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재단서
17년 은퇴 후 처음 신작 공개
90세 기념전 독일·일본 등 봇물
600억원 경매가 기록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작가
5년간 작품가 2배 넘게 상승해
◆ 게르하르트 리히터 ◆
추상화 앞에 선 게르하르트 리히터
'현대미술의 제왕'이 돌아왔습니다. 올해 초 90세가 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전시가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Beyeler) 재단에서 2월부터 8월 14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이 전시에 관심을 받는 이유는 2017년 은퇴를 선언한 거장의 신작 때문입니다.
그는 붓을 놓기로 발표했음에도 작업을 멈출 순 없었습니다. 직접 구상한 전시장에는 유리 페인트를 종이에 흘려 부어 만든 31점의 추상화 소품 시리즈 'Mood(분위기)'가 걸렸습니다. 놀랍게도 1월 5일부터 11일까지 불과 1주일 만에 모두 완성한 작품입니다.
바이엘러 재단에 전시된 리히터의 신작.
전시장에는 신작을 사진으로 찍은 복제품도 나란히 걸려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기획자인 디터 슈바르츠는 "도발적인 병치는 사전 지식 없이 사본과 원본을 구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매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림과 사진의 관계성은 거장의 오랜 천착의 대상이었습니다. 재즈의 즉흥 연주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전시에서도 거장은 회화 실험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리히터의 90세 기념 전시는 올 들어 전세계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뒤셀도르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고향 드레스덴에서 전시가 열렸습니다. 도쿄 신국립미술관에서는 6월 7일 대규모 회고전이 개막해 열도에 '리히터 신드롬'이 일고 있습니다.
사진회화로 그려진 `촛불` 시리즈. 167억원에 팔렸다.
시장의 관심은 더욱 뜨겁습니다. 리히터는 2010년대에 '대관식'을 한 슈퍼스타입니다. 2013년 5월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사진 회화인 '밀라노 대성당 광장'이 3712만 달러(481억원)에 낙찰되며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건 '사진 회화(Photo-Painting)'지만 시장에선 1990년대 추상화(Abstraktes Bild) 시리즈가 유독 인기가 많습니다. 2015년 11월에 소더비 런던에서 1986년작 '추상화(Abstraktes Bild 809-4)'가 4632만달러(600억원)에 팔리며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을 썼습니다. 경매가 10위권 작품 중 사진회화는 2점에 불과하고 8점이 추상화입니다.
바이엘러 재단 전시에 걸린 신작
시장은 변덕이 심해, 생존 작가의 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경우가 많지만 아트넷에 따르면 2017년 은퇴 이후에만 리히터의 가격은 2배가 올랐다고 분석합니다. UBS와 아트바젤 리포트에 따르면 작년 리히터의 경매 판매액은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에 이은 3위였고, 생존작가로는 1위였습니다.
올해도 5월 10일 크리스티 뉴욕에서 추상화가 3650만달러(473억원), 5월 16일 소더비 뉴욕에서 바다를 그린 풍경화 'Seestuck'이 3020만달러(391억원)에 팔리며 건재함을 증명했습니다. 리히터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촛불을 그린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삼성미술관 리움도 소장한 촛불 시리즈 중 단 하나의 촛불만 그린 1982년작 'Kerze'는 2011년 10월 크리스티 런던에서 167억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2022년 5월 10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473억원에 팔린 추상화 시리즈.
리히터는 오랜 전통을 지녔지만 20세기 들어 종말을 선고받은 '회화'를 부활시킨 작가이기에 시장에서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회화를 향한 일관된 열정은 다사다난한 삶의 여정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1932년 동독 드레스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바로크 시대의 보석 같은 도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으로 폐허가 됐습니다. 혹독한 전쟁 속에서 자랐지만 오히려 그 경험은 그의 전생애에 걸친 회화작업을 관통하는 모티브를 제공했습니다. 위르겐 슈라이버가 쓴 리히터 평전 '한 가족의 드라마'는 2차 세계대전이 그에게 미친 영향을 "전쟁은 리히터가 사물을 보는 법을 배운 학교다. 리히터는 현재까지, 이 재료에서 자신의 주제를 길어내고 있다. 지나간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 서독으로 이주했습니다. 동독 드레스덴 미술아카데미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중심으로 회화를 배운 그가 서독으로 건너온 뒤 접한 미술은 충격적일 만큼 달랐습니다. 뒤셀도르프 미대의 늦깍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학생들 사이에는 추상표현주의 물결이 휩쓸고 있었습니다. 그가 봉착한 것은 회화가 사라진 시대의 화가의 딜레마와 다름없었습니다. 그 딜레마를 탈출하는 방법으로 회화의 대상을 문제화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2013년 481억원에 팔린 `밀라노 대성당 광장`
1960년대 그는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을 흐릿하게(Blurring) 재현하는 사진회화를 발표했습니다. 이후에는 공들여 그린 사진회화를 덧칠해 뭉게 버리는 변화에 도전했습니다. 회화의 한계를 탐구하는 작업이 색면 추상에 이어, 1970년대 추상화로 귀결된 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는 '회화가 죽었다'고 이야기되던 시대에 회화를 포기하기는커녕 '회화는 지금보다 더 완성되어야 한다'며 캔버스를 붙잡고 씨름한 화가였습니다.
추상화에 매진하던 시기인 1996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2002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이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국제적 작가로 떠오릅니다. 이후 시장의 평가는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슈라이버는 그를 "기교적인 색채를 화려하게 사용하면서도 덧없는 것을 그리는 화가다. 그는 관람객들을 고통의 증인으로 세운다"고 평가합니다. 고통의 연대기를 그려온 화가는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빛나는 신화를 쓰고 있습니다. 작품을 대량생산하지 않는데다 엄격하게 연혁이 관리되는 '영원한 회화작가'의 가치는 앞으로도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작품의 40% 가량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어 가족을 그린 초상화나 사진 회화 시리즈는 시장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미술사에 기록될 그의 작업은 사진 회화일 가능성이 높기에, 시장의 재평가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