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 운이 좋은 날
권성업
입춘의 언덕을 넘고 보니 봄기운이 완연하다 대동강도 풀린
다는 우수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낮에는 간혹 엄마의 품처럼
따사로운 햇볕이 깊은 잠에 잠겼던 대지를 정답게 깨우고 철없
는 어린이들을 가끔 마당으로 유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쌀쌀한 바람이 귓전을 울리고 차가운 냉기가 손끝에 달라붙는
걸 보면 떠나는 겨울이 아쉬움의 정을 떨치지 못하는가 보다.
일찍 일어나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벌써 시계는 8시를
알리고 아침상이 차려진다 하루의 활력을 주는 배드민턴 시간
도 지나 서운했지만 어쩌랴 제방 길이나 거닐며 몸을 풀 수밖
에 도리가 없었다.
대문을 나서자 길가에 아무렇게 나뒹구는 비닐 조각이 눈에 걸
렸다 누가 버렸는지 자고나면 여전히 널려 있기 일쑤다. 공중도덕
심의 부재와 이기 무관심의 잔해들이었다. 각자가 조금만 주의
해도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이 될 것을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급한 마음에, 장갑도 끼지 못한 채 잠깐 주우려고 봉지를 찾아
들고 집 주변의 길을 서성였다. 여기저기의 각종 쓰레기들은 구
원을 요청했다. 행동 반경이 점차 확대되어 골목길 남의 집 앞
을 조심스레 접근했다. 잠바를 뒤집어쓴 채 손에 자루를 들고
무엇인가를 살피며 정신없이 줍는 괴한을 본 멍멍이들이 왜
오? 오 라며 수상하다고 일제히 고함을 지른다.
'안심해라, 나는 도적이 아니니 너의 집에 들어갈 일은 전연
없다. 다만 임자 없이 버려진 물건들 주워 모으며 조그만 보람
을 찾는 이웃 사람이다. 그러나 짖어댔다. '그걸 어떻게 믿느
냐 즉시 떠나라,’며 아우성이다 허기야 사람도 서로 못 믿는
세상에 멍멍인들 어찌 사람을 믿겠는가. 그래도 밥값을 하느라
맡은 사명을 다하는 녀석들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마침내 인근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용장소인 시내버스 승강장
엘 도착했다 꽤 오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나 보다 바닥과
주변 풀섶에 겨우내 쌓인 찌꺼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마치 치부를 드러낸 여인이 급히 몸을 가리듯 정신없이 주워 담
았다. 건너편에 잠시 정차한 택시 기사가 나를 유심히 보는 듯
했다. 혹 저 사람이 식전에 누가 흘린 돈을 저렇게 허겁지겁 줍
나 라며 의심스런 눈으로 보지 않을까? 계면쩍은 생각이 들기
도 했다. 좀 전에 내 몰골이 멍멍이에게 비친 것처럼.
쓰레기 이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산물
들이요, 편리와 영화를 누린 흔적이기도 하다 영화 뒤에는 반
드시 그에 상응하는 불편과 지켜야할 의무가 따르는 법이다. 만
약 의무를 저버리고 방종과 나태를 일삼는다면 영화는 물러가
고 재난만이 남지 않겠는가?
버려진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주변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본래 맑고 고운 우리의 마음도 혹 저처럼 쓸모없
는 망상의 산물로 오염되어 있는 게 아닐까? 행여 욕정의 사슬
과 증오의 불길, 분노의 화살 복수의 칼날 편견의 안경, 비굴의
굴레, 오만과 아집의 누더기 등 온갖 쓰레기들이 내 마음 깊은
곳에 그럴 듯한 구실로 감춰두지 않았는지, 반성하며 아직도 흉
한 뱀의 꼬리처럼 긴 흔적을 남긴 마음의 쓰레기를 하나씩 찾아
내어 봉지에 함께 털어 넣었다.
이렇게 줍고 꺼내어 적잖은 수입을 올리고 나서 뒤를 돌아다
보니 상쾌한 기분은 이를 데 없었다. 마치 새로 단장한 신부의
깔끔한 모습인 양 파란 하늘 아래 드리운 하얀 백사장처럼 깨
끗함에 새삼 놀랐다. 조금 전에 다소 야속했던 점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잔잔한 환희 파도가 가슴 속에 밀려왔다. 비록 운동은
못했지만 행복한 아침이었다.
언젠가 산의 정상에 올라 수려한 산수와 탁 트인 운해(雲海)
를 바라보며 ‘야호’를 외쳤다. 상쾌한 기분을 무엇에 비기랴.
일행은 바위 위에 도시락을 펼치고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비좁은 바위틈을 내려다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 이를 어찌
하랴 빈병, 깡통 라면봉지, 쓰레기 등의 오물들이 아름답고 신
성한 영봉(靈峰)의 얼굴에 환칠을 하듯 널려 있지 않는가. 특수
한 기구가 없이는 주워낼 수도 없었다. 답답한 심정으로 돌아왔
다. 그러나 10여 성상이 흘러간 지금에도 옛일을 생각하면 가슴
이 아려온다. 현대의 문명이 우리 생활에 많은 편리도 안겨주지만
환경오염이라는 심각한 병을 앓게 했으니 호사다마(好事多魔)요,
흥진비래(興盡悲來)란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일까? 날로 황폐해 가
는 자연을 이대로 좌시 (坐視)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근자에는 유원지나 놀이터 관광을 갈 때면 뒷정리를 깨끗이 하
고 버릴 장소가 없는 쓰레기는 가져오는 것이 상례인데 아직도 미
망(迷妄)의 꿈을 깨지 못한 사람이 있다니 각성해야 할 과제이다.
장마 후 온통 오물로 뒤덮인 호수, 바닷가 후미진 곳에 쌓인
쓰레기를 볼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떤 환경학자의 말대로
'현대화란 자연 파괴로 인한 인류의 재앙과 지구의 종말을 재
촉하는 것’이란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이다. 속담에도 설
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이것 하나쯤이야'라며 무심히
버린 행위가 농사를 짓는 땅이나, 마시는 지하수, 생명의 필수
원인 공기 등을 오염시켜 ‘인류의 패망을 앞당기는 죄’가 되고
간접적인 살인이 됨이니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오늘은 음력설을 앞둔 마지막 토요일이니 귀성객의 대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바르게 살기 협의회에서는 해마다 증평 인터체
인지에서 귀성객맞이 행사를 벌인다. 오가는 손님에게 기념품,
쓰레기봉투를 주어 오물투기 예방과 친절봉사 먼저 인사하기
등의 홍보물을 배포하며 부근의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검표소
안쪽 깊숙한 곳이나 광장의 둘레 울타리 밑에도 예외는 아니다.
바람에 날려 왔을까? 잠시 정차하는 중에 무심히 버렸을까? 일
그러진 양심 조각들이 부끄럽게 널려 있다.
이 땅의 주인은 우리의 후손이요. 우리는 이 땅을 임시로 빌려
쓰는 것이라 했다 빌린 물건을 돌려줄 때는 정결하고 깨끗해야
지 망가뜨린다면 무슨 면목이 서겠는가 무엇으로 대신할 수도
없는 소중한 국토다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살기 좋은 터전을 물
려줌이 오늘에 사는 우리의 책무요 사명이 아닐까?
오늘은 좋은 날이다 아침에는 요행이 독점사업으로 소득을
올렸고 오후에는 동료를 만나 성과를 거뒀으니 쓰레기 사냥의
운이 확 트인 날이요 후손을 위해 떳떳한 날인 것 같다.
2003 16집
첫댓글 이 땅의 주인은 우리의 후손이요. 우리는 이 땅을 임시로 빌려
쓰는 것이라 했다 빌린 물건을 돌려줄 때는 정결하고 깨끗해야
망가뜨린다면 무슨 면목이 서겠는가 무엇으로 대신할 수도
없는 소중한 국토다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살기 좋은 터전을 물
려줌이 오늘에 사는 우리의 책무요 사명이 아닐까?
이 땅의 주인은 우리의 후손이요. 우리는 이 땅을 임시로 빌려쓰는 것이라 했다 빌린 물건을 돌려줄 때는 정결하고 깨끗해야지 망가뜨린다면 무슨 면목이 서겠는가 무엇으로 대신할 수도 없는 소중한 국토다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살기 좋은 터전을 물려줌이 오늘에 사는 우리의 책무요 사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