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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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 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淸風)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송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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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신한 대숲의 호위를 받으며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제월봉 기슧 벼랑에 수수한 정자가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순이 41세에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면앙정. 존경받던 유림의 어른,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김안로 일파가 세력을 잡자 송순은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을 벗삼아 조용히 시를 읊으며 세상을 뜰 때까지 머문 곳이다. 사방이 트인 마루에 앉아있노라면 주변 들판이 파노라마 카메라 광각렌즈처럼 안기듯 들어온다. 한거(閑居)와 수양, 은둔의 공간 정자 뒤편엔 너른 평야와 산줄기가 아련하게 펼쳐진다. 본래 면앙정 터에는 곽씨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는데, 어느 날 금어와 옥대를 두른 선비들이 집으로 모여드는 꿈을 꾸어 장차 자기 아들이 벼슬할 것이라 생각돼 재산을 통틀어 공부를 시켰지만 출세는커녕 바짝 빈곤해져 곽씨네는 이사를 가버렸다. 송순이 이 터를 장만하여 정자를 짓고 유유자적하는 동안 후에 노학자, 가객, 시인들이 드나들어 면앙정은 호남 가사문학의 산실이 되었다는....
-기대승의 '면앙정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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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땅을 내려다 보기도 하며 바람을 쐬면서 남은 생애를 보내게 되었으니 나의 본래 원하던 바가 이제야 이루어졌다.' 온전히 자연과 하나 되어 댓잎처럼 청정하게 사셨던 선비. 성격이 너그럽고 후한데다가 흥취가 호연하고 음률 감각도 뛰어나 가야금을 잘 타셨다니 멋과 맛을 아는 울 모놀인들이 찾아 반가움에 취해 "오호라!" 얼굴에 꽃돋이 달아올라 좋아하셨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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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박물관 뒤꼍 대숲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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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개성 다음으로 세금을 많이 낼 만큼 왕성했던 담양의 죽물시장. 300년 역사를 가진 와글와글한 장터의 흔적을 이젠 대나무 박물관에서 눈으로만 훑어야 한다. 시대에 따라 생활양식도 변했고, 장인의 정신으로 짜낸 담양의 죽세공예품을 찾는 이들이 뜸해진 탓.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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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잔등 따뜻한 남자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머리카락 날리며 달리면 기분 알싸할 길. 까르륵 까르륵 웃음조각 날리며 모놀 님들과 걸었던 메타세쿼이아 길도 좋았다. 알마추 단풍 든 메타세쿼이수는 그 거대한 몸집과 달리 홍조를 띈 바늘잎이 가늘게 떨기에 눈맞춤 하고 달래주려 해도 그쪽 키는 하늘로 치솟고 내 키는 땅꼬마기에 마른 침만 삼켰다는....
-'담양 둑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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멎은 듯한 고요로 독특한 서정을 자아내는 둑방길, '길을 잃다', 그러나 길을 잃어 들어선 길이 막막하게 그리워했던 길이 될 줄이야! 갈대와 억새를 함께 보는 산산스러움과 11월이 빚어내는 아련한 풍경. 흐린 널빤지처럼 쓰러진 시간 위에 금싸라기같은 늦가을 볕이 오소소 쏟아지니 그대로 시곗바늘을 똑 부러뜨리고 해찰하고 싶었다.
-'관방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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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무는 연하면서 강하다. 둥치가 큰 아름의 휘우둠한 나뭇가지가 땅에 닿는 듯하다가 다시 치솟아 리듬을 탔다. 담양천가 관방제 숲, 조선 인조 때 수해를 막기 위해 관비를 들여 둑을 쌓아 만들었다는데 오랜 풍상을 견뎌낸 늙은 나무들이 꼬래비같은 나를 내치지 않고 너른 품으로 안아주는데 글썽글썽. 엄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은단풍, 개서어나무......이름표를 단 나무, 나무들. 늙고 늙어 살점은 다 떨어져 나가고 삐걱거리는 관절에 기침 쿨럭거리면서도 가부좌를 틀고 있는 고비늙은 나무를 만나며 관방제림에서 우리 인생 아리랑을 보았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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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풍나게 살지 말기. 바람, 나무, 하늘, 물 그리고 사람 마음이 함께 '결'을 이루며 살아가면 되는 것을......
-'죽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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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게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모놀의 오우가 님이 아닌 윤선도의 '五友歌'다섯 째 수에서- 절개와 지조를 나타내면서도 낭창거리는 잎으로 부드러움을 안겨주는 대나무. 얼금얼금 금살 무늬를 만드는 대숲에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머리꼭지서 발끝을 관통한다. 뼈 마디 마디가 청신해지고 머리가 말개진다. 또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핸드폰을 꺼두라던 오래 전 CF 광고 카피가 없었대도 모든 것을 '멈춤모드'로 해야만 예우 갖춤이 되는 곳. 요모조모 붙여놓은 길 이름도 담백하다. 여의치 않은 시간에 조근조근 대숲 속살 길을 다 걸어보진 못했지만 지나치면서 눈찜한 팻말, '사랑이 변치 않는 길' .
-'소쇄원 대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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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락 사르락 울창한 대밭의 서늘한 바람을 받으며 오르니 딴 세상이 나온다, 창암(蒼岩) 양산보의 마음이 샅샅이 닿은 소쇄원 원림. 자연에 상채기를 내지 않고 천연스러운 멋을 살린 후원은 무릉도원이다. '봉황처럼 소중한 손을 기다려 맞는다'는 다정한 뜻이 깃든 대봉대. 대봉대에 앉아 있으면 소쇄원의 전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들어온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 이쪽 세상 모든 시름 다 내려놓고 대봉대에 앉아 달을 완상하는 풍류를 즐겨봤으면...
-'소쇄원 광풍각, 제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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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로 얹은 ㄱ자의 흙돌담이 아늑하게 이어진 길을 따라 걸으면 받침돌이 고이고 있는 담장을 만난다. 공복의 허기같은 까칠한 11월이라 물방울을 튀기며 용솟음치는 장쾌한 물줄기는 굶었지만 받침돌 사이로 물이 흘러가게 한 자연미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위켠에 있는 '제월당'이 주인의 사적인 공간이라면 계류와 수경을 느낄 수 있는 아래켠 '광풍각'은 사랑방. 더욱 아취가 느껴지는 것은 제월당과 광풍각 사이 경계를 긋는 야트막한 돌담과 좁은 문이 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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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결같은 담장에 새겨져 있는 '오곡문' 담 밑으로 흘러든 물이 암반 위에서 다섯 굽이를 이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마음의 평정만 찾는다면 눈 감고도 건널 것 같은 외나무 다리를 건너니 켜켜 이룬 꽃떡이 아닌 꽃계단이 나온다. '매대(梅臺)'라고도 불리는 그 곳에 층층이 매화가 벙글 새봄을 생각하니 나른해졌다.
식영정(사진없음, 이유는 말할 수 없음ㅋㅋ)
낙엽수에 묻힌 돌계단을 사그락 사그락 밟고 오르니 알마추 배부른 소나무가 몸을 틀며 반긴다.
담양 별뫼마을, 광주호가 마음을 씻어주는 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식영정.
풍류가 다분했던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세운 정자다.
목숨 붙이고 있는한 매달고 함께 사는 그림자,
식영정이 그 고단한 그림자를 쉬게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니 듣기만 해도 위안이 된다.
옛날 광주호가 생기기 전엔 정자 밑으로 자미탄이라는 여울이 있었고,
그 물길을 따라 백일홍이 십 리나 자랐다고 하는데.....그 황홀한 실경에 꽃진물이 나진 않았을까.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주인의 인간미에 끌려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모여들었던 곳.
지금으로 본다면 '남산 문학의 집'이나 '원주 토지문학관', '연희 문학창작촌'....같은 역할을 했으리라.
식영정은 송순의 '면앙정가'의 영향을 받은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짓는데 산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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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체온이 곰실곰실 느껴지는 담양, 고향 불빛같은 홍시를 가슴에 걸어둔 느낌이다. 발걸음 닿는 곳마다 의미가 되고 추억으로 갈무리된 여정. 아랫녘 푸진 인정에 내 배는 바람을 잔뜩 집어삼킨 애드벌룬으로 빵빵해졌고 가슴은 장작을 괄괄하게 지핀 구들장으로 뜨끈해져 지금도 손을 대면 "앗, 뜨거!"다. 인간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은 악기가 아니라 사람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라던데 나는 여기다가 지그시 눈 감고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2009년도 얼마 안 있으면 '안녕, 안녕'으로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 하지만 그다지 슬프지 않은 것은 모놀인들의 情이 있어서다. 내가 모놀 안에 있고, 모놀이 내 마음의 울타리가 되어 주니 덜 슬프고 덜 힘들고,,,,,감사, 감사할 뿐이다. 90차 답사 저랑 함께 해주신 분들, 고맙고 제가 좋아한다는 것 아실랑가요? 90차 답사 함께 못한 울 모놀인들, 죄송하고 제가 안타까워하는 것 아실랑가요?