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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느리게 무너지는 신형. 천천히 다리가 꺾이고 차가운 땅에 몸을 누이는 중년사내
의 얼굴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런 사내의 이마 정중앙
에는 눈으로 살피기에도 힘든 가는 세침(細針)이 박혀 있었다.
“쯧쯧, 그게 당가가 자랑하는 만천화우인 모양인데… 실망이야. 고작 그 정도무
공이 무림의 일절(一絶)로 불렸다니 말이야. 무턱대고 암기만 많으면 최고인줄
아나본데 하나를 날려도 상대에게 위협을 줘야지. 안 그런가?”
사내를 쓰러뜨린 노인은 자신의 몸에 박힌 온갖 종류의 암기들을 툭툭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그의 손짓에 촘촘히 박혀 있는 암기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니
그것들은 노인에게 조금의 상처도 입히지 못한 모양이었다.
“…….”
그 모양을 보던 사내, 당문천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몸에 느껴지는 고통과
죽음을 앞둔 공포보다 더욱 그를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선조들이 피땀으로 이룩한
당가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만천화우, 비록
암왕이란 이름을 얻은 아버지 당천호가 펼치는 것에 비해 위력이 현저히 떨어지
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금껏 당가를 빛내던 만천화우가 이렇게 처참하게 부서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그 한수로 자신은 목숨을 잃게 되었고 당
가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죄…송합니다. 아버님…….’
당문천의 고개가 힘없이 떨구어졌다. 단 한번의 실수로 조부가 손녀를 죽이는 광
경을 보아야 했고 자신은 가주의 직위에서 내려와 실추된 세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당문천. 결국 그는 그렇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자, 다음은 누구냐?”
당문천을 단 하나의 침으로 절명시킨 생사노괴 임종대는 경악에 찬 눈으로 자신
을 바라보는 정도맹의 인물들을 돌아보았다. 평범한 얼굴, 입가에 살짝 지은 웃
음이 인상 좋은 노인네로 보였지만 그를 바라보는 정도맹의 사람들은 절대 그렇
지 못했다. 그 웃음 속에서 벌써 얼마의 목숨이 사라졌는가! 암기를 제법 쓴다하
는 당가의 무인들이 속절없이 쓰러졌고 결국 물러나기는 하였지만 얼마 전만 하
더라도 당가의 가주로 있던 당문천마저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그
들이 바라보는 생사노괴의 미소는 염라대왕(閻羅大王)의 미소나 마찬가지였다.
누구하나 덤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원로원의 원로들이 움직이는 곳에서는 이와 동일한 일들이 벌어졌다. 궁사흔의
병력에 힘을 보탠 원로들은 그리 바삐 움직이지도 또 전원이 나서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였을 때는 반드시 정도맹의 핵심 고수들이 목숨을 잃었다. 벌
써 각 문파의 장로들은 물론이고 이번 싸움을 대비해 모셔온 은거기인들이 상당수
목숨을 잃었다. 이러니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정도맹
의 무인들의 표정에는 공포가 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못했다.
“결국 당공도 목숨을 잃고 말았소이다. 이를 어찌해야 할지.”
막 당문천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석부성이 절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곽무웅의
표정도 심각하게 굳어졌다. 당문천이라면 최소 자신들의 아래가 아니었다. 그런
데도 저리 쉽게 목숨을 잃는 것을 감안하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노인들의 상대
가 될 수 없었다. 이들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던 전대 개방 원로인 독목개(獨目?
) 악기봉(岳奇峯) 또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강남총타를 치기 위해 길을 떠난
황충의 간곡한 부탁으로 그를 대신하여 잠시 동안 개방을 이끌고 있었지만 상황
은 몹시 여의치 않았다. 생각도 못한 원로원 고수들의 출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이 누구던가! 그 이름만으로 강호를 숨죽이게 했던
고수들이 아닌가!
열두 개의 비침을 날리며 기행을 일삼던 생사괴의 임종대, 밤의 황제라던 무불살
송무, 구양풍 이전에 소림에 단신으로 도전해 수많은 화제를 뿌렸던 천축(天竺)
출신의 승려 혈승(血僧) 유영(流影), 너무 평범한 얼굴을 지녔지만 손을 쓰기 시
작하면 황제가 와도 못 말린다는 전사옹(田舍翁) 탕문기(蕩紋夔), 웃으면서 적을
쓰러뜨린다는 소면호(笑面虎) 조희운(曺熹雲) 등 하나같이 일세를 풍미했던 짝을찾
을 수 없었던 고수들. 지금은 세인들의 기억에 아련한 전설로만 남은 전대의 고
수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악기봉은 공포에 몸을 떨었다.
“강호 오왕 중 궁왕을 비롯한 검왕, 권왕이 패천궁의 원로인줄은 알았지만저들마
저 패천궁에 있었을 줄이야! 결국 소문이 사실이었어. 구양풍에게 패하고 은거했
다는 항간에 떠돌던 소문이. 그렇지만 설마 이들이 패천궁에 몸을 의탁했을 줄은
그 누가 생각 했겠는가… 허허, 이들을 어찌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그 당시에도
이들과 싸울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전무했거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악기봉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리석었네. 아니 저들을 제때에 알아보지 못한 내가 어리석었어. 저들이
처음 전면에 나설 때 바로 알아보았다면 이렇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을.수
없이 많은 고수가 죽고 나서야 알아보았으니…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닌 것 같네.
이대로 가다간 고수란 고수는 물론이고 저들의 공세에도 배겨나지 못할 것이야.
다행이 현재는 생사괴의와 무불살, 권왕만이 나서고 있어 어찌어찌 막고는 있다
지만 지켜보고 있는 다른 인물들마저 본격적으로 나서면 상황이 급변할 걸세.그러
기 전에 뒤로 물러나 전력을 가다듬는 것이 좋을 것이야.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벌써 세 번째 퇴각입니다. 더 이상물러나
면 다시는 회복하지 못합니다.”
목인영이 핏대를 올리며 반발했다.
“그럼 자네가 저들을 막아보게. 애꿎은 제자들의 목숨만 잃게 하지 말고. 자네가
저들 중 한사람의 발이라도 묶을 수 있다면 나도 물러나자는 말을 하지 않겠네.”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목인영의 태도에 화가난 악기봉이 차디찬 음성으
로 쏘아붙이자 얼굴이 벌게진 목인영은 아무소리도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뒤로 물러난다고 해도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들을 막을 고수가있
을런지요? 그나마 검성어르신과 암왕께서도 이곳에 계시지 않아서…….”
곽무웅의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겠지. 하나 지난날 구양풍이 소림에 도전을 했을 때도 수호신승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네. 모르긴 몰라도 아직 우리가 모르는
많은 기인인사들이 몸을 드러내지 않고 계실 것이네.”
“그리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지금은 저들을 상대할 방법이 없으니. 우선은 전력을보전
하며 훗날을 기약해야 할 것이야. 당장 맹주께서도 군사와 함께 이리로 온다고
하지 않는가? 최소한 그때까지 만이라도 피해를 최소한으로 해야 된다고 보네.”
더 이상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정도맹을 이끌고 있는 수뇌들 또한 악기봉의 생
각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호북성의 완벽한 수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가물러나려니
선뜻 결정을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결정을 한 이상 조금이라도 머뭇거
릴 필요는 없었다.
“흠, 저들이 물러나는군. 태상장로.”
“그렇습니다. 물러나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비록 싸움은 팽팽하여 지금까지는
어느 한쪽이 우세를 점하진 못했지만 원로님들에 의해 상당수의 고수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나 같이 중요한 자리에서 일반 무인들을 이끄는 자들이지요. 시간
이 지나면 자연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궁사흔이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겠지. 나를 비롯하여 오직 한번 구양 궁주에게만 패했던 사람들이야. 구양
궁주가 누군가? 그 당시 천하제일인이 아니던가. 저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누가
있을까?”
궁왕이 싸움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
가 그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듯 했다.
“허! 아직도 인가? 그나저나 저 젊은이도 대단하군. 권왕이 많이 봐주는 것같기
도 하지만 대단한 투지야.”
문득 시선을 움직이던 궁왕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런 그의 눈에권왕
과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호천단의 단주 이성진의 모습이 들어왔다. 상당한
부상을 당한 듯 검을 움직이는 그의 행동은 한없이 굼뜨기만 했다.
“이제 그만하도록 해라. 비록 적이라지만 너는 죽이기엔 아까운 인물이구나! 그쯤
했으면 되었다.”
권왕은 온 몸을 피로 도배를 하면서도 조금도 물러섬이 없이 자신에게 돌진하는
이성진을 바라보며 궁왕 못지않게 감탄을 하고 있었다. 각 문파의 장문인과 어른
들을 압도하는 실력을 지닌 원로원의 노고수를 상대로 처절한 혈전을 펼치는이성진
! 지금 그는 어째서 그가 투귀(鬪鬼)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 확실히 증명을
하고 있었다. 물론 궁왕의 말대로 권왕이 손속에 인정을 두고 있는 것은 틀림없
는 사실이지만 권왕과 싸우는 그의 실력은 강호에 알려진 것과 비교할 바가 아니
었다. 검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는 전신이 무기였다. 검을 휘둘다가도 기회가
생기면 다리로, 팔로, 어깨로, 몸통으로 온 몸을 이용해 권왕을 공격했다. 심지어
가슴을 내주고 머리로 들이받는 무모함에 공격을 감행했던 권왕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상대의 기를 질리게 만드는투지와
수 없이 많은 전쟁을 치루며 익힌 실전 무공도 잠시 권왕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이미 두 팔과 한쪽 다리는 부러진 지 오래였고, 여러 차례 공격을
허용한 전신의 뼈 또한 성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성진은 초인적인 인내로
부러진 팔로 검을 부여잡고 성한 다리 한쪽을 이용하여 공격을 하고 있었다.
“허허, 정신을 잃고도 몸을 움직이고 있었더란 말이냐?”
흐느적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성진이 이미 정신을 잃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권왕이 또 한번 탄성을 내뱉으며 힘이라고는 전혀 실리지 않은 공격을 슬쩍 피
하며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 움직임은 조금도 강맹하지 않았고 목숨을 노리
는 것도 아니었다. 이성진의 상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권왕이 그의 수
혈을 점한 것이었다. 수혈을 점혈 당한 이성진의 몸이 천천히 무너져 내리자 권
왕이 손을 뻗어 그를 안아 들었다. 그리곤 정도맹의 무인들이 대부분 퇴각했음에
도 불구하고 홀로 남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한 사내에게 걸어갔다.
“동료들이 물러가고 있는데 너는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더구나. 너와 이자는 어떤
관계더냐?”
“우리는 정도맹의 주력 호천단의 일원이오.”
호천단의 부대주 하지무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대꾸했다.
“그래, 이름은 들었다. 이자가 호천단의 단주더냐?”
“그렇소. 그가 호천단 단주인 투귀 이성진이오.”
“투귀라…과연 잘 어울리는 별호군.”
고개를 끄덕이던 권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누구냐?”
“부대주 하지무요.”
하지무의 태도는 시종일관 당당했다. 괘씸하면서도 한편 그 기개가 마음에 들은
권왕은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들고 있던 이성진을 넘겨주었다. 축 늘어져 정신을
잃은 이성진을 재빨리 안은 하지무가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맙소.”
“난 그저 정신을 잃으면서까지 내게 덤비던 이 녀석의 용기와 그런 자신의 상관
을 끝까지 지켜보는 네가 마음에 들어 그리 한 것이니 그리 고마워 할 것은 없다.
하지만…….”
말을 하던 권왕의 어깨가 순간 움찔 하는 것 같더니 하지무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비명은 지르지 않았지만 하지무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것으로 보아 상당한
고통이 있는 듯 했다.
“나이도 어린놈이 까마득한 선배를 보고 ‘이랬소, 저랬소’ 라니… 내 이번만은참
고 가벼운 징계로 넘어가지만 다음번엔 어림도 없을 줄 알거라. 그럼 이만 가보
거라.”
“…….”
권왕이 어떻게 자신의 옆구리를 가격했는지 전혀 알아보지 못한 하지무는 고통
속에서도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 누구도 권왕이 돌려보내는 그들을 가로막지 못
했다. 힘들게 몸을 움직이는 하지무를 바라보던 권왕도 몸을 돌려 다른 원로들에
게 돌아갔다.
“쯧쯧, 머가 그리 즐거워 그리 웃는 것인가? 오랜만에 몸을 푸니 좋은모양이군.”
싱글벙글 웃으며 돌아오는 권왕을 향해 궁왕이 대뜸 시비를 걸었다.
“좋지. 암! 좋고말고. 자네말대로야. 오랜만에 몸을 풀어서 좋고 또 지난날의나와
성격이 비슷하던 젊은이를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네.”
“하긴, 용기인지 어리석은 발악인지는 모르나 죽음을 무릅쓰고 덤비는 그자의모
습이 자네의 성격과 비슷은 하더군. 앞뒤 가리지 않는.”
계속해서 이성진의 모습을 지켜보던 궁왕도 인정을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네. 실로 오랜만에 그럴듯한 무인을 만났어.무인이
라면 자고로 그래야지. 최소한 그 정도의 투지와 용기, 끈질김, 그리고 불굴의 정
신력은 지녀야 무인답지. 요즘은 어찌 된 것이 이놈이나 저놈이나 그저 세력 다툼
에 눈이 멀어 쓸데없는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즐겁게 말을 하던 권왕이 궁사흔을 비롯하여 자리에 모인 수뇌들을 바라보며 안
색을 찌푸렸다. 일순 안색을 붉히는 사람들. 그들은 권왕이 말하는 이놈과 저놈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지켰다. 기분
은 나빴지만 권왕을 상대로 그것을 드러내놓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없었다.
“헛!”
수하들의 길을 재촉하던 적성은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화살에 대경실색하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화살은 간발의 차이로 왼쪽 볼을 스치듯 지나가며 상처
투성이의 얼굴에 또 하나의 상처를 늘려 놓았다. 하지만 피한 것은 오직 적
성뿐이었다. 연이어 들려오는 비명성. 순식간에 서너 명의 수하들이 땅을 뒹굴었
다. 하나같이 복부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는 그들은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적이다. 좌우를 경계하며 공격에 대비하랏!”
단번에 사태를 파악한 적성이 재빨리 나무 뒤로 몸을 숨기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가 소리치기도 전에 이미 대부분의 대원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엄폐물을
찾아 몸을 날리고 있었다.
‘역시 대단하군. 정말 쉽지는 않겠어.’
동료들이 쓰러지고 위험이 감지되자마자 저토록 재빨리 몸을 움직이는 패천수
호대의 대원들을 바라보고 있던 소문의 눈에 은근한 경탄의 빛이 떠올랐다.
그들과 함께 패천궁 최고의 정예로 일컬어지는 혈참마대와도 이미 싸움을 해
보았지만 저 정도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보여주지는 못했었다.
‘역시 환야 형님의 말대로 혈참마대와 비교할 바가 아니군.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야 없지.’
입술을 지그시 깨문 소문은 다시 한번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새벽녘 어둠을
등에 업고 빠르게 날아간 화살은 수풀 사이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던 한 대원의
등허리에 그대로 박혀 버렸다.
“크헉!”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사내. 몸을 숨기고 있다지만 혹시 몰라 극도로 조심을
하고 있었건만 갑자기 찾아오는 이 고통은 무엇이란 말인가! 고통을 참고 등
허리에 박힌 화살을 분지른 사내는 어째서 이 빌어먹을 화살이 정면이 아닌
엉뚱한 하늘에서 내리 박혔는지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문의 손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때마다 숲에는 비명성이 울려 퍼
졌다. 철궁을 떠난 화살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수풀에 숨어 있는 자도 바
위나 나무를 방패막이 삼아 고개만 살짝 내밀고 있는 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하늘 높이 화살을 날린 소문의 솜씨,
어려서부터 포두이술에 매달린 그의 화살 정확도는 이제 극에 이르고 있었다.
더구나 살짝 살짝 이기어시의 묘용도 응용을 하니 화살은 단 한발의 실패
없이 적에게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좋아, 좋아! 오랜만에 사용을 했는데도 잘 들어가는군.’
성공한 화살을 바라보던 소문은 내심 득의양양해 했다. 그러나 그렇게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또 하나의 화살을 시위에 재고 있던
소문은 갑자기 밀려드는 살기에 흠칫 몸을 떨었다.
‘이런, 나도 모르게 그만…….’
소문이 오랜만에 사용한 포두이술이 생각보다 잘 먹혀들어가는 기쁨에 잠시 주
의가 흐트러진 사이 몇 명의 인물이 그의 근처까지 다가왔다. 어느 정도까지
접근한 그들은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소문과의 거리는 어림잡아 십여 장, 바
로 앞에 이르렀어도 그들의 몸놀림으론 소문의 옷깃도 잡지 못할 것이지만 문
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공격이 시작됨과 동시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나
머지 대원들도 모조리 일어나 소문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 상황에
서도 일부의 대원들은 소문의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해 좌우로 이동을 하며 포
위를 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자신의 무공에 얼마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도
당황하기 마련. 그러나 상대는 소문이었다. 그가 보인 반응이라곤 자신의 위
치가 그렇게 빨리 발견되었다는 데에 대한 놀람과 그만큼 자신에게 접근할 동
안 신경을 쓰지 않은 자신의 부주의에 대한 대가로 날리려던 화살로 자신의
머리를 두 차례 두드린 것뿐이었다.
“나를 잡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입 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짓는 미소와 자신을 발견하고 일을 번거롭게 만든
대원들에 대한 가벼운 응징차원으로 날린 무영시. 가장 앞장서 소문을 공격하던
대원들은 뭔가를 알아채고 방비를 하려했지만 극도로 긴장을 하고 대비해도
막기 힘든 무영시를 온 힘을 다해 경공을 펼치고 있는 그들이 막아내기란 요
원한 일이었다. 한 걸음에 이삼 장씩 뛰어오던 사내들이 그대로 땅에 꼬꾸라
지자 소문은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쫓아라. 여기서 놓치면 안 된다.”
방금 소문의 무영시에 쓰러진 대원들의 곁에서 그들과 함께 소문을 쫓던 희탁
강은 마음 한구석에서 밀려오는 한기를 애써 누르며 주춤거리는 대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적진을 향해 질주하는 용맹한 장수마냥 소문을 뒤쫓았다
. 그러나 소문을 잡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숲이 우거지고 험해 수적인 우위를 보지 못하고 있어. 피해는 계속 늘고 있는
데.”
적성은 번번이 소문을 놓치는 대원들을 바라보며 속을 끓이고 있었다. 피해를
무릅쓰고 포위망 안에 가두면 상대는 어떻게 하든지 포위망에서 벗어나버렸다.
그것은 수하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상대가 그만큼 훌륭한 것도 있었고 결정
적으로 주변의 험한 지형이 포위망을 견고히 하는 것을 방해했다. 더구나 상대
는 그런 지형을 교묘히 이용하며 세상에 다시보기 어려운 경공을 발휘하며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화살을 날리는 것을 멈추지 않으니…
패천수호대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궁귀인 모양이야.”
“그렇겠지. 저렇게 빠른 몸놀림은 일찍이 본적이 없어. 저렇듯 쫓기며 날리는
화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니 강호에 퍼진 그의 명성이 헛소문만은
아닌 모양이군. 저런 실력을 지녔으면서도 왜 지난번에는 그런 모습을 보였는
지 모르겠네. 그때는 소문만 무성한 삼류 건달로 보였는데 말이지.”
적성은 혁종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어쩌면 그때는 정말 우리와 싸울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르지. 물론 지금은 상
황이 달라졌지만.”
적성은 고개를 돌려 혁종을 바라보았다. 뭔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말을 들었
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달라지다니?”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인데 저자는 아무래도 시간을 끄는 것 같아.”
“시간이라니? 혹 도주하는 정도맹을 돕기 위해?”
“그렇지. 강남총타를 치는 데에는 보이지 않던 저자가 나선 것은 도망치는 그
들을 돕기 위해서겠지. 그리고 또 하나 자네는 뭔가 이상한 것이 느껴지지 않
는가?”
적성은 혁종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자가 있는 곳과 우리가 있는 곳을 살펴보게. 처음의 위치가 바뀐 것 같지
않나? 저자는 틀림없이 우리보다 서쪽에서 공격을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동쪽으로 가 있네.”
“그 말은!”
뭔가를 알아차렸다는 듯 적성이 눈이 번쩍였다.
“그렇지. 그는 지금 두 마리 토끼를 노리고 있어. 하나는 도주하는 정도맹의
정예를 위해 시간을 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이 산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네. 제 아무리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 하여도 우리에게
포위되어서 살아남을 인간이 있다고 보는가? 애당초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거야. 저처럼 빠른 경공을 지닌 자를 이리 험한 산에서 잡기란 몹시
힘든 것이네. 또한 이런 지세(地勢)는 활을 사용하기엔 그다지 좋지 않지만
그의 화살을 보게. 오히려 더욱 춤을 추지 않는가? 어쩌면 그에겐 이곳이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일 수도 있네. 그것을 알기에 저자는 포위되는 척 하면
서 우리를 점점 더 숲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아.”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군.”
적의 철저한 심리전에 속았다는 분함보다는 압도적인 전력을 지니고도 홀로 날
뛰는 적을 한참동안이나 어쩌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앞선 적성은 무거운 음
성으로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최대한의 속도로 숲을 빠져나간다. 방향은 서쪽. 후미(後尾)에서 따
라오는 대원들은 최대한 적의 공격을 막도록.”
적성의 명은 신속하게 전달되었고 맹렬하게 소문을 추격하던 패천수호대의 대
원들은 그 방향을 틀어 서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소문이었다.
“이런, 저놈들이 눈치를 챘구나!”
화살에 쓰러지면서도 악착같이 자신을 따라오던 패천수호대가 갑자기 몸을 돌
리자 소문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의 빛이 떠올랐다. 이곳은 자신이 싸우기에는
최적의 장소. 그러나 적들도 이제 그것을 간파한 모양이었다. 일순 걸음을 멈
춘 소문은 심한 갈등에 사로잡혔다. 정도맹의 무인들이 아무리 빨리 도망을
쳤다 해도 이들의 걸음엔 어림도 없었다. 그렇다고 산을 벗어나 평지에서 싸
우기엔 패천수호대가 지닌 힘이 너무나 강력했다. 또한 평지에서 싸운다면 포
위를 당하는 것은 불문가지. 언제까지나 무영시로만 상대를 할 수는 없을 것이
었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까지는 확실히 몸을 피할 수 있다는 자신
감과 여유가 있어 적당히 부상을 입히는 정도에 그쳤지만 검을 들고 싸운다면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대를 철저하게 괴멸시킬 수밖에 없었다.
“후~ 어쩐다…….”
잠시 동안 고민을 하던 소문. 하지만 이미 결정은 내려져 있었다.
“예상대로군. 놈! 이제 네놈의 명줄이 다하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적성은 자신들을 추격하며 화살을 퍼부어 대는 소문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어느새 그의 앞에는 우거졌던 풀숲과 나무들이 사라지고 넓은 평야지대가 나
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해가 예상외로 너무 커. 저자도 독하게 마음을 먹었는지 손속이 거
세어졌네. 많은 이들이 죽고 있어.”
혁종이 연이어 들려오는 비명을 의식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다 끝났네. 여기서는 저렇게 날뛰지는 못하겠지.”
어느 정도 산을 벗어났다고 생각한 적성이 걸음을 멈추자 그를 따르던 나머지
대원들의 걸음도 자연적으로 멈추어졌다. 숲의 언저리에는 아직도 경계를 하며
온몸으로 화살을 막아내고 있는 대원들이 몇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마지막
단발마를 끝으로 더 이상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끝에 철궁을 들
고 천천히 숲을 빠져나오는 소문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네놈이었군.”
예상은 했지만 막 비추기 시작한 햇살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낸 소문이 지난날
자신들이 쫓던 사람과 동일인임을 알게 된 적성의 나직한 음성에선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반면에 소문의 대답은 너무나 천연덕스러운 것이었다.
“그렇게 되었소이다.”
“설마 이번에도 겁을 먹고 꽁무니를 빼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 그래도 상관은
없다. 네놈이 아니라도 우리가 빚을 받아낼 상대는 충분히 있으니까.”
정도맹의 무인들이 도망을 치고 있을 방향을 은근 슬쩍 바라본 적성이 더욱 진
한 살소를 지었다.
“네놈의 걸음이 빠른 것 또한 알고 있다. 우리와 싸우다 언제든지 도망을 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리 되면 그 즉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단 약속을 하지. 네놈이 끝까지 물러나지 않고 우리와 싸운다
면 따로 병력을 돌려 저들을 추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네놈이 목숨을
잃은 다음은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후후,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이오?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오. 당신들
에겐 자신이 있을지 모르지만 병력을 나눈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될 것 같소?
어쨌든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나 또한 싸움을 하는 도중에 도망을 가는 일은 없
을 것이오. 물론 나를 잡는 것은 그대들의 능력이겠지만.”
어느새 패천수호대의 포위망에 갇혀 버린 소문의 태도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그런 소문의 자세에 뭔가 모르게 자격지심을 느낀 적성은 거친 음성으로 대꾸
했다.
“흥, 걱정하지 말고 살 궁리나 하여라.”
그 말이 신호인 냥 무수한 공격이 소문에게 쏟아져 들었다. 소문 또한 다가오
는 공격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활시위를 당겼다. 단숨에 두 명의 대원을 쓰러
뜨린 소문은 그들의 머리를 넘어 포위망을 빠져나가려고 하였다. 궁을 들고
싸우는 소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적과의 거리였다. 아무리 강력한 궁술
을 지닌 사람도 무수한 적을, 그것도 근접한 거리에서 만나게 되면 절대적으
로 불리한 상황이 되 버리고 만다. 그것은 소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
다. 소문은 어떻게든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패천수호대
의 능력은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니었다. 소문이 움직이며 같이 따라 움직이고
상처를 입거나 목숨을 잃어 자리에서 이탈하면 거의 동시에 다른 대원이 자리
를 채웠다. 또한 소문의 주변을 이중 삼중으로 방비를 하며 그가 포위망을
벗어나는 일은 없게 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비록 소문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포위망의 간격을 제법 벌어 놓았지만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죽음을 두
려워하지 않는 적의 포위망은 점점 견고해 졌고 그러면서도 소문의 움직임에
조금의 틈이라도 만들기 위해 몇몇의 무인들이 악착같이 덤벼들었다.
“크악!”
“컥!”
그러나 그들이 소문에게 다가가는 것 또한 요원한 일이었다. 가까운 거리기에
소문이 날리는 무영시는 더욱 정확하게 명중을 하였다. 소문의 시위가 한번씩
튕겨질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패천수호대의 무인들. 이미 손에서
인정을 거둔 소문이 날리는 무영시의 위력은 실로 끔찍했다. 스치기만 해도 피
부가 찢기는 것은 물론이고 뼈가 으스러졌다. 하지만 공격보다는 수비에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소문이기에 당겨지는 활시위의 횟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소문에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틱!
‘틱?’
의당 시위를 당기면 경쾌하고도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야 하건만 이 무슨 소리
던가! 더구나 의당 자신에게 막 검을 날리는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야
하건만 오히려 기세 좋게 검을 휘둘러 목을 노리니…….
“이런, 젠장!”
영문을 몰라 멍청히 서 있다가 하마터면 목이 잘릴 뻔한 위기를 간발의 차이로
벗어난 소문은 가운데가 끊어져 양쪽으로 늘어져 있는 시위를 바라보며 욕지
거리를 해댔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보통의 화살을
날리는 활도 적절한 시기가 오면 그 시위를 갈아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 더구나 소문이 사용하는 무영시를 감당할 활시위는 좀처럼 구하기가 힘들었
다. 그나마 과거 소문의 철궁을 보관하고 있던 남궁혜가 철궁의 낡은 활시위
를 교체하던 중 그것이 질기기가 세상에 으뜸이라는 천잠사(天蠶絲)를 엮어서
만든 것임을 알아보고 그와 같은 활시위를 구하고자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노
력을 하지 않고 평범한 활시위로 교체를 했다면 벌써 수십 번을 끊어지고도 남
음이 있었다. 물론 자신이 쓰던 철궁의 시위가 천잠사로 만든 것인지 그냥
명주실로 만든 것인지, 또한 천잠사로 만든 활시위를 구하기 위해 남궁혜가 들
인 공이 얼마인지 알리 없는 소문은 싸움 도중 갑자기 끊어지고만 활시위에 화가 날뿐이었다.
“크하하하!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구나.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말이 지금의 네
놈과 딱 들어맞는 말이 되었다.”
주변이 떠나가라 웃음을 짓다 멈추고 천천히 소문에게 접근하는 희탁강의 입가
가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동안 당했던 것을 단숨에 갚아주겠다는 의지로 이를
악물자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과연 그럴까?”
싸늘한 소문의 음성. 희탁강의 웃음은 곧 경악으로 바뀌고 말았다. 아니,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희탁강!”
깜짝 놀란 적성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지만 흔적도 없이 날아간 그의 머
리에선 그 어떤 음성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빨이 없다고 해도 호랑이는 호랑이야.”
자신에게 다가오던 희탁강의 머리를 단숨에 날려버린 소문은 담담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그런 그의 손엔 어느새 일자로 곧게 펴진 철궁이 검인 냥 들려있
었다.
“네, 네놈이!”
감당키 힘든 분노에 몸을 떤 적성이 소문을 향해 몸을 날리려는 찰나, 곁에
있던 혁종은 재빨리 그의 몸을 잡았다.
“자네는 우리의 우두머리. 아직은 아니야. 뭣들 하느냐! 쳐라!”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패천수호대의 대원들에게 호통
을 쳐 공격을 명령한 혁종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저자는 진짜야. 희탁강은 패천수호대에서 자네와 나를 제외하고는 최고의 고
수였어. 그런데 그가 미처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었네. 방심했다고 생각하
는가? 천만에. 난 보았네. 희탁강의 검이 머리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이르렀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가 있던 놈의 눈을 말이야. 그리고
그 여유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는 것이 증명 되었네. 도저히 인간이 휘둘렀
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속도로 희탁강의 머리를 날려버린 쇠막대기를 통해서말일세.”
여전히 적성의 어깨를 잡고 말을 잇는 혁종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헌원강 호법님의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어. 어쩌면 우리 놈에 대해 너무 모르
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너무 무시를 했어.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의
명예가 여기서 끝장나는 수가 있네.”
“절대 그럴 수는 없지. 나 적성이 살아있는 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천천히 혁종의 손을 뿌리친 적성의 눈은 조금 전 분노에 휩싸였던 것과는 달
리 냉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상대의 실력이 흥분해서 날뛴다고 어찌할 수
있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한 적성은 혁종이 말하는 위기감을 온 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소문의 움직임을 살피기 시작했다. 패천수호대에 의해 완벽하
게 둘러싸인 소문은 철궁을 휘두르며 화살을 날릴 때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
이며 날뛰고 있었다.
“크악”
소문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울려 퍼지는 비명성과 고함소리는 싸움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비명은 전부다 패천
수호대의 대원에게서 들려오는 것. 그들은 거의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지
금 소문은 절대삼검을 제외한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검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봤자 몇 안 되는 초식에 위력도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알려진 것들이지
만 당하는 패천수호대의 입장에선 그것이 아니었다. 줄기차게 뻗어 나오는
검기에 몸을 빼기가 힘들었고 어쩌다 막는다 하더라도 심각한 내상으로 이어
졌다. 더구나 움직이는 소문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저 지독한 살기란…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한 패천수호대의 희생자는 늘어만 갔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는 것은 틀림없는 팔방풍우요,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은 틀림없는 횡소천군. 보고는 있지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어떻게 저
따위 초식에 손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당한단 말인가!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싶
은 심정이야.”
“그 어떤 초식도, 이름 없는 시정잡배가 아무렇게나 써먹는 초식에서 검기가
치솟는다면 이미 그것은 절세의 무공이 되는 것이네. 무공에 있어 이름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네. 다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지. 안 그런가?”
뜷어져라 소문을 살피고 있던 혁종이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대꾸했다.
“하지만 아무리… 저것은!”
순간 뭐라 반박을 하려했던 적성이 흠칫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역시! 난 우리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패천수호대가 아닌가?”
치밀어 오르는 격동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혁종의 음성은 은은히 떨리고 있었
다. 그런 그의 눈에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는 대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언제부터인가 소문을 공격하는 대원들의 초식은 동일하게 변해 버렸다. 일신
의 몸을 돌보지 않고 상대와 등귀어진을 하고자 하는 혈우검법(血雨劍法)의
마지막 초식, 혈우무적(血雨無敵)! 지금 패천수호대의 대원들이 시전 하는 것
이 바로 그것이었다. 더 이상 힘이 없을 때, 도저히 상대를 어찌 할 수 없을
때 죽기 전에 단 한번 사용한다는 그 초식을 소문을 공격하는 패천수호대
의 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비록 상대가 소문인지라 아
직까지는 그다지 큰 효과를 보고는 있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효과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자고로 피만큼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은 없었다. 더구나 그
것이 자신의 몸이나 동료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면 그 강도는 더욱 강하기
마련이었다.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던 출행랑의 살기도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
은 그들의 분노 앞에선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여유가 넘쳐흐
르던 소문의 몸에서도 은근한 핏줄기가 보였고 움직임도 꽤 둔화 되었다.
‘음, 좋지 않군. 좋지 않아.’
시간이 갈수록 희생자가 늘어나면 날수록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대의 험악한
공격을 의식이라도 하듯 소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자신이
내뿜는 검기가 가끔이긴 하지만 상대의 검에 막히기 시작했고 살을 주고 뼈
를 깎겠다는 것이 아닌 목숨을 버리고 소문에게서 조그만 틈이라도 만들겠다
는 패천수호대 대원들의 의지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보통 시시한 무공이
라도 구명절초라 일컬어지는 것은 제법 험한 기운을 띄고 있었고 또 제 아무
리 이름 없는 삼류무사라 할지라도 같이 죽겠다고 덤빌 때에는 그 기세에 질
려 함부로 하지 못하는 법이었다. 하물며 천하를 진동시키는 패천수호대와 강
호의 일절로 알려진 독고적의 독문검법인 혈우검법이었다. 죽음을 동반하고
펼치는 그 기세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지가 잘리거나 몸에 상
처를 입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목이 날아가도 나아가던 몸은 멈추지
않는 대원들의 투혼은 마침내 그 성과를 얻기 시작했다.
“윽!”
또 한명의 대원을 쓰러뜨린 소문의 입에서 짧은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
고 그의 가슴팍엔 죽으면서까지 검을 휘두르던 자의 부러진 검날이 살짝 박혀
있었다.
“지독한 놈들!”
재빨리 검날을 뽑은 소문은 지혈한 시간도 없이 철궁을 휘둘러야만 했다. 상
처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기회를 잡은 패천수호대의 무시무시한 공격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이것들을 그냥!’
몇 번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고 한숨 돌린 소문은 가슴에서 은근한 통증이 이
어지자 불연 듯 화가 치솟았다. 심각한 고민에 접어들었다. 절대삼검이라면 이
고생 할 것 없이 쉽게 적을 물리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제 아무리 절대삼
검이라해도 저 정도의 실력과 인원을 지진 패천수호대를 모조리 잠재우기 위
해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절대삼검
을 사용할 경우 끔찍할 정도로 많은 내공의 소진도 각오해야만 했다. 비록
얼마 사용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지금처럼 검기를 뿌려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문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삼검을 사용한다면 이번 위기
에서는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지만 한동안 제대로 된 내공을 사용할 수
없을 지도 몰랐다. 문제는 과연 저들의 추격이 패천수호대로서 끝나냐는
것이었다. 이들보다는 못해도 계속해서 강한 인물, 세력들이 쫓아올 것이었다
. 결국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위해서라도 내공은 철저히 아낄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가 익히고 있는 내공심법의 특성상 금방 소진된 내공을 되
찾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 안에 위
기가 닥치지 않으리라는 장담도 없었으니… 또한 애당초 소문은 자신이 있었다.
비록 상대가 그 이름도 유명한 패천수호대이고 숫자도 많았지만 그는 자신
의 무공을 믿었고 출행랑을 믿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지 몸을 빼
면 그만 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비록 예기치 못한 공세에 가슴을 비롯하
여 제법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보다 더한 상처도 수 없이 많이 입었던 소
문으로선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못했다. 잠시 고민에 빠졌던 소문은 고개를 가
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지금은 절대삼검을 사용하여 내
공을 허비하기보다는 적당히 상대를 하다가 몸을 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었
다. 하지만 일은 생각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패천수호대의 공격은 실로 무섭고도 집요했다. 어차
피 한 사람을 놓고 공격을 하게 되면 그 인원이나 방위가 제한되기 마련, 그
들은 저마다 자신이 노리는 곳에 상처를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니, 자신
이 못하면 다른 동료라도 할 수 있게 어떻게든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철궁에
맞아 더 이상 다가들 수 없으면 몸을 터뜨려 육편을 날렸고 피를 뿜어 시야
를 혼란케 했다. 어떤 대원은 소문의 발을 무디게 하기 위해 몸 위로 검기가
쏟아지든 아니면 직접적으로 철궁의 육중한 타격을 받아 목숨을 잃건 개의치
않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일이 성공을 하지 못하고 숨이 끊어지는 순간
에도 자신의 목표였던 소문의 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죽어가면
서도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은 죽더라도 나머지 동료들이 반드시
자신의 복수와 패천수호대의 명예를 지켜 주리라는 것. 그런 확신이 있었기
에 그들은 기꺼이 목숨을 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있었다.
“난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네. 수하들이 저리 목숨을 버려가며 싸우고 있
는데 수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구경만 해서야 되겠는가?”
“암! 함께 가세나. 이제는 나설 때가 되었지. 자네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내가
등을 떠밀었을 것이네.”
혁종의 말에 빙그레 웃은 적성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주변이 시산혈해(屍
山血海)로 변해 버린 지는 이미 오래였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멀쩡히 살아
있던, 수하이자 동료요 형제였던 대원들의 형체도 없이 뭉개진 시신을 넘으며
적성과 혁종은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강한 사내와
그를 상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수하들의 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리곤 아무 말도 없이 검을 들고 그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들의 가세는 안 그
래도 고전을 하고 있는 소문에겐 치명타였다. 벌써 몸 이곳저곳에 상처를 입
고 피를 흘린 소문은 많이 지쳐있었다. 더구나 갈가리 찢기는 동료의 죽음에
도 아랑곳 않고 덤비는 그들의 투지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이제 그만 몸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적성과 혁종이 달려들은 것이었다.
‘드디어 움직였는가?’
적성과 혁종의 움직임을 간파한 소문의 입가에 패천수호대의 자살 공격이 이
어진 뒤 처음으로 미소가 보였다. 지금껏 나서지 않던 적의 수장이 나섰다는
것이 곧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의미. 묘한 반발심이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 이대로 물러나기엔 자존
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내 꼴이 그렇게 우습게 보였단 말인가? 하긴 이렇게 피칠을 하고 쩔쩔매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군. 하지만 그대들에게 당할 정도로 지치진 않았어.’
스스로에게 조소를 보낸 소문은 적성과 혁종의 검을 막아갔다. 이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행동. 하나 그것은 소문의 오산이었다. 소문은 패천수호대의 대주
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좀더 생각을 했어야 했다. 적성과 혁종, 그들은 애
초 소문이 상대하고 있던 패천수호대의 대원들이나 희탁강과는 비교조차 되
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고수였다. 이미 그 실력이 혈우검법을 전수해준 독고
적이 이루었던 경지를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였고 비록 패천궁내에서도 크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검으로 일가를 일룰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기껏해
야 다른 이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던 소문으로선 그들의 강
맹한 공세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죽은
줄만 알고 있었던 한 사내가 검을 들어 발등을 내려찍은 것이 아닌가! 시체라
여기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인물이 발아래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
소문이 대경실색하여 발을 빼려 하였지만 예상치 못한 적성과 혁종의 거센 공
격에 무방비로 노출 된 소문은 피하고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적성과 혁종의
공격을 막기는 하였지만 죽을힘을 다해 검을 움직이는 사내의 공격까지는 막을수가 없었다.
“크윽!”
뼈마디를 타고 오르는 고통이 뇌를 울리고 거의 동시에 이를 악문 소문은 철
궁을 들어 사내의 머리를 후려치고 몸을 뺐다. 발등을 뚫고 땅속 깊이 박힌
검이 그런 소문의 움직임에 따라 땅에서 뽑혀 오르고 소문은 그 검을 자신의
발등에서도 재빨리 분리시켰다. 뼈를 가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발등에서 뽑
혀져 나온 검 끝에선 소문의 선혈이 검날을 따라 점점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는 소문의 전신에서 출행랑을 시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크크, 멍청한! 진즉에 절대삼검을 쓰던지 아니면 몸을 뺐어야 했는데… 이제
는 도망을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게 되버렸으니…….’
그랬다. 소문이 위기에서도 절대삼검을 쓰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출행랑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소문의 행동은 앞으로 있을 많은 위험에 대비하여
내공을 아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출행랑이라는 최고의 경공을 지니고
있다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발등에 심
각한 부상을 입은 지금은 아니었다.
철궁을 축 늘어뜨린 소문은 마치 싸움을 포기한 사람처럼 무방비 상태로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들고 큰 소리로 웃어젖혔다. 그 모양이 괜한 허세로
비쳐졌는지 적성이 한껏 비웃음이 담긴 음성으로 말을 했다.
“그 따위 허세는 필요 없다. 이제 순순히 질긴 목을 내밀어라. 비록 수없이
많은 동료들의 목숨을 앗아간 놈이지만 그 실력만큼은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지만 다수로서 한 사람을 핍박한 것은 틀림없
는 수치. 고통 없이 보내주마.”
적성은 들고 있던 검을 겁집에 넣으며 승자의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적성을
제외하고 혁종을 비롯 나머지 대원들은 혹시 모를 소문의 움직임에 대비하여
철저히 경계하고 있었다.
“…….”
소문은 별다른 말없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살기를 뿜으며 자신을 노려보는 인
원이 아직도 사십 여명. 다리만 멀쩡하다면 별로 신경 쓸 이유도 없었지만
지금으로선 상당히 벅찬 인원이었다.
‘어쩔 수 없군. 지금이라도 사용을 할 수밖에 그렇지 않았다간 목숨을 보전하
기 어렵겠구나!’
소문은 늘어뜨렸던 철궁을 가슴께로 천천히 끌어당겼다. 그 모양은 본 적성은
조금도 주저 없이 명령을 내렸다.
“죽여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몸을 날리는 대원들. 혁종 또한 자신의 손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듯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소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한편, 소문과 패천수호대의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싸움이 벌어지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나무그늘 아래. 몸을 숨기고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검왕을 제외한 나머지 원로들을 정도맹과 다투고 있는 호북성으로
북상시킨 환야와 그를 따라 나선 검왕이었다. 그들이 장내에 도착한 것은 소문
이 철궁을 휘두르며 패천수호대와 치열한 접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두고만 보려느냐?”
“…….”
무심하게 질문을 던진 검왕은 환야가 자신의 물음에 별다른 대꾸가 없자 그런
환야의 마음을 이해 한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긴 그가 아무리 너와 의형제를 맺었다고는 하나 동료의 원수를 갚으려는 패
천수호대를 막기엔 무리가 있겠구나. 그렇지만 나중에 후회를 하려거든 지금
나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망설이다간 너무 늦어.”
“후회를 하겠지요. 틀림없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나선다 해도 절대로 듣
지 않을 것입니다. 도움은 더더욱 바라지 않겠지요. 패천수호대라는 이름이 지닌
명예는 저들에게 있어선 목숨보다 중한 것이니 말입니다.”
“그건 무슨 소리더냐? 도움이라니? 패천수호대의 명예라니?”
검왕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검왕 할아버는 제가 지금 소문을 걱정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훗, 그것은 할아
버지가 잘못 알고 계셔도 너무 잘못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 정도의 상처는
그에게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투쟁심만 가중시킬 뿐이지요. 상
처 입은 호랑이의 모습을 이제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호랑이를 자극하던 혈랑(
血狼)의 종말도… 그러나 뻔히 결과를 알면서도 제가 나서지 못하는 것은 말
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제가 나선다면 소문은 틀림없이 검을 멈출 것입니다. 하
지만 패천수호대는 어떨까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은 검을 멈추지 못합니다
. 저나 검왕 할아버지가 저들의 움직임을 막는다면 차라리 자결을 택할친구들이지요.”
한숨을 내쉰 환야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명예나 지키
라고 말이지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지금까지 저 아이가 보여준 실력은 과연 뛰어난
것이었고 네 말대로 비장의 한수를 감추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
금은 절대 불리한 상황이 아니더냐? 부상은 부상대로 입고, 특히 다리에 입은
상처야 말로 지금까지 빠른 몸놀림으로 상대를 혼란시킨 저 아이의 최대 이점
이 사라지는 것. 또한 살아남은 패천수호대의 인원도 너무 많다. 그리고 그들
을 이끄는 저 둘의 무공은 나를 놀라게 할 정도였어.”
검왕의 냉막한 얼굴에 불신의 빛이 가득 떠올랐다.
“두고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한쪽은 아끼는
수하요. 다른 한쪽은… 후~”
환야는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검왕 또한 환야를 따라 고개를 돌
렸다. 잠시 멈추었던 싸움이 다시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전과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예상을 했던 환야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
았지만 지금도 소문의 실력을 의심하고 있던 검왕으로선 두 주먹이 불끈 쥐어
질 정도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하나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검
왕의 놀람은 소문과 싸우고 있는 패천수호대의 대원들과 적성, 혁종 등이 느끼는
놀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싸움이 시작되자 패천수호대의 대원들은 조금 전과 같이 자신의 몸을 희생시키
고 그 대가로 소문에게 부상을 입히는 공격대신 수적인 우세로 몰아붙이는 공
격을 감행했다. 이미 상당한 부상을 입은 소문이기에 그 정도면 충분하리란 그들
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지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상하게 움직이는 소
문의 철궁, 느릿느릿 변화하는 철궁의 움직임은 기묘하고도 기괴했다. 아무리
허점을 파고 들어가려 노력을 했지만 패천수호대 대원들의 공격은 소문의 근
처에 이르지도 못하고 모두 막혀 버렸다. 뒤를 막는가 하면 어느새 앞에 나타나
고 좌측이 허점이다 싶어 공격을 하면 마치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간단히 물리
치는 철궁의 조화는 실로 두려울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철궁에 어떤 힘이 깃
들어 있는지 공격을 하다가 가로막힌 자들은 하나같이 피를 토하고 그 자리에 주
저앉아 버렸다. 그들이 의식도 못하는 사이 소문의 무한한 내공이 철궁과 그
들의 검을 통해 전해져 내부를 산산이 조각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칠
팔 명의 대원들이 목숨을 잃자 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상처 입은 맹수를 잡을 때는 확인 사살이 필수라는 것을 뼈저
리게 느낀 패천수호대는 적성이 말릴 사이도 없이 방금 전 소문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었던 자살공격을 또 다시 감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절대삼검(
絶對三劍) 중 극강의 수비 초식인 무애지검(無愛之劍)을 사용하는 소문의 방
어를 뚫기란 사실상 불가능 했다. 그토록 변화막측 하고 강맹했던 궁왕의 환
영시도 단숨에 무용지물로 만들었던 무애지검이. 그들이 공격을 할라치면 검막과
는 차원이 다른 기운이 순식간에 소문을 감싸고 소문에게 다가오던 자들은 어
떤 벽에 막힌 듯 더 이상 나아가지를 못했다. 그리고 방어에 이어지는 소문의
움직임. 패천수호대 대원들이 자신들의 공격이 막혀 잠시 주춤거리는 그 짧은
찰나에 이어진 소문의 공격! 절대삼검(絶對三劍) 제1초 무심지검(無心之劍)은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의식을 끊어버렸다.
“후후후! 더 이상 그런 공격을 통할 거라 보았소? 후후, 그렇다면 실망인걸. 그
렇게 놀란다면 내가 무안하지 않겠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그럼 이제
나의 공격을 받아보시오.”
도대체 어떤 수법으로 동료들의 목을 베었는지 알 수 없었던 대원들은 물론이
고 희미하게나마 소문의 검을 목도 할 수 있었던 적성과 혁종이 두 눈을 부릅
뜨고 놀라자 어깨를 한번 으쓱인 소문의 모습에선 절대자들만이 지닌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오.”
천천히 철궁을 들어올리던 소문의 입에서 무심한 음성이 튀어나오고 머리위로
치켜 올려진 철궁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빛이 형성되었다. 주변의 기운이
모조리 소문에게 빨려 들어가는 듯 공기는 소용돌이치고 떨어져 있는 낙엽이
며 작은 자갈 등이 하늘높이 비상(飛上)을 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환야는 기나긴 장탄식과 더불어 두 눈을 감고 말았다. 지난
날 회화촌의 절벽아래서 보여주었던 바로 그 무공이었다. 자신에게 끝없는 패
배감을 안겨 주었던 바로 그…….
“거, 검강?”
“피해랏!”
도저히 믿을 수는 없었지만 철궁의 위로 무려 이장이나 뻗어 올라간 빛이 무엇
인지 알고 있었던 적성이 경악성을 내뱉고, 보다 빠르게 사태를 파악한 혁종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늦었어.”
차가운 미소를 지은 소문의 입에서 담담히 흘러나오는 음성.
“절대삼검(絶對三劍) 제3초 무극지검(無極之劍)!!”
꽈과과광!
하늘이 무너지고 대지가 갈라지는 소리가 이럴까? 한껏 모인 기를 폭발시키는
소문의 안색엔 그 어떤 표정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전후좌우 할 것 없이 사방
으로 비산(飛散)하는 검강의 기운은 주변을 초토화시키며 생명을 지닌 것들은
단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거침없이 쏘아져나갔다.
“끄아악!”
“으아아악”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와 같은 무공을 본적도 없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던
패천수호대의 대원들은 아무런 생각도 움직임도 보이지 못하며 무방비 상태로
검강에 노출되었다. 개중에는 혁종의 음성을 듣기도 전에 몸을 날렸고 더러는
검을 들어 자신에게 날아오는 기운에 부닥쳐가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
다. 들고 있던 검은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수도 없이 많은 검강의 가닥들이
몸을 유린하며 지나간 뒤에 그들에게 남아 있는 기억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생명을 잃은 차가운 육신만이 땅에 쓰러질 뿐이었다.
“저럴 수가!”
이미 몸을 일으켜 검을 움켜잡고 있는 검왕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한
바탕 휘몰아치던 광풍(狂風)이 잦아들고 드러나는 주변의 풍경. 소문이 밟고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반경 오장 내에는 성한 땅도, 나무도, 바위도 없었다.
몇 개 있던 바위는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었고 그 지역의 수호신으로 불리며
신성시 되었던 거대한 노송(老松) 또한 너무도 허망이 쓰러지고 말았다. 상황이
이럴 진데 사람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는 노릇, 삼십이 넘던 대원들 중 빨리 몸
을 피한 몇 명을 제외하고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서있는 사람
은 오직 하나. 검을 들고 있던 팔은 어깨에서부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입에
선 연신 선홍빛 피를 쏟아내는 적성뿐이었다.
“이… 일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주변을 돌아보는 적성의 음성은 경악을 넘어 허탈하기만 했다.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는 수하들을 세어보니 많아야 칠팔 명, 단 한번의 공격에 그 많던 수하
들이 목숨을 잃고 자신 또한 심각한 내상과 함께 팔을 잃어버렸다. 결국 누구도
어떠한 세력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패배도 없었던, 세인들의 뇌리에 오직 공포
로 각인된 패천수호대가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괴멸되고 만것이었다.
“큭큭큭…….”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나오는 것이라고는 웃음밖에 없었다. 웃음을 터뜨릴 때마
다 적성의 몸은 한없이 휘청거렸다. 그런 적성의 몸을 부축하는 손이 있었다.
혁종이었다.
“괜찮은가?”
“무사…했군.”
자신의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몸을 기대오는 혁종을 바라보는 적성의
두 눈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빛을 띠고 있었다.
“자네 덕분으로… 왜 그랬나?”
혁종의 음성은 안타까움과 분노로 뒤섞여 있었다. 수하들에게 피하라고 외친 후
자신은 몸을 날렸건만 적성은 그렇지 않았다. 엄청난 위력으로 다가오는 공격에
놀라기는 했지만 달아나지는 않았다. 그는 당당히 소문의 공격에 맞섰다. 그것
이 스스로에게 분노를 터뜨리게 하는 이유였다.
“남들은 나를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는 무인이라
네. 더구나 패천수호대의 대주이기도 하지. 적의 공격이 무섭다고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말일세…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었네. 나는 내
가 알고 있는 최강의 수법을 펼쳤지만 고작 이 꼴이 되고 말았네.”
씁쓸히 웃은 적성은 고개를 돌려 소문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허명만 있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 어떤 무인보다 커보였다.
“대단했다. 아까 했던 허세라는 말은 취소하지. 너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
다.”
“이제 그만 합시다.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 그건 피차에 어쩔 수 없었던 일. 이
제라도 힘의 차이를 알았으니 물러나도록 하시오.”
더 이상 피를 보기 싫었던 소문은 천천히 몸을 돌리려고 하였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적성의 음성은 그런 소문의 움직임을 단번에 멈추게 만들었다.
“동정인가?”
“아니오.”
“동정이라도 어쩔 수 없지. 너는 그 정도 힘을 지니고 있고 우리는 패했으니.
하지만 우리 사전에 후퇴란 없다.”
“목숨은 귀중한 것이오.”
“그것도 알고 있지. 그러나 때로는 목숨보다 귀한 것도 있다. 안 그런가?”
적성의 물음에 답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물론이지. 죽음도 우리가 지닌 자부심과 명예에 앞서지는 않지. 뭣들 하느냐?
대주는 아직 싸움을 끝내지 않았다. 우리는 패천수호대다. 적에게 등을 돌릴
바엔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패천수호대란 말이다.”
여전히 비틀거리는 적성의 몸을 부축하며 대답을 한 혁종은 간신히 몸을 움직
이고 있는 생존자들에게도 일갈(一喝)을 했다.
“도망치려느냐?”
“아닙니다.”
“목숨을 구하고 싶은 것이냐?”
“아닙니다.”
몸을 일으킨 대원들의 음성이 점점 커지고 잠시 동안 공포에 사로잡혔던 그들
의 모습에서 새로운 힘이 느껴졌다.
“그것이 아니라면 검을 들어라. 그리고 나서라.”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외치는 혁종의 음성은 뿌듯한 자부심에 은근히 떨
리고 있었다. 소문은 그런 혁종과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패천수호대의 대원들을
바라보며 탄식을 터뜨렸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것이오? 죽을 줄 뻔히 알면서?”
“백 명이 넘는 인원으로 어쩌지 못한 너를 이 정도 인원으로 쓰러뜨릴 수 있다
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동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복수도
못하고 우리만 살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 그런 수치스러운 일은 하느
니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을 원한다. 어차피 산다 해도 돌아갈 곳은 없지만……
. 무인으로 태어나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와 싸워서 죽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 검을 들어라.”
어디서 힘이 났는지 혁종의 몸에 힘겹게 기대고 있던 적성이 하나 남은 팔로
검을 집어 들고 앞으로 나섰다.
“행여나 손속에 인정을 두거나 몸을 피하는 일을 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그것
이야말로 우리를 욕되게 하는 일. 우리 패천수호대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강호의
전설이 될 사내의 위용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말을 마친 적성은 허공으로 몸을 날리고 혁종과 나머지 대원들이 그 뒤를 따랐
다.
‘후~ 어쩔 수 없는가? 명예를 위해서라… 좋다. 그렇다면 나로서도 최선을 다해
야겠지.’
나직이 한숨을 내쉰 소문의 손이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
의 그 무공. 절대삼검의 마지막 초식이자 최강의 무공인 무극지검이 또 다시
펼쳐졌다.
꽈과과광!
천지를 뒤덮는 강기의 소용돌이. 그 앞에 더 이상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은 아무
도 없었다. 비록 성격은 급하고 불같았지만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진정한 무인의
도를 추구하던 적성, 그와 평생을 함께 했던 친구 혁종, 그리고 그런 둘을
진정으로 따르던 나머지 패천수호대의 대원들도 모두 차가운 주검이 되어 땅에
쓰러졌다. 그들의 바람대로 명예로운 죽음일지 어떨지는 몰랐지만 그들은 그
렇게 웃으며 죽어갔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강호에 새로운 전설로 군림하던
패천수호대의 운명도 함께 쓰러졌다. 싸움이 끝난 자리 위엔 적성의 말대로 앞으
로 새로운 전설이 될 소문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끝났군…….”
마침내 패천수호대를 쓰러뜨린 소문. 차마 볼 수없었는지 감았던 눈을 뜨며 자
신만이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그의 안색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리고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전신의 모든 감각이 떨릴 정도로 주변을 강타하
던 기운이 가라앉자 모든 것이 끝났음을 감지한 환야 또한 조용히 눈을 떴다.
눈을 뜬 환야는 가장 먼저 검왕의 행동을 제지해야만 했다.
“행여나 나설 생각은 마십시오. 이것은 제가 원로원에서 인정한 궁주로서 처음
이자 마지막으로 내리는 명령입니다.”
“…….”
“패천수호대만으로 충분합니다. 검왕 할아버지까지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환야를 노려보던 검왕의 입이 열렸다.
“진다는 것이냐?”
“제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느끼신 대로 생각하십시오.”
“…….”
잠시 열렸던 검왕이 입이 다시 닫혔다. 환야 역시 아무런 말도 없이 검왕을 응
시했다. 얼마를 그리 했을까? 결국 검왕은 반쯤 빼어들었던 검을 다시 집어넣고
긴 탄식을 내뱉었다.
“네 말이 맞다. 이길 수 없는 상대인 것을… 허허, 어쩌다 이리 되었는가! 검왕
이라는 이름을 얻었음에도 구양 궁주에게 패하고 절치부심(切齒腐心), 그를 꺾기
위해 수십 년을 수련했건만… 이제는 검을 뽑을 수도 없으니… 검왕이라는
이름도 버려야겠구나!”
검왕은 들고 있던 검을 땅에 던져버렸다. 그런 검왕의 행동에 깜짝 놀란 환야가
재빨리 떨어진 검을 집어 들며 정색을 하고 말을 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검왕 할아버지는 그리 불리실 자격이 있습니다.”
“이정도 실력을 지니고 검왕이라… 내가 검왕이라면 저 아이는 능히 검신(劍神)
의 경지에 올랐구나.”
“…….”
검왕이 느끼는 패배감을 일찍이 맛본 환야는 뭐라 말을 하고 싶었다. 하나 지금
의 위로는 오히려 욕된 것. 환야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저 아이가 움직이는구나. 그냥 보내려느냐?”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환야가 건넨 검을 힘없이 받아든 검왕이 서서
히 몸을 움직이는 소문을 바라보며 물었다.
“만나봐야지요. 확인할 것도 있고.”
비록 힘은 없었지만 검왕이 예전의 냉막한 안색과 음성으로 돌아온 것에 적지
안이 안심을 한 환야가 재빨리 대답을 하고 소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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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잼납니다
운명적인 만남이 기대됩니다
인연
즐감하고갑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ㅈㄷㄳ
ㅎㅎㅎ
즐감
ㅈㄷㄱ~~~~~~~~~`````````````````
즐갑하고 갑니다.
즐감요~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