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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 패권 경쟁 시대를 살고 있다. 미국은 서양문명을 대표하고 중국은 공산사회주의문명을 대표한다. 서양문명은 개인주의와 탐구자세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의 발달을 가져온 반면 공산사회주의는 개인을 희생하여 사회를 일으켜 나갔다. 오늘날 보면 한국 교회안에 두가지 생각이 혼돈되어 존재하기에 평신도들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목사나 장로등 교회 리더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이 말을 들어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또 다른 쪽의 말을 들어보면 그말도 맞는 것 같다. 개인과 공동체 그 속에 우리는 각자가 살고 있다. 개인주의란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배치되는가? 생각해 본다. 보통 우리는 개인주의 하면 이기주의를 떠올린다. 그러기에 부정적 인식을 하거나 공동체에 맞추기 위해 개인의 의사는 접어 두는 것이 미덕으로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개인주의란 무엇인가?
이것은 이기주의와 다르다. 좀더 철학적인 관점에서 봐야한다. 다시 말해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로 봐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는 아니다. 이러한 접근을 돕기 위해 질문을 해보면 사회란 존재하는 실체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태어나면서 부터 사회속에서 살고 있기에 당연히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어떨까? 오히려 개인이 존재하는 실체이고 사회는 실존하는 개인들이 사회적 계약을 맺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중세 후기 오컴(Occam, 또는 Ockham의 윌리엄, c. 1285~1349)이란 영국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그는 프란치스코회 수사였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후기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불리운다. 그의 철학은 몇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유명론(Nominalism) 이란 것을 주창했는데 보편 개념(예: '인간성'과 같은 추상적 실체)이 개별 사물 외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름이나 개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주류였던 실재론에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둘째, 신앙과 이성의 분리를 주장했다. 신의 존재나 종교적 가르침은 이성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신앙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았으며, 이성의 영역인 철학은 신학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신학이 학문이 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셋째, '오컴의 면도날' 원리: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세우지 말고 가능한 간단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유명한 철학적 원리를 제시했다. 이는 복잡한 형이상학적 실재를 제거하려는 그의 접근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넷째, 교회 권력을 비판했는데 교황의 무류성(infallibility)을 부인하고 교황권의 전횡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옹호했다. 이러한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교황 요한 22세와 갈등을 겪었고, 결국 파문당했다. 그의 사상은 훗날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한마디로 중세의 종말을 고하고 근대의 문을 연 학자로 평가받으며, 그의 사상은 경험론과 근대 과학의 발달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
교회란 존재하는가?
오컴은 이런 질문을 했다. 교회가 정말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는 교회란 실체가 없는 것이고 실체는 신자들이 모인 것이 교회라고 주장했다. 그의 교회에 대한 생각은 '보편 교회(Universal Church)' 란 말로 정의 되는데 오컴은 참된 교회는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한 특정 계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신자 전체로 이루어진 보편적인 모임(congregatio fidelium)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교황이 이단이라면, 교회 회의(공의회)나 심지어 신도들이 그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당시 교황권의 절대적인 권위와 정치적 전횡을 비판하며 교회의 본질적인 역할과 권력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를 시도했다. 그의 이같은 교회의 구조와 교황의 권위에 도전함으로 인해 그는 파문을 당했다.
개인주의는 근대에 생긴것이다.
중세 이전에는 몽땅 다 집단주의였다 집단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가 없었다. 가족, 친척, 촌락을 벗어나는 것은 죽음과 같았다. 그러나 근대사회는 독립적 자아, 즉 근대적 개인이 만든 것이다. 삶의 태도가 독립적이다.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고 선택해서 살아간다. 국가는 두 가지만 해주면된다. 첫째는 생명을 지키는 것 둘째는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군인복무 규율에 군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듯하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천부적 권리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고 봤다. 전자는 신체의 자유를 의미하고 후자는 소유의 자유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재산권이 없으면 개인이란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반면 공산사회주의는 개인의 재산권이 소멸되면서 개인도 소멸되고 집단 밖에 남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개인주의를 나쁘다고 보는 이유는?
동양에서 개인주의를 나쁘게 보는 이유는 개인주의를 학습하거나 경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죽을 때까지 집단주의 속에서 살아왔다. 이념도, 철학도, 생활도, 교육도 다 집단주의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도 그 가치를 잘 모르고 개인주의의 좋은 면도 이기주의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어차피 태어나면 사회 집단속에서 살기 때문에 궂이 개인주의를 배우려 하지 않고 도외시 하고 있다. 나란 존재의 가치를 집단에 속한 것에서 찾는다. 그러나 개인은 집단 이전에 존재한다. 집단의 부속품이 아니다. 그런 독립적 존재가 모여서 사회를 이룬 것임으로 개인이 실체고 사회는 추상적 개념인 것이다. 개인주의가 잘 발달 된 집단이 건강한 집단이다. 그러나 개인은 없고 집단주의가 주류를 이루면 이는 병든 사회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하고 행동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개인은 없고 공동의 이익이 개인의 삶의 목표 이익으로 가르친다. 곧 전체주의, 공산주의, 파씨즘, 나찌즘, 군국주의가 이런 배경에서 태동했고 이런 사회는 생산적이 아닌 파괴적인 특징을 보인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집단에 의존하고 궁중심리와 문화가 지배함으로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중국 전승절(?)에, 북한 인민군 창군 군사 퍼레이드를 보면 그 속에 개인은 없고 집단만 존재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가 대체로 이러한 개인주의 보다는 집단주의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문화
유럽과 미국은 개인주의적인 철학에 기초한 사회다. 그 배경에는 사적 소유제도가 확립이 되면서 개인주의가 본격적으로 태동되는데 재산이 축적이 되면서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도 굶어 죽지 않게 되었고 그런 독립적으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도시로 모이게 되었는데 도시는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만든 것으로 볼수 있다. 생산을 하고 소비시장을 형성하고 독립적 주체로 시장에 참여하고 생산의 자유, 판매의 자유, 교환의 자유, 계약의 자유, 소유의 자유등 소유권의 인정은 자유의 개념을 확대시켰다. 이에 관여된 인물로,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라는 영국 철학자는 소유권을 천부인권이라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자신이 노동을 통해 자연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결과물은 자연스럽게 그의 소유가 되다고 봤다. 예를 들면 내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면, 그 사과는 내 노동이 결합된 것이므로 내 소유라는 논리다. 따라서 소유권은 천부인권으로서 생명, 자유와 함께 인간에게 본래적으로 주어진 권리로 봤다. 반면 스위스 제네바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단순한 점유만 있을 뿐 소유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장했다. 그는 소유권은 사회적 합의와 제도 속에서 생겨난 인위적 장치이며 불평등의 근원이라 비판했다. 즉, 천부인권이 아니라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다른 주장을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사회가 형성되면서 소유권이 제도화 된다는 점을 인정했다. 즉 사회적 계약이나 법을 통해 소유권이 확립되고 보호된다는 사실에는 견이 같으나 그것이 사회 이전에도 존재했느냐는 질문에 존 로크는 Yes, 루소는 No라 답한 것이다. 그리고 존 로크는 소유권이 자유와 권리의 확장 수단으로 봤고 루소는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의 원인으로 봤다는 점이 결과적으로 다르다.
피렌체 시와 기독교 그리고 개인주의
개인주의의 시작을 1)종교개혁 으로 보는 경향과 2)계몽주의로 부터 라는 견해가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란 도시는 개인주의가 싹트는 중요한 무대였다. 는 오늘날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피렌체시는 토스카나 지방의 주도이며,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유명한 역사적, 예술적 중심지입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과 예술품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곳은 상업과 금융이 발달한 도시국가였고 메디치 가문 같은 강력한 후원자가 있어 예술가 학자들은 후원덕분에 자신의 개성과 창의성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어 개인주의적 문화의 토대가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등 예술 천재들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한편, 피렌체는 15세기 피렌체 공의회(Council of Florece, 1431-1445)가 열렀던 장소로 카톨릭교회가 인정한 중요한 세계공의회 중 하나로 동방교회와 재결합을 논의 했던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도시중 하나다. 15세기 후반에는 도미니코회 수사였던 지롤라모 사보나로라(Girolamo Savonarola 1552-1498)는 피렌체에서 강력핮 종교 개혁운동을 이끌었는데 세속권력과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면서 금욕적인 신정정치를 시도했고 피렌체 시민들의 종교적 열정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는 45세의 나이로 급진적 종교 개혁시도와 교황권에 도전으로 1497년 파문(excommunication) 당하고 파문당한 성직자의 설교는 불법이 되어 그를 제거할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지고 결국 체포당하고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고 이단, 분열주의자, 예언자 사칭등의 죄명으로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에서 교수형 당하고 화형당한후 그의 시신은 재가 되어 아르노강에 뿌려졌다. 그의 개혁은 실패하고 처형당했지만 마르틴 루터, 장 칼뱅 같은 후대 종교 개혁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사라진 후 약 30전 후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종교개혁과 성경번역, 개인주의
개인주의 등장에는 피란체시 처럼 상업이 발달하고소유권이 강화되는 물질적 측면도 있지만 종교개혁이란 정신적 측면에서의 변화도 반드시고려 해야 한다. 그전까지는 카톨릭이라는 하나의 국교만 있었고 그것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카톨릭은 그때나 오늘이나 정치적으로 말하면 절대 왕정, 일종의 독재다. 그에게 비판을 하거나 반기를 드는 것은 파면으로 사회적으로 매장되었다. 당시에 나만의 판단, 선택, 결정권을 갖고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틴루터(Martin Luther1483-1546)는 하나만 있던 카톨릭 교회에 맞서 기독교라는 또 다른 교회를 만들어 성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했다. 또한 루터는 성경을 번역했고 인쇄술의 발달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진리, 비진리에 대한 해석이 종전에 교황과 카톨릭 교회에만 있던 것을 누구든지 스스로 읽고 루터 말이 맞는지 교황말이 맞는지 판단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성경번역 보급은 라틴어로만 된 성경을 일반인도 읽을 수 있는 영적 자유를 가져왔다. 독일어로 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인물은 윌리엄 틴들(William Tynadale, c. 1494~1536)이다. 영어성경의 아버지라 불리는 종교개혁가이자 번역가였던 그는 존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았지만 위클리프와 달리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원문에서 직접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가진다. 그의 번역은 간결하고 힘있는 문체와 풍부한 어휘로 유명하며 새로운 단어와 관용어를 만들었고 그의 번역본은 훗날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KJV)의 90%내용에 반영되었다. 그는 박해를 피해 비밀리에 유럽을 떠 돌며 역대하까지 성경번역을 하다가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체포되어 16개월간 수감되었고 1536년 10월 6일 이단으로 몰려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가 투옥된 성벽의 꼭대기 감옥에서 추위로 고통스러워하며 성주(총독)에게 라틴어 로 기본적인 생필품을 요청하며 편지를 보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머리에 심한 감기로 고통받고 있으니 따뜻한 모자를 보내주세요. 제가 가진 외투는 매우 얇습니다. 각반(Legging)을 덧댈 천 조각도 필요합니다. 낡은 겉옷과 셔츠만 있습니다. "저녁에 등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이 참으로 지루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님의 자비를 간절히 구하오니, 저의 히브리어 성경, 히브리어 문법책, 히브리어 사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그 연구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는 처형될 것을 알았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명에 불타 올랐었다. 그는 교수형에 처해진후 화형당하기 전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주여, 영국왕의 눈을 뜨게 하소서". 놀랍게도 그의 순교 직후 헨리 8세는 영어 성경출판을 공식적으로 허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탐구정신과 개인주의
서양 철학사 중에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Plato BC 427-347)과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84-322)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으나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플라톤은 이상주의(idealism)를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Realism)이자 경험주의(Empiricism)를 대변한다. 플라톤은 이데아(idea)의 세계가 참된 실재이며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는 그림자에 불과 하다고 보았고 그러므로 사유와 관조를 강조하며 영혼은 이데아의 세계를 이미 알고 있고 학습은 망각된 기억을 되찾는 과정(상기설)을 주장했다. 그의 철학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정의, 아름다움, 선)에 중점을 두었고 철학자가 다스리는 이상국가(철인통치)를 주장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감각으로 경험하는 현실세계가 참된 실재이며 이 세계 자체를 탐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감각경험(experience)과 관찰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고 보았다. 그로인해 물리학, 생물학, 논리학 등 현실세계의 구체적인 현상과 사실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정치체계를 분석하여 현실적인 '중산층 중심의 폴리스(도시국가)를 이상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중세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사라져 버리게 되고 암흑천지가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무슬림들이 강성하게 되어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이때 다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읽으면서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산업혁명과 문명이 폭팔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탐구는 그런 의미에서 서양문명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하다. 서양문명은 개인주의와 과학탐구 정신이 바탕인 상태에서 이루어 진것이다. 그러나 이것의 맹점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나중에 부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인본주의로 될 가능성과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관한 마틴루터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의 대칭점
이와 관련하여 기독교 신학자중 두명의 주목할 만한 학자가 있다. 하나는 토마스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 또 한명은 마틴루터(Martin Luther1483-1546)다. 마틴루터는 토마스 아퀴나스 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받아들인것을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신학을 체계화했다. 그는 이성과 신앙이 서로 모순되지 않으며, 이성이 신학의 진리를 뒷받침하는 "신학의 시녀"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자연 이성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연 신학). 그는 성경뿐만 아니라 교회의 오랜 전통과 교황의 권위를 중요한 신앙의 원천으로 인정했다. 그는 인간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았고 인간은 자신의 선을 통해 얼마든지 공을 쌓고 구원받을 수 있다 믿었다., 반면 마르틴 루터는 이성과 철학(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역할을 매우 제한적으로 보거나 비판했다. 루터는 인간의 타락한 이성이 하나님을 온전히 인식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계시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통해서만 알 수 있고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최종 권위라고 주장했다. 이는 95개조 반박문의 핵심 주제 중 하나였다. 마틴루터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로마서 7장에 나오는 바울의 고백이 가장 정확한 것으로 보았다. 결코 스스로 변할 수 없는 타락한 존재가 인간이다는 관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윤리적 부분에서 맹점이라는 것은 인간은 그리스시대 종이나 시민이나 다 욕망의 노예이고 죄의 노예인 것이기 때문에 이는 스스로 공부하고 선을 행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스스로 끊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사도바울과 루터가 주장한 핵심이다. [루터, 생명의 말, 그리스도인의 자유 책참조]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선하게 행동할 수 있는 존재라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설명하나 루터 인간이란 언제든지 자신의 이익과, 행복과, 욕망을 위해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악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존재, 즉, 자연상태 인간은 매우 위험하고 비관적인 상태에 있는 존재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인간의 단면을 잘 설명해주는 영화중에 'Black Swan' 이란 영화가 있는데 선을 상징하는 백조와 악을 상징하는 흑조 역활을 발레자 한사람이 동시에 연기한다는 설정인 것인데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블랙스완이 화이트 스완을 이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란 분이 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란 책에 보면 인간은 도덕적인데 사회가 비도덕적이라 나도 할 수 없이 비도덕이 되었다 말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내면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개인주의는 인본주의로 빠질 수 있다. 이런 대칭점에 대해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착하게 선을 쌓아 도덕적 인간이 될 수도 있지만 욕심과 이기심으로 타락할 수 있는 존재라고 양쪽다 맞다는 입장을 취했다. 따라서 해결이 안된 상태로 남아 있었는데 '국부론'을 지은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가 이에 대한 해답을 제공했다. 그는 '도덕감정론'이란 책에서 일부 언급하고 국부론에서 주장한 내용에 따르면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나 제도로 조직과 시스템을 선하게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인간을 집어 넣으면 인간은 선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봤다. 즉, 해법은 윤리가 아닌 제도에 있다고 봤다.
이기심과 이타심 그리고 개인주의
개인주의(individualism)는 종종 이기주의(eogism)로 오해를 받는다. 보통 우리는 이기심(Selfishness)은 나쁜 것이고 이타심(Altruism)은 좋은 것이라 가르친다. 하지만 러시아계 출신 아인랜드(Ayn Rand, 1905-1982)는 아버지는 약사 출신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 러시아 혁명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을 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녀는 급지적 개인주의와 합리적이기주의를 주창한 대표적인 철학자 이자 소설가인데 그녀는 자신의 철학체계를 '객관주의(Objectivism)이라 명명했다. 그녀는 이를 개인의 삶과 행복을 도덕적 목적으로 보았는데 우리가 보통 교회에서 남을 위해 살라 교육받은 것과는 다르게 이기심도 이타심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인간 이성이 지식의 유일한 수단이자 생존의 기본수단으로 감정이나 신념보다는 이성적 사고를 가장 높은 가치로 보았고 이기주의(합리적 자기 이익 추구Selfishness)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도덕적 목적이며 여기서 이기주의는 타인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 하고 합리적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스스로 행복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단순한 예로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면 나를 위해 하는 것이지 남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지 않냐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심이 당연하고 자기애(self love)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기를 합리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욕망의 또다른 이름임으로 이를 이기심이라 비난하면 안된다. 반면 그렇게 살다보면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러면 박수를 쳐줘야 하지 무조건 이타적으로 살라 강요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집단을 위해 살라는 것, 집단을 위해 봉사하라는 과 같은 메시지를 주는 것이고 그것이 자본주의를 무너트리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보았다. 공산주의는 철저하게 개인을 희생하여 사회를 세워나가는 이데올로기다. 자기가 소련에서 경험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미국에 와보니 개인의 이기심이 오히려 사회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에 관한 철학적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그녀는 개인이란 자신의 삶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 독립적 이고 주권적인 존재로 보았다. 또한 소련의 공산주의 집단주위와 싸우기 위해 개인주의, 반 집단주의를 주장했고 자유방임자본주의라 하여 복지 프로그램이나 부의 재분배는 타인의 노력으로 창출된 것을 강제로 가져가는 것으로 보아 비도덕적이라 여겼다.
개인주의와 성경의 가르침
개인주의에 관한 이러한 그녀의 주장은 성경과 배치될까? 아니라고 본다.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 ' 즉, 제도가 잘 되있으면 남에게도 나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이익이 되는 결과로 돌아온다고 본다. 욕망을 죄악시 하는 분위기는 교회안에 팽배해 있다. 너 십자가를 내려 놓고 따라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지 않았는가? 맞다. 하지만 욕망을 아예 내려 놓을 수는 없다. 금욕주의로 나가는 것은 공산주의와 연계되는 면이 있다. 막스나 레닌이 꿈꾸던 사회는 어떤 인간도 욕망을 추구를 못하게 하는 일종의 금욕주의적인 사회였다. 능력만큼 일하고 서로 필요에 따라 나눠갖는다는 말은 빛좋은 개살구처럼 실제는 각 사람의 욕망을 억제하는 쪽으로 간다. 한 교수님이 공산주의를 교실에서 실험했다고 한다. 이번 부터 공산주의로 모두가 잘 살도록 시험점수를 평균내서 주겠다고 했다. 한 학기가 끝나고 A+을 받은 학생도 F를 받은 학생도 모두 평균을 내서 B+로 성적을 배분했다. 다음학기에는 A+받은 학생도 F받은 학생도 내가 왜 공부해? 안해도 주는데 결국 모두가 공부를 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개인주의가 두가지 요소가 성경적이라고 본다. 첫째는 생각의 자유(사상의 자유 freedom of thought, 신념의 자유 freedom of belief)다. 하나님은 인간을 모두 다르게 창조하셨다. 단 한명도 똑같은 인간이 없다. 심지어 쌍둥이도 말이다. 생긴 것은 비슷해도 생각은 다 다르다.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의심한다. 데카르트가 말했듯이 인간이 각자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그런데 공산주의 처럼 집단이 제시해 준 것처럼만 사고해야 한다는 이런 로보트 같은 인간을 공교육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다. 이는 인간의 천부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둘째는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ach, freedom of opinion)다. 사상의 자유는 주관적 생각의 자유다. 이는 말뿐만 아니라 그림, 시, 영화등 각 종 문화적 활동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서로 다른 생각을 말하다 보면 왜 다르지 따져보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토론이다. 따라서 생각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생각이 다른 사람과 토론할 수 있어야 하고 토론을 통해 아, 내가 잘못생각하고 있었네.. 이 말은 저 분의 말이 맞네 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잘못된 주관적 정보를 객관화 해서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개인주의는 사상의 자유, 주관성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되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통해 의견을 주고 받고 공통분모를 확인하면서 즉 표현의 자유를 통해 객관성으로 나아가면서 사회통합을 이루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회적 계약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와 찰리커크 암살
자유민주주의란 말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된 말로서 자유라는 이념을 정확히 지키겠다는 의미다. 개인주의는 정치적 이념이 아니지만 자유주의는 개인주의를 정치적 이념으로 만든 것으로 본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5.18에 대해 학문적으로 어떤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연구 마저도 법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이니 과연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전두환 회고록도 출판이 금지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일성 회고록은 되고 전두환 회고록은 안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 수준이다.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입에 자갈을 물리는, 일종의 함구령(緘口令 Gag order)을 내려 처벌한다. 비단 법원 뿐만 아니라 일종의 사이버 공간에서도 굉장히 폭력적인 방법으로 재갈을 물리고 있다. 상대방 욕설은 기본, 명예회손으로 고소, 고발을 남발하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더러워서 말을 안한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찰리 커크는 대학의 토론문화를 부활시켰다. 그 전까지 대학은 말을 못하게 했다. 인종차별주의(racism)다, 호모포빅(homophobic, 호모포비아(Homophobia: 동성애, 동성애자인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태도, 감정, 두려움, 혐오증)를 가진 사람, 집단)이라며 비난하니 아무도 말을 못했었다. 그런데 찰리커크는 켐퍼스에서 Gag order에 대해 자꾸 공개 토론을 벌였다. 그러자 좌파진영에서는 찰리커크를 극우(far righter)로 비난했다. 또한 파씨스트다, 나찌와 같이 선동한다 등 욕을 하고 난도질을 해댔다. 그것을 미디어에서 부터 떠들며 선동질을 해댔다. 로버트 로빈슨은 찰리커크를 파씨스트로 봤다. 그래서 트랜스 잰더 자기 여친과 에게 'some hate can not be negotiated out' 말하며 어떤 혐오는 더이상 협상될 수 없다고 말했다. 황당한 것은 자신이 본회퍼 목사처럼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듯이 찰리커크를 암살하려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미 언론의 책임이 크다. 그만큼 나찌다, 파씨스트다 말하니 그를 죽이는 것이 justice라 생각한 것이다. 인류를 위한 자기의 헌신이라 생각하고 십자가를 지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에게는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없고 그저 미디어가 들려주는 것이 자기 였고 그 속에 갖혀 잘못된 판단으로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그만큼 미국사회가 병든 것이다. 원래 미국은 개인주의가 잘 뿌리 내린 사회였으나 이제는 집단주의적 문화가 많이 스며 든 것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PC주의(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DER(다양성, 공평성, 포용성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로 소수 집단의 권리와 감수성을 존중하는데 촛점을 두고 특정집단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언어 사용을 검열하고 집단의 규범을 따르도록 강요하고 있다. 또한 차별성의 정치학(Politic of difference)이라 하여 사회 내 다양한 집단(성별, 인종(흑인, 남미, 아랍무슬, 계층, 성적 지향 등)의 고유한 정체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정치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보편적 평등)을 넘어, 각 집단이 역사적으로 겪어온 차별과 독특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차별화된 정체성'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며 집단적 정치세력화를 추구해왔다. 찰리커크의 죽음은 정치, 종교, 문화적 순교를 했다고 생각하며 미국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보고 미국 사회가 여기까지 왔구나, 미디어도 이렇게 까지 자기들의 뉴스로 사람이 잘못될 수 있구나, 깨닫기 시작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발전과 대한민국에서 개인주의 정착
경제가 발전하고 시장이 커지기 시작하면 개인주의가 발달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경제는 성장했는데 개인주의는 발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보면 개인보다는 국가가 주도하여 경제를 발전시켜 왔던 측면이 많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그런것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개인주의를 발전시킬 기회가 별로 없었다. 따라서 개인이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고 그런 자들이 국회로 들어가 제도를 만들어 내질 못했다. 한가지 다행인것은 1인당 국민소득 3000에서 6000불 이상에서는 민주주의가 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이것을 달성한 견고한 경제성장을 이룩했기에 그동안 경제개발 과정에서 생략된 개인주의 철학을 좀더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디딤돌(food stone)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개인주의를 어떻게 한국에 보다 효과적으로 정착시킬까? 첫째, 집단주의의 잘못된 면을 폭로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집단주의의 병폐를 당연한 듯 무관심해 왔다. 하지만 개인주의를 홍보하는 것보다 집단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야 한다. 둘째로 자라는 세대를 위한 교육이 필요한데 그들에게 '너는 세상에 둘도 없는 매우 독특한 존재임으로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보고 미래의 삶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노력해서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그런 삶의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집단에 묻혀 집단의 부속품으로 살아가기 보다 속한 집단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가르친는 것이다. 자녀들이 자신만의 기준, 생각, 윤리의 원칙, 행동을 스스로 정해서 살도록 해야 한다. 그냥 마트에 다른 사이다 환타는 없이 오직 코카콜라만 존재하듯 남들과 똑같은 획일화된 개인을 만들면 안된다. 셋째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면 개인주의 미국과 집단주의 중국 사이에 끼어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능력도 힘도 없으면서 양 거대국을 중재한다는 태도는 현명하지 않다. 트럼프와 회담하면서 중국 전승절에 국회의장을 보내는 양다리 정책은 가랭이가 찢어 질 수 있다 분명한 노선을 취해야 한다. 반미 하고 미군 철수를 하면 결국 에치슨 라인 제외로 6.25를 맞았던 것처럼 모두가 원치 않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재명 정권은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호소하며 집단주의로 반미운동을 하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때도 반일운동했던 것도 집단주의의 한 형태였다. 트럼프는 경제적 압박을 강력하게 지속적으로 한국을 압박하여 한국인들이 깨어나길 도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들에게 우리가 알려줘야 할 내용은 자녀들이 보는 책, 동화, 그림, 영화, 드라마, 소설등을 통해서 집단주의로 가는 것을 경계하고 그들이 집단의 부속품이 아닌 독립적 자주적 주체로서 사회집단을 만들어 내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참고: 노태정, 김철홍 신학교수 대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