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의 건물은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 ‘궁궐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세운다’는 예에 따라 현재의 자리에 종묘가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에 의해 다시 지어졌다. 종묘는 조선 왕조의 역대 국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유교 종묘 제도 상의 묘(廟)다. 지금의 종묘는 사적으로 지정 보존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정전(국보), 영녕전(보물), 종묘제례악(국가무형문화재), 종묘제례(국가무형문화재)가 있다.
종묘의 건물은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으로 나누어 정전에는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선왕과 그 왕비의 신주를 순위에 따라 모시고, 영녕전에는 추존 된 선왕의 부모나 복위된 왕들을 모셨다.
종묘 정문은 외대문(外大門) 또는 외삼문(外三門)이라고도 한다. 외대문은 정면 3칸의 구조로, 궁궐 정문과는 달리 구조 형태가 아주 소박하고 단순하다.
외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박석으로 길이 놓여 있는데, 가운데 신로, 오른쪽은 왕의 길, 왼쪽은 왕세자가 걷는 길이다.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이 놓여 있다.
망묘루(望廟樓)는 종묘를 관리하는 관원들이 업무를 보던 곳으로, 종묘제례 전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先王)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정면 7칸, 옆면 2칸의 구조로 건물 중 두 칸은 누마루로 되어 있다.
공민왕 신당(恭愍王 神堂)은 고려 31대 왕 공민왕과 왕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高麗 恭愍王 影幀 奉安之堂)'이다. 종묘를 창건할 때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종묘를 창건할 때 공민왕의 영정이 날아와 종묘 경내로 떨어졌는데,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영정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신당 내부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한자리에 있는 영정(影幀)과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되어 있다.
향대청(香大廳)은 제사 전날 왕이 종묘제례에 사용하기 위해 친히 내린 향·축문·폐백과 같은 제사 예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향대청 앞에는 행각이 길게 자리 잡고 있어 두 건물 사이에 남북으로 긴 뜰이 만들어졌다. 또 종묘제례 시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이기도 하다.
재궁(齋宮)은 왕이 머물면서 왕세자와 함께 제례를 준비하던 곳으로 어재실(御齋室), 세자재실(世子齋室), 어목욕청(御沐浴廳)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북쪽에 왕이 머무르는 어재실, 동쪽에 세자가 머무는 세자재실, 서쪽에 어목욕청이 있고, 담으로 둘러져 있다. 왕과 왕세자는 재궁 정문으로 들어와 각 실에 머물면서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였다.
어목욕청 (御沐浴廳)
어재실(御齋室)
임금이 머물던 곳이라 전각에 드므가 설치되어 있다.
세자재실(世子齋室)
재궁에서 준비를 마친 왕은 정전으로 향한다.
재궁문을 나서면 보이는 지붕은 정전 안 공신당이다.
전사청은 종묘제례에 올리는 제수를 마련하는 곳으로, 평소에는 제례에 사용하는 제기 등의 집기들을 보관하였다.
진사청 앞에는 제상을 올리기 전 제례음식을 미리 검사하는 찬막단과 제수할 희생(소,양,되지)을 검사하는 성생위가 있다.
정전의 동문은 제례 때 왕과 제관들이 출입하던 곳이다.
정전은 왕과 왕비가 세상을 떠난 후 궁궐에서 삼년상(27개월)을 치른 다음에 그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건물로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된다.
건물 앞에 있는 가로 109m, 세로 69m의 넓은 월대는 정전의 품위와 장중함을 잘 나타낸다. 월대 가운데에는 신문에서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깔려있다. 정전은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종묘 전경(궁능유적본부 자료 사진)
신실(궁능유적본부 자료)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2001년 5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옛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되었다.
종묘제례는 왕이 직접 행하는 가장 격식이 높고 큰 제사로 왕을 비롯한 왕세자, 종친, 문무백관 등 제관이 참가하였다. 정전에서는 4계절의 각 첫 달에 정해진 날과 납일(臘日, 동지(冬至) 후 세 번째 미일(未日))을 합쳐 1년에 다섯 번, 영녕전에서는 봄·가을 정해진 날에 두 번 제례를 행했다.
종묘제례악은 악기(樂), 노래(歌), 춤(舞)을 갖추고 종묘제례에 맞추어 행하는 것으로, 악기의 연주에 맞추어 왕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을 말한다. 제례악은 처음 세종대에 아악을 정비한 후 <보태평>과 <정대업>을 창작하였고, 1463년(세조 9)에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춤(일무佾舞)은 문덕(文德)을 칭송하는 문무(文舞)와 무공(武功)을 칭송하는 무무(武舞)로 구분되는데, 문무는 정적이면서도 부드럽고 무무는 강하고 힘차다.
정전의 남문은 신문(神門)으로, 혼백(魂魄)이 드나드는 문이다.
공신당(功臣堂)은 배향공신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정전 월대 아래 남동쪽에 위치한다. 창건 당시에는 5칸의 규모였으나 몇 차례 증축되어 현재는 16칸의 규모가 되었다. 이곳에 있는 공신들은 왕과 황제가 세상을 떠난 후 정해지는데, 이 건물에 모신 배향공신은 총 83명이다.
영녕전은 1421년에 새로 지은 별묘로 신주를 정전에서 옮겨 왔다는 뜻에서 조묘라고도 한다. 전체적으로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과 유사하다. 영녕전의 구조는 가운데 4칸이 태조의 4대 조상인 추존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그 왕비를 모신 곳으로 좌우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좌실의 협실 각 6칸에는 정전에서 옮겨 온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셨다. 영녕전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악공청은 종묘제례 때 악공과 일무원들이 대기하는 건물로 정면 6칸, 옆면 2칸의 구조로 소박하고 간결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