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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천일개정대법(千日開頂大法)
"지금 이 순간 본좌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서장으로 날아간다면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꼬리를 감출 것이네.
최악의 경우 그들은 본좌가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다시 무공을 폐쇄시킬 수도 있지."
정의무성은 암천으로 시선을 향했다.
"본좌의 힘이라면 칠마 중 다섯은 잡아죽일 수 있을 것이네
. 하지만 다 죽이지는 못할 것이야.
그들을 하나하나 잡아죽이기 전에 본좌가 먼저 죽겠지.
그들은 자신들 일곱 중 단 하나라도 나의 사후(死後)에 생존해 있을 유일한 방법이
바로 그 길뿐임을 알고 천장군을 보낸 것일세."
진정 명확한 통찰력이었다
. 앉아서 천 리를 본다는 말이 정의무성에게는 통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마공은 지금 일취월장(日就月將)중이고,
세력은 하루가 다르게 갑절로 늘어나고 있네.
천장군이 이미 말한 대로 지금 치지 않는다면…
본좌의 무공으로도 그들을 죽이지 못할 때가 십 년 안에 올 것이오."
모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정의무성에 대한 위대함과 하늘의 조화에 대한 숭고함이 그들의 숨을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정의무성은 손자를 꼭 안고 말을 이었다.
"지금 본좌가 서장으로 가면 칠마 중 두셋을 남기고 죽을 것이지만,
나중에 간다면 칠마 모두를 죽일 것이네.
그때쯤 그들은 본좌만한 고수가 되었겠지만 본좌를 대신할…
아니 본좌를 능가할 인재 하나가 있기에 두려움이 없네."
정의무성은 손자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시퍼런 피붓빛과 총기가 없는 눈빛
, 곧 쓰러져 죽어버릴 것 같은 아이를 든 정의무성의 손바닥에는 땀이 촉촉이 배어 있었다.
"태자(太子)가 바로 그 주인공이오, 장차 나를 대신할…!"
"아아…"
"대무신국에서 태어난다는 불세출한 영웅이 바로 이 아이요."
정의무성은 천장군에 이어 삼대봉공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하거늘 어찌 칠마의 얕은 수작에 말려들어 천하의 영웅을 희생시킬 수 있단 말이오?
모두 본좌를 이해해 주기 바라오."
정의무성은 무천룡이라 이름 지은 아이를 소중히 품에 안았다.
그의 눈빛이 천장군을 향해졌다.
"천장군!"
"예, 상왕!"
"그대를 비롯한 칠장군의 목숨으로 칠마에 대한 천기를 시험해 본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네."
천장군은 감동에 젖어 황송한 듯 고개를 조아렸다.
"상왕, 속하들은 대무신국을 위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오히려 신국의 명예에 누를 끼쳐 죽음으로 속죄할 생각이옵니다."
"으음, 고맙네."
"상왕!"
천장군이 길게 외치며 머리를 쳐들었다.
"칠마의 힘은 막강합니다.
오십 년 전에 비해 두 배나 강합니다.
그리고 천축마사(天竺魔寺), 청해비응곡(靑海飛鷹谷), 동해해왕방(東海海王 ),
관외환영림(關外幻影林), 마검동(魔劍洞)을 흡수해
세력의 크기가 당금 천하에서 제일입니다."
"……."
"심마(心魔), 음마(淫魔), 태양마(太陽魔), 현음마(玄陰魔)
, 비마(飛魔), 검마(劍魔), 선마(扇魔)는 나이 백 세이거늘
오히려 오십 년 전 보다도 젊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미숙했던 한 가지씩의 마공에 거의 통달했습니다."
정의무성의 희디흰 백미가 가볍게 치켜 올려졌다.
"외람되게도… 속하는 아직도 상왕께서 대무신국의 전 고수들을 이끌고
그들을 치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천장군의 뜻은 알겠네.
하지만 칠마의 힘을 가장 크게 평가하는 사람은 천장군이 아니고 본좌일세."
"상왕…?"
"그들이 본좌를 두려워하고 있는 만큼 본좌 역시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네.
오십 년 전 그들 모두를 무저갱(無底坑) 안에 가두지 못했음을 후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 일이 이제까지 수만 일일세."
천장군은 경호성을 발했다.
"아, 그… 그러신 줄은…"
"오십 년 전의 십이거마는 다소 미숙한 상태였었네
. 본좌는 그들이 천박한 자들이라 여기고 그들 중 일곱이 목숨을 구걸할 때 그들을 놓아주었지.
한데 그것은 본좌의 오판이었네."
정의무성은 삼대봉공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여러분들은 본좌가 오십 년 간 지니고 있던 비밀이 무엇인지 아시오?"
"어떤 비밀이오니까?"
삼대봉공은 적잖이 흥분했다.
정의무성이 눈을 반개하고 천천히 말했다.
"오십 년 전, 십이거마가 힘을 합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면
본좌는 그리 간단히 이기지 못했을 것이오
. 승부를 내기 위해서는 칠주야(七晝夜)의 결투를 치러야 했을 것이고
, 이겼다 해도 본좌 역시 몸이 성치 못했을 것이오."
모두들 숨을 죽였다. 그들로서는 처음 듣는 비사였다.
정의무성은 자신의 존엄성을 손상시키는 부끄러운 과오를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싸움의 전개가 의외가 평탄했던 이유는 그들 중 일곱이 싸우다 죽기보다
악착같이 살아 남아 마두천하(魔頭天下)를 한번 이루어 보겠다는
집요한 성격이었기 때문이었소.
사실 칠마와 대무신국의 싸움은 얼마 전이 아니고
오십 년 전 본좌가 황산에서 그들을 놓아 주었을 때부터 시작했던 것이오."
"……."
"칠대사마는 자신들이 내게 목숨을 구걸할 경우
본좌의 성격상 그 비굴함에 보고 살려 주리라 생각했던 것이오
. 물론 심마의 계략이었겠지.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 남아 복수하기를 원했던 것이오."
정의무성은 천천히 몸을 돌려 황금누각으로 향했다.
"세월이 흐른 후에야 본좌는 심마의 교활함에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그들은 서장으로 숨은 후였소.
그 후로 오십 년,
칠대사마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자신이 있기 때문이오
. 그래서 본좌는 더욱 갈 수가 없소. 심마가 무엇을 준비해 놓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오."
정의무성은 태자 무천룡을 안아 들고 누각으로 되돌아갔다.
그 뒤를 따르는 대검제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버지의 위대함을 다시 깨달았기에 아들 된 입장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인지
, 아니면 자신의 무공이 모자라 연로한 아버지를 불편하게 함을 슬퍼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정의무성은 입 밖으로 내어뱉은 말을 단 한 번도 번복하지 않은 전설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말한 것은 곧 그의 다음 행동이었다.
정의무성이 무천룡 태자를 안고 누각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모두들 희비가 교차된 표정이 되어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 모두는 현세의 신선이 되어 살기를 희구하고
대무신국을 세웠던 전시대의 일세기인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수심이 나타나 있는 이유는
머나먼 서장 안에 숨어 있는 일곱 마두에 대한 걱정을 잊기 힘든 탓이었다.
그리고 수심에 겨워하면서도 흐뭇해하는 것은
대무신국의 소원이었던 정의무성의 후계자가 탄생되었기 때문이었다.
천장군의 한숨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렸다.
"천하대영웅(天下大英雄) 하나를 만들기 위해
대무신국의 존망(存亡)과 천하의 대세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 하늘의 뜻이련가?"
그의 탄식소리는 의미심장했다.
"천하대영웅 하나의 값이 온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면…
상왕의 뜻과 같이 따라 행할 수밖에 없겠지."
***
데에엥―!
정의무성이 들어간 누각의 종루(鐘樓)에서 종성이 들려왔다.
거대한 금종이 정의무성의 벽공장력에 의해 용이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대무신국의 태자(太子)가 태어났음을 정식으로 선포하는 종소리가 계속됨에 따라
대무신국의 신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내 누각 아래로 모여들었다.
대무신국은 말이 나라였지,
사실은 강호의 일개방파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규모였다.
사람들의 총 수효는 삼 천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소년층보다도 장년층, 노년층이 많은 기묘한 인구 구조를 갖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가뭄에 콩 나듯 적었고,
아이들의 모습은 더더욱 찾아볼 기 힘든 곳이 바로 대무신국이었다.
그 이유는 대무신국 사람들 중 반수가 승인(僧人)이고
나머지 반도 도인이어서 대부분 독신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무신국 안의 정경은 어느 것 하나를 고른다 해도
신선도(神仙圖)의 한 부분을 이룰 정도였다.
세상에서는 보기 힘든 화려하고 웅장한 누각들과 지천으로 깔려 있는 기화요초(琪花瑤草),
영과(靈果), 누각 사이를 우짖고 다니는 영금(靈禽)과
그림보다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숲 사이에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노루와 사슴의 무리는
그야말로 환상경이었다.
또한 인간 세상에는 드문 선풍도골(仙風道骨)의 기인들은 각기 하나씩의 재간을 갖고 있고
, 일신에 강호에서는 신의절기라 여겨지는 무공의 조예를 갖고 있었다.
정의무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인(神人)이라 불릴 사람들이지만
이곳에서는 정의무성의 명에 따라 죽고 사는 충성스런 신하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지위에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정의무성과 함께 선거(仙居)하는 것을 속세에서의 명예나 부귀보다 고귀한 것으로 여기며
제발로 대무신국을 찾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황금누각 앞으로 대무신국의 신민들이 모두 운집했다.
"으허허!"
삼층 누각의 종루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금포노인 하나가 있었다.
피붓빛이 유난히 시퍼런 갓난 아이 하나를 안아들고 기뻐 웃고 있는 노인이
바로 이곳의 주인 정의무성이었다.
정의무성의 뒤에는 현재의 국왕 대검제가 시립했고,
곁에는 어여쁜 백의미부 하나가 서 있었다.
아이를 낳은 지 반 시진도 채 안 되는 산모(産母)였지만,
태자 무천룡을 낳은 직후 벌근세수(伐筋洗髓)의 영약을 복용했기 때문에 거동이 가능했다.
여인은 금령공주(金玲公主)라 불려졌다가 대검황비(大劍皇妃)로 추존된 국모(國母)이다.
그녀는 지금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시체나 다름없는 아이를 낳아 상심해 죽고 싶을 정도였다가
정의무성으로부터 아이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리라는 말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대검제의 기쁨 또한 마찬가지였다.
'룡아야, 아비가 다하지 못한 효행(孝行)을 대신 해다오
. 너로 인해 아버님의 웃음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너를 위해 지금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다.'
정의무성은 대무신국의 태자를 번쩍 쳐들었다.
"으… 앙…!"
아이의 울음소리가 가늘게 울려퍼졌다.
정의무성은 사자후로 신민들의 고막을 때리는 힘찬 음성을 발했다.
"이 아이는 이제부터 천룡태자(天龍太子)라 불릴 것이다
. 천룡태자는 대무신국의 삼대국왕(三代國王)이 될 것이며
대무신공(大武神功)의 두 번째 주인이 되리라!"
대무신국의 신민들은 기쁨에 젖어 일제히 절을 올렸다.
"와아―!"
"천천세(千千歲) 천룡태자(天龍太子)―!"
정의무성은 함성의 여운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일천일(一千日) 동안 대무신국의 일천위사(一千衛士)로 하여금
천일개정대법(千日開頂大法)을 이행케 할 것이다."
모두들 숙연해져 정의무성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일천일개정대법이 거행되는 동안 본국은 봉국(封國)할 것이며 주악(酒樂)을 금할 것이다."
정의무성의 눈에서 혁혁한 금광(金光)이 폭사되어 나왔다.
천하에서 단 한 사람 정의무성만이 알고 있는 대무신공기강(大武神功氣 )의 힘이
안광으로 되어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천룡태자는 천일개정대법으로 탈태환골(脫胎換骨)할 것이며
대무신공기강을 일성(一成) 얻게 될 것이다.
이 후 십절(十絶)이 천룡태자를 열 살 때까지 가르치고,
태자의 나이 열한 살이 될 때 본좌가 비로소 태자에게 절기 전수를 시작할 작정이다."
정의무성은 잠깐 사이 천룡태자를 어떻게 기를 것인지 다 정해 놓은 듯한 마디도 더듬지 않았다.
"짐이 대무신공기강을 십성(十成)까지 익히는데 소모한 시간은 칠십 년이었다
. 하지만 천룡태자는 십칠 세가 될 때 대무신공기강을 십성 수준까지 익힐 수 있을 것이며
천하무적(天下無敵)이 되리라!"
"와아―!"
"만세―!"
대무신국의 모든 사람들은 천룡태자의 앞길이
황금빛 찬란한 대로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장차 대무신국이 천하대영웅의 고향으로 불리게 될 것을 굳게 확신했다.
하지만 정의무성만은 회의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그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아… 룡아가 십칠 세가 될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하는데…
하늘이 나를 그 이전에 부른다면 나는 칠마와의 거대한 도박에서 패배하고 마는
우자(愚者)에 지나지 않는다.'
***
정의무성이 거소로 삼고 있는 무성전(武聖殿)에서 성대한 의식이 거행되었다.
만조백관(萬朝百官)이 모인 가운데 천룡태자에게 태자의 지위가 정식으로 내려지고
천일개정법에 들어가는 예비과정이 전개되는 중이었다.
천일개정대법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세 가지였다.
첫번째는 천일개정대법의 수혜자가 되는 천룡태자의 몸이었다.
천룡태자의 연약한 몸뚱이는 온옥(溫玉)으로 만든 작은 침상 위에 눕혀져 있었다.
아기 태자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두 번째는 세 가지의 영약으로 그것도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대무신왕의 삼밀사가 되는 세 명의 절세기인이 영약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 그 중 흑도대종사였던 적지만리객이 들고 있는 작은 금상자가
셋 중에서 가장 귀중한 약재였다.
〈 철혈역골신단(鐵血易骨神丹) 〉
단 한 알의 신단을 만들기 위해 대무신국의 거대무비한 약고(藥庫)가 텅텅 비었다고 한다면
철혈역골신단의 가치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될 것이다.
철(鐵)과 금(金)의 근골(筋骨)을 만들어 주는 영단이 바로 철혈역골신단이었던 것이다.
그 옆에 선 비천신매가 들고 있는 자단목(紫壇木) 상자 안에 들어있는 영단의 약효 또한
고금에 드문 것이었다.
〈 대무금강신단(大武金剛神丹) 〉
일컬어 백년벽독단(百年癖毒丹)이라 불리는 것으로
복용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중독이 되지 않는 신약이었다.
삼밀사의 마지막인 광승이 쥐고 있는 홍옥갑(紅玉匣) 안에 있는 것도 하나의 단약이었다.
〈 무국청령환단(無極淸靈還丹) 〉
단 한 알로 소림 특제 대환단(大還丹) 일백 알의 가치를 능가한다고 말할 수 있는 영단이
바로 무극청령환단이었다.
복용하는 사람에게 회춘(回春)과 활력,
그리고 오묘한 지혜를 준다는 전설적인 영단이며 처음으로 세상에 나타난 물건이었다.
세 가지 영단은 대무신국삼대신단(大武神國三大神丹)이라 불린다.
그것은 십오 년 전에 만들어졌고,
이제껏 비고(秘庫) 안에서 주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검제의 근골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좋았다면
세 가지 영단은 그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검제는 정의무성의 아들답지 않은 비천재(非天才)였기에
세 알의 영단을 취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천일개정대법을 위해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일천일인(一千一人)의 내가고수(內家高手)였다.
천일개정법은 일천일에 걸쳐서 베풀어지고, 그 사이 단 일각이라도 쉬임이 없게 된다.
일천일 인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대법의 주관자 일인과 그리고 십이시진(十二時辰) 동안 일신진기를 써
수혜자의 근골에 단약의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하는
천인(千人)의 호법(護法)이 그들이다.
일천일 인의 고수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소는
천하에서 단 한군데 영륭이남산맥 안의 대무신국뿐일 것이다.
그리고 천일개정대법의 주관자가 될 수 있는 정순(精純)한 내공의 소유자는
천하에서 단 한 사람 정의무성뿐이리라.
정의무성은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 그의 눈가가 불그스레했고 입가에는 득의지색이 만들어졌다.
"천일개정대법은 대무삼대신단을 태자에게 복용시키고 십이시진이 지난 후에 거행될 것이다
. 삼밀사는 순서에 따라 영단을 복용시키고 이후 일천일 간 나를 도와
태자에게 개정대법을 베풀 호법(護法)들을 골라 명단을 작성하시오."
"예, 상왕."
삼밀사가 허리를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먼저 철혈역근신단을 복용시켜라."
정의무성이 왼손바닥으로 태사의의 팔걸이를 탁 치자
삼밀사의 우두머리인 적지만리객이 금갑의 뚜껑을 열었다.
순간, 너무나도 좋은 향기가 무성전 안을 가득 메웠다.
금갑 안에 들어 있는 주먹만한 금빛 신단 한 알에서 풍겨 나오는
청아(淸雅)한 향내가 바로 그것이었다.
철혈역골신단의 주약(主藥)이 되는 것은 만년화리내단(萬年火鯉內丹)이었다.
그리고 인형설삼(人形雪蔘), 만년하수오(萬年何首烏), 구엽자지초(九葉紫芝草)가
사대부약(四大副藥)을 이루고 있었다.
단약 한 알의 가치를 금전으로 따진다면 황금으로 거대한 무성전을 가득 채워야 할 것이다.
적지만리객은 단약을 쥐고 천룡태자 가까이 다가서며
어딘지 모르게 괴로운 표정이 되었다.
'이것을 상왕께서 복용하신다면 상왕은 이후 일 갑자를 더 사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왕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시니…'
적지만리객의 손가락이 미미하게 떨렸다.
단약이 아이의 입 안으로 들어감에 따라
대무신국의 대권(大權)이 천룡태자에게 돌아갈 것이 뻔한 일이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기 거북해서인가?
"태자!"
적지만리객은 잠자고 있는 무천룡에게 정중히 절을 한 후 무천룡의 입술을 가볍게 열었다.
아기의 입안은 아주 깨끗했다.
"천혈역근신단으로 철골지체(鐵骨之體)를 이루십시오
. 태자천세를 앙축하나이다."
적지만리객은 엄숙하게 말하며 단약을 아기의 입 안에 넣었다.
아주 큰 단약이었으나 아기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녹아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가기에 장애가 있을 리 없었다.
단약 복용 임무를 마친 적지만리객이 뒷걸음질 쳐서 온옥 침상에서 멀어졌다.
삼밀사의 둘째인 비천신매가 자단목상자 뚜껑을 열어 붉은빛 단약 하나를 꺼내들고
적지만리객이 한 것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대무금강신단으로 만독불침지신(萬毒不浸之身)을 이루십시오
. 태자천세를 앙축하나이다."
비천신매가 말하며 뒤로 물러나자 마지막 영단 무극청령신단이 아이의 입 안에 넣어졌다.
"무극청령신단으로 무극혜지(無極慧智)를 얻으십시오. 태자천세를 앙축하나이다."
삼밀사의 마지막인 광승은 세리를 초월한 사람이었으나 이 순간만은 진지했다.
'천룡태자의 운세가 곧 장차 천하의 운세다. 대무신국의 모든 것은 태자에게 걸려 있다.'
광승이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줄로 돌아와 섰다.
정의무성은 격동을 이기지 못하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삼밀사를 응시했다.
"삼밀사들께서는 십이시진 후 천일개정대법이 본좌의 주관하에 이루어질 때
대무신국을 나서야겠소."
"어디로 말이오니까?"
모두 상상치 못한 말이었는지라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정의무성의 뇌리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의 언행은 남달랐고 언제나 깊은 통찰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번의 말 또한 심오한 통찰의 과정을 거친 후 나타난 것이었다.
"오 년 간 중원천하(中原天下)를 밟아 주시오."
"오 년이나 걸쳐 행해야 할 일이 무엇이온지요?"
적지만리객이 대표로 물었다.
"삼밀사께서 찾아야 할 대상은 세 명의 대협객(大俠客)이오."
정의무성이 뒷짐을 지며 말을 계속했다. 아주 잔잔하나 힘 있는 목소리였다.
"본좌가 왜 이런 이상한 명을 내리는지는 오 년 후 알게 될 것이오."
정의무성은 그렇게 말한 후 입을 꽉 다물었다.
삼밀사는 의아함에 젖었지만 정의무성의 지시를 받고는 기필코 이행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의무성은 그 사이 눈을 반개(半開)하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조금 처져 있었다.
'태자가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살게 된다면 삼밀사에게 명을 내린 것은 기우로 그칠 것이다.
하지만 열일곱 살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면…
혈겁(血劫)을 대무신국 밖으로 확대시키지 않는 책략이 될 것이다.'
정의무성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지혜는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지혜 중 가장 위대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도 사람이었기에 천하대영웅을 외인(外人) 중에서 뽑기보다
자신의 피를 이어 받은 후예 중에서 가렸다.
그것이 장차 천하에 해가 될지 득이 될지는 그로서도 예측하기 힘든 일이었다.
'앞으로 열일곱 해 더 살아야 한다
. 이대로라면 이십 년은 더 살 수 있겠지만 천일개정대법을 시전한 후 서장으로 가게 된다면…
칠마와의 결투로 인해 수명을 훨씬 단축시키게 될 것이다.'
정의무성은 십칠 년 앞을 내다보았다. 그렇지 않다면 환한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생각하자.
그리고 천기에 나타난 대로 행동하자. 지금 내가 동요를 보이면 안 된다.'
정의무성은 그런 생각으로 고뇌에 찬 표정을 거두고 다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잠깐 사이 십칠 년 앞의 세월을 궁리하며 무엇인가를 결정했다는 것은
한 사람도 눈치채지 못했다.
"십이 시진 후 천일개정대법이 거행될 것이다.
모든 백성이 그 순간을 위해 목욕 재계하고 숙연하라."
정의무성은 사자후로 외친 후 다시 태사의에 걸터앉았다.
그로부터 여섯 시진 후 대무신국에서 가장 경륜과 경험이 풍부한 삼밀사가
대무신국을 둘러싸고 있는 기문진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진세를 완전히 벗어나자 기문진이 다시 발동되었다.
우르르르― 릉―!
입마령을 휘감고 흩어지지 않던 검은 안개가
기문진의 발동과 함께 회오리에 휩싸여 천둥소리를 냈다.
흑무가 휘감으며 영륭이남산맥을 뒤흔들었으나
그 안은 태호의 물과 같이 고요하기만 했다.
진세는 아주 특이해 밖으로 나올 수는 있어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는 곳이다.
대무신국은 전보다 더한 험지로 화해 적막 속에 묻혀 갔다.
****
세월은 유수와 같다.
이 년이 지났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영륭이남산맥의 풍광(風光)은 사시(四時)에 따라 변화를 계속해 갔고,
입마령의 장엄함은 대무신국을 에워싸고 있는 검은 안개 속에 더욱 위대하게만 보였다.
무성전 안도 그리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금빛을 사랑해 모든 것을 금빛으로 꾸미기를 좋아하는 정의무성의 모습 또한 그대로였고
맑은 눈빛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천룡태자의 몸이었다.
천룡태자는 태어난 이후 계속 잠자고 있었다.
태어날 때 그리도 허약했던 천룡태자였으나 지금은 아주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 있었다.
정의무성의 오른손 바닥이 금빛 기류를 일으킨 채 무천룡의 천령개를 덮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이 앉아 두 손으로 무천룡의 양쪽 발바닥 용천혈(龍泉穴)을 쥐고 운기행공중이었다.
그것은 지난 이 년간 조금도 변화되지 않고 계속된 광경이었다.
용천혈에 진기를 주입해 정의무성과 함께 무천룡의 탈태환골(脫胎換骨)을 돕고 있는 사람은
일천호법(一千護法)중 칠백 번째가 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별호는 상산일룡(商山一龍)이었다.
지금 나이 칠십으로 오십여 년 전 정의무성을 숭배해
정의무성이 대무신국을 세울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대무신국의 신하가 된 이천여 강호고수 중 하나였다.
"으음…!"
상산일룡은 아주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십이 시진 내내 진원지기를 토해낸 것이다.
한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 진원지기를 쏟는다면 그는 폐인이 되고 말 것이다.
"칠백일 호법 형산선생(衡山先生)이 이제 호법의 임무를 대신합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흰 수염을 다섯 자나 기른 백포노인 하나가
무성전의 주인 정의무성에게 절을 한 후 상산일룡 곁으로 다가갔다.
"기를 임맥(任脈)으로 몰며 우수(右手)를 교체시켜라."
정의무성이 입술을 떼는 순간 무천룡의 오른쪽 발바닥을 쥐고 있던 손이
상산일룡의 오른손에서 형산선생의 오른손으로 교체되었다.
"기를 독맥(督脈)으로 몰며 좌수(左手)를 교체하라."
정의무성의 지시에 따라 상산일룡이 왼손을 놓고
형산선생이 급히 무천룡의 발바닥을 쥐고 상산일룡이 하던 그대로 호법의 지위를 계승했다.
이제껏 칠백 번 되풀이되었던 광경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상산일룡은 비지땀을 흘리며 정의무성에게 절을 하고 무성전을 나섰고
모든 것이 다시 고요해졌다.
형산선생과 상산일룡이 자리를 바꾼 것과 같은 일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자리를 바꾸지 않은 사람은 정의무성과 무천룡이었다.
정의무성은 수십 년 전부터 곡기를 끊고 생활해 오던 사람이고,
내공의 힘이 오백 년 수위에 이르렀는지라
이 년에 걸친 단식(斷食)에도 피로의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간간이 흡물공(吸物功)으로 빨아들이는 진한 향차(香茶)가 그가 먹는 음식의 전부였다.
열다섯 가지 약재로 만든 향차는
정의무성이 태자를 위해 진원지기를 쓰는 데서 오는 피로감을 극복케 해주는데 신효를 갖고 있었다.
태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 젖을 먹여야 할 나이인데 젖을 먹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머니의 품을 몰라야 하는 것도 너무도 위대한 신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겪어야 할 시련 중의 하나였다.
***
대무신국이 생긴 이후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천일개정대법이 끝을 맺는 날이 되었다.
삼 년 가까운 세월은 대무신국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가장 큰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천룡태자의 어머니인 대검황비가
천룡태자를 한 번도 안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대무신국이 세워질 때 이미 칠팔순을 넘은 사람들이 허다했는지라
지난 삼 년 사이 대무신국의 신민 중 이할 가량이 죽었다.
정의무성은 삼 년 전부터 나름대로 이 일을 예측하고 있었다.
과거 천하를 조롱하며 대무신국 안으로 들어왔던 절세기인들이었지만
인간인 이상 죽어야 하는 것이다.
세월은 모든 것을 늙게 하는 법이다.
천하를 오시할 신공을 지니고 있는 대무신국의 신민들이었으나
인생의 변화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대무신국의 특이한 전통이기에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마침내 천일개정대법 최종일에 이르렀다.
흰수염을 길게 기른 대무신국의 신민들은 한결같이 흐뭇해하며
의관을 정비하고 무성전 근처로 모여들었다.
그들 모두는 어렵고도 힘든 천일개정대법의 성공을 서로 축하하며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대무신국은 아주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다.
무성전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정의무성의 외아들이자 무천룡의 아버지인 대검제였다.
그는 삼 년 사이 중년인의 면모로 화신해 있었다.
목숨보다도 사랑하는 아내 대검황비가 요절했다는 것이 그를 나이보다 늙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대검제 뒤로는 십 인의 흑포노인들이 있었다.
대무신국 십절노인(十絶老人)이라 불리고 있는 기인들로
과거에는 무림십절(武林十絶)로 불리던 일세기인들이었다.
금기서화(琴琪書畵), 정(政), 산(算), 의(醫), 독(毒), 기문(奇門) 기관(機關) 분야에 있어
천하제일인 사람들로, 학문의 깊이를 더하고 폭을 넓히기 위해
일백여 성상을 각고의 괴로움 속에서 보내온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들 뒤쪽으로도 많은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있었다.
범인이었다면 수십 년 전에 죽었을 나이들이나
아직 선풍도골(仙風道骨)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로 수는 천이 훨씬 넘었다.
그러나 그 중 십 년 이상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삼백에 지나지 않았다.
적막이 흐르는 황혼녘이었다.
대무신국의 하늘은 혈염(血焰)의 광휘로 뒤덮였고,
그 빛이 대무신국 사람들의 얼굴을 붉게 비추었다.
무성전으로 통하는 세 자 두께 석문이 활짝 열리며
비틀비틀 걸어나오고 있는 백포노인 하나가 있었다.
일천위사의 우두머리인 과거 무산파(巫山派) 십오대(十五代) 장문인(掌門人)
무산석옹(巫山石翁)이었다
. 그는 탈진한 모습으로 석문을 열고 걸어나오는 것이었다.
무산석옹은 중인의 시선이 자신의 일신에 집중되는 것을 보고 뿌듯한 표정이 되어 외쳤다.
"대성공이오. 두 분 다 무사하시오."
순간, 중인의 환호성이 입마령을 들썩였다.
"만세―!"
"대무신국의 숙원이 이제야 이루어졌구나!"
"하하하… 대무신국의 후계자가 드디어 나타났구나!"
중인의 환호성이 입마령을 들썩였다.
무산석옹은 소매로 이마를 덮고 흘러내리는 비지땀을 닦아내리며
대검제 앞으로 다가가 절을 했다.
"국왕, 천룡태자는 탈태환골하시었습니다.
그 경지는 상왕 이후 한 사람도 터득치 못한 대무신공(大武神功)의 다섯 단계 중 하나인
철골신(鐵骨身)의 단계입니다."
철골신이라는 말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철골신의 경지는 강철 같은 근골의 경지였다.
그 경지에 이르게 되면 어떠한 마공 아래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어떠한 독공 아래서도 살 수 있게 된다
. 그리고 그 경지에 이르러야 대무신공을 익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주가 생겨난 이래 가장 뛰어난 신공이라 평가받고 있는
대무신공에는 모두 다섯 단계가 있었다.
철골신을 이룬 후 이루게 되는 두 번째 단계는 금갑신(金甲身),
세 번째 단계는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 부동지체(不動之體)'로
대무신공을 익히는 데 있어 가장 힘든 양심신(兩心身),
네 번째는 빛으로 화하는 섬수신(閃手身),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무형신(無形身)의 오묘무쌍한 단계였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 다만 정의무성 이후 그 오묘한 다섯 경지 모두를 체험할 사람이 존재할 것인가
회의적으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천룡태자는 천하에서 가장 훌륭한 근골이십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가장 행복한 분이십니다."
무산석옹의 말이 거기에 이를 때였다.
"으허헛…!"
무성전 안에서 창로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금의인영 하나가 바람같이 달려나왔다.
정의무성이 삼 년 만에 만조백관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삼 년 전에 비해 훨씬 말라 보였지만, 위풍당당하기는 과거보다도 훨씬 더했다.
그의 품 안에 안겨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대무신국의 태자 무천룡의 호흡소리가
그에게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상왕―!"
"대법의 성공을 앙축드리옵니다―!"
만조백관이 한 마디씩 하례를 하자 정의무성의 입가에 드리워진 웃음이 한결 더 밝아졌다.
"천일…참으로 긴 세월이었소."
그의 말소리가 시작되자 중인이 함구했다.
"천일개정대법이 한 치의 미진함도 없이 완벽히 성공한 이유는 여러분 모두의 협력 때문이오.
이 일은 대무신국의 역사와 함께 천세만세 이어져 갈 것이오."
정의무성은 천천히 말하다가 소매를 가볍게 내저었다.
그의 소매가 펄럭이는 가운데 능공섭물진기(凌空攝物眞氣)의 힘이 일어났다.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대검제는 부드러운 힘이 자신의 몸을 떠받든다는 것을 느끼며 탄성을 발했다.
"아…!"
그가 고개를 들자 정의무성이 무천룡의 몸을 대검제에게 건네듯이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받아라, 네 아이다!"
"아… 아버님!"
대검제는 말을 더듬으며 일순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네게서 이 아이를 빼앗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아이는 나의 후계자이나 그 이전에 너의 아들이다."
대검제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정의무성은 옥동 같이 고운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무천룡을 대검제의 품안에 안겨 주었다.
"열 살까지는 네 곁에 두고 기르거라.
나는 이 아이가 열 살이 넘은 후에야 신공 전수를 시작할 작정이다."
"예, 아버님."
"정(情)을 모르는 아이는 편협해지고 사마외도(邪魔外道)에 빠지기 쉽다.
천룡에게 그런 악심(惡心)을 심어 주지 않을 사람은 천하에 너 한 사람뿐이다."
대검제는 가볍게 얼굴을 붉혔다.
"어찌 소자가 감히…!"
"허허, 너는 나보다 재주가 못하나 다정하고 온화한 데에서는 애비인 나를 수십 배 능가한다."
"송구스럽습니다."
"허허허…나는 천룡이 나의 무공을 고스란히 이어받기를 바라는 이상으로
천룡이 너의 성품을 고스란히 이어받기를 바라고 있다."
정의무성은 웃으며 말하다가 뒷짐을 졌다.
그의 눈에서 신광(神光)이 폭사되어 나왔다.
'삼 년…서장의 칠마도 천룡이 자란 듯 일취월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나의 상대가 안 된다. 이제 서장으로 들어갈 때가 왔다!'
정의무성은 나름대로 생각을 정하고는 중인들을 쓸어보았다.
그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대무신국의 보고(寶庫)를 관리하고 있는 도복(道服) 차림의 노인이었다.
"장보전주(藏寶殿主)!"
"하교하십시오, 상왕."
"장보전 안으로 가서 대무신검(大武神劍)을 꺼내 오게."
정의무성의 말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상… 상왕…?"
"천일 전에 해야 할 일을 하려 하는 것이니 어서 대무신검을 꺼내 오시오."
정의무성이 빠르게 말하다가 돌연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휘파람 소리에는 지극한 진기의 힘이 실려 있었다.
대무신국의 신민들은 진기의 진탕되며 비틀거렸다.
"으음…!"
"오오…상왕의 내공은 이전보다 오히려 강하다!"
휘파람 소리의 여운이 거두어지기도 전 하늘에서부터 훌훌 떨어져 내리는
금빛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끄― 아― 아― 악―!
날개를 활짝 펼 때의 길이가 사 장에 달하는 천하에서 가장 거대한 금붕(金鵬) 한 마리가
정의무성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오백 세를 산 영금(靈禽) 대무금붕(大武金鵬)으로
과거 정의무성이 천하를 주유할 때 발을 대신해 주었던 영물이었다.
정의무성의 아주 오랜 충복은 오랜만에 주인의 부름을 받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 대무금붕의 울음소리는 매우 거칠었다.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인지 노인의 음성처럼 탁했다.
대무금붕이 지면으로 내려와 날개를 접자 중인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으음, 상왕께서 서장으로 떠나신단 말인가?'
'상왕에게 패해 금제를 받고 도망갔다가 수년 전 내공을 회복하고
권토중래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칠대사마를 징벌하러 가시려는 건가?'
장보전주가 금갑 하나를 들고 답허능공(踏虛凌空) 신법으로 정의무성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신검(神劍)을 꺼내 왔습니다."
장보각주가 금갑을 받쳐 들고 무릎을 꿇자
정의무성이 능공섭물진기로 금갑을 회수하며 아들 대검제를 향해 말했다.
"나는 지금 떠날 것이다."
대검제는 연로한 부친을 보내야 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예, 아버님."
"빠르면 칠 일! 늦으면 한 달 후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오래 걸린단 말입니까?"
"허허… 칠마의 무공은 지금쯤 입신지경(入神之境)에 이르렀을 것이다.
오십삼 년 전과는 완전히 비교할 수 없다.
아마 삼 년 전과도 또 틀릴 것이다
. 그들은 내가 가도 도망치지 않고 나를 맞이할 것이다."
대검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의무성은 기다란 금갑을 팔에 걸치며 어루만졌다.
"그들은 나와 비무(比武)하는 것을 겁내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들이 도망치지 않을 정도로 고강해졌다는 것을 간파하기에
그들을 찾아 떠나려 하는 것이다.
도망칠 정도로 약한 자들이라면 내가 친히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냈을 것이다."
"아…그렇겠군요."
"그들을 죽이기 위해 떠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죽이려고 해도 죽이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들과 내기 비무를 하러 떠나려 한다."
"내기 비무라니요?"
정의무성은 깊은 혜안을 번뜩였다.
"그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조건을 내세울 작정이다.
그들이 협공해 덤벼 나를 이길 경우 대무신국 전부를 그들에게 주고
나는 자결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예에…?"
대검제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정의무성은 사소한 잡담을 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 조건을 내거는 이유는 그들에게 또한 강한 금제(禁制)를 조건으로 하기 위함이다."
"금제라면…?"
"그들은 내가 죽기 이전에는 중원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내 손 아래서 목숨을 부지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미약하다.
그들은 내가 죽고도 십 년 이상은 더 살 수 있는 운세를 갖고 태어난 자들이다."
정의무성은 범인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초인답게 모든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늘의 조화로 어느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기에 그들에게 새로운 금제를 주려 하는 것이다."
정의무성은 보이지 않는 계단을 밟고 걷듯이 허공으로 올라섰다.
"그들의 맹세를 받아낼 작정이다.
내가 죽은 후라도 중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새로운 금제를 만들 작정이다
. 그들은 악독하나 워나 자부심이 강해 명예를 귀히 여기고 있는 자들이다.
자신들의 입으로 한 말은 결코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정의무성은 그 말을 끝으로 빛살처럼 금붕 위로 올랐다.
오랜만에 주인을 태운 대무금붕이 긴 울음소리를 내며
황혼에 타고 있는 하늘을 향해 표표히 날아올랐다.
바람소리가 이는 가운데 일인일조(一人一鳥)의 모습은
중인이 망막 안에서 모습을 감췄다.
첫댓글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즐감~!
흥미진진합니다
즐감하고갑니다.
ㅈㄷㄳ
감사합니다
잼납니다
재미있네요
즐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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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처음 시작이 예측 불허로 가는데... 지켜 보죠...
즐감하고 갑니다.
대붕금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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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요
즐독~~감사합니다
대망을 품고금봉에~~~
감사...
즐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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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서막이 시작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