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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시험을 대하는 자세 4:12~14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창조주가 책임지시는 삶 4:15~19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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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성도는 연단하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당하면 복되니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선을 행하며,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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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시험을 대하는 자세 4:12~14
성도의 삶에는 연단의 불 시험이 따릅니다(12절). 그러나 성도의 고난은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 기쁨의 이유가 됩니다. 복을 받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 불평하며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지(4:2), 세상의 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성도는 오히려 멸시받고 ‘불 시험’을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불 시험을 ‘그리스도의 고난’(13절), 즉 하나님 나라 사역에 참여하는 일로 여기고 기뻐하라고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치욕당할 때 이를 복된 일로 여겨야 합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14절)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그 자체로 복된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베드로는 연단의 불 시험을 어떻게 대하라고 권면했나요?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겪는 시험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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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가 책임지시는 삶 4:15~19
성도가 당하지 말아야 할 무익한 고난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살인, 도둑질, 악행, 남의 일을 간섭하는 것’ 등 세상 일로 고난받지 말라고 합니다(15절). 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받을 때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16절). ‘그 이름’은 ‘그리스도인’ 호칭을 가리키는데, 이는 그리스도와 관련된 일 혹은 그분이 하신 일에 전념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고난당하고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은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 내야 합니다. 미쁘신(신실하신) 창조주가 그분 뜻대로 고난받는 이들을 온전히 대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9절).
● 더 깊은 묵상
그리스도인은 어떤 것들로 고난받지 말아야 하나요?
내가 부끄럽게 당하는 무익한 고난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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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 참여하는 이유
북한 사역을 하는 한 선교사님의 간증입니다. “병색이 완연한 79세 할아버지가 먹을 것을 구하러 강을 건너왔습니다. 거룩함이 느껴지는 그분께 탈북을 권했더니 본인도 찬송 한번 마음 놓고 불러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도와 드리겠다고 하니 놀랍게도 할아버지가 하나님께 여쭤보고 결정하겠다고 하십니다. 10분 정도 기도하고 오신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희를 북한에 남겨 두는지 아느냐?’라고 답하셨답니다. ‘목사님! 매 맞는 것도, 굶는 것도 하나님 뜻이랍니다.’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께 한 번 더 탈북을 권했지만 할아버지는 ‘나도 자유가 무엇인지 압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 하시니 자유보다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겠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라고 하는데 우리 천국에서 만납시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몇 년 후 그곳에 다시 가서 그 할아버지를 찾았는데, 할아버지를 비롯해 그곳 사람들이 다 수용소에 끌려가다가 매 맞아서 죽었다고 합니다.”
내가 처한 자리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데, 왜 거기 남아서 고난을 당해야 하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있는 자리에 잘 묶여 있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이러한 순종이야말로 진정한 예배요 하늘 상급이 있는 삶입니다.
그럼에도 사랑하심 / 김양재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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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베드로전서 4장 16절
고난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받는 고난의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답답해하거나 핑계 댈 만한 대상을 찾아 분노합니다. 때로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도 성도의 특권이요, 예수님을 위해 고난받는 것도 성도의 특권입니다(빌 1:29). 성도에게 고난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자녀임을 증 명하는 도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치러야 할 대가는 무익한 손해가 아니다. 주님이 기억해 주시는 가치 있는 희생이다. - 옥한흠
오늘의 기도
주님, 시험이 제 마음을 헤집고 고난이 삶을 뒤흔들면 원망이 담긴 한숨부터 나오는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받는 고난을 믿음으로 수용하고 소망 중에 인내하게 하소서. 제 삶을 인도하시고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담대하고 견고한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38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 본문의 정리: 그리스도인은 갑자기 겪는 고난에 당황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고난 속에 담긴 유익을 설명하며 고난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도리어 기뻐하라고 합니다.
* 본문의 명제: 너희는 고난에 당황하지 말고, 고난 속에 담긴 유익을 바라보며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길 바라시고, 그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여 당신께 영광을 올려 드리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어렵고 힘든 일들이 우리 앞에 찾아온다 할지라도 놀라지 말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속에 담긴 유익을 발견하며 나아가자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하나님과 더 깊고 풍성한 교제와 사귐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하자
우리에게 찾아온 고난을 오히려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고, 선한 일을 하면서 우리의 영혼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 드리도록 하자
금이 강한 불과 뜨거운 열과 만나면, 모든 찌꺼기를 태우고 ‘순금’으로 제련됩니다. 이는 세상의 불순물을 담고 있는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단련되고, 우리 안에 있는 정금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는 원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들을 던지는 이들까지 태워버리는 풀무불에 들어가면서도 자연의 순리로 태워질 것이 없는 존재였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라고 고백한 것처럼, 천하를 진동하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호통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여호와의 영광을 높이고 그의 능력을 드러내었던 그 단련된 영혼이 마치 오늘 베드로 사도가 이야기하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고(13절),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14절) 자들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짓고 ‘벌’을 통해 평소에 피해 다니던 징계의 고통(15절)을 경험하게 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고난(16절)을 받고 ‘선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분을 의지하는 온전한 자로 성화(19절) 되어 갑니다. 그 놀라운 만지심과 섭리 안에서 순종하고, 넉넉한 구원(18절)을 경험하며, 택함 받은 주님의 복된 자녀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11에서 시작된 ‘고난’에 대한 주제가 마무리됩니다. 사도는 혹독한 시련(불 시험) 가운데 있는 성도에게 고난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해야 할지 교훈합니다.
*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2절 세상의 판단(4절)과 달리,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이상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당연한(1:6) 일이고 작정된(4:2) 일입니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연단’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시험을 통해 하나님이 목적하고 의도하신 바가 이뤄지게 해야 합니다. 내 성숙과 성화를 위해 주신 고난이니, 낙망과 실의의 자리를 털고 어서 일어나십시오.
13,14,16절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주의 고난에 참여하는 일이기에 즐거워할 일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당하는 고난이라면, 그 자체가 복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일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 신앙은 온전해지고, 참 기쁨으로 주의 오실 날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 자만이 영광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날을 어떻게 준비하길 원합니까?
15절 모든 고난이 다 그리스도인의 미덕은 아닙니다. 순종에 따른 고난이 있고, 욕심이 낳은 고난도 있습니다. 주를 따르다가 당하는 시련이 있고, 세상을 좇다가 자초한 시험도 있습니다. 세상보다 더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설 수는 없습니다. 내가 겪는 곤경이 내 악함과 욕망이 부른 고난이라면, 그로 인한 수치를 받아들이고 회개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17,18절 성도의 고난은 종말적 심판의 시작입니다(참조. 겔 9:6; 말 3:1-3).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시작되었지만 머지않아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에게는 더 혹독한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 불의 시험(박해의 시련)은 믿음을 정련하기 위한 것이지만,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불신자들이 받을 심판은 불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할 역설적인 기회입니다.
19절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낙심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당하는 고초라면, 하나님이 그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을 만큼 가망 없는 상황은 없습니다. 우리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바라는 자가 편히 쉬겠습니까? 썩어질 세상 영광도 연단 없이는 얻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하늘의 영원한 영광이겠습니까?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4~25)
그러므로 하늘 영광을 소망하는 자는 결코 고난을 피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4:12~14)
주님은 우리를 성전 삼으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하시는 일이 뭘까요?
복되게 하시고, 위로하시고, 형통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금을 연단하듯이 우리를 연단하여 순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말3:1~3)
그러므로 고난의 연단을 이상히 여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기 원합니다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5~16)
또한 우리가 그 연단을 능히 견딜 수 있도록 갑절의 위로를 주시는 주님께 더욱 감사드리기 원합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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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4:12~19절)
❝고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당함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
✔ 고난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 고난이 기쁨이 되게 해야 합니다(12~14절).
고난 앞에서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믿는 자에게는 고난이 없고 만사형통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고난이 올 때 즐거워하고 기뻐하라는 말은 고난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삶이라면 마땅히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신길이 좁고 불편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으로는 도무지 믿는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고난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단어 앞에서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주님 안에서 고난을 당하다가 영광을 얻든지, 아니면 주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고, 고난을 피하다가 영광에서 제외되든지 선택은 나에게 있습니다. 고난을 대하는 내 자신의 태도는 고난을 기쁨으로 대하고 잘 단련하여 순도가 높은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 고난이 영광이 되게 해야 합니다(15~16절).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서 성공을 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다 할 수 없는 역경과 고난을 참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은 주목하게 될 것이고, 고난 중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모습을 보일 때, 그들은 놀라워하며 내 안에 계신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유혹이 많고, 손해를 보고, 비웃음을 당할지언정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대에서 이병 계급장을 달고 첫 부임한 곳은 군인들만 29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군대에서 맞고, 기압을 당하는 것은 당연시 되는 때였습니다.
얼마나 군기를 잡던지 얼굴에 미소를 보이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끔찍했습니다. 별명이 ‘목사two’로 불렸는데,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그와는 정 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로 의도적으로 입꼬리를 올리고 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왜... 실실 쪼개는데???(왜 웃고 다니는데???ㅎㅎㅎ)’ 그러면서 군기가 빠졌다는 등... 온갖 이유로 밤마다 바로 윗선임으로부터 맞기도 하고, 머리박기도 당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5~6개월 정도를 보냈더니 부대원들이 ‘예수 믿는 녀석’으로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고난을 대하는 내 자신의 태도는 세상에서 창피당하고 무시당할 것이 두려워 예수 믿는 것을 감추는 비겁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당당한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 고난이 소망이 되게 해야 합니다(17~19절).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17절)... 성도에게 먼저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 되고, 그 후에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즉, ‘...믿는 우리에게도 심판이 있다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쉬운성경)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의인도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은 어떻게 되겠느냐?(18절)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들과 그렇지 않는 자들의 결과는 이처럼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19절)해야 합니다.
고난을 인내할 수 있는 것은 나중 영광이 지금의 고난보다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부럽지 않은 것은 나중에 내 자신이 받게 되는 면류관이 훨씬 더 영광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 자신이 겪는 고난을 창조주이자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영혼을 의탁해야 하겠습니다. 고난 중에서라도 주님만 온전히 신뢰하며 소망해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고난의 현장에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영혼을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대하는 내 자신의 태도는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하늘 영광을 소망하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고난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음에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는 이 역설적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벧전 4:12~19절)...
오늘의 말씀요약
연단하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즐거워하는 것은
영광의 때에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이 있으니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선을 행하며 미쁘신 창조주께 영혼을 의탁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고난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당할 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사실로 인해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단련하시고 삶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주님이 영광 중에 오셔서 그분을 위해 고난당한 자에게 상급과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복음에 순종하지 않고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은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고난 중에라도 주님만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때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영혼을 지키십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이란 어떤 것인가요?
- 적용 질문: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은 내 죄로 인한 것인가요?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인가요?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구원하신 아버지의 사랑에 그저 안주하지 않고,
주님의 본을 따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이르기까지 연단 받고 단련 되어 지는
그 놀라운 손길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순물과 죄악의 찌꺼기들이 성령의 불로 태워지고,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정금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거룩의 삶 살게 해 주시옵소서.
지금 이 시간에도 주인 없이 방황하는 이들을 향해 구원의 소식 전하는
발걸음을 쉬지 않으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 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의 인도하심에 겸손과 순종으로 반응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