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밑도 끝도 없는 소리인가. 하지만 그보다 인후는 이 인형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주변의 반응에도 이 기묘한 인형의 삐걱거리는 이질감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도로시 이외에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인형은 인후의 산만함에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럴 수 없다. 이 세계의 무엇도 너를 해할 수 없다. 애초에 너 정도 마법사의 기억을 훼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가 아니고서는….”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다. 마술하는 놈은 뭐, 기억 상실증도 못 걸리나? 그러고 보니 오늘 무슨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인형도 마술인가?
그럼 어딘가에 마술사도 있어야 하는데. 인후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인형의 말은 이어졌다.
“하지만 ‘그’ 또한 아니다. 그는 내게 널 데리고 오라고 했다. 기억을 잃은 너 따위에 그처럼 위대한 존재가 관심을 가질 리 없다. 아니다. 너는 내게 숨기고 있다. 너는 내게 말해야 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하긴 이런 다소 모더니즘적인(이라 쓰고 흔히들 ‘개헛지랄 같은’으로 읽는다.) 대사가 대중의 관심을 끌리 없지. 그나저나 신기한데.
어디 끈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 거 같고. 이런 쇼핑 장소의 공연이라니.
게다가 굳이 어설프고 듣기 싫은 기계음이라니. 무슨 실험 공연인가? 인후는 이런저런 생각에 이끌려 계속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눈을 마주쳤다.
“진실을 말하라, 도로시. 너는 내게 숨기고 있다. 진실을 말하지 않겠다면 나는 너를 찌르겠다. 알고 있을 테지만, 내게 그 유리 구두의 보호 따위는 아무런 소용없다.”
노인으로 보이기도 하고, 청년으로 보이기도 하는 기이한 사내였다. 평균치인 중년으로 보기에도 아무래도 꺼림칙한 것은, 아무래도 그의 기세 때문일 것이다. 이글거리는 듯한 눈매, 열정적인 표정. 하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기세.
그의 안광은 그야말로 마주치는 순간 인후를 꿰뚫을 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후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비친 자신처럼, 그에게 붙들려 있는 듯한 기분. 인후는 몸서리쳤다. 그가 씩 웃어줄 때에야, 겨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인형은 이제 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펜싱에서나 쓰는 가느다란 검이었다. 하지만 본래 가느다란 느낌이라기보다는 어딘지 여윈 느낌이었다. 갈망하는 듯한 검이었고, 사람을 흡입하는 묘한 검이었다. 칙칙하고, 강렬하기 보다는 두려운 어두운 검은빛.
도로시는 두려워졌다. 이 인형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어색한 웃음만을 짓고 있었지만, 도로시는 묘하게도 살기를 느꼈다. 삐걱거리며 다가온다. 죽인다.
이 인형은 정말로 죽일 셈이다. 누더기에, 칙칙한 기운을 뿜는 검에 웃는 얼굴이라는 부조화에서 두려움은 증폭되었다. 발을 뗄 수 없다, 식은땀조차 달아난다. 눈이 떨려오고 호흡이 가빠진다. 죽는다….
검을 휘둘렀다. 그때였다. 인형이 베는 검의 궤적을 따라 공기가 갈라졌다. 갈렸던 바람은 빠르게 몰렸다. 거무스름한 선이 바람에 그은 생채기가 아물지 않고, 벌어졌다. 거기에 눈길을 줄 틈도 없이 기다란 무언가가 나오더니 인형을 칭칭 감았다.
“어?”
계속 마술인가? 인후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기다란 생물에 눈을 주었다. 그리고 탄성을 질렀다. 이제 거의 초능력이다. 우리나라 마술이 이 정도구나, 하는 괜한 고무감에 잠시 멈추어 섰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용?”
“그르르릉.”
용이었다! 기다란 몸체와 뿔. 긴 수염과 싱그러움과 촉촉함이 느껴지나, 탄력적이고 매끈한 비늘, 날개와 사나운 입을 갖춘, 어디 고분 벽화 같은데서나 볼 법한 거대한 용이 나타났다. 대충 봐도 거의 6m가 넘는다.
꼬리 부분에 이어 완연히 모습을 드러낸 용은 이어서 그의 꼬리에서 빠져나간 인형과 혈투을 벌였다.
용이 물을 부리고 뜨거운 콧김을 뿜어가며 인형을 몰아세웠지만, 인형의 검은 기체마저 베어내는 듯 했다. 인형의 검이 지나는 곳은 어김없이 희뿌연 검은 안개가 드리웠다.
용은 그 흔적을 황급히 피했고, 다시 콧김을 뿜어댔지만, 용의 공격은 인형이 만든 허공 중의 상처로 빨려 들어갔다.
“도망쳐요.”
인후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아까 눈을 마주쳤던 사내임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했다. 그리고 또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맞다, 도망쳐야 한다. 그리고 이건….
“마법입니다.”
단호하게 말한 그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은빛의 가면. 푸른색에 가까운 옅은 흑발에, 도로시와 닮은 듯, 다른 듯한 옅은 눈동자 투명한 피부, 큰 키 등, 어디 순정만화 같은 데나 나올 법한 인상의 사내였다. 아까는 어째서 노인으로 보였던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는 손바닥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에는 물기가 촉촉했음에도, 손바닥은 젖지 않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 그랬다. 그는 입김을 손바닥에 힘껏 불어넣더니 그걸 던졌다.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아마 인후는 모를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던진 것을 향해 소리쳤다.
“생명은 길을 모색한다.”
그리고, 그것은 길쭉한 무언가가 되었다. 매끈한 몸의 용은 거대한 몸을 빠르게 움직여 인형에게로 다가갔다. 인후는 달렸다. 그의 손은 도로시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도로시는 어색하지 않았다. 충격을 받았기 때문도 아니고, 목숨의 위협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도 아니었다. 의문도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그것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도로시의 발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정확히는 그녀의 구두가 빛을 발했다. 그들은 공기 중으로 녹아들어갔다.
한참 후, 라고 느껴졌지만 시계를 본 인후는 그저 아까 그 시각의 연장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기이한 것은 지저분한 자신의 방으로 단숨에 돌아왔다는 것. 도로시는 어안이 벙벙하기는 마찬가지인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인후는 이제 지친다는 표정을 짓고 일어섰다.
도로시를 만난 이후 자꾸 이상한 일에 연류되는 것 같다. 어쩐지 진짜 마법 같기도 하고 말이다. 인후는 식탁에 무어라 쓰인 메모를 보았다. 낯선 필체. 전혀 한국말 같아 보이지 않는 희한한 글씨였다.
하지만 인후는 미심쩍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글씨였다. 물론 좀 이상하지만 분명 한국어니까 당연하지. 그리고 인후는 약간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물러섰다. 침음성을 내며 그는 도로시를 보았다.
* * *
“지난 밤, **시내에 큰 화재가 있었습니다. 경찰은 화재의 원인을 가스 폭발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집주인인 허 모씨는 세를 든 학생이 사라졌다고 알렸지만, 수사당국은 청년의 시신 따위는 전혀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허 모씨와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 누구도 보지 못했다는 청년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실종된 상태입니다.”
리포터의 뒤에는 아직도 화기가 생생한 검은 재가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일부 사라진 것에 대한 기억을 가진 마법사들만이 고개를 끄덕하고는 발걸음을 돌릴 뿐, 곧 잊혀질 조그만 사고로 폭발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되었다. 거대하고도, 조용한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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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릴레이에서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전개는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20세기 소년, 몬스터, 플루토등
다소 긴박감 속에서 비밀과 반전이 거듭되는..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취향이고, 저도 릴레이니까 시도해보는 것입니다. 돌빛님이나, 랍유님 그리고 혹 끼실지도 모르는 분들께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굳이 말해두는 이유는.... 아마 앞으로도 제 뒤에 쓰실 분은 험난하실 꺼라는...- ㅅ-;;
새 등장인물은 랍유님이 끼신 기념으로 급 나이 조정에 들어갔습니다. 마법사라는 이미지에 맞게 늙다리로 만들까하다가 수정했습니다. 돌빛님은 문체로 보건데 아마 남자분... 같길래... 랍유님은 여자분이신 거 같고 해서... 냅다 꽃미남 비슷한 이미지로 ...ㅎㅎ
아직도 제 개인적으로는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랍유님이 계속하신다면 3명이면 그럭저럭 안정적이지만... 그냥 한편만 쓰시고 나가시는 것도 나름 괜찮으니, 미리 말씀하시고 가끔씩은 끼어들어 주십시오 냐하하~_~ 릴레이의 묘미니까요...
다른 분들이 힘드시다면.. 쬐께 문제겠지만...ㅎ 잽싸게 끼어들어서 '10화의 영광은 내꺼심!!!'하고 사라지셔도 개인적으로는 원망치 않습니다..ㅎ 오히려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가는 것도 나름 재미있으니까...
릴레이를 제안해놓고는, 본인이 고 3이라 이리저리 바빠서 잇지를 못했습니다. 수능이 끝이 아닌지라..ㅠ 입시 설명회도 가고, 논술도 다니고, 아무튼 의외로 빠른 연재는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그래도 많은 양해 바랍니다.
첫댓글 ㅋㅋ 네~ 자주는 못끼구요~ 앞으로 한번씩 낄수있을 여건이 될때 미리 연락 드리고 끼겠습니당 ㅎㅎ 잘읽었어요 ㅎ
감사합니다~_~ ㅎㅎ
드디어 읽어봤어요 죄송합니다. 역시 사이키님이 쓰신 것은 재미있죠.. 인형이 저렇게 무서운 존재였ㄷㅏ니.. 흐음~
냐하하~_~ 뒷사람을 생각않는 뻔뻔함의 산물이죠... 인형은... 개인적으로는 오즈의 마법사, 양철 로봇(?)과 함께 삼대 악의 축으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