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5. 4. 11. 금요일.
하늘이 말끔하다. 봄날씨라서 화창하며, 온화하다.
아침밥을 굶고는 아내와 함께 송파구 잠실아파트 4단지 앞 도로변에 있는 상가 4층 내과병원으로 갔다.
귀 어둬서 여의사가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 대신에 아내가 여의사와 말을 주고 받았다.
내 손가락에 주사바늘로 피를 조금 뽑아서 공복혈당을 쟀다. 수치는 130.
한 달 전과 비슷한 수준인데도 아내는 남편인 나를 탓하며 여의사한테 일러바쳤다.
"이 이는요. 군것질을 엄청나게 많이 쉴 사이 없이 먹고 마셔요. 밤에는 허리뼈가 아프다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기에 혈당이 아주 높군요."
당뇨약은 지난 달과 똑같은 수준으로 처방했다. 상가 1층에 있는 약국에서 다섯 종류의 알약을 샀다.
내가 당뇨를 앓기 시작한 지는 수십 년이 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치료받은 지도 20년을 넘었다. 장기간 당뇨때문에 병원비 약값은 많이 들어갔을 터.
나는 당뇨병 환자이지만 맛있는 음식물을 거의 다 먹고 마신다. 그것도 양껏. 내 비위에 맞지 않는 음식물과 음료수(술)는 먹지 않지만 대체로 달콤하고 달착지근한 군것질을 가리지 않고 먹고 마신다. 그런데도 지금껏 큰탈없이 살고 있다. 물론 당뇨치료는 계속 받기는 해도 나는 이를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2.
문학카페 오른 시 하나를 보았다.
'썩지 않는 씨앗은 꽃을 피울 수 없다'라는 제목이 나한테는 이상하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댓글 달았고, 퍼서 '세상사는 이야기방'에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충남 보령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나는 농사가 무엇이라는 것쯤은 얼추 안다.
씨앗 뿌려서 새싹을 틔우고, 그 새싹을 이식해서 더욱 크게 키워내서 열매 맺고, 씨앗 맺고, 더 크게 키워서 식량을 했다.
씨앗을 보관하고, 씨앗을 흙에 묻고, 물속에 가려안혀서 싹을 틔우면서 재배했다.
아래는 내 댓글 : 얼마 뒤에 댓글을 삭제했고, 대신에 '삶의 이야기방'에 올려서 글감으로 삼는다.
'썩지 않는 씨앗은 꽃을 피울 수 없다'
이 문장에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아니 고개를 마구 내젓습니다.
씨앗이 썩어야만 꽃을 피우나요?
도대체 그런 씨앗의 식물은 어떤 종류인가요?
수십년 전 시골에서 살 때 이른 봄철이면 볍씨를 골랐지요. 썩고 못난 볍씨를 골라낸 뒤
싱싱하고 잘난 벼씨에 물을 조금씩 부어서 싹을 틔웠지요. 일꾼사랑방 방바닥에 흙을 붓고, 그 속에 골라낸 볍씨(벼씨앗)을 뿌려서... 물 주고 키워낸 뒤 무논(물논)으로 내가서 심었고, 더 키를 키운 뒤에 정식으로 모를 심었지요.
보리, 콩, 수수 등을 밭흙에 뿌릴 때에는 씨앗을 찬찬히 골라내서 썩지 않는 씨앗만을 흙에 묻어서 새싹을 틔웠지요.
위 글의 문장이 맞나요?
농촌에서 일꾼을 두고 농사를 지었던 내 기준에는 전혀 전혀 아니군요.
튼튼한 씨앗이라야 하지, 썩은 씨앗으로는 농사 못 짓습니다!
예전 농사를 잊지 못해서 서울 아파트에서 사는 지금은 비좁은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 150개를 올려놓고는 화분 속의 식물을 들여다보지요. 이따금 튼실한 씨앗으로 싹을 틔우고...
나는 지금 서울 아파트에서 머물면서 산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집나이 아흔일곱살이 된 지 며칠 뒤에 돌아가셨기에 마을 앞산 서낭댕이(서낭당) 앞쪽 산말랭이에 산소 쓰고는 나는 그참 서울로 올라와서 지금껏 산다. 한적한 시골집에서 나 혼자서 살 수는 없을 터. 시골집을 에워싼 텃밭 세 자리에는 수백 그루의 과일나무 묘목과 야생화들이 숱하게 있었지만 나는 농사를 포기한 채 서울로 올라왔다.
나는 1949년 1월생이다. 내 어린시절에는 산골 화망마을인데도 마을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사방이 야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이자 농촌이기에 오로지 논농사 밭농사에만 치중했다. 농사채가 많은 집에서는 머슴(일꾼)을 두고 농사를 지었다.
우리집도 머슴을 두었다. 농사는 일년내내 늘 바쁘게 일해서 지어야 했다.
논농사 밭농사의 곡식과 씨앗, 구근들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다.
예컨대 이른 봄철이면 벼씨(볍씨)를 키와 체로 걸러서 좋은 씨앗을 가려내야 했다.
썩고, 병들고, 못난 씨앗은 한톨조차도 들어가지 않도록 씨앗을 골라냈다.
씨앗을 흙속에 파묻고는 물을 뿌려서 새싹을 틔우려고 애를 썼다.
이른 봄철에는 볍씨를 골랐고, 늦가을철에는 보리 밀 귀리 등의 씨앗을 골랐다. 수수, 조, 귀리, 옥수수, 메밀, 강낭콩, 흰콩, 방콩, 팥, 수박, 호박, 오이, 물외, 참외, 수세미, 가지, 당근, 고추, 토마토, 무(무우, 무수 방언), 상추, 쑥갓 등의 채소 씨앗은 아주 튼튼한 것들로 골랐다. 결코 썩거나 못난 종자로는 농사 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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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
어머니가 늙어갈 수록 재래종 씨앗과 종자는 자꾸만 줄어들었고, 어머니가 2015년 2월에 돌아가신 뒤로는 재배했던 재래종 토박이 종자는 깡그리 모조리 다 사라졌다.
나도 농사를 짓지 않고는 서울로 올라왔기에.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에서는 농토가 많이도 줄어들었다.
농공단지, 산업단지, 고속도로 진입로, 지방도로 확장 등으로 농토가 거듭 토지수용되었다.
현지 주민들도 늙어서 극노인들이나 겨우 살다가는 어느날 훌쩍 저너머세상으로 떠났다.
마을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었고, 농토도 크게 줄어들었으니..... 재래종 씨앗과 종자도 거의 다 사라졌다.
.....
나중에 보탠다.
잠시라도 쉬자.
단숨에 썼더니만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