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뉴스통신 = 박정길 기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1일(현지시간) 회원국들의 전략 비축유 4억 배럴을 방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IEA 역사상 최대 규모다.
IEA는 보도자료를 통해 "IEA 회원국들이 우리 기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긴급 비축유 방출을 시작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음을 발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IEA는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발생한 아랍 석유 금수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1974년 설립됐다.
IEA는 방출의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32개 회원국이 각국의 상황에 맞는 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방출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회원국들이 보유한 공공 비상 비축유는 총 12억 배럴 이상이며, 정부 의무에 따라 산업계가 보유한 약 6억 배럴의 비축유도 추가로 존재한다.
비교하면 IEA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약 1억8200만 배럴을 방출한 바 있다. 이는 이번 결정 규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 정부도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국제 공조에 동참해 비축유 2246만 배럴을 방출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1일 IEA 긴급 이사회에서 총 4억 배럴 규모의 비축유 방출 공동 행동이 결의됨에 따라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 <마이니치> 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도쿄가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공식 조정을 기다리지 않고, 이르면 3월 16일부터 자체 국가 비축유 방출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이 중동산 원유에 대해 "예외적으로 높은 수준의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석가들은 이번 조치의 한계도 지적했다. IEA가 최대 규모로 방출하더라도, 평소 하루 약 2000만 배럴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흐름을 대체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에너지 시장 분석업체 마렉스의 분석가 사샤 포스는 CNBC에 "이번 방출은 며칠 정도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해협이 다시 열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충돌이 이번 주 안에 끝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가는 다시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급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략 비축유는 단기 충격을 완화할 수 있지만 안정적인 석유·가스 흐름을 위해서는 해협이 재개방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제유가 기준인 브렌트유는 11일 오전 배럴당 90.77달러로 3.4% 상승했다. 전날에는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 장관이 미 해군이 이미 해협을 통해 유조선을 호위했다는 잘못된 소셜미디어 게시글이 퍼지면서 급락했다. 이후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현재까지 해군이 어떤 유조선이나 선박도 호위하지 않았다"고 정정했다.
한편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도 이란은 해협을 통해 베이징으로 원유 수출을 계속하고 있다. 선박 이동을 위성으로 추적하는 탱커트래커스닷컴에 따르면 최소 1170만 배럴이 중국으로 향했다. 에너지 데이터 업체 클레르는 약 1200만 배럴로 추산했다. 일부 선박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위치 추적 장치를 꺼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전쟁 이전부터 대비해 왔다. 세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첫 두 달 동안 중국의 원유 수입은 전년 대비 15.8% 증가했다.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에 따르면 중국의 전략 비축유는 약 12억 배럴로, 이는 국내 수요 기준 약 3~4개월을 버틸 수 있는 규모다.
이란은 또 호르무즈 해협 남쪽 오만만에 위치한 자스크 석유 터미널에서 유조선 적재도 재개했다. 이는 해협을 우회하는 방식이다. 다만 실질적 효과는 제한적이다. 초대형 유조선은 자스크에서 적재하는 데 최대 10일이 걸리는 반면, 이란의 주요 수출 시설인 카르그 섬 석유 터미널에서는 1~2일이면 적재가 가능하다. 탱커트래커스닷컴의 사미르 마다니는 "국내 선전 효과는 있지만 물류 측면의 실질적 이점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