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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정말 괜찮은 것인지 걱정이 됩니다.”
고비는 넘겼다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환야의 모습에 변화가 없자 초조해진 소문은옆
에선 검왕을 바라보며 물었다. 안면이 없던 검왕 보다는 당천호에게 답답함을토로
하고 싶었지만 함께 있었던 당천호는 어느새 정도맹의 무인들에게 돌아간상태였고
그곳에 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살았지만 살아있는 것이 아닌 제갈영영의 사혈을
짚어 고통을 덜어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소문은 차마 환야의 상세에 대해물을
수가 없었다.
“괜찮을 것이네. 별일이야 있겠는가? 조금만 더 지켜 보세나.”
검왕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다. 그러자 대답을 하는 검왕의 음성에서염
려의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던 소문이 의아한 눈초리로 검왕을 바라
보았다.
‘흥! 그렇게 봐도 할 수 없다. 염려를 할 이유가 있어야지!’
소문의 시선을 슬쩍 외면하며 환야를 바라보는 검왕의 표정엔 영 못마땅해 하는기
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염려할 필요가 없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사실 소문이나 당천호를 비롯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제갈영영에게 불의의암
습을 당한 환야의 몸에는 조금의 이상도 없었다. 오직 환야와 오랜 시간을 보낸검
왕만이 진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 소문과 함께 환야의 앞을 막아선 검왕의 분노는 소문에 못지않았다. 하지만제
갈영영이 부시혈독 운운할 때부터 그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생사괴의와 함께 지내온 환야는 이미 만독불침의 경지를 이루고 있었다. 당연한것이
환야를 친 손자 이상으로 여기고 있던 생사괴의는 환야가 걸음을 떼기 전부터몸에
좋을 것이라 하면 영약이건 독약이건 닥치는 대로 복용을 시켰다. 특히 평생을바
쳐 만들어낸 역천단. 그 역천단에 들어간 수백 가지의 성분에 중에 부시혈독이 들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검왕은 환야가 중독 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더구나 당천호의 말대로 그 암기가 웬만한 고수의 호신강기는 가볍게 파괴한다고
했지만 환야는 보통 고수가 아니었다. 비록 약간의 상처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의
말대로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분노했던 검왕은 돌연 행동을 멈추고 묵묵히 환야의지켜보았
다. 아니나 다를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검왕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 환야는잠시만
모른 척 해달라는 전음을 재빨리 날려 왔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자신을 깜짝놀라
게 한 것이 괘씸하기도 했지만 환야의 의도를 파악한 검왕은 부탁대로 침묵을지켰다
.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체 미친 듯이 날뛰는 소문을 가엽다는 듯 지켜보았다.
애당초 소문은 환야의 심각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검왕이 나서지 않는 이유를생각했
어야 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소문은 마냥 불안에 떨 뿐이
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것이냐? 네 말대로 하긴 했다만 이제 그만 일어나도 되지않
겠느냐?]
[너무 빨라도 의심을 사는 법입니다.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쯧쯧, 하는 짓 하고는…….]
환야와 전음을 날리는 검왕은 차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몹시 불편해하는눈치였다.
[그만 하도록 하자. 계속 이곳에 있기도 뭐하구나. 나야 상관이 없지만 네 녀석때문
에 그의 입장만 곤란해지지 않았느냐?]
[부인의 목숨 빚을 갚았는데 곤란해질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걱정을
하니 이제 일어나 볼까요?]
[의뭉스러운 놈!]
검왕의 마지막 전음을 들으며 지금껏 눈을 감고 있던 환야가 살며시 눈을 뜨는것으
로 더 이상 은밀한 전음은 오고 가지 않았다.
“혀, 형님! 괜찮으십니까?”
환야가 눈을 뜨자 뚫어지게 환야를 살피던 소문이 격동에 찬 음성으로 말을걸었다.
“살아있는 것을 보니 괜찮겠지. 어이쿠!”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몸을 일으키던 환야가 돌연 이마를 짚으며 휘청거렸다.
“이런!”
깜짝 놀란 소문이 환야를 부축했다.
“조금 어지럽군.”
“독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빨리 치료를 해야지 이대로 방치하면 큰일나겠습니다.”
소문이 자신의 자신의 허리를 손으로 감싸고 부축하자 약간 얼굴을 붉힌 환야가입
을 열었다.
“곧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 하지 말게. 그나저나 이제는어쩌려는가?
나는 이 길로 소림으로 가려 하는데…….”
“소림으로요? 호북성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소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 하는 동안 환야의 설명이 계속 되었다.
“그랬지. 하지만 어차피 소림으로 가게 되어 있네. 나와 약조를 한 분들이계시다네.
내가 돌아갈 때쯤이면 정도맹을 제압하고 소림에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하시는 분
들이.”
“허!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이네. 그분들은 능히 그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계시지. 여기 계시 검왕할아버
지에 비해 손색이 없는 분들이거든. 참 그러고 보니 아직 인사를 여쭙지도 못했지?
인사드리게.”
환야는 비로서 검왕을 소문에게 소개했다.
‘흠, 이분이 검왕이시군. 과연 예사롭지 않으신 분이라 여겼거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심상치 않은 기운들을 느끼며 처음부터 노인의 정체를궁금
해 하던 소문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급히 허리를 숙였다.
“을지소문입니다. 명성 높으신 검왕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검왕도 인사를 받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비사걸이라 하네. 그리고 검왕이란 명호는 이미 버렸다네. 검신을 보았는데검왕은
무슨…….”
“예?”
순간적으로 검왕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소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환야가재빨
리 말을 자르고 나섰다.
“괜한 말씀이시라네. 어쨌든 난 소림으로 갈 것이네. 자네는 어찌 하겠는가?”
“어찌하기는요. 저 때문에 형님이 이 지경이 되셨는데 함께 가야지요. 저 또한소림
으로 가는 길이잖습니까? 혼자 가지 않아서 외롭지 않고 좋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잘됐네. 잘됐어. 그럼 바로 가세나.”
은근히 마음을 졸이며 대답을 기다리던 환야가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그런환야를
바라보며 검왕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소문은 몸을 돌려 어떤 행동을 할지 망설이고 있는 정도맹의 무인들에게 다가갔다.
그 사이 벌써 목숨을 잃은 무인들과 제갈영영을 위한 무덤이 만들어져있었다.
“후~ 결과가 이렇게 되어 뭐라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아니네. 이곳에서 자네의 입장을 이해 못할 사람은 없다네. 그래, 이제가려는가?”
당천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예.”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쉰 당천호가 입을 다물자 그런 당천호를 뒤로 하고소문
은 곽검명을 찾았다.
“어디로 가는가?”
소문을 은근히 적대시 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곽검명의 태도는 전과 다름이없었
다.
“소림에서 할아버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음, 그곳에 계셨군. 알았네. 소림에 계시다니 자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한번
뵐 수 있겠군. 설마 인사도 없이 떠나는 것은 아니겠지?”
“어찌 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단견 아우와 두일충 형님께 잘 말해주십시
오.”
소문은 부상으로 인해 미리 길을 떠난 단견과 두일충을 떠올리며 당부를 했다.
“알았네. 그리 하지. 자네도 몸조심 하게.”
“예.”
곽검명과 인사를 나눈 소문은 곧 몸을 돌리려고 하였다. 왜 이렇게 일이꼬였는지를
한탄하는 소문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런 소문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이대로 가시는 건가요?”
“아! 남궁소저.”
소문의 정면에 슬픈 표정의 남궁혜가 서 있었다.
“남궁형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꼭 드려 주십시오. 이럴 생각은 진정없었는데…….”
남궁진과 제갈영영의 사이를 알고 있었던 소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나남궁혜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정녕 이대로 떠나시는 건가요?”
“예?”
“이대로 떠나시냐고 물었어요.”
“…….”
자신을 생각하는 남궁혜의 마음이 어떤지도 이미 눈치 채고 있었고 지금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있었지만 소문은 뭐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침묵을 지키는소
문의 태도에 눈물을 비추던 남궁혜가 다시 한번 물었다.
“대답해 주세요. 이대로 그냥 떠나시는 건가요?”
“그…그것이…….”
그때였다. 소문이 우물쭈물 거리는 사이 기다리던 환야가 부르는 소리가들려왔다.
“소문아우! 빨리 가세나.”
손짓으로 대답을 한 소문이 남궁혜에 말을 했다.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그럼 몸조심 하십시오. 언제가 다시 뵐 날이 있겠지요.그럼
이만.”
“자, 잠…….”
소문의 행동에 당황한 남궁혜가 소문을 부르려 하였지만 몸을 돌린 소문의 등을보
는 순간 그녀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결국… 이렇게 끝나고 말았군요…….”
힘없이 서서 독백처럼 몇 마디를 내뱉는 그녀의 볼에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패천궁의 전격적인 기습으로 다시 시작된 정도맹과 패천궁의 싸움은 초반 패
천궁의 절대적인 우세로 진행되었다. 패천궁의 전력이 호북성을 점령하고 하
남성을 넘어 정도맹이 있는 곳까지 이르자 모든 사람들이 패천궁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패천궁의 강남총타를 친다는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고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던 정도맹의 계획이 성공을 거두면서 불리했던 전세는 일시
에 역전되었다.
패천궁의 무인들은 연이어 들려오는 비보(悲報), 강남총타가 무너지고 군사
인 귀곡자는 물론 궁주인 관패까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정도맹은 후퇴를 거듭하면서도 보존하였던 전력을
투입하며 차근차근 잃었던 지역을 회복했다. 그러나 정도맹의 승리로 끝날
것처럼 보이던 싸움은 또 다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패천궁 원로들의 참여. 인원은 몇 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지닌 힘은 실로 상상
을 불허했다. 그 누구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정도맹 맹주인 영오대사를 비
롯하여 모든 수뇌들이 힘을 합치고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고수들을 동원했지
만 권왕을 필두로 한 일곱 명의 원로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패퇴에 패퇴를 거듭하다 정도맹의 본성에까지 밀린 정도맹에선 본성을 지키기
위해 수 없이 많은 무인들을 동원하여 패천궁을 막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헛되이 사흘 만에 엄청난 사상자를 내며 성을 내주는 참담한 결과를 맞게
되었다. 정도맹과 패천궁의 싸움은 사실상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본성에
서 조차 쫓겨난 그들이었지만 아직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소림사!
그들 뒤엔 아직 소림사와 수호신승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버티고 있었다. 그것
은 패천궁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소림과 수호신승을 쓰러트려야 만이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은 정도맹 본성을 점령한지 하루 만
에 모든 휴식을 끝내고 소림을 향해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소림에는 이미 퇴
각한 정도맹의 모든 무인들과 각지에서 몰려든 백도의 무인들이 마지막 일전
에 대비하고 있었다.
“아직도 소식이 없는가?”
“예. 사흘 전에 연락이 온 뒤로는 아직 이렇다할 소식이 없습니다.”
궁사흔은 은근히 짜증이 섞인 권왕의 질문에 대답을 하며 탁자 위의 장기판으
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까지 두고 계십니까? 벌써 한참을 두고 계시는 듯 합니다.”
“흠, 그렇게 되었네. 딱히 할 것도 없고. 또 이친구와 나는 아직 제대로 승부
를 겨루지 못해서.”
권왕과 마주앉아 장기를 두던 궁왕이 겸연쩍은 미소를 보였다.
“그나마 이제는 이것까지 질리는군. 이럴 줄 알았으면 환야와 약속을 하는 것
이 아닌데 그랬어.”
“무슨 소리인가?”
궁왕의 물음에 권왕이 아직 승부가 나지 않은 장기판을 거두며 대꾸했다.
“지루해서 그러네. 이건 내 성격과 맞지 않아. 싸우면 싸우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는 것인데 이건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니…….”
“쯧쯧, 얼마나 기다렸다고 그러는가?”
“이곳에 온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어. 그 시간이면 소림을 갈아엎어도 열 번은
더 갈아엎었겠네.”
“그렇게 지루하면 자네 먼저 돌아가지 그러는가?”
궁왕이 살짝 핀잔을 주었다.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수야 없지. 누구하고 한 약속이라
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권왕이 옆에 놓인 술병에 입을 가져갔다.
“흥, 그러니 불평일랑 하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게. 금방 오겠지. 나도 한잔 주
고.”
궁왕은 권왕이 따라준 술을 단숨에 마셨다. 양에 차지 않는지 연거푸 넉 잔의
술을 마신 뒤에야 잔을 내려놓았다. 말은 그리 했지만 그 또한 몹시 지루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다른 늙은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궁사흔에게도 술을 권하던 권왕이 불현듯 생각이 나는 듯 물었다. 그러자 궁
사흔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생사괴의 어르신은 약재를 찾는다고 산으로 올라가셨고 무불살 어르신은 땅
을 파고 은신하셨습니다. 혈승 어르신은 계속해서 불공을…….”
“됐네. 안 봐도 뻔한 것이지. 그 버릇이 어디 가겠나?”
권왕은 재빨리 궁사흔의 입을 막고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궁왕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술잔을 옆에 끼고 장기판을 벌리고 있는 자네나 나도 똑같지 뭘 그러
나?”
“흠, 하긴… 그건 그렇군. 어쨌든 빨리 결판을 내야지 너무 지루해. 너무.”
“어디까지 왔습니까?”
정도맹의 맹주에서 이제는 소림사의 장문인의 위치로 돌아간 영오대사가 물었
다.
“숭산의 초입에 그대로 머무르고 있습니다.”
제갈공이 공손히 대답했다. 애지중지 하던 딸의 충격적인 죽음을 듣고 또 연
일 계속되는 싸움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제
갈공의 몸은 그새 반쪽이 되어 있었다.
“음,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말이오? 그들이 그곳에 진을 친지 벌써 열
흘이나 지났소.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오?”
“저들이 무슨 연유로 그리 하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휴식을
취하려는 것이라면 그 시간이 너무 길고,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기엔
어떤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후~ 용서하십시오. 제가 능력이 부
족해서…….”
운상진인의 말에 짧게 대꾸한 제갈공이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까지 몰린 것
이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는 듯 스스로 자책하고 있었다.
“아니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나마 군사께서 계셔서 이만큼이나 버
틴 것입니다. 군사의 신묘한 계책이 없었던들 저들에게 변변한 타격을 주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군사께서는 모든 능력을 십분 발휘 하셨습니다. 군사의 선조이
신 공명선생께서 오신다 한들 군사만큼 잘 하시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일청이 석부성의 말에 동의하며 제갈공을 두둔했다.
“…….”
그럼에도 제갈공은 쉽사리 고개를 들지 못했다.
“군사께서는 너무 자책을 하고 계시는 듯 합니다. 토끼를 잡으려고 판 함정으
로 어찌 범을 잡겠습니까? 아무리 신묘한 계책이 세워져 있다한들 그 계책을
이루어낼 고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저들을 막을 고수만 있었다면
이렇게 밀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석장문인의 말씀대로 그나마 군사께서 계셨
기에 아군에게 있어선 많은 피해를 줄일 수 있었고 적에겐 많은 피해를 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만 고개를 드십시오.”
영오대사까지 나서서 말을 하자 그제야 힘겹게 고개를 든 제갈공이 기나긴 한
숨을 내쉬었다.
“후~ 아둔한 저를 너무 좋게 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
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한계란 생각이 드는군요.”
“무슨 말씀을! 군사께서 약해지시면 정도맹은 말 그대로 끝장이오. 힘을 내시
구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않겠소? 하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비록 우리
무당의 인원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들은 모두 죽을 각오를 하고 있소.”
운상진인이 굳은 표정으로 말을 하였다. 그러자 각 문파를 대표해서 이 자리
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우리 청성파 또한 모두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점창 또한 그렇습니다.”
호기롭게 외치는 그들의 음성에 장내가 소란해지자 영오대사가 나서서 혼란을
진정시켰다.
“아미타불! 진정들 하십시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마음이 그와 같을 것입
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적을 대한다면 반드시 승리를 하여 땅바닥에 처
박힌 정의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쉽지 않다는 것은 소승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운상진인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들이 움직이지 않는 지금이 우리에겐
호기일 수 있습니다. 그 사이 전력을 충원하고 조금이라도 힘을 키우는 기회
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이렇게 힘든 상황에 몰렸지만 사필
귀정(事必歸正)이라! 정의는 승리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끝
까지 노력한다면 반드시 그리 될 것입니다.”
영오대사의 말에는 어떤 신념이 담겨져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그것이 이루어지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고 있던 이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흠, 그러니까 자네의 강호행은 사실상 소림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
“그렇지요. 소림사에서 노스님도 만나고 수호신승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구양 할아버지를 만난 것도 소림에서였고 혈참마대를 처음 본 것도
이곳이었지요.”
소문이 과거를 생각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환야 또한 소문을 마주보며 웃
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자네를 처음 본 곳도 바로 소림이었군. 자네는 몰랐겠지
만.”
“그렇게 되는 군요.”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검왕이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저기 보이는 산이 숭산이다. 서로의 입장도 있고 하
니 이쯤에서 헤어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예. 전 이대로 소림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패천궁에서도 제게 좋지 않
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꽤 있을 겁니다.”
소문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좋은 생각을 가지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하지만 함부로 덤비지는 못할 것이
다. 어느 놈이 단신으로 패천수호대를 박살낸 위인에게 덤빈단 말이냐? 그런
간덩이를 지닌 놈이 있다곤 도저히 생각하지 못하겠다.”
검왕이 소문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하였다. 근 한달 여를 함께 보낸 검왕은
이제 소문에게 스스럼없이 대하고 있었고 그것은 소문도 마찬가지였다. 싸늘한
시선하며 냉막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그것이 검왕의 천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
는 지금, 소문은 자신의 어깨를 건드리는 검왕의 행동이 매우 친근감 있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네에게 덤비려면 그 전에 나와 면담을 해야 할 것이네. 그놈이야 혼자 덤
벼서 죽으면 그만이지만 여차하다간 패천궁의 기둥뿌리가 흔들리게 되지 않
겠나? 그것은 막아야지.”
환야가 주먹까지 쥐며 심각한 표정을 짓자 그 모양에 연신 웃음을 터뜨린 소
문이 손을 저으며 말을 하였다.
“하하하! 농담은 그만하십시오. 어쨌든 형님. 전 이만 소림으로 올라가겠습니
다. 제가 형님을 따라 패천궁으로 갈 수야 없는 노릇이니.”
“흠, 알았네. 이제 고작 며칠을 함께 지냈는데 벌써 헤어지려니 아쉽군. 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허! 며칠이라니요. 한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소문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게 그것 아닌가? 난 그저 아쉽다는 것이네. 그러나 늦어도 내일 까지는 다
시 보게 될 것이네. 나 역시 이 길로 바로 소림에 갈 생각이거든.”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독상을 치료하자면 며칠은 걸리지 않겠습니까?”
소문이 깜짝 놀라 물었다.
“험험, 생사괴의 할아버지의 능력이면 이 정도 독상은 하루면 완쾌 될 것이
네. 너무 걱정하지 말게.”
“하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하지만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그
럼 소제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문은 검왕에게 허리를 숙여 작별 인사를 했다.
“그래, 환야의 말대로 금방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을 꾸며놓고
자신은 절간에 처박혀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있는 늙은이에게 안부나 전해
주거라.”
“하하! 알겠습니다.”
검왕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소문은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환야를 뒤로 한 체 소림사로 향했다.
소문과 헤어진 환야와 검왕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동안은 소문의 눈을 의
식해 일절 경공을 쓰지 않았지만 그가 떠난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쯧쯧, 그동안 답답해서 어찌 살았느냐?”
환야가 말도 없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가자 재빨리 따라붙은 검왕이 대뜸
핀잔을 하였다.
“하긴, 답답할 리가 없었지. 내가 멍청한 소리를 했구나.”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치미 뗄 것 하나 없다. 그 동안 네가 한 행동을 생각해 보면 알 것 아니더
냐.”
“가시지요.”
슬쩍 눈 꼬리를 올리며 말을 하는 검왕의 표정에 얼굴을 붉힌 환야는 더욱 속
도를 높였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그들은 곧 숭산의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패천궁의
진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환야는 자신을 보기 위해 달려온 원로들에게 큰 절을 하며 인사를 했다.
“고생은 무슨. 잘 지냈느냐?”
궁왕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환야를 일으켜 세웠다.
“예. 잘 지냈습니다.”
“흠,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구나! 어는 놈이냐? 네게 독을 쓴 자가?”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환야를 살피는 생사괴의의 표정엔 은근한 분노가 깔려
있었다.
“독? 독이라니?”
느닷없는 말에 권왕 등을 비롯한 원로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시선은 일
제히 환야에게 향해 있었다. 환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벌써 한달이
지난 일이건만 생사괴의는 환야가 독에 중독 되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
리다니… 검왕과 환야가 동시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생사괴의 할아버지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하지만 걱정 하지 마십시오.
이까짓 독이 제게 해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요.”
“암! 당연하지. 누가 만든 약을 먹었는데. 단언하건데 네게 해를 끼칠만한 독
은 오직 무영지독뿐이니라. 보아하니 부시혈독인 것 같은데 아마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참을 살피던 생사괴의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소문인 어디로 갔느냐?”
소문이 환야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것은 궁왕뿐만 아니라 다들 알고 있는 사
실이었다. 그런데 소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를 궁금히 여긴 궁왕이 질문을
하였다. 하나환야가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권왕이 나섰다.
“자네가 보기에 어떤가?”
“어떻다니?”
검왕이 권왕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몰라서 묻는가? 그자가 과연 소문대로 대단했느냐 하는 말일세. 자네가 직접
나서서 겨루어 보았으면 잘 알 것 아닌가?”
권왕은 소문과 검왕의 대결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며 말을 했다. 다른 원로
들 또한 깊은 관심이 있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검왕은
쓰디쓴 미소만을 지을 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답답하네. 말을 좀 해보게.”
“말? 무슨 말을 하란 말인가? 싸워봤냐고? 허허! 검을 뽑지도 못했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검을 뽑지도 못하다니!”
검왕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권왕이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말 그대로이네. 난 검을 뽑지도 못했어. 환야가 나서서 말리기는 하였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자신이 있었다면, 아니 자신이 아니라 어느 정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환야가 말렸어도 그 아이와 싸웠을 것이네.
하지만…….”
검왕은 잠시 눈을 감고 그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원로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뒤이을 검왕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야. 그 아이가 쓰는 검법은 내가 도저히
감당할만한 것이 아니었네. 그것은 구양 궁주라 해도 마찬가지. 구양 궁주가
일전에 궁왕에게 승부를 점칠 수가 없다고 말을 했다지만 내가 보기엔 구양
궁주 또한 소문을 이기기가 힘들 것으로 보이는군.”
“…….”
경악이었다. 허탈한 검왕의 음성과는 달리 그 말이 지닌 의미는 너무나 엄청
난 것이었다. 검왕을 넘어 구양 궁주까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검왕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더 이상 부연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잠시 동안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더 이상 그것을 참을 수 없었던
환야가 입을 열었다.
“지금 즉시 떠나겠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더냐? 떠나다니?”
생사괴의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머뭇거릴 필요가 없지요. 충분한 휴식도 취한 것 같으니 바
로 소림으로 가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더냐? 이대로 소림을 치겠다는 것이냐?”
“소림을 치는 것은 아닙니다. 덤빈다면 당연히 싸워야겠지만 당장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어쩌려는 것이더냐?”
권왕이 물었다.
“지난번 말씀드린 것처럼 수호신승과 대결을 할 생각입니다. 조건을 걸고 말
이지요.”
“옳거니! 구양 궁주가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하겠다는 것이로구나! 좋다. 네
말대로 머뭇거릴 필요가 없겠지. 이보게. 태상장로.”
“예.”
권왕의 부름에 궁사흔이 공손히 대답을 했다.
“환야… 아니지. 이제는 패천궁의 궁주가 되었으니 궁주라 불러야겠군. 궁주
가 하는 말을 들었을 것이네. 병력을 이동시키게. 목표는 소림이네. 단, 불필
요한 싸움은 하지 않을 것이니 저들에게 미리 궁주의 뜻을 전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궁사흔의 몸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껏 침묵을 지키던 패천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소는 중원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 소림사였다.
전운(戰雲)에 휩싸인 소림사. 백도의 명운이 소림에 달려 있고 헤아릴 수 없
이 많은 무인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지만 소림의 산문은 평소와 조금도 다름
없었다. 물론 소림에 이르는 길마다 많은 무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산문
근처에도 알게 모르게 각 문파에서 지원 나온 무인들이 은신하고 있었다. 다
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 소림의 산문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
오고 있었다. 환야와 헤어진 소문이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소문은 자신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
다.
‘흠, 이곳저곳 많기도 하군. 하긴 소림이 이들에게 남은 마지막희망이니…….’
소림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순간부터 자신을 감시하는 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소문은 애써 모른 척 했다.
“후~ 정말 오랜만이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소림의 산문. 감개가 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아미타불! 시주는 누구십니까?”
소문이 멈추었던 걸음을 옮기자 산문을 지키던 두 명의 승려가 앞으로 나섰
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스님!”
“누구… 을지 시주! 을지 시주 아니십니까?”
소문이 누구인지 알아본 무허는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달려와 아는 체를 했
다.
“예. 진정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산문을 지키고 계십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희 사형제가 있을 곳은 오직 이곳이라는 사부님의 엄
명이 계셔서…….”
약간은 무안한 듯 대답을 하는 무허의 안색에 발그레한 홍조가 보였다.
“하하! 그래도 스님께서 이곳에 계시니 전 반갑기만 합니다.”
소문의 웃음에 무허 또한 밝은 웃음으로 대해 주었다.
“태사숙조님을 뵈러 오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오실 때가 되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무허는 앞장서 소문을 안내했다. 가본 적이 있는 길. 장경각을 향해서였다.
‘이래서 무허 스님이 서두르는 거군.’
경내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힐끗 바라 본 소문이 내심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무허가 안에다 별다른 통보도 하지도 않고 자신을 안내하는 것을 보니 사전에
모든 말이 끝난 듯싶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한 모양이군. 후후, 나야 편하지만.’
소문이 소림사 경내로 들어서자 산사 이곳저곳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의 움직
임이 멈추어졌다. 숨소리도 내지 못하는 그들의 시선은 온통 소문을 향해 있
었다.
한 달 전 소문과 패천수호대의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싸움은 이미 세살 먹은
어린 아이라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 되어 있었다. 많은 싸움을
통해 궁귀라는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소문은 그 싸움으로 명실상부(名實相符)
한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이에 대해 그 누구도 이견
을 달지 못했다.
패천수호대가 어떤 집단 이었는가? 개개인이 고수가 아닌 사람이 없었고 그들
이 지닌 힘은 상상을 불허했다.
일례(一例)로 아미파가 그들에게 굴복해 봉문까지 하는 치욕을 맛보지 않았는
가? 그런데 누가 있어 그들에게 덤빌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개인이…….
하지만 소문은 해냈다. 대항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아예 전멸을 시켰다.
무림사에 있어 이런 엄청난 일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을까? 단언하건데 단
한번도 없었다. 단지 비교하여 견줄만한 것은 그 옛날 단신으로 소림에 도전했
던 구양풍이 그때까지 무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백팔나한진을 격파한 것뿐이었
다. 하나 백팔나한진이 지닌 힘이 패천수호대에 비해 한수 아래라는 것을 감
안하며 소문의 활약은 그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패천궁의 무인들은 강남총타에 이어 그들의 자부
심이자 희망이었던 패천수호대가 무너지자 큰 슬픔에 빠졌고 정도맹의 무인
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갈영영을 비롯하여 그녀를 보
호하고자 한 몇 명의 무인들이 소문의 검에 쓰러졌다는 소식에 패천궁의 무인
들이 맛보았던 슬픔을 그들 역시 겪어야 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더욱 큰 혼란에 빠져버렸다. 과연 소문은 어느 쪽
에 설 것인가? 정도맹인가? 아니면 패천궁인가? 자연 모든 이의 시선이 소문을
쫓았다. 그러나 소문을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문이 그 어떤 쪽의
편에 서지도 않을 것이고 이제 더 이상 싸우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소문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으니… 그대로 외면하기엔 소문이 지닌 능력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미 소문이 소림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정도맹의 수뇌부들은
혹시 모를 충돌을 염려해 모든 제자들에게 절대로 경거망동 하지 말라는 엄
명을 내렸다. 그것도 부족해 대부분의 문파에선 잠시나마 금족령(禁足令)을
내렸다. 하지만 아무리 지엄한 존장의 명이라도 강호무림사(江湖武林史)를 새
롭게 장식한 소문을 보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을 막지는 못했다. 소문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그들은 한참 전부터 경내에 모여 소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문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소문을 보게 되자 그
누구도 별다른 말과 행동을 하지 못했다.
“험험, 빨리 따르시지요.”
자신은 한참을 앞서 걷고 있었는데 소문의 걸음은 마냥 느리기만 하자 다시
되돌아오 걸음을 재촉하는 무허의 표정에는 난처함이 서려 있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런 무허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소문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
지기 시작했다.
장경각 지하의 비밀 연무장. 외인의 출입이 절대로 엄금된 그곳에서 할아버지
와 구양풍이 태연히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대단하군.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군요.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러나 할아버지의 질문에 대답하는 구양풍의 얼굴에선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저 정도 실력으로는 원로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별 문
제가 없겠지만 환야를 상대하지 못합니다.”
“흠, 그런가? 보지를 못했으니 뭐라 말을 하진 못하겠네. 하지만 무무 스님의
무공도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거늘… 환야라는 아이가 보고 싶구먼. 대체 얼
마나 뛰어난 아이기에 그러는지.”
“조만간 보게 될 것입니다.”
구양풍은 다시 무무에게 시선을 돌리며 대꾸했다.
그런데 한가한 이들과는 달리 연무장 한 가운데에서 무무를 지도하고 있는 노
승의 입에선 연신 호통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왜 그렇게 초식에 연연하는 것이더냐? 달마삼
검은 검을 마음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지 마음을 검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죄송합니다. 태사숙조님. 소손이 불민하여…….”
노승의 호통을 받은 무무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모
양을 본 노승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아니다. 나도 너만 할 때에는 그리 했었거늘… 그렇게 자책할 것은 없
다. 많이 지친 것 같으니 오늘은 그만 하도록 하자꾸나.”
노승은 힘들어하는 무무를 뒤로 하고 구양풍과 할아버지가 기다리는 곳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 실력이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그만하면 훌륭하지 않습니까?”
구양풍이 말을 받았다.
“훌륭하지. 훌륭하긴 한데…….”
뭐라 말을 하려던 노승의 음성은 연무장과 지상의 장경각으로 통하는 입구에
서 들려오는 음성에 가로막혔다.
“태사숙조님. 무허입니다.”
“웬일이냐?”
“을지 시주께서 오셨습니다.”
무허의 말에 앉아 있던 구양풍과 할아버지가 신형이 위로 솟구쳤다.
“그래, 왔구나. 들여보내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는 노승의 시선에 철궁을 메고 조금도 거리낌 없이
당당히 들어서는 소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소문입니다.”
“잘 왔네. 어서 오게나.”
소문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자 지금껏 걱정으로 뒤덮여 있던 노승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아이구! 휘소야! 아비다. 그동안 잘 있었느냐?”
노승과 인사를 한 소문이 구양풍의 품에 안겨 있는 휘소를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달려갔다. 잠을 자고 있는지 두 눈을 감고 있는 휘소. 헤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마치 몇 년이 지나간 듯 했다. 하나 그런 반가운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비가 너를 얼마나… 아이쿠!”
어느새 날아와 이마에 적중한 곰방대를 바라보는 소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한 그 아픔에 반가움이고 뭐고 싹 사라진지 오래였다.
“네 놈의 눈에는 자식 놈 밖에 보이지 않느냐? 나도 있고 작은 할아버지도 있
는데!”
할아버지는 고소한 표정으로 서 있는 구양풍을 가리키며 곰방대를 다시 휘둘
렀다. 재빨리 곰방대를 피한 소문의 얼굴에 억울함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휘소를 찾은 것은 분명히 자신의 잘못이라
변명을 할 수도 없었다.
“흥, 그대로 네놈의 입에선 잘못했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구나. 자식을 봤다
고 이제는 할아버지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옜다. 그렇게 자식
놈이 귀여우면 데리고 가거라.”
할아버지는 구양풍의 품에서 자고 있는 휘소를 빼앗더니 그대로 뒤로 던져 버
렸다.
“크악!”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있었지만 저런 극단적인 방법을 쓸 줄이야!
깜짝 놀란 소문은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땅에 처박히기
일보직전의 휘소를 간신히 받아낼 수 있었다.
“흥, 이럴 때만 재빠른 동작을 보여주는구나.”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소문을 바라보며 핀잔을 주는 할아버지
를 보는 구양풍과 노승의 얼굴을 경악으로 가득 찼다. 할아버지의 이런 행동을
어렸을 때부터 겪어온 소문은 충격이 덜했지만 노승이나 구양풍은 놀란 가슴
을 쉽사리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이냐!”
“아, 아닙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할아버지의 호통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소문이 재빨리 일어나 큰 절을 올렸
다.
“오냐. 그래, 네놈의 활약상은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또 쓸데없는 싸움에
휘말려 이리저리 돌아다녔다지?”
“그, 그게…….”
“변명일랑은 하지 마라. 나도 귀가 있고 안 봐도 뻔하니.”
할아버지는 소문의 변명은 듣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후~ 놀란 가슴이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는군. 다시는 그러지 말게. 그건 그
렇고 환야라는 자네의 의형도 왔는가?”
할아버지를 향해 못마땅한 시선을 던진 노승이 소문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 숭산의 초입에서 헤어졌습니다.”
“그가 왔다니 이제 침묵을 지키고 있던 패천궁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겠군.”
노승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소림에 밀려들어와 싸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건 제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허허, 고마운 말이군. 그렇다면 저들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소문의 말이 조금 위안이 되었는지 노승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환야 형님이 말하기를 지난날 구양 할아버지가 하신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단신으로 소림에 도전하겠다는 것이지요.”
“음…….”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간신히 살아 돌아와 몸도 성치 않은
무무를 지금껏 몰아붙인 것이었다. 하나 막상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자 가슴
한곳이 묵직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노승과 소문의 대화가 길어지자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구양풍이 별일
없다는 듯 서있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그나저나 휘소가 다쳤으면 어찌하려고 그러신 겁니까?”
“어쩌긴 별일 없지 않았는가?”
“그건 소문이가 재빠르게 움직였기에 그런 것이니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구양풍의 말 속엔 할아버지의 행동에 대한 힐난의 뜻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소문의 품에 안겨 여전히 잠을 자는 휘소를 물끄러미 바라본 할아버지의 대
답은 태연하기만 했다.
“당연히 받았어야지. 혹시나 놓쳐 을지 가문의 대를 이을 휘소가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면 소문인 그날로 나에게 죽은 목숨이지. 제 놈도 그걸 알기에 그토록
필사적이었던 게야. 흥, 귀를 그렇게 쫑긋 세우고 어른의 대화를 엿듣는 그
런 버릇은 어디서 배워먹은 것이더냐?”
말을 하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소문을 노려보았다.
움찔!
소문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추렸다.
‘젠장,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을 하는데 못 듣는 사람이 바보지. 괜한 트집
을…….’
그렇지만 고개를 돌려 반발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소문이었다.
“올 것이 오고 말았습니다.”
막 날아온 전서구를 받아든 영오대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
좌중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영오대사에게 모아졌다.
“패천궁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음!”
“결국!”
그렇지 않아도 언제 공격이 시작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던 정도
맹의 수뇌들은 저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영오대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저들의 수뇌가 우리에게 보내온 서찰입니다.”
영오대사는 또 한 장의 서찰을 보여주었다.
“항복을 권하는 것입니까?”
제갈공이 물었다.
“아닙니다.”
“그럼 어떤 서찰입니까? 공격을 감행하는 지금, 저들이 우리에게 서찰을 보낼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운상진인의 말에 영오대사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답답합니다. 말씀을 해 주시지요.”
“…….”
“맹주님!”
“아미타불!!”
운상진인의 거듭된 재촉을 받은 영오대사는 길게 불호를 외웠다. 그리고 닫혔
던 입을 열었다.
“패천궁의 신임 궁주가 우리와 대화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이곳 소림에
서 말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소승 또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어렴
풋이 짐작이 가기는 하는군요.”
영오대사의 말은 중인들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한 승려가 다
급한 목소리로 영오대사를 찾았다.
“방장님! 방장님!”
“어허! 무슨 일이기에 이리 소란을 핀단 말이냐?”
영오대사의 곁을 지키고 있던 영각대사가 노기 띤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밖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패천궁의 신임 궁주와 그를 따르는 노인들이 산문을 지나 이곳으로 오고 있
다고 합니다.”
“뭣이!”
“그게 무슨 소리더냐! 이제 막 움직였다는 전갈을 받았거늘 산문을 지나?”
영각대사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영오대사와 정도맹 수뇌들은 벌써 튕겨져
나가듯 방장실을 나섰다.
“어느 쪽으로 오고 있다더냐?”
“무허 사형이 대웅전(大雄殿)쪽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알았다.”
영오대사가 대웅전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였다. 도복을 입은 무당의 제자가
운상진인 쪽으로 뛰어왔다. 그 또한 급히 달려왔는지 승려와 마찬가지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저들이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계를 하였지만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락이 올라오는 속도보다 저들의 움직임이 더 빠를 정도
였습니다.”
“허! 그렇다면 나머지 병력은 어디 있느냐? 패천궁의 모든 인물이 올라온 것
이더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던 운상진인이 급히 물었다.
“아닙니다. 그들을 제외한 패천궁의 병력은 아직 소림사에 이르지 못했습니
다.”
“음!”
짧은 침음성을 내뱉은 운상진인이 영오대사를 바라보았다.
“저들이 저렇듯 적은 인원으로 소림을 찾은 것으로 보아 서찰에 적힌 내용이
맞기는 맞는 것 같습니다.”
“예. 그렇지 않고서야 그 인원으로 이곳을 찾을 리가 없지요. 이러고 있을 것
이 아니라 우선 그들을 만나보아야겠습니다.”
“너는 이제 돌아가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철저히 경계를 하라고 일러 두어라.
언제 저들이 몰려올지 모르니.”
더 이상 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운상진인이 무당의 제자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는 동안 영오대사와 수뇌들의 발걸음은 대웅전을 향해 움직
이고 있었다.
그들이 대웅전에 도착했을 땐 이미 주변에 수십 명의 무인들이 몰려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행도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고 있는 그들의 표정
에는 은연 중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들이 에워싸
고 있는 인물들이 누구던가? 지난 한달여의 싸움을 하면서 정도맹의 무인들
을 끝없는 절망으로 밀어 넣은 사람들이었다. 애당초 그들이 없었다면 정도
맹이 이곳 소림사까지 밀리는 수모도 겪지 않았을 것이었다.
“쯧쯧,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니 무기를 거두어라.”
권왕이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아무도 대꾸하는 사람
은 없었다.
“아미타불! 그렇다면 이곳까지는 웬일이십니까?”
때마침 대웅전에 도착한 영오대사가 예를 차리며 물었다.
“하핫, 싸우러 오지 않았다면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 아니겠소? 패천궁의 신임
궁주가 그대들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하여 이렇게 길을 나섰소이다.”
권왕이 대소를 터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전면에 환야가 나섰다.
“환야라고 합니다. 덕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패천궁의 궁주자리를 맡게 되
었습니다.”
언중유골(言中有骨)! 예를 차리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환야의 말엔 강남
총타를 기습한 정도맹의 행위에 대한 책망이 깃들어 있었다.
“허!”
“음!”
스스로 궁주임을 자청하는 환야의 말에 대부분의 수뇌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
다. 소문으로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어려도 너무 어렸다.
“정도맹의 맹주라는 과분한 자리에 있는 영오라고 합니다.”
다른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조금도 동요치 않은 영오대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마주 보며 인사를 했다.
“무슨 말씀을 대사님의 덕망(德望)이 사해를 진동시키고 있음을 천지가 다 알
고 있는 사실입니다.”
환야는 당치도 않다는 듯 말을 하였다.
“과찬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본사를 찾은 것입니까?”
질문을 하는 영오대사의 음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보내드린 서찰에 적힌 대로 입니다. 대화를 하고자 왔습니다.”
“대화라… 그래, 어떤 대화를 원하시는지요.”
“소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아미타불!!”
충분히 예상했던 말이었다. 그럼에도 영오대사는 일순 불호를 되뇌고 말았다.
“과거 패천궁을 세우신 구양풍 궁주님께서 소림에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결
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말이죠. 해서 이번에는 제가 그분을 대신하여 소
림의 힘을 경험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조건이 있겠지요?”
영오대사를 대신하여 제갈공이 물었다. 제갈공이 누군지를 금방 알아본 환야
의 눈가에 서늘한 기운이 스쳐지나갔다.
“제갈 군사시군요. 그렇습니다. 소림에 도전코자 하는데 그만한 조건이 없을
수는 없지요.”
“그 조건은 무엇이오?”
“간단합니다. 과거 구양 궁주께서 그러신 것처럼 제가 이긴다면 패천궁이 중
원을 접수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음!”
장내는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대신 제가 패하면 패천궁은 이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돌아간다 함은 어디까지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갈공의 물음에 그럴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은 환야가 대꾸를 했다.
“만약 제가 패한다면 패천궁은 처음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물론
지금껏 점령하고 있던 지역을 버리고 말이지요.”
“만약 도전을 거부하면 어찌 되는 것이오?”
운상진인의 질문에 대답을 한 사람은 검왕이었다.
“허허, 거부라… 막을 수 있다면 거부를 해도 무방할 것. 차라리 그편이 더
확실한 방법이겠군.”
“…….”
검왕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뭐라 반박을 하지 못한 운상진인이 얼굴을 찌푸리
며 뒤로 물러섰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라 급히 대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저희 소림의
문제라면 상관이 없겠으나 소림뿐만 아니라 다른 문파의 운명까지 걸려있으니
제가 독단으로 결정을 내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릅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영오대사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에 환야의 음성엔 조금도 언짢은 기색이 없
었다.
“우선은 산을 내려가시지요. 그럼 오늘이 지나기 전에 의견을 조율하여 소식
을 전하겠습니다. 소림이 단독으로 도전을 받든지 아니면…….”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하지만 후자의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
게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시겠지만 저 또한 패천궁의 무인들이
상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럼 소생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영오대사에게 예를 표한 환야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라 원로
들도 몸을 돌렸다. 그들이 소림사를 벗어나고 산을 오르던 패천궁의 무인들이
회군을 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마음을 놓지는 못했다. 하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환야가 제시한 조건을 의논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
다. 중원 무림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환야가 돌아간 이후 영오대사와 정도맹의 수뇌들은 한참 동안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격론을 벌였다. 하지만 환야가 소림에 올 때부터 이미 결론은 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저 자파의 운명을 소림에 맡겨야 한다는 자괴감에
몇몇의 반대가 있었을 뿐 지금 처한 상황에선 환야가 내건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
중지(衆志)가 모아지자 영오대사는 환야에게 회의의 결과를 전했다. 대결은
정확히 칠일 후, 그리고 상대는 당연히 수호신승이었다.
패천궁의 새로운 궁주가 단신으로 소림에 도전했다. 그리고 소림에선 그의 도
전을 받아들여 다가오는 보름,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가 벌어진다.
이와 같은 소식에 중원은 요동쳤다. 수십 년 만에 대를 이어 벌어지는 대결을
보기위해 엄청난 인파가 소림으로 몰려들었다. 무림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
들은 물론이고 전혀 상관도 없는 사람들까지 소림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몰려드는 인원에 비해 소림사는 너무 작았다. 더구나 소림사엔 이미
정도맹의 무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패천궁의 무인들 또한 산자락에서 소
림사를 포위하고 있는 상황. 이들이 소림사에 오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소림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환야와
수호신승의 대결을 직접 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역사적인 자리에 함께 했었
다는 감동을 느끼기 위해 사람들은 소림이 있는 숭산, 그중에서도 태실봉(太
室峰)으로 꾸준히 몰려들었다.
그러기를 며칠, 사상 최고의 인파가 몰려든 사이 마침내 결전의 날이 다가왔
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선 환야는 급할 것이 없었다. 많은 인원도 필요 없이
그저 원로들과 태상장로인 궁사흔만을 대동하고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던 환야
는 정오가 되기 전에 소림의 산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사께서 직접마중을 나와 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환야는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산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정도맹의 맹
주이자 소림사의 장문인인 영오대사임을 알아보고 황급히 예를 표했다.
“무슨 말씀을. 수십 년 만에 모시는 귀빈이 아니겠습니까? 방장인 제가 마중
을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요.”
영오대사는 당황하는 환야에게 마주 예를 표하며 앞서 걸음을 옮겼다.
경내에는 별다른 인원이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 느낌이 드는 것도 잠시, 대웅
전을 지나 약간은 외진 곳으로 향할 때부터 느껴지는 기운들이 있었다.
‘벌써 다들 모여 있는 모양이군.’
들려오는 함성과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감지되자 환야 또한 은근히 긴장 되는
모양이었다.
“왜 겁이 나는 것이냐?”
은근슬쩍 다가와 말을 거는 권왕의 얼굴은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보입니까?”
미소를 지은 환야가 되물었다.
“흠, 겁을 먹었는지 알았는데 이제 보니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구나.”
환야의 무덤덤한 대응에 별로 재미가 없자 권왕은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섰
다. 그 모양을 보던 다른 원로들이 혀를 차며 웃었다.
환야와 원로들이 영오대사의 안내를 받고 도착한 곳은 장경각이었다. 환야의
예상대로 정도맹의 모든 무인들은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중 정도맹의 무인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삼엄한 경계
와 목숨의 위협을 무슨 수로 극복했는지는 몰라도 모여 있는 사람들의 대부
분은 환야와 수호신승의 대결을 보기 위해 소림으로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자리가 비좁아 심지어 건물 위에까지 올라간 사람도 많았지만 그들은 어떻게
든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후~ 많기는 많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환야의 시선에 정도맹의 수뇌이자 소림에 문파와 가
문의 운명을 맡긴 장문인과 가주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들은 저마다 굳은
표정으로 환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시지요.”
장경각에 도착한 영오대사는 홀로 장경각으로 들어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
을까? 약간은 어두컴컴한 곳에서 영오대사가 나오고 이어 무무가 걸어 나왔다.
일순 울려 퍼지는 함성.
“수호신승이다.”
“와아!”
장경각을 빠져 나온 사람들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무무의 뒤를 이어 노승의
신형이 보이자 아까와 같은 함성은 들리지 않았지만 일대의 모든 무인들이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는 장관의 벌어졌다. 그것은 각 문파의 장문인이나 가주
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과거의 천하제일인 이구나!”
노승을 바라보던 검왕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자신들을 꺾은 구
양풍을 꺾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원로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노승의 뒤를 이은 사람은 구양풍이었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건
혼란을 일으키건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구양풍은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네. 네가 결국 이곳에 왔구나!”
하나 남은 팔을 들어 원로들에게 아는 체를 한 구양풍이 환야에게 다가가 살
며시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를 나누는 듯 했다. 하지만 구양풍과
환야가 대화는 곧이어 들린 엄청난 함성에 잠겨 버렸다.
“을지소문!”
“궁귀다!”
“천하제일인!!”
사람들은 소문을 바라보며 환호했다.
“뭐, 뭐야!”
아무 생각 없이 장경각을 나서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함성에 놀란 소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품에 안고 있는 휘소의 귀를 막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림사를
집어 삼킬 듯 울려 퍼지는 함성은 좀처럼 멈추어지지 않았다.
“하하! 대단한 함성이군. 이거 어째 자네가 오늘의 주인공 같네 그려.”
소문을 알아본 환야가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이 아이가 자네와 청하의 아이로군. 이리 줘보게.”
“아, 아니…….”
환야는 소문이 뭐라 할 새도 없이 휘소를 빼앗듯 안아갔다.
“울리지 말고 이리 주십시오. 저 놈은 내가 있으면 할아버지께도 안가는 놈입
니다.”
그러나 휘소를 안기 위해 내밀던 소문의 손은 곧바로 들려오는 환야의 말에
슬쩍 뒤로 감추어졌다.
“울긴 누가 운다고 그러는가? 자 보게. 나를 보고 이렇게 웃지 않는가?”
과연 환야의 말처럼 낯선 남자의 품에 안긴 휘소는 평소와는 다르게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허!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소문은 연신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어댔다.
“이놈아! 길을 막지 말고 비켜라! 자네가 소문과 구양 동생이 말하던 사람인
가?”
머리를 울리는 통증. 소문은 질문을 던진 사람이 할아버지임을 알자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형님. 이분이 제 할아버지십니다.”
그러나 소문이 불만스런 음성으로 말을 하기도 전에 환야의 허리는 깊게 숙여
져 있었다. 천하에 누가 있어 궁귀 을지소문의 머리를 곰방대로 강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단 한사람, 할아버지뿐이었다. 소문
을 통해 할아버지가 소림사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던 환야는 정중하게 인
사를 하였다.
“환야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까지야… 어쨌든 반갑구먼.”
흐뭇하게 웃으며 환야의 인사를 받은 할아버지의 눈은 곧바로 소문에게 돌려
졌다.
“흠, 듣던 대로군. 이놈과는 영 딴판이야.”
“뭐가 딴판이란 말입니까?”
“시끄럽다. 예의라고는 쥐뿔도 없는 놈이.”
할아버지는 주변의 시선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소문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한참을 그렇게 호통을 치던 할아버지도 영오대사가 나서서 환야과 수호신승의
대결을 공표하자 은근슬쩍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이번 대결로 지금껏 일어났던 모든 것들이 일시에 해결
될 것입니다. 수호신승께서 이긴다면 패천궁은 처음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고,
반대로 환야 시주가 승리를 한다면… 구대문파는 물론이고 오대세가 역시
일제히 봉문에 들어갈 것입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잠시 말을 끊고 조용해지를 기다린 영오대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결정을 보았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패천궁에선 어떻습니
까?”
“물론,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제가 패한다면 이대로 조용히 물러나겠습니다.”
다짐을 원하는 영오대사의 말에 환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였다.
“그것으로 되었네. 싸우기로 한 이상 더 이상 머뭇거릴 것은 없겠지. 환야라
고 했던가?”
“예.”
환야는 노승의 물음에 공손히 대답했다.
“이곳은 장소가 좋지 못하니 나를 따르게. 무무도 따라오도록 하고. 이보시게.
방장.”
“예. 사숙조님.”
영오대사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자리를 옮길 것이네.”
“하지만…….”
“그리 알게.”
“알겠습니다.”
영오대사가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하자 노승은 주저 없이 몸을 돌렸다.
“따라들 올게.”
무무와 환야를 부른 노승은 천천히 장경각으로 들어갔다. 무무와 환야 또한
노승의 뒤를 따랐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둘의 대결을 잔뜩 기대하고 있던
사람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장내를 둘러싸고 있는 심각
한 분위기에 기가 질린 사람들은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현하지도 못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확연히 드러난 것은 아니었지만 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흠, 시작된 모양이군. 보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구양풍이 땅바닥을 툭툭 치며 말을 하였다.
“하하! 왜 들어가지 않으셨습니까? 구양 할아버지는 충분히 자격이 있고 감히
뭐라 할 사람도 없는데 말이지요.”
소문이 다가오면 말을 걸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는 너는 왜 들어가지 않았느냐?”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요.”
대답을 하는 소문의 안색이 일순 어두워졌다.
“하긴 누가 이겨도 쉽지는 않을 것이야. 물론 환야가 이기기는 하겠지만.”
구양풍은 여전히 환야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참, 네게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
“예?”
“잠시 자리를 옮기자꾸나.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구양풍은 어리둥절 하는 소문의 팔 소매를 끌어당겼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구양풍은 소문의 품에서 휘소를 안아 할아버지에게 맡기며 양해를 구했다.
“꼭 그래야 하는가?”
“…….”
“쯧쯧, 그놈의 성질 하고는. 알았네.”
혀를 차면서도 휘소를 받아드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구양풍이 말하고자 하
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는 겁니까?”
“가보면 알게 된다. 빨리 따라오너라.”
구양풍은 소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날렸다. 영문은 몰랐지만 중요한
얘기라는 말에 소문 또한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소림사를 벗어난 구양풍이
멈춘 곳은 소림사의 반대편 능선에 위치한 공터였다.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지만 남아 있는 주춧돌이 제법 많은 것을 보아 한때는 이곳도
꽤 규모가 있는 절이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도대체 무슨 중요한 일이 있어 이곳까지 온 것입니까?”
구양풍의 뒤를 이어 공터에 도착한 소문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을 하였다.
“중요한 일이 있지. 암! 이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
소문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구양풍의 기도가 일신 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아, 아니 왜 이러시는 겁니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소문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그러나 구양풍은
그런 소문을 가만 두지 않았다. 어느새 검을 든 구양풍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그렇게 우물쭈물 거리다가는 크게 당할 것이다.”
“이런, 젠장!”
단번에 사태를 파악한 소문이 출행랑을 펼치며 어깨에 메고 있던 철궁을 풀러
손에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하의 구양풍이었다. 그런 그가 호승심을
버리지 못하고 손을 쓰고 있으니 손속이 보통 매운 것이 아니었다. 여유를
부리기는커녕 잠시 틈을 보였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출행랑을 이용해 간신히 공격권에서 벗어난 소문은 처음부터 극강한 무공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궁귀라는 이름을 얻게 해준 무영시로구나!”
자신에게 날아오는 무형의 기운을 느낀 구양풍이 탄성을 터뜨리며 검을 움직
였다. 그리고 상당한 파공성과 함께 무영시의 기운은 씻은 듯 사라졌다.
“이제 시작입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소문이 연속적으로 무영시를 날려댔
다. 어찌나 빠르게 시위를 튕겨대는지 손의 움직임이 감지가 안 될 정도였다.
온 천지가 순식간에 무영시의 기운에 둘러 싸였다. 구양풍이 피할 방위를
완벽하게 차단한 수발의 무영시가 구양풍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까딱 잘못하다간 목숨이 날아갈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구양풍은 연신 감탄
사를 내뱉었다. 그러나 그의 두 눈과 전신의 감각들은 곧이어 닥칠 위기를
철저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앗!”
구양풍의 입에서 기합소리가 터지고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던 검이 춤을 추었
다. 그러자 검을 통해 흘러나오는 기운들. 그것은 조금의 틈도 없이 구양풍의
전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어 엄청난 소용돌이가 주변
을 휩쓸었다.
꽈과광!!
무영시와 구양풍의 검기가 충돌하는 소리는 천둥과 비견될만한 것이었다. 그
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기만 했다.
“한번에 이렇게 많은 무영시를 날린 적은 없었는데 역시 대단하십니다.”
“위력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정직해서는 나를 잡지 못한다.”
“하하!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다시 받아보십시오.”
소문은 또 다시 시위를 튕겼다. 이번엔 이기어시를 이용한 무영시였다. 더구
나 연환사를 이용한 세발의 무영시. 이것은 과거 궁술의 최고봉으로 추앙받던
궁왕을 굴복시키고 궁왕에게서 ‘절대궁술’ 이라는 거창한 이름마저 얻은
무공이었다. 비록 성공을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구양풍에게 최소한 낭패감이라도
줄 것이라 여겼다.
‘과연…….’
소문은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자신이 날린 무영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기대도 잠시, 결과를 지켜보던 소문의 안색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소문이 날린 무영시는 뱀의 혓바닥처럼 춤을 추며 구양풍을 향해 날아갔다.
한발은 어느새 뒤로 돌아 배후를 노렸고, 한발은 하늘높이 날아 정수리를 노
렸다. 마지막 한발은 땅을 스치듯 낮게 날아가 다리를 노렸다. 그러나 그런
무영시의 위협 속에서도 구양풍의 대응방법은 간단한 것이었다. 그는 자리에
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검을 들어 묘하게 움직였을 뿐이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치켜 올린 검에서 무수히 많은 검기들이 뿜어져 나와 구
양풍을 보호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힘들겠구나! 저것이 사람들이 말하던 검막이던가? 어쩐지 무애지검
과 비슷한데…….’
소문의 예감은 정확했다. 회심의 일격으로 날린 무영시도 구양풍이 만들어낸
검기의 그물을 뚫지 못했다. 하지만 상당한 충격이 있었는지 구양풍의 입에서
한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후~ 정말 대단한 위력. 하지만 나를 쓰러뜨리기엔 조금 부족한 감이 있구나.
물론 내가 너의 경공을 따라잡지 못하는 한 이대로 싸움이 계속되면 나의 패
배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이것이 아니다. 나는 네
검법을 보고 싶다. 절대삼검이라 불리는 네 검법을 말이다.”
“너무 위험합니다.”
“상관없다. 나도 내 한 몸을 지킬 무공은 지니고 있으니 염려하지는 말아라.”
소문은 물끄러미 구양풍을 바라보았다. 단호한 자세. 조금도 물러서지 않을
구양풍의 태도에 한숨만이 흘러나왔다.
“알겠습니다.”
결국 구양풍의 고집을 꺾지 못한 소문이 철궁의 시위를 제거했다. 그러자 휘
어졌던 철궁이 곧 제 본모습을 찾았다.
“오시지요.”
소문은 철궁을 가슴께로 끌어당기며 자세를 취했다. 구양풍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맙다. 사양하지 않으마.”
서서히 기를 끌어 모은 구양풍은 처음부터 달마삼검을 꺾기 위해 수십 년을
참오하여 만들어낸 파검삼식을 사용했다.
“파검삼식(破劍三式) 제일초, 천검만파(天劍萬波)!!”
검기의 홍수란 이런 것을 말함인가!
구양풍의 공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강하게 압박해오는 기운에 정신을 차릴 수
가 없었던 소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위력이 배가되는
공세에 놀라며 화급히 철궁을 움직였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처음 공격과 연계되어 훨씬 더
강한 위력을 보여주던 구양풍의 공격. 그러나 소문의 무애지검은 구양풍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본 적이 있다. 아마 무애지검이었지?”
자신의 검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목도한 구양풍이 소리쳤다.
“하지만 이번을 쉽지 않을 것이야.”
입술을 질근 깨문 구양풍의 검이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변
화.
“파검삼식(破劍三式) 제이초, 천검무영(天劍無影)!!”
구양풍의 검이 순식간에 수십, 수백으로 늘어나며 눈을 어지럽혔다.
‘환영시와 같은 원리군.’
다른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무공에 크게 놀랐겠지만 이미 궁왕의 환영시를 접
해보았고 자신 또한 환영시를 사용할 수 있었던 소문이었다. 그 원리를 알고
있는 이상 두려워 할 것이 없었다.
‘모두다 허상이다. 진실 된 것은 오직 하나!’
소문은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냉정한 눈빛으로 눈앞까지 다가온 검들을 뚫어
져라 노려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위험천만한 순간 속에서 소문은 마침내 허
상에 몸을 숨기고 은밀히 다가오는 검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미처 몸을 피하고 할 여유가 없었다.
“하앗!”
챙!
소문의 외침과 동시에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렸다.
간신히 공격을 막고 재빨리 뒤로 물러나는 소문의 등줄기엔 어느새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심지검이군. 과연 빨라. 피할 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구양풍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밑천을 다 드러내게 만드는구나. 하긴, 애당초 그럴 생각이었지만.”
옅은 미소를 보인 구양풍이 검을 곧추 잡았다. 그리고 커다란 기합성과 함께
소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파검삼식(破劍三式) 제삼초, 천검파천(天劍破天)!”
엄청난 검기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기는 하나하나가 여러 개의 환
영을 만들어 냈다.
‘일초와 이초의 연결이군.’
소문의 마음은 편안했다. 처음 보았을 때야 당황했지만 두 번째 보는 지금은
눈에 익은 무공이었다. 충분히 막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천검파천은
소문이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바로 증명
되었다. 검기의 파도와 환영 속에 이어지는 구양풍의 마지막 공격. 실로 위력
적인 검기를 방출한 구양풍은 들고 있던 검마저 소문에게 던졌다. 더 이상
뒤는 없다는 듯 모든 내공을 동원하여 날린 검은 그 힘을 못 이겨 산산조각이
나면서 소문에게 짓쳐들었다.
‘이런 공격이!’
단순하게 생각하다 낭패를 당한 소문이 구양풍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하나였다. 머리가 생각하기도전에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절대삼검(絶對三劍) 제3초 무극지검(無極之劍)!!”
꽈꽈꽈꽈꽝!!
엄청난 굉음과 충격이 주변을 휩쓸었다.
“가거라!”
“…….”
“더 이상 괴로워하는 네 모습을 볼 수가 없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
서 쫓아가거라.”
“…….”
남궁진의 말에 남궁혜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 그건 진아의 말이 맞다. 너의 이런 모습을 보는 우리의 마음이 몹시
괴롭구나. 네가 왜 떠나지 못하고 이곳에 머물러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문의 재건(再建)은 나와 진아면 충분하다. 비록 힘들겠지만 그것이 지금
껏 살아남은 나와 진아가 할 일이 아니더냐. 물론 네가 우리와 함께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혜아 네가 희생당하는 것을 바라
진 않는다. 그러니 우리의 말을 듣도록 하여라.”
남궁진의 곁에 서 있던 남궁우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교차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였다.
“숙부님…….”
“그래. 네 마음을 우리가 어찌 모르겠느냐? 그렇지만 가문을 위한다고 언제까
지 너를 붙잡아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네가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만족할 수 있다. 무엇을 걱정하느냐? 아무런 염려도 하지 말고 떠나도록 하여라
. 서둘러 가면 그가 국경을 넘기 전에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을 구해 놓았다. 그리고 간단한 식량과 여비도.”
남궁진의 다정한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궁혜가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
다. 싫다고 말을 해야 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숙부님… 오라버니…….”
“후~ 그럼 네 마음대로 하여라. 떠나든지 남든지. 더 이상 강요는 하지 않으
마.”
측은한 눈빛으로 한 남궁혜를 바라보던 남궁우는 긴 한숨을 내쉬곤 방으로 들
어갔다.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난 정말 견디지 못할 것 같구
나. 또 네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나는 너를 믿고 너의 결정을 존중 하겠다.
하지만 잘 생각하여라. 절대로 후회할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야.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말을 마친 남궁진 또한 남궁우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모든 것은 남궁
혜에게 달려 있었다. 이대로 세가에 남아 세가의 재건을 돕든지 아니며 사랑
하는 사람을 찾아 떠나든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생각이야 당연히 이곳에 남아 숙부와 오라버
니를 돕는 것이었지만 가슴을 울리는 소리가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했다.
얼마를 그렇게 갈등했을까? 마침내 결정을 내린 남궁혜가 몸을 움직였다. 그
녀가 걸어가고 있는 곳은 방문과는 정 반대로 남궁진이 준비해둔 말이 있는
정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언젠가는 이 죄를…….’
걸음을 옮기는 남궁혜의 두 뺨에 진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 잘 선택했구나. 옳은 선택이야. 부디 행복해야 한다.’
남궁혜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남궁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직도 말해 주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말입니까?”
“그러니까 구양 할아버지와의 싸움 말이네. 내가 수호신승과 싸우고 있을 때
자네와 구양 할아버지도 몰래 비무를 했다고 하지 않았나?”
환야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정말 질기기도 합니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궁금해 합니까? 그리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졌다고.”
소문이 질린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환야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
다.
“말이 안돼. 싸움에서 진 사람은 멀쩡한데 이긴 사람이 피를 뚝뚝 흘리며 비
틀거리는 게 말이나 되느냔 말일세. 지나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물어보게. 백
이면 백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걸. 그러니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해주게. 어떻
게 된 것인가?”
환야는 싸움을 끝내고 만나게 된 구양풍의 모습을 떠올렸다.
“후~ 이제 그만 합시다. 어떻게 하루도… 아니지. 한시진도 되지 않아 똑 같
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까? 벌써 며칠 째인지 아십니까?”
“흥, 자네가 구양 할아버지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말을 못하는 모양인데 그런
다고 내가 모를 줄 아는가? 그때의 비무는 틀림없이 자네가 이겼어. 내말이
틀린가?”
계속 되는 환야의 말에 소문은 더 이상 대꾸할 기운도 없는 듯 고개를 흔들었
다.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나는 모르겠으니.”
“자넨 참 이상한 사람이야. 그냥 사실대로 말해주면 될 것을 왜 그리 고집을
피우나?”
“이상하다고요? 이상한 것은 오히려 형님이지요.”
소문이 기도 안찬다는 듯 소리쳤다.
“내가? 그건 무슨 말인가? 내가 이상하다니. 나는 지극히 정상이네.”
“아니 지극히 정상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한단 말입니까? 수호신승과의 대결
에서 승리를 거두면 무림을 접수하겠다고 공표한 사람이 접수는커녕 아무 말도
없이 물러나지 않았습니까?”
소문의 물음에 순간 정색을 한 환야가 대꾸를 했다.
“무슨 소리. 난 내가 말한 대로 행동을 했네. 무림도 접수했었고.”
“삼 일간 봉문이 어디 말이 되는 소립니까?”
“삼일천하(三日天下)가 어때서 그런가? 과욕은 화를 불러오는 법이네. 삼일이
면 어떻고 하루면 어떠한가? 중요한 것은 전 백도가 나의 명에 의해 봉문을
했다는 것이지. 더 이상 무엇을 더 원하겠는가?”
환야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기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한 소문이 다시 물었다.
“그럼 패천궁을 해체하고 나를 따라오는 이유는 뭡니까? 사분오열(四分五裂)
한 저들이 세력을 잡기 위해 날뛰는 것은 자명한 일. 그렇지 않아도 어지러운
무림에 혼란만 가중시키지 않겠습니까?”
“이런, 잘못 알고 있었군. 자네는 내가 패천궁을 해체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르네. 자네도 알다시피 패천궁에선 그동안 정도맹과의 싸움을 위해
이곳저곳의 문파를 마구 끌어들이지 않았는가? 난 그것을 원상복구 한 것
뿐이네. 애당초 패천궁의 소속이었던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지. 그리고 뒷
일은 모두 원로원의 할아버지들께 맡겨 놓았으니 그다지 걱정할 것은 없을 걸
세. 그분들이 버티고 있는 한 함부로 경거망동하는 인간들은 없을 것이야. 그
리고 난 자네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구양 할아버지를 따라 가는 것이네.
어떤가? 이래도 내가 이상하다고 말을 하겠는가?”
“관둡시다. 내 말을 말아야지.”
할말을 찾지 못한 소문은 슬쩍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 소문을 바라보는 환
야의 얼굴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때 그들을 부르는 음성이 들렸다. 앞서 걷고 있던 할아버지와 구양풍이 이
들을 부르는 소리였다.
“뭣들 하느냐? 빨리 오지 않고.”
“예. 갑니다.”
소문과 환야는 행여나 불호령이 떨어질까 두려워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휘소가 잠이 깼구나.”
구양풍은 환야에게 울고 있는 휘소를 안겨주었다. 환야가 조심스레 휘소를 안
자 언제 울었냐는 듯 울음을 멈춘 휘소는 옹알이를 하며 즐거워했다.
“참 이상한 놈이라니까. 소림에서도 그러더니만 이제는 내가 달래도 울음을
멈추지 않고 꼭 형님만 찾으니…….”
소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 모양을 보던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네놈이 어떻게 혼인을 하고 애를 낳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그렇
게 눈치가 없으니…….”
“예?”
“모르면 되었다. 아무래도 고생을 덜 한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천이
아니라 좀더 먼 곳으로 보내는 것인데.”
할아버지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문의 머리를 강타하려했지만 소문의
신형은 어느새 환야의 곁으로 물러가고 없었다. 환야에게 다가간 소문이 은
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
“왜 그러나?”
“중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 어딥니까?”
“멀리 떨어진 곳?”
“예. 사천보다 먼 곳이 있을 것 아닙니까?”
“글쎄. 사천보다 멀다면… 해남도(海南島) 정도일까?”
“해남도요?”
“응. 대륙의 끝에서도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아주 먼 곳이지.”
“그렇군요. 그런 곳이 있었군요…….”
“그런데 그것은 왜 묻나?”
“아닙니다.”
환야의 말에 말끝을 흐린 소문의 뇌리엔 벌써 해남도라는 말이 각인 되었다.
몇 번이고 해남도를 되뇌는 소문의 음침한 시선이 환야의 품에 안겨 즐겁게
놀고 있는 휘소에게 향하고 있었다.
‘흐흐흐! 해남도… 해남도란 말이지…….’
------終------
그동안 끝까지 애독해주시고 댓글로 따뜻한말씀주신 고마운 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댓글 즐독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피날레도 멋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잼납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멋진글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즐감하고갑니다.
즐겁게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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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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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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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어마허게 감사합니다.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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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햇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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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았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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