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 하는 출판 기념회
6월 23일 일요일.
부천의 시인 박수호 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집을 출간했다며 간단하게 축하 파티라도 하자는 뜻.
그런데 어쩌랴.
매부상을 당해 원주로 향하고 있었다.
발인까지 보고 와야 했기에 다음 주로 미루자고 했다.
상을 치르고 다시 돌아온 부천, 26일 수요일이다.
두말 할 것 없이 ㅇㅋ이다.
시인 김문배 선생님이 나오실 테고~~~
혹시 몰라 민충환 선생님도 청하자 했더니 요즘 건강이 안좋으시단다.
80을 넘기시며 부쩍 더 그러신 것 같다.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으시고~~
27일 목요일.
예전 같으면 찬찬히 걸어 가면 되었겠지만
요즘 이상하게 걷기가 힘이 든다.
버스로 정류장 세 개를 이동, 내려 잠시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부천북초등학교 정류장.
바로 앞 상가에서 내어놓은 화분에는 <고추>가 자라고 있다.
벌써 저렇게 영글었고,
또 이렇게 꽃도 피운다.
꽃이 피어 열매 맺고, 다시 꽃을 피우고.
그러니 주구장창 <고추>가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일 게다.
<고추>를 수확하려 심었을까.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 심은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게다.
모르긴 해도 <고추>보다는 꽃을 보기 위한 화분이 아닐까.
골목으로 들어서면 바로 부천의 유명한 중국집 <복성원>이 보인다.
가게 앞에 늘어놓은 화분들.
<무늬접란>
끝물이다.
역시 끝물인 <백접초>
딱 한 송이가 남았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제라늄>
보통 붉은 색을 생각하지만 <제라늄>은 워낙 종류가 많다.
김문배 시인, 박수호 시인과 3인 회동의 단골집이 된 <황태전문점>이다.
시간 약속은 셋 다 정확하다.
5분전에 다 모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내어놓는 박수호 시인의 시집 <꽃은 바람에 날리고>
박 시인은 시집을 낸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얼른 시집을 펼쳐 '시인의 말'부터 읽었다.
끝내 어쩌지 못하는 마음
이것을 무어라 해야 할지 망설이는데
발등에 꽃잎 떨어진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묻고 싶은
오후 3시다
시집 앞부분에 수록된 '시인의 말'이 한 편의 시이다.
늘 얻어먹었기에, 오늘은 시집 출간을 축하하는 의미로 내가 사겠다 했더니
박 시인은 자축의 의미로 밥값을 내겠단다.
대신 숙제로 다음 카페 <박수호시창작교실>에 소개 글이나 올려달란다.
부탁하지 않아도 내 블로그에 소개 글을 올릴 것이다.
코드가 맞는 시인이고 그런 분의 시이기에
여러 번 읽고 시 다치지 않게 잘 써야한다.
내 블로그에 파워란 말이 붙어 있어 파급 효과는 좀 있다.
우선 글 만들어 블로그에 올리고
이를 정리하여 간단하게 카페에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박 시인의 시를 읽으면 가슴속에 스며들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더 신경을 써야겠다.
후딱 쓸 일이 아니다.
찬찬히, 음미하며, 시의 행간까지 들어가 느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지만
특히 박 시인의 시를 평하는 일은 그렇게 조심해야 한다.
이 집에 하나뿐인 메뉴.
황태구이정식이다.
이렇게 밥을 먹었다.
그래도 시집출판기념인데 맥주 한 잔 없었다.
술이 없어도 흥이 나고, 노래가 없어도 축하는 할 수 있으니까.
밥을 다 먹고 주인장이 찍어줬다.
나, 김문배 시인, 박수호 시인
그럼 커피는 제가 사겠습니다, 했더니
김 시인이 '꿩 먹고 알 먹고 커피도 공짜로 마시고' 한다며 웃으셨다.
주로 두 분이 많이 사주셨는데요, 뭘.
골목을 빠져나와 부천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더착한커피>가 있다.
카페라떼 아이스, 뜨거운 아메리카노, 연유라떼 - 세 사람이 각기 다른 메뉴.
나야 늘 달달한 연유라떼이다.
시집 출판과 관련한 이야기, 시집 제목부터 시 표현까지
박 시인의 강의(?)로 시작되어
정치 이야기, 윤석열, 조국, 이재명, 홍준표에 한동훈까지
셋의 정치적 성향이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기에
정치 이야기를 해도 서로 기분 나쁠 게 없다.
부천의 문학회 이야기는 늘 빠지지 않는다.
나는 매부상 치르고 온 것을 이야기하며
매부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 김 시인의 건강 관리 비법을 묻기도 했다.
나이를 떠나 문학적 취향이 비슷하기에 어울릴 수 있다.
옆집 형님 같은 박 시인, 팔순 중반으로 들어서는 김 시인.
이런 분들이 나를 청하니 나로서는 영광이지 않은가.
박 시인이 출간한 시집 배달(?)할 곳이 있다며 일어섰다.
아닌게 아니라 커다란 책보따리를 들고 계셨다.
다시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부일로로 들어서 골목으로 향하는데
나올 때에는 그냥 지나쳤던 미용실 앞에 화분이 놓여있다.
아까도 있었던가.
내가 이렇다. 아니 그때 그때 보이는 게 다르다.
끝물인 <목베고니아>가 빼곰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사랑초> 사이에 딱 한송이 <스파티필름>도 얼굴을 들고 있고.
<에키네시아>도 한창 피어난다.
언제 봐도 앙증맞게 사랑스러운 <사랑초>
잎이 이런 색인 것들을 <나비사랑초>라 부르는데
내 입에는 그냥 몽땅 <사랑초>이다.
한낮이라 얼굴이 활짝 폈다.
일흔 중반을 향하는 박 시인의 시심은 그칠 줄 모른다.
아우인 내가 참 부끄럽다.
'소설가', '문학박사'란 이름만 그럴 듯하지
제대로 된 소설 한 편, 시 한 편 발표한 게 언제였는지~~
빙 돌아 시낭송에 디씨포엠에 시 해설만 끄적이고 있으니~~
같은 문학이라 변명한다 해도,
나는 분명 소설가인데 소설을 못쓰고 있으니 한심하지 않은가.
정신차리자.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골랑 셋이 만난 박 시인의 시집 출판 기념회였지만
나는 수천 명 모인 기념식의 감동을 받고
그 기를 받아 집으로 갔다.
내 작품 써야 한다고.
― 늦게 쓴 6월 27일 일기 중에서
첫댓글 세분 시인의 맑고 , 청량한 기운이 이새벽 세종시까지 전해 옵니다 ㆍ
세분 시인 모두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ㆍ고맙습니다 ㆍ
끝내 어쩌지 못하는 마음
이것을 무어라 해야 할지 망설이는데
발등에 꽃잎 떨어진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묻고 싶은
오후 3시.
표현을 적절하게 잘 해주셨네요
조운글 감사드립니다
건필하십시오~~
문인들의 우정 계속되길 기원하며 시 뭔지 모르지만 삶에 함축된 표현이 아닐까 여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