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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행할 이유 3:13~17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 사역의 의미 3:18~22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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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의를 위해 고난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주님으로 모시고, 늘 자신의 소망에 대해 답할 준비를 하며,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의인이신 그리스도는 불의한 자를 대신해 육체로 죽임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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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행할 이유 3:13~17
성도의 삶에서 선행은 필수 과제입니다. 열심히 선을 행하는 성도를 해할 자가 없고, 의를 위해 고난받으면 도리어 복이 됩니다(13~14절). 베드로는 선을 행하다가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말합니다(17절). 성도가 고난 중에도 선을 행할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베푼 성도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이 결국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선행은 단순히 착한 일이 아니라 복음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성도가 가진 소망에 관해 묻는 자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매사에 ‘선한 양심’(16절)을 품고 주님의 이름으로 선을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베드로가 선행과 선한 양심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실천하고 있는 선행(봉사, 기부 등)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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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사역의 의미 3:18~22
선행의 궁극적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는 선행의 근거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제시합니다. 예수님 사역의 목격자인 베드로는(벧후 1:16~18) 예수님이 죄에 대해 단번에 죽으심으로 불의한 자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셨다고 증언합니다(18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부활하셨고,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18, 22절). 노아 시대에 하나님 말씀에 복종해 구원받은 자가 여덟 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온전한 순종(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칩니다. 노아 때의 물(홍수)은 성도의 구원 징표로 ‘세례’를 상징하며, 세례는 하나님을 향해 선한 양심이 응답하는 것입니다(21절). 성도는 그리스도 복음에 온전히 순종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선을 행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노아 시대에 구원받은 자가 여덟 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교훈하나요?
내가 주님 말씀에 온전한 순종(믿음)으로 반응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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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하는 일
내게 고난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교회와 성도들에게 받은 고통은 나를 무참히 부숴 버렸다. 내가 경험한 교회는 세상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세상과 혼합되어서 세상보다 더한 세상이 교회였다. 그래서 나는 전통적인 기독교 세계관 논의에 반기를 들었다. 이원론이 문제가 아니라 혼합주의가 문제라고. 이전에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고 말했다면, 이제는 ‘교회를 교회 되게 하라’는 표어를 갖게 되었다.
고난을 통과하면서, 책을 번역하고 글을 썼다. 그 결과 ‘책 쓰는 목사’, ‘책으로 목회하는 목사’가 되었다. 내가 담임하는 로고스교회는 성경을 읽고 토론을 한다. 수년 전부터는 비행을 저질러 소년 재판을 받고 6개월 쉼터 위탁(보호 처분 1호)을 받은 위기 청소년들과 ‘희망의 인문학’ 모임도 하고 있다. 학교, 가정에서 버림받고 타인에게 고통을 준 아이들이 책을 읽고 저자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쓰디쓴 고난을 통과한 끝에 맛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다. 고난 속에서 죽을 뻔했던 나, 남을 죽일 뻔했던 나를 생각하면 얼떨떨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을 통해 그분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고난받는 이들을 이해하며 돕고, 희망의 이유와 증거가 되는 사람! 고난은 이전과 확연히 다른 나를 창조했다. 그래서 고난은 창조적 고통이다.
욥, 까닭을 묻다 / 김기현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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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베드로전서 3장 15절
세상 사람들은 성도의 삶을 보며 의문을 품습니다. 왜 거룩하게 사는지, 왜 의를 위해 고난받는지 등을 질문합니다. 성도는 코람 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신앙으로 살면서, 진리를 찾는 이에게 답을 주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 2:17). 성도는 머리로 진리를 깨닫고, 마음으로 진리를 품고, 행함으로 진리를 보여야 합니다.(지.정.의) 세상에 거룩한 복음으로 답하고 거룩한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입니다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고 말만 해서는 안 된다. 그분 이 행하시는 일을 같이 행하고 따라야 한다. - 찰스 스펄전
오늘의 기도
주님, 고난을 만날 때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세상을 주인 삼지 않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날마다 부지런히 선행의 씨를 뿌려 복음 전할 기회를 얻길 원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의를 위해 받는 고난을 하늘의 복으로 여기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94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본문의 정리: 베드로는 선하고 정의롭게 살다가 고난을 당하더라도 선과 정의를 고수하라고 당부합니다.
정의를 위해 고난받는 것이 복이고, 선한 양식이 그리스도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 본문의 명제: 너희는 고난 속에서도 선과 정의를 고수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이 세상 속에서 고난을 받더라도 선을 행하면서, 이 악한 세상을 거르스는 사람이 되고, 오히려 이 세상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우리가 왜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 그에 대한 소망과 근거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 나가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본을 보이신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 그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면서, 고난 속에 담긴 그분의 더 큰 소망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
6/5일 인천대공원전도
이 말씀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신앙인들에게 맡겨진 ‘선행’과 ‘고난‘에 대한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와 우리가 끝까지 증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노아도, 같이 구함을 받은 그의 가족 역시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또 방주를 만들고 타라고 하는 명령에 순종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했고, 하나님께서 내리신 물의 세례, 곧 홍수로 말미암아 방주를 만든 그들의 삶은 구원을 받았으며 심판받은 영혼들을 향해 최종적 증언은 그리스도께서 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물세례와 성령의 세례를 받아 ‘구원의 확신’에 이르렀고, 이는 그리스도를 따라 선행을 하고 고난에 대해 ‘온유와 두려움’으로 증언하기를 피하지 않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임할 ‘불심판’이 이르기 전까지 쉬지 않고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함을 흩어진 교인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임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 돌이킬 수 없는 날이 오기 전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전하는 복되고 선한 제자의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의를 위해 고난받으면 복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소망에 관한 물음에 늘 대답할 준비를 하고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해 죽으심은 불의한 자들을 하나님 앞에 인도하려 하심입니다.
주님은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의를 위해 받는 고난(3:13~17)
이 세상은 불확실하고 모순된 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항상 선을 행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베드로는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강조합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의를 행하려면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주님으로 인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온유한 태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이 소망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선행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부끄러워하며
복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의인의 선한 양심은 세상에 소망을 주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료하며,
가족과 사회와 민족을 살리는 의의 제사가 됩니다.
- 묵상 질문: 의를 위해 받는 고난이 왜 복이 될까요?
- 적용 질문: 선한 일을 하다가 오히려 곤경에 처할 때 어떤 믿음을 붙들어야 할까요?
불의한 자 대신 죽으신 예수님(3:18~22)
그리스도께서 의를 위해 고난당하셨으니 우리도 의를 위해 고난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의인이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났던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또한 다시 살아나심으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악한 영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오르셨고, 그분의 발아래 모든 천사와 권세가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고난을 감당하시고 영광을 얻으신 예수님을 믿기에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언제 어디서든 선한 양심으로 행하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들을 다시 묵상해 보세요.
- 적용 질문: 누군가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어떤 헌신과 희생을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세상의 위협과 사소한 욕심 때문에 옳은 것을 외면하며 양심을 더럽혔던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저도 승리할 것을 확신하며,
의를 위해 고난받는 이 길도 선한 양심 붙들고 기꺼이 감당하며 걷게 하소서.
이제 사도는 성도가 당면한 고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교훈합니다. 의를 위한 고난이라면 결코 헛된 일이 아님을 주께서 친히 보여주셨다고 설명합니다.
*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18,22절 의인으로서 죄인을 위해 죽음을 당하셨지만, 부활하여 영광의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이로써 의를 위한 고난이 헛되지 않고 도리어 복된 일(14절)이요, 생명의 길임을 보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자취를 따르는(2:21) 성도의 고난을 누구보다 알아주시며, 그 결국이 허망하지 않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주님만이 성도의 유일한 소망이요, 절망할 수 없는 이유(15절)이십니다.
*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3절 ‘선’(8-11절)을 행하고 ‘의’를 위해 산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의인을 지키시고(12절) 그들 편에 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받지 않거나 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실 하늘의 유업과 구원, 산 소망까지 앗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타협과 변절, 회피의 삶을 접고 더욱 힘써 ‘선’을 행합시다.
14,17절 성도에게 고난은 불행이나 실패가 아닙니다. ‘의’를 위해 당하는 고난이라면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의 뜻이고,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18절)임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고난을 두려워할 이유도, 근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도에게 고난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면,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박해 없는 순탄한 삶이 아니라, 박해에 굴하지 않는 순전한 믿음입니다.
15,16절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사람은 비굴한 태도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말고 끝까지 선을 행하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또한 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인만이 지닐 수 있는 소망의 근거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한 양심을 꺾지 않고 산 소망에 어울리는 삶을 산다면, 세상의 비방은 침묵으로, 위협은 호응으로 변할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의 의롭고 의연한 모습은 복음과 세상을 연결하는 최상의 접점이자, 복음에 대한 강력한 변증입니다.
19-21절 그리스도의 부활(18절)은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선행을 욕하는 자들(16절)에게 심판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양심과 행실을 지킨 성도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될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적지만, 그 길만이 구원의 길이니 타협 없이 믿음의 길을 걸어갑시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놀라운 섭리 안에 그 비밀을 맛보고 고난과 낙심 가운데
다시 일어날 힘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구원의 기쁜 소식을 믿음으로 전하고,
맡겨진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도록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지금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데
쓰임 받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