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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막론하고 조직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 노래만큼 좋은 요소는 없다. 어느 조직이든 그 조직을 가장 잘 드러내고, 조직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단합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다. 노래는 그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월드컵 축구와 같은 큰 행사에서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밖으로 공통되게 표출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노래인 것이다. 이 때 노래는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서로가 하나됨을 느끼는 감정을 유감없이 표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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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정규현씨가 한양대 산악부 출신들과 알파인 코러스와 함께 도봉산에서 산상음악회를 열고 있다.(우)정규현씨가 우이령보존회 주최 점봉산 행사에서 알파인 코러스와 함께 산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 하모니카를 부는 사람이 정규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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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군대라는 조직에도 마찬가지다. 특정 종교는 그 종교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방법으로, 또 감정을 한 데 묶는 수단으로 성가를 만든다. 군대도 군가나 행진가 등으로 조직의 결속을 다지며 일탈을 막는다. 이와 같이 조직의 결속과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노래인 것이다.
산악인을 한 데 묶는 중요한 수단도 노래다. 공통성과 동지애를 느끼며 운명공동체로 생각하게 만든다. 산중에서 텐트생활이 가능했던 과거엔 자연의 순수함을 느끼며 한 자리에 모여 낭만을 나누며 노래를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더욱 결속력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야영과 산중 노래가 사실상 금지돼 있다. 친환경적으로 됐는지 반인간적으로 됐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세상이 각박해지고 삭막해졌다는 사실이다. 그건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없어 더욱 그럴 것이다. 등산객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산을 진정으로 느끼고 즐기는 사람은 오히려 줄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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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전두성씨가 열린캠프 2007년 송년음악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앞줄 왼쪽이 전두성씨.(우)전두성씨가 우크렐레를 치며 경찰대학 야영지에서 산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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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노래는 산악인 한 데 묶는 수단
과거 산노래들을 살펴보면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느낌으로 이들 노래를 만들었으며,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간접 경험을 하면서 순수하게 산을 사랑했던 시절로 되돌아가보자.
한국의 산노래는 1960년대 들어 각급 산악부들이 생겨나면서 태동기를 맞는다. 그 이전까지 ‘개나리고개’가 한국 최초의 산노래로 알려져 있다. 개나리고개는 고 김정태씨가 1948년 한국산악회 울릉도 학술탐사 때 그 지역에서 불리던 노래를 채록해서 가져온 걸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제시대 때인 1934년 콜럼비아 레코드사가 발표한 음반에 민요풍으로 취입된 걸로 밝혀졌다. 대중가요가 각 지역으로 퍼지면서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김정태씨는 이외에도 ‘산, 산, 산’을 만들었다. 김정태씨와 조금 늦은 시기엔 양천종씨가 창작곡을 많이 내놨다. 양천종씨는 경기고 산악부인 라테르네 출신으로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후 모교에 음악 교사로 부임한 정통 음악인이자 산악인이었다. 양천종씨는 ‘산으로, 또 산으로’와 ‘스키어의 노래’ 등을 작곡했다. 그래서 양천종씨와 김정태씨가 한국 산노래 제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어 60년대 후반 70년대 들어 2세대들이 창작곡을 잇달아 선보인다. 대표적인 인물이 백경호씨, 이정훈씨, 김태호씨 등이다. 백경호씨는 60년대 고려대 산악부 출신으로, ‘숨은벽 찬가’와 산악인들 사이에 널리 불리고 있는 ‘아득한 산정’ 등을 만들어 발표했다.
김태호씨는 ‘설악아, 잘 있거라’를 만들어 우클렐레 연주와 함께 불러 산악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금은 ‘~있거라’로 거의 정착됐지만 김태호씨는 ‘있어라’라고 만들었는데, 왜 변형해서 부르냐며 농담성 항의를 했다고 한다. 이정훈씨는 이들보다 나이는 조금 뒤지지만 비슷한 시기에 많은 창작곡을 쏟아냈다. 아직까지 많은 산악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설악가’, ‘즐거운 산행길’ 등을 70년쯤 발표했다.
70년 전후해서 활발하던 창작, 또는 개사활동도 80년대 들어 잠시 정체기를 맞는다. 그러다 한양대 산악회의 정규현씨, 이영수씨, 류문환씨, 이승구씨 등이 주축을 이뤄 알파인 코러스를 탄생시켰고, 90년대 초반 구인모씨, 최혜향씨, 전두성씨, 이정훈씨, 손재식씨, 이성훈씨 등이 한국산악회 회관에서 산노래를 부르며 다시 분위기를 조성했다. 현재까지 활발히 산노래 창작과 보급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은 전두성씨, 정규현씨, 신현대씨, 조일민씨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