 저녁식사시간이었습니다. 군대갔다 온 아들이 식탁에 앉더니 기도를 했습니다. 그가 기도를 마치자 아버지께서 물었습니다. "얘야! 너 전에는 기도하지 않았었는데 어떻게 된거냐?" 이에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네, 전에는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네게브에서 있었던 전쟁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네게브에서 이집트와 전쟁하다가 한 20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 적군 3개 대대 병력이 쳐들어왔습니다. 저들은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죽기살기로)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우다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력을 다하여 발포하기 시작하자 두 개 대대 병력이 뒤로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한 개 대대병력은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하였습니다.나중에 이집트 병사들은 이스라엘 병사가 20명 밖에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병사는 대답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그러자 이집트 병사가 재차 물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있던 많은 사람들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그곳에는 다른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병사는 그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저들을 지켜주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본문 이해
오늘 봉독한 본문도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 앞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살피기 위하여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완전무장을 한 용사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여호수아 앞에 나타났습니다.
여호수아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는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용사에게 물었습니다.
"용사여!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왔습니까? 아니면 적을 위하여 왔습니까?"
용사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서 너희를 위하여 이곳에 왔다."
이에 여호수아는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군대장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하여 <우리를 위하여 앞장 서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앞장 서셨습니다. 하나님은 군대장관을 보내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도 그렇게 하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의 동행을 믿으시고 어떤 경우에나 승리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수아의 두려움
그러면 먼저 여호수아의 두려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입니다. 요단강은 건넜으나 그 앞에는 견고한 성 여리고가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을 치지 않고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곳은 중요한 길못입니다. 여기서 지면 끝장입니다. 이겨야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성은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따라서 여리고 성을 생각할 때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여호수아는 지도자가 되어 처음 치르는 전쟁이었습니다. 물론 여호수아도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 때에는 친히 병사들을 이끌고 나서 적들과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뒤에 모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여호수아가 최고 지도자입니다. 그가 작전을 세워야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의 어깨에 모든 책임이 얹혀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걱정이 되어 여리고 성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여호수아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시려고 군대장관을 보내셨습니다. 두려움은 무서운 것입니다.
이러한 우화가 있습니다. 한 청년이 알렉산드리아를 향해 마차를 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달리는 마차에 한 할머니가 올라탔습니다. 청년은 놀라 물었습니다. " 이 마차는 알렉산드리아로 가는데 할머니는 누구십니까?"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나는 호열자요." 그러자 청년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마차에서 내리십시오. 나는 당신을 태워줄 수 없습니다." 할머니는 물러서지 않고 애원합니다. "여보 젊은이, 내가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꼭 세 사람만 죽게 할테니 걱정말고 나를 태워다 주시오." 그래서 청년이 물었습니다. "세 사람 이상을 죽게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할머니는 칼을 한 자루 내주면서 말하기를 "세 사람 이상이 죽게 되면 그 때는 이 칼로 나를 죽이시오. 할머니는 마차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자마자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알렉산드리아市에 호열자가 유행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청년은 화가 났습니다. 청년은 칼을 들고 할머니를 찾아나섰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만나자 칼로 찌르려고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나를 찌르려고 하시오?" 청년이 더욱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은 내게 세 사람만 죽게 한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니 약속대로 당신을 죽이겠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하였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내가 죽인 사람은 단지 세 사람뿐이오. 나머지 사람들은 호열자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다가 죽은 것이오. 나와는 상관이 없오." 이 우화는 두려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죽은 사람이 50만명이라면 200만명은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죽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치하밑에서 박해를 받던 리챠드 범부랜트(Richard Murmbrand) 목사는 옥중에서 성경을 읽으며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몇번이나 있는지 세어보았습니다. 그가 세어보니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꼭 365번 기록되어 있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고 두려움을 극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군대장관의 출현
두려워하고 있는 여호수아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군대장관을 보내 주셨습니다. 군대장관은 완전무장하였으며 칼을 빼들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묻습니다. "용사여,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왔습니다. 아니면 적을 위하여 왔습니까?" 군대장관은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어제 왔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왜 왔습니까? 우리를 돕기 위하여 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증거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도단성의 엘리사를 도우셨습니다. 엘리사가 도단성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아람이 이스라엘을 치려하였으나 그때마다 엘리사가 일깨워주므로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안 아람왕이 군사를 보내 엘리사를 잡으려 하였습니다. 이에 아람의 많은 군사들이 밤에 도단성을 에워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도 많은 천군천사를 불말과 불병거에 태워 엘리사를 둘러싸고 보호하게 하셨습니다(열왕기하 6장 참조).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건져내셨습니다.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던 간신들이 그를 죽이려고 왕에게 요청하여 장의에 다른 신에게 경배하는 사람은 사자굴에 던지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은 이 법이 선포되었으나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체포되어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어 사자들을 달래시고 다니엘을 사자들 틈에서 편히 쉬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지키셨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95피트되는 금신상을 세워놓고 모든 사람이 그 앞에 절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집어넣는다는 법령을 포고했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체포되어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심으로 털끝하나 타지 않고 보호를 받았습니다. 집어넣기는 세 사람을 집어 넣었는데 네 사람이 돌아 다니는 것을 사람들이 목격하고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뉴우 히브라이니스에서 사역하던 죤 패튼 선교사의 경험담이 있습니다.
하루 밤은 잠을 자려는데 갑자기 창문이 대낮같이 밝아졌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여 창문을 열고 내다보고 원주민들이 횃불을 밝혀들고 집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선교사 부부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밖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고 조용해졌습니다. 패튼 목사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아무도 시비를 거는 사람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아무도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추장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패튼 목사는 추장에게 그날 밤의 사연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추장은 그날 밤에는 미안하게 됐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 밤 저들이 선교사의 집을 에워싸고 횃불을 던지려는 순간, 하늘에서 광채가 어리더니 몸에 빛나는 갑옷을 입고 큰 칼을 찬 군사들이 그들의 앞을 막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달아났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천군천사를 보내어 보호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의 보호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환난과 역경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성도의 자세
이제는 끝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성도의 자세는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경배입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장관 앞에 엎드려 절하므로 경배하였습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엎드려 절하는 것은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에게나 절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나라와는 문화적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튼 여호수아는 엎드려 절하고 경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지켜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자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가벼이 하지 마십시오.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최고로 높여드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예배순서가 방송에 나옴으로 텔레비젼 보고 예배드리려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큰 일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요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만나 뵙고, 경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텔레비젼을 보고 성경공부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공부와 예배는 다릅니다. 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너무 설교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다보니 성경공부와 예배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성경공부와 예배는 엄연히 다릅니다. 하나님을 찾아 뵙고 엎드려 경배하고 헌신하는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14절 하반절에 보면 여호수아는 군대장관 앞에 엎드려 절하며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명령하는 대로 순종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고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성도의 생활에 있어서 이것도 중요합니다. 말씀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대로 순종하고 따르겠다는 의지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셋째는 성결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이에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도 하셨던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성결을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동행을 원하시면 성결해야 합니다.
성결해야 거룩한 성령님을 모시고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여김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성결함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 성결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성결해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