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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미국에는 어떤 분야든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기념하고, 후대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설립한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믿음의 위인들을 추려서 기록한 곳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몇 주간에 걸쳐 살펴본 히브리서 11장을 말합니다.
이를 흔히 ‘믿음의 장’ 혹은 ‘믿음의 명예의 전당’이라고 부릅니다.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거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32절에 이르면 저자는 시간이 부족하다며 여러 이름을 급하게 나열하는데, 그곳에 ‘사무엘’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은 사사 시대 말기와 통일왕국 시대의 과도기를 거친 인물입니다. 그가 생존하였던 시대의 이스라엘은 온갖 죄악과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에서 벗어나 우상숭배에 빠져드는 혼돈과 무질서가 극에 달했습니다. 계속되는 위기 속에 이스라엘 지파 간에도 불화가 그치지 않았고 이런 이유로 인하여 백성들은 이스라엘 온 지파를 통치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절실히 갈구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철제 무기를 독점한 채, 팔레스틴의 패권을 계속 장악하고 있던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할 구원자를 간절히 요망하였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비슷한 환경에서 요구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 사무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급변하는 세계의 정세 속에서 우리나라는 지금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가 변하여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는데 여기에 필수적인 것은 바른 영적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른 영적 지도자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함으로 국가가 살고 개인이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걸맞게 하나님에 의해 세움 받은 구원자요 강력한 정치적, 영적 지도자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 그의 믿음의 특징은 무엇이면 우리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사무엘상 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삼상1: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정실부인인 한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첩으로 들어온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는데 자기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면 이럴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남편이 그녀에게 이르길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하며 그를 사랑해주고 힘을 실어주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은 한나에게는 그런 말들조차 뜬구름처럼 여겼습니다. 게다가 첩으로 들어온 브닌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를 조롱하고 경멸하므로 더욱 마음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그런 한나에게는 생명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마음을 고쳐먹고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집에 방문하여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통곡하며’라는 단어는 몹시 슬퍼서 소리를 내 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마음의 괴로움을 안고 기도를 하였는데 삼상1:12,13절에서는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고 할 정도로 오랜 시간 소리를 내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한나의 모습이 엘리 제사장의 눈에는 술에 취한 여자로 보였습니다. 그의 얼굴이 붉어졌고, 흥분한 듯한 모습이므로 술에 취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한나를 바뀌게 하였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와닿는 순간 그녀는 기쁨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여 얼굴이 붉어졌고 환희의 기쁨을 드러낸 것입니다.
애통해하는 마음에서 기쁨으로 바뀐 순간 엘리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삼상 1: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아침 일찍 집에 이르게 되고 그날에 사무엘을 잉태하게 됩니다.
신앙의 유전 인자가 사무엘에게 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을 디모데에게 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는 말씀으로 믿음도 흐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무엘에게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 그 어머니 한나로부터 이어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어린 시절, 성전에는 엘리 제사장이 있었지만, 그는 영적으로 둔감했습니다. 반면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에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10)라는 고백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무엘에게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말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화살을 쏘았는데 과녁에 닿기도 전에 힘없이 툭 떨어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즉, ‘헛소리’, ‘공허한 말’,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뜻합니다. 반대로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 말이 ‘무게감(Weight)’이 있다는 뜻으로 사람에게 신뢰를 주는 말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에게 신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가 알고 지내는 분 중에서 말이 늘 앞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이번에 대박 나면 밥 살게!”, “내가 다 알아서 할게!” 하지만 저는 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늘 결과가 없었기 때문이죠. 신뢰성이 없는 말은 가벼운 먼지처럼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말을 아끼고 말한 것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은 “내가 기도해줄게”라고 하면 정말 기도가 느껴집니다. “걱정 마”라고 하면 정말 안심이 됩니다. 사무엘의 말이 그랬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이 그의 말에 ‘보증’을 서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말하기에, 그 말에는 생명이 실리고 현실이 되는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친한 사람의 말을 결코 우습게 만들지 않으십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뛰어난 선지자요 사사로 통치하면서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고 그 말에 따를 수 있는 영적 권위는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얻어진 것입니다. 깊은 기도의 영성으로 얻어진 권위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순종을 하나님께 심었더니 하나님은 그가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듣고 순종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둘째, 사무엘의 지도력에는 성장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3장 19절에 “사무엘이 자라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슈퍼스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도 어린아이 시절이 있었고, 실수하던 때가 있었고, 하나님 음성을 못 알아듣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사실 때 성장의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눅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영과 육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자라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어머니 한나의 신앙을 많이 본받으며 자란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한나의 고백이 삼상 2:6,7절에 기록하고 있는데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한 것입니다.
어머니 한나의 이 ‘절대 주권 신앙’은 사무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영적 DNA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의 리더십과 사역을 보면 어머니의 기도가 그대로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인간 왕(사울)이나 권력자 앞에서 절대 기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머니를 통해 “인간을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뼛속 깊이 배웠기 때문입니다.
한나의 고백 중에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라는 고백은 사무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울 때 결정적인 기준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압의 겉모습을 보고 왕이라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중심을 보는 눈으로 가장 작고 어린 목동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에 대한 어머니의 신앙이 사무엘의 사역을 통해 역사 속에 실현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3절은 “그들은 믿음으로... 의를 행하기도 하며”라고 말합니다. 사무엘은 평생 뇌물을 받지 않았고,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았으며, 백성들 앞에서 "내가 누구의 소를 취하였느냐"라고 당당히 물을 만큼 청렴했습니다. 부패한 시대 속에서도 거룩함을 지킨 믿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하므로 자기를 비워 온전히 자신을 드린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에 따르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었기에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그는 '기도를 멈추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의 가장 위대한 점은 은퇴할 때조차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리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기도를 '하면 좋은 것', '경건한 행위' 정도로 생각하지만, 기도를 안 하는 것을 '죄(Sin)'라고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이를 ‘죄’라고 단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무엘은 선지자이자 민족의 영적 지도자입니다. 지도자의 가장 큰 의무는 백성을 하나님께 연결하는 것입니다. 마치 보초병이 경계를 서지 않으면 군법으로 다스려지듯, 영적 파수꾼이 기도를 멈추는 것은 곧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는 범죄와 같다는 철저한 소명의식입니다. 당시 백성들은 사무엘을 버리고 '왕'을 요구했습니다(배신). 인간적으로는 섭섭해서 “너희끼리 잘해봐라” 하고 돌아설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기도를 멈추는 것은 그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무엘은 백성이 자신을 버렸을지라도, 자신은 백성을 끝까지 사랑으로 품겠다는 의지를 '기도'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무엘의 기도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즉, 사무엘의 지도력에는 백성을 일어나게 하고 자유를 얻는 힘이 있었습니다. 사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고 하였는데 ‘일어나라’는 표현을 영어에서는 ‘Arise’라고 하였고, 히브리어에서는 ‘쿰’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엎드린 위치에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망하고 좌절하여 엎드린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근거로 일어나게 될까요? 말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하였습니다.
송아지가 어미 배 속에 있다 태어나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엎드려 있습니다. 그러면 어미 소가 송아지를 혀로 핥아 줍니다. 그렇게 한참을 하다 보면 송아지가 힘을 얻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걷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일어나게 하고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백성을 위로하고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아픔에 빠진 자를 다독거리며 방향을 잃은 자에게 빛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이것이 흐르도록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간자 역할이 바른 영적 지도자의 모습니다.
지금까지 바른 영적 지도자의 모습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내가 이런 지도자가 되어야지 하는 사명감을 느끼셨습니까? 아니면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느꼈습니까? 이것이 부르심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지도자로 하나님의 택하여 부르신 지도자도 있고, 이런 지도자의 영향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바른 지도자의 소양을 쌓기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온전하게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런 지도자의 부르심에는 소수의 사람이 해당한다면 대부분 사람은 바른 영적 지도자의 인도하에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바른 지도자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기도로 협력하고 때로는 생활에 쫓기지 않도록 필요를 채워줘야 할 것입니다.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말씀을 통해 영적인 지도자의 인도함을 받아 평강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성도는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원리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9장 11~14절에서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라고 말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활하는 것이 마땅함을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정치 지도자뿐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 영적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께 구하고 그런 지도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