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옷과 푸새
김여정
계절 따라 연례 행사처럼 농 속을 정리한다, 곱게 수놓은 침대
커버와 이불 베갯잇까지 차곡차곡 잘 정리된 모시옷들을 보듬
어 본다.
무더워지는 여름날 까실까실하고 시원하게 깔고 덮을 이불과
옷을 보니 문득 어머니께 일을 배우던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뭉
클해진다. 모시뿐 아니라 모든 옷감에 풀을 해 입던 시절 맏딸
인 나에게 어머니께서 가족들의 청결하고 정갈한 옷차림은 그
집 안 사람의 솜씨로 이어진다시며 의복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
다고 당부하셨다.
작년에 풀을 빼어두었던 모시옷을 뒤집어 손질해 놓고 쌀가
루를 풀어 끓는 물에 넣어 농도를 알맞게 풀을 쑤어 식힌 다음,
중이적삼과 치마적삼 등거리 등 풀이 고루 배이도록 주물러서
줄에 넌다 소매는 이쪽 저쪽으로 제쳐가며 겹쳐진 부분이 골고
루 마르도록 손을 본다.
촉촉해진 빨래를 반반하게 개어 빨래 보에 싸서 발로 밟고 또
다시 주름살이 펴지도록 손으로 쓰다듬어 개서 발 다듬이를 한
다 너무 마른 것에 물뿌리개로 고르게 물을 품으며 옛일이 생
각이 나서 잔잔한 웃음이 난다. 풀을 먹이다 보면 고르게 마르지
않는다. 어머니가 마른빨래에 물을 입에 물고 '푸푸’품으시는
것을 보고 나도 해 보려다 웃음이 터져 실수를 하고 말았다. 수
건으로 훔쳐내고 그 벌로 마른 천을 빨래 사이에 놓고 다리가
아프도록 빨래를 밟던 일이 생각난다. 일을 잘 배워야 시집살이
가 수월하다고 알뜰히 가르치시며 늘 딸의 장래를 생각하시던,
어머니의 세심한 배려에 가슴이 저며온다.
그러나 합섬 섬유가 발달하여 유행되면서 풀을 하여 손질하
고 다리는 일은 차츰 보기 드물어졌다. 나날이 발전하는 문화
생활을 만끽하면서 여자들의 생활이 편리해졌다. 지금은 그 시
절이 아득한 옛이야기처럼 되어버렸다.
아버지의 중이적삼과 어머니의 치마적삼을 풀을 먹여 손질한
다음 저녁이면 풀밭에 살포시 널어 밤이슬을 맞추고 손 다리미
에 숯불을 피워 부채로 부쳐 가며 어머니와 마주잡고 다리미질
을 가로 세로 올을 세워 구김 없이 다린다. 이와같이 가족들을
깔끔하고 산뜻하게 해 내세우는 것을 주부의 자존심으로 생각
하시고 정성껏 손질을 하셨다.
어머니는 많은 빨래를 다리며 지루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하
신다. 동네 앞 큰 돌배나무가 있었는데 개똥이네 엄마가 배나무
에 올라 배를 털다 주인에게 들켰는데 주인이 '남의 배를 터는
사람이 누구야' 고 소리치자 적반하장으로,
"소리 지르지마 사람 떨어져 죽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나는 이야기만 들으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 이야
기를 듣다보면 어느 곁에 깨끗한 빨래가 반듯하게 채곡채곡 쌓
여갔다.
이렇게 손질을 한 옥색치마 흰색적삼에 옥비녀를 꽂은 어머
니가 나들이하실 때면 학처럼 고고하고 청아한 그 모습이 신선
이 하강한 듯 청초하게 비쳤다.
그래서인지 길거리에 나서면 시원스레 노출되고 세련된 아름
다운 채색의 옷들이 다양하지만 드물게 띄는 모시옷은 이름 없
는 들꽃들 사이에 청초한 한 송이 백합처럼 그윽한 인상이 풍기
어 나의 시선은 그 곳에 머문다.
친정 부모님이 즐겨 입으셨고 시아버님께서도 순전히 모시
옷만 입으셨다. 남편도 중년 이후 모시옷을 입기 시작하여 여름
이면 모시와 나는 밀착한 관계가 되었다. 구김살없이 산뜻하고
깔깔한 모시옷을 입고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은 시원한 바람이
일고 보기에도 고고해 보인다.
섬세하고 단아함으로 우리 민족이 가장 선호하는 직물인 모
시는 공기가 잘 통하여 입는 이는 물론 보는 이의 마음까지 시
원하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나도 가끔은 모시 치마적삼을 입는
다. 실 한 가닥 한 가닥에 미세한 구멍이 있어 살아 있는 섬유인
모시는 통풍과 땀이 잘 흡수되면서도 면에 비해 서너 배 이상
질기다. 모시적삼 한올한올 사이로 솔솔 들어오는 바람이 살갗
에 닿는 그 촉감의 시원함은 너무도 환상적이다. 신선함이 학이
되어 날아 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길에 나서면 나이 드신 어른
들은 참 깔끔하고 시원해 보인다며 뒤돌아본다. 이 옷이 되기까
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이 가고 공력으로 모시가 짜여지고,
여름철에 선호하는 직물이 되기까지의 노고와 품이 들었을까
생각하면 옷을 만들고 푸새를 하는 일은 작은 섬세한 일에 불과
하다. 추단하기 힘들고 불편함도 없지 않지만 모든 인생사가 쉬
운 것이 어디 있으랴. 사람이 힘들인 만큼 아름다워지고 인생이
살아가는 데도 노력을 한 만큼 그 결과가 있게되리라 생각된다.
어느 날 모시옷을 잘 차려입고 골목길로 들어섰다. 어떤 집
대문 앞을 지나치려는데 세차를 한 듯 물이 고여있어 옆으로
비껴 있는데 택시가 지나면서 물이 나에게로 모두 튀어 배겼다.
'어머!! 이럴수가' 물에 젖은 모시옷은 맨살 같았다. 순간 산뜻
했던 옷은 후줄근하게 되고 당혹스런 광경이었다. 누가 볼까 봐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온 황당한 일이었다. 물에 약한 모시옷은
갑자기 비가 온다든지 하면 이것이 단점이다.
모시는 고려시대에도 저마 섬유를 모시라 일컬었으며, 우리나
라와 인도 중국에서 고대로부터 사용되었는데 오늘날은 열대,
아열대 지역 여러 곳에서 재배되고 있다 한다. 한산의 모시 짜기
는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모시의 재배 제사 제직의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 요즈음 중국 모시로 개량된 한복을 입기도 하는
데, 간편하게 차를 타고 내리는 데에도 별로 불편하지 않고 시원
하고 산뜻한 기쁨도 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꽁지 빠진 수탉
같아 어설프고 안기는 맛이 적다. 알맞게 푸새를 한 한산세모시
치마적삼이야말로 아름다운 미의 극치이며 뭇 닭 속에 고고한
학 같은 느낌을 준다. 공력이 좀 들어도 모시옷을 즐겨 입고 여
름을 시원하게 지내리라.
항상 새 옷처럼 까실까실하고 상큼하게 입을 수 있어 좋다 곱
게 모시옷을 차려입는 여인은 단정하고 바지런해 보인다. 여름
의 최고의 멋과 품위로 한산 세모시가 시원하고 단아하며 청초
한 복식으로 아마도 유명한 명맥을 이어가리라.
2003 16집
첫댓글 섬세하고 단아함으로 우리 민족이 가장 선호하는 직물인 모시는 공기가 잘 통하여 입는 이는 물론 보는 이의 마음까지 시원하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새 옷처럼 까실까실하고 상큼하게 입을 수 있어 좋다 곱게 모시옷을 차려입는 여인은 단정하고 바지런해 보인다. 여름의 최고의 멋과 품위로 한산 세모시가 시원하고 단아하며 청초한 복식으로 아마도 유명한 명맥을 이어가리라.
사람의 손이 가고 공력으로 모시가 짜여지고,
여름철에 선호하는 직물이 되기까지의 노고와 품이 들었을까
생각하면 옷을 만들고 푸새를 하는 일은 작은 섬세한 일에 불과
하다. 추단하기 힘들고 불편함도 없지 않지만 모든 인생사가 쉬
운 것이 어디 있으랴. 사람이 힘들인 만큼 아름다워지고 인생이
살아가는 데도 노력을 한 만큼 그 결과가 있게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